Power of Less 파워오브레스
리오 바바우타 지음, 허형은 옮김 / 진명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얼핏 보면 참 당연한 이야기, 사소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책.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사소한 습관 하나 바꾸는 것이 남북통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걸. 때문에 지나치게 사소해 보이는 저자의 충고 혹은 제안은 의외로 유익하다.

 

책의 주장은 단순명료하다. 1.핵심을 간파한다. 2.나머지는 제거한다. 간단하다. 24시간 너무나 바빠 도저히 개인적인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한탄하는 이들. 혹은 하루 종일 해치우는 일들은 많은 것 같은데, 정작 뭐 하나 제대로 끝낸 것이 없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책은 가장 중요한 것을 정해 해결하고, 그 나머지 것들은 잠시 잊으라 말한다.

 

물론 이 역시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생각해보라. 우리는 아침에 눈떠 허겁지겁 출근하고, 사무실에 들어와 컴퓨터를 켠 후 습관적으로 이메일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이 그날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다만 습관이 되었을 뿐이다.

 

저자는 이처럼 이메일을 매일 습관적으로 확인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정해진 시간에만 확인하고 쓸데없는 이메일이 오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하며, 가능한 한 메일을 처리하는 것도 하루에 몇 통씩 제한을 두라고 조언한다. 저자의 경험상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또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이처럼 책은 이메일을 정리하는 법, 사무실과 집안의 잡동사니를 정리해 쾌적한 환경에 더욱 더 높은 집중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법, 식사와 운동을 통해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것들, 그러나 그동안 그대로 방치했던 습관들을 바꾸라고 말한다. 동기를 부여하고 사소한 목표를 세워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한다. 그리곤 점차 수준을 높여 결국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다.

 

저자는 멀티태스킹을 신뢰하지 않는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기엔 우리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끝내기도 힘들다는 것. 때문에 무엇을 하든지 일단 한 가지 일을 하면 다른 것은 잊고 오직 그 일에만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처음에는 느려 보일 수 있어도 결국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며 결국 그것들을 깔끔하게 끝내는 이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한 가지 일을 집중해서 끝내고 다음 일을 하는 것이 내겐 더 맞는 방법이다. 능률도 더 높다. 동시다발은 전쟁이나 테러나 또 우리 생활에도 그리 좋은 단어는 아니다.

 

저자는 이처럼 사소한 생활의 변화를 통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시작은 미약했다. 서류함 정리하기, 약속 안 잡고 가족들과 시간보내기, 독서하기, 운동하기 등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부채청산, 수입 두 배 증가, 금연, 20kg 체중감량 등 20여 가지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는 구독자 6만 명, 방문자 200만 명을 자랑하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블로그 50에 선정되었다.

 

뭐 이쯤 되면 부지런하고 깔끔하고 집중력이 높은 사람이 성공한 이야기구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책엔 그의 성공 스토리가 없다. 다만 그가 어떤 방식으로 서류를 정리했고 집안을 정리했으며, 이메일, 전화 등을 적절히 조절했고, 업무를 함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하고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리스트를 작성해 그것부터 하나씩 해나갔는지 과정만이 소개된다. 그는 책을 읽는 누구나 자신과 같이 사소한 목표부터 시작해 하나씩 이뤄간다면 결국 가장 중요한 인생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호언장담까지는 아니지만 자신 있어 보인다.

 

“오늘날 우리는 2백 년 전만 해도 꿈도 못 꿨을 엄청난 속도로 정보와 음식, 미디어 등을 소비하고 있다. 하루 스케줄의 마지막 1분까지 할 일로 꽉 채워져 있기에 우리는 아침도 거르고 출근하고 온종일 헐레벌떡 뛰어다니며 긴 하루가 끝나면 지쳐서 침대 위로 쓰러진다. 문제는 인간은 이렇게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정신은 천천히 굴러가는 삶에 알맞도록 설계되어 있다. 어쩌면 포악한 짐승에게 잠시 쫓기는 정도의 스트레스는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속적인 과로가 주는 엄청난 스트레스, 깨어있는 시간 내내 숨 가쁘게 달려야 하는 페이스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다. 그 결과 우리는 피곤에 절어 항상 지쳐있고 항상 비참하다. 바꿔 말하면 페이스를 늦출 수만 있다면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더불어 효율성과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

적은 시간 안에 더 많이 하는 법을 배우라는 게 아니다.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어떤 일이든 제대로 하는 것과 정말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이 두 가지다. 이 단순한 조합이 일의 효율이나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건 차치하더라도 페이스를 늦추기만 한다면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하건 우리의 삶은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꼭 해야 할 일과 굳이 필요 없는 일들을 구분해 행동하는 것.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을 먼저 해결하는 것.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목표를 작게 잡고 시작한다면 영영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제안.

 

매력적이다. 참고로 책을 읽고 난 지금 다시 운동을 조금씩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너저분한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책상이 깨끗해졌다는 것만으로도 책은 나에게 사명을 다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른 살에 처음 시작하는 직장인 밴드 서른 살 처음 1
전미영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웃었다. 기분이 좋아서. 크게 웃었다. 재미있어서. 그리곤 다시 오기가 생겼다. 자극 받아서. 이게 책을 읽은 다음의 감정 변화 혹은 느낌이었다.

 

시간 참 빠르다 빠르다 한다. 항상 20대일 줄만 알았던 나도 어느 새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렸을 땐 30대가 되면 적어도 어떤 분야에서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하곤 했다. 저자의 말대로 “서른 살. 뭔가 ‘있어 보이는’ 나이. 성취, 성과, 성공이란 말들과 짝을 이루는 나이. ‘서른 살 때는 인생의 이루고픈 목표들을 웬만큼 다 이루었겠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일이든, 사랑이든, 돈이든…

 

하지만 이미 30대를 지난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전히 난 지금도 불안하고 불만이다. 흔들리고 좌절하며, 일, 돈, 우정, 신념, 철학 등 그 어느 것도 야무지게 챙기지 못했다. 양심이란 것에 모든 것을 걸다가도, 그야말로 사소한 유혹에 넘어지기도 하고. 또 좌절하곤 했다. 그게 내가 살아온 30대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왠지 기분이 좋아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로 밴드다.

 

1996년 결성됐으니 이제 14년이 지난 것인가. 당시 보기 싫게 대학에 떨어진 난 그 원인을 찾으려 있지도 않은 핑계들을 만들려 했다. 결국은 내가 공부를 안 한 것임을 빤히 알면서도, 기타 등등의 이유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젊은 날의 치기, 허풍, 오만 그리고 지독한 순진함이 결국 대학이란 시스템에 내가 접근하지 못한 이유였음을 그때나 지금이나 잘 알고 있다.

 

그때였다. 내가 밴드를 만들게 된 것이. 이미 고등학교 축제에 나설만큼 실력을 갖추고 있던 기타 녀석과 내 Fireball 친구 녀석 하나(역시 기타). 이 녀석은 그 전까지 하수빈을 사랑하던 락의 문외한이었다. 그리고 통신을 통해 역시 오랜 시간동안 친하게 지냈던 녀석 하나. 이렇게 넷이 팀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어찌 어찌 연줄이 닿아 베이스를 구하게 되었고. 5인조의 밴드 틀이 만들어졌다. 그렇다. 난 보컬이다.

 

이후 기타의 군입대 전까지 우리는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는다. 지금 말하면 우스울 수도 있지만, 당시의 인기는 나름 있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대학로, 홍대, 신림동을 누비며 밤을 불살랐고, 비헤드라는 밴드 이름이 제법 그 바닥에서 알려졌다. 물론 아는 사람들만 알았다.

 

리드 기타의 입대 이후 우리는 역시 고교 동창 녀석을 영입해 라이브를 지속했고, 후에 그 녀석마저 입대한 뒤에는 공고를 통해 실력이 빵빵한 형님을 모셔 라이브를 이어갔다. 정말 착하고 순진하신 형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곡들이 아니었음에도 묵묵히 연주했다. 멋진 형님이다.

 

그렇게 공연을 이어가던 우리는 결국 다들 몸에 하자가 없는 관계로, 혹은 빽이 없는 관계로 줄줄이 군에 가게 되었고, 팀은 자연히 일시 해체가 되었다. 그리곤 다시 모인 2002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모여 연습을 시작했고, 나름 즐거운 복귀 라이브를 펼쳤다. 홍대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이젠 멤버의 탈퇴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의 멤버가 아닌 다른 이를 영입해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리만큼 우리는 호흡이 맞는다. 다들 나이를 드시고 결혼을 하기도 해서 모이는 것이 쉽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모인다. 그리고 불사른다. 이밤을~! 그리고 외친다. “다 죽자~!”고.

 

스쿨밴드에서 그냥 인디밴드, 그리고 다시 직장인 밴드(뭐 다들 일을 하니 그렇게 된 거지. 사실 우리는 직장인 밴드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가 된 지금. 우리에게 음악은 무엇일까. 단순히 만나 노는 것일까. 수십만의 관중이 모인 우드스탁에서 머리를 흔들어가며, 뛰어다니며, 맥주병을 집어 던져가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꿈을 여전히! 꾸고 있는 락앤롤 정키들일까.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섞이지 않는다면 인간은 죽는다. 100% 죽는다. 산다 해도 그건 좀비다. 돈 버는 좀비, 유기물을 섭취하며 숨을 쉬는 좀비, 섹스하는 좀비, 타인을 괴롭히는 좀비, 스스로 괴로워 몸부림치는 좀비.

 

때문에 난 행복하다. 상당히. 100번이 넘는 무대에 올라섰고, 100번이 넘는 ‘Fuck You!’를 날렸고, 100번이 넘는 앵콜을 받았다. 그리곤 모든 것을 잊고 음악 자체에 빠져 젊음을 불살랐다. 그러면 된 거다. 충분하다.

 

이제 우린 올 9월~10월을 목표로 연습 중이다. 당연히 공연이 목표다. 요즘 유행하는 음악들보다는 우리의 청춘을 함께 했던 그 음악들과 함께 할 것이다. 메틀리카, 너바나, 스키드 로우, 미스터 빅, 오지 오스본, 딥 퍼플, 그린 데이, 메가데스, 신데렐라, 건즈, 스매싱 펌킨스, 시나위 까지.

 

책은 직장인 밴드를 꿈꾸는 초보 락커들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또한 나처럼 옛 열정과 무대가 언제나 가슴 한켠에 자리잡아, “다시 마이크를 잡아!”라고 외치는 이들도 읽어봄 직 한다. 다시 음악이라는, 락이라는, 무대라는 마약이 당신을 유혹할 것이 틀림없다.

 

자. 이유는 필요 없다. 핑계도 집어치워라. 지금 이 시간, 이 삶, 생활이 왠지 부족하다고 느끼는 당신, 무언가 가슴에 맺힌 것이 있는 이라면.

 

지금 당장! 일어나라. 무대가 그대를 기다린다.

 

Rock N’Roll! Foreve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이라는 거짓말 - 경제성장의 장막에 가려진 중국
기 소르망 지음, 홍상희.박혜영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민족, 민족주의. 그렇게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다. 신자들에겐 정말 미안한 말이 아닐 수 없지만, 종교라는 단어 역시 나에겐 부정어다. 인류의 길지 않은 여정을 돌아봤을 때 종교 그리고 민족이라는 단어를 살육에 사용한 예가 얼마나 많았는가. 때문에 종교의 순기능, 민족의식의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여전히 나에겐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흔히 한민족이라 한다. 우리는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전통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역시 만만치 않다. 그들은 아예 세상의 중심이 자신들이 서있는 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건 과거형이 아니다. 중화주의. 이건 파시즘에 맞먹는 파괴력과 음모를 지니고 있다.

 

기 소르망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실천하는 우파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수많은 저서 중 《Made In USA》를 읽은 바 있다. 뭐 그다지 공감하는 내용은 없었다고 기억된다. 하지만 시시콜콜하게 사소한 것 하나까지 물고 늘어지는 끈기는 왠지 어디에선가 본 듯한 느낌이었다.

 

2006년에 발간된 이 책은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중국이 과연 ‘제대로 된’ 국가인지 꼴랑 1년간의 중국 체류를 바탕으로 풀어간다. 물론 그 전에도 수없이 중국을 오가며 자료를 모으고 사람들을 만나왔다고 저자는 밝히지만 뭐 그다지 신뢰는 가지 않는다.

 

나에겐 참 흔치 않은 일인데, 한 번 읽은 후 다시 페이지를 펼친 책이다. 책이 너무 어렵거나 문장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를 찾기 위함이 아니었다. 다만 한 번 읽고 던지기엔 왠지 그 음모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를 대충이라도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중국은 그리고 중국인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은 결코 정체되어 있던 적이 없었다. 끊임없는 반란과 이동, 왕조의 교체, 내전 등 중국은 역동적으로 그들의 역사를 일궈왔다. 물론 일제를 비롯해 서구 열강들에게 갈기갈기 찢길 때의 중국은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기력해 보였고, 자신들의 ‘세상’이 결코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느끼는 뼈저린 경험도 했다.

 

하지만 중국은 결코 그 순간에도 멈춰있지 않았다. 그들은 복수의 그날을 꿈꾸었고, 그럴 수 있다면 사회주의가 되었든, 공산주의가 되었든 묻거나 따지지 않았다. 그들은 위대한 중화민족 아닌가. 한낱 섬나라 일본에게 침탈당하고 서구의 작은 나라들에게 유린당했던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 중국은 그 후 그야말로 경악할 만한 부작용을 겪어가며 오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야말로 제국의 귀환이다.

 

그렇다면 살펴보자. 지금의 중국은 과연 예전 명성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제국이 되었는가. 그리고 중국 인민들이 원하는 것이 예전의 명성 혹은 악명을 되찾는 것인가. 그것을 위해 철저히 희생당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책은 중국의 주류, 즉 중국공산당이나 학계를 중심으로 풀어가지 않았다. 저자는 천안문 사태의 주역들, 혹은 일반 농민, 노동자들을 만나며 중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결론짓는다. 지금의 중국은 거짓말이라고.

 

파격적인 책이라고 선전했지만 나에겐 그렇게 파격적이지도 섹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본다. 이 책을 저자의 모국인 프랑스를 비롯해 서구 세계에서 봤다면 어느 정도의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 내가 봐도 서구가 바라보는 중국은 심하게 뒤틀려있기 때문이다.

 

우린 전생에 뭔 잘못을 했는지는 몰라도 빅 브라더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만만한 국가가 없다. 물론 어떤 국가라도 만만하게 봐선 안 되겠지만. 암튼 그렇다.

 

때문에 살아온 길들이 순탄치 않았고, 앞으로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주변의 빅 브라더들을 보다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동안은 미국 덕, 동족 간의 피터지는 살육 등으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게 되었지만, 앞으로는 국물도 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처절한 생존 게임이 벌어질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다.

 

중국은 대국이다. 인민들 각자가 그런 자격을 갖추었는지, 집권 세력인 중국공산당이 그런 능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무시할 수 없는 대국으로 우뚝 선 국가다. 마오쩌둥이 대장정을 하며 이룩한 중화인민공화국 당시의 중국이 아니다. 공산주의를 외치며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때문에 거대한 경제적 성과를 이루었지만 그에 따른 인민들의 삶의 향상까지는 가지 못한 어정쩡한 상태.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국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세계는 중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중국의 13억 인민들은 무엇을 꿈꾸는가. 민주주의, 인권, 시민의 권리 등이 온전히 담보되는 중국은 가능할 것인가.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으며 어떤 존재가 될 것이며,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무엇하나 쉬운 녀석이 없다.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 다시 말하지만 난 민족이란 말을 싫어한다. 때문에 한민족의 미래, 동북아에서의 한국의 위상 따위는 관심도 없다. 그저 남 안 괴롭히고 우리 안의 또 다른 계급들을 만들지 아니하며, 그들을 착취하며 살아가는 구조를 깨부수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민족을 거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부정할 수 없다.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볼 수 없으며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참으로 식상한 말을 할 필요도 없다. 과거에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이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어떤 후과로 다가왔는지 기억하지 못하면 안 된다.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책은 흥미롭다. 중국공산당의 공식적인 입장과 함께 그 이면에 있는 대다수 중국 인민들의 생각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그 안에 있는 모든 모순들을 외면하는 세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결코 중국은 이 상태로 가선 희망이 없다는 저자의 말에도 동의할 수 없지만, 막연한 기대감으로 중국이 바른 길로 갈 것이라 믿는 서구, 그리고 세계의 시각에도 동의할 수 없다.

 

책에는 기가 막힌 내용들이 넘친다. 에이즈에 감염된(그것도 조직적 매혈 과정을 통해) 마을을 고립시켜 마을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한 중국 당국의 놀라운 처사. 모든 부정적 현상들을 ‘과도기’란 단 한 단어로 설명하는 중국 당국의 뛰어난 단순함. 그리고 중국과 중국공산당을 일치시켜 바라보는 외부의 착시. 그 사이 무섭게 군사력을 키우는 중국공산당.

 

저자의 시각으로 희망. 그리고 절망이 동시에 드러나는 책. 중국이라는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되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인민들의 고통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는, 그야말로 서구의 양심적 지식인이라는 수식어에 부합되는 결론은 식상하다. 하지만 중국을 새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미덕이다.

 

중국은 중국이다.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중국은 우리에겐 그냥 중국이 아니다. 이를 잊는다면 우리는 또 다시 귀찮은, 치명적으로 귀찮은 일들에 휘말릴 것이다. 중국은 생각보다 거대하고 생각보다 영악하다. 또 생각보다 허약하다.

 

내 밥벌이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 금강산 피격 사건 이후 금강산, 개성 관광이 중단된 이래 지지부진 지금까지 정부가 재개를 하지 않은 덕분(!)으로 현재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금강산, 개성 관광이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북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가 관광을 재개할 의지가 더 이상 없어 보이면, 이제 다시 금강산과 개성을 갈 수 있는 길은 없어질 것이다.

 

그깟 관광 안가면 어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할 수 없지만. 그 이후의 남북관계를 생각해보면 참 암담하다는 생각뿐이다. 뭐 대통령을 두 분이나 보내고도 정신 못 차리는 민주당에게도 큰 책임이 있지만, 일차적으로 통일에 대해, 남북관계에 대해, 우파들이 그렇게나 강조하는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철학이 없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각하의 마인드가 나를 슬프게 한다.

 

뭐 역사가 정말 심판을 한다고 한다면, 이들은 역사가 보증하는 죄인들이 될 터. 한심함을 떠나 연민을 느낀다.

 

그렇게 살다 어여 가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디언은 절대 무슨 뜻을 달거나 이유를 붙여서 선물하지 않는다. 선물을 할 때는 그냥 상대방의 눈에 띄는 장소에 놔두고 가버린다.”

 

상당히 유명한 작품이다. 장기간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지금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다. 언제나 그렇듯 뒷북으로 이제야 읽었다.

 

사람들이 열광하고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는 책들을 신뢰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때문에 뭐 결국은 읽게 되더라도 남들 읽을 때에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무슨 심보인지…. 이 책이 대단히 유명하거나 사람들이 열광한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목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책이었음은 고백해야겠다.

 

하지만 이제 책을 덮고 오랜 만에 느끼는 먹먹함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고 찾는 책에는 그만한 이유도 얼마쯤은 있다는 사실을. 아주 오랜만에 눈물을 글썽이게 했으니 말이다.

 

인디언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내 기억에 의한 것이지만, 우리 윗세대들은 헐리우드에서 만든 기형적 서부영화의 영향으로 인디언들을 악으로 생각했고, 이제 젊은 세대들은 과거에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던 원주민, 미개인 정도? 그리고 최근에야 각종 영화나 서적을 통해 인디언들의 삶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조금씩 알고 있는 정도다.

 

뭐 여전히 인디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담은 드라마나 영화들이 나오기는 한다. 인디언 구역에서 카지노 등 도박 시설을 통한 수익에 의존하고, 마약이나 알코올에 찌들어 미래를 잃어버린 민족 정도로. 아주 가끔은 말도 안되는 능력을 부리는 초능력자로 비쳐지기도 한다. 뭐 그야말로 만드는 사람 맘대로다.

 

하지만 인디언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들이 자연과 어떻게 조화로운 삶을 이루어왔는지, 그들의 소유하지 않는 삶을 서구 문명이 어떻게 파괴하고 짓밟았는지, 의외로 자세히 알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드물다. 최근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영화 《아바타》의 영향으로 과거 캐빈 형의 《늑대와 춤을》이 다시 이야기되고, 미국 건국 초기 일어났던 인디언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미국인들, 그리고 세계인들은 인디언의 치열했던 삶을 알지 못한다.

 

책은 바로 그 인디언, 체로키의 후예 ‘작은 나무’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산 생활 이야기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 속에서 생활하게 된 ‘작은 나무’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생명에 대한 예의, 자연에 대한 예의를 배워가며 진정한 인디언 체로키로 성장한다. 그 하나 하나의 장면들은 눈을 감으면 떠오를 정도로 생생하고, 또한 아름답다. 결코 재미로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할아버지의 가르침. 언제나 필요한 만큼만 자연에게 얻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가르침은 정작 ‘작은 나무’가 아닌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죽비이다.

 

‘작은 나무’가 보내는 산 속의 생활들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작은 나무’는 자연의 냉혹함과 포근함을 동시에 알게 된다. 언제나 인간이 노력하고 존중하는 정도 내에서만 보답해주는 자연의 이치. 욕심을 부리면 더 이상 자연은 너그럽지 않다. 자연은, 또 이 세상은 결코 인간 혼자만이 살 수 없는 ‘모두의 터전’임을 책을 이야기한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가 무색한 지금에서, 책은 더욱 소중하다.

 

‘작은 나무’의 너무나 행복한 삶을 깨뜨리려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문명이다. 이는 체로키 인디언들이 강제로 살던 고향에서 추방당하고 산 속으로 숨어들었던 역사와 같다. 그리고 종교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부정하고 타 집단을 미개인으로 규정해 버리는 죄악. ‘작은 나무’는 ‘사생아’라는 단어의 뜻도 모른 채 사생아라는 욕을 들어야 했고, 결국 ‘악의 씨앗’이라는 말까지 듣는다. 하지만 인디언의 마음을 이미 가진 ‘작은 나무’는 화내기는커녕 왜 목사가 화를 내야 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자신은 다만 짝짓기하려는 사슴들의 사진을 보고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말이다.

 

책 속에 담겨진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모두 독자들을 위한 선물이다. 읽는 이들은 함께 웃고 함께 즐거워하다, 함께 울게 된다. 자연의 이치에 순종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절제된 삶을 살아갔던 체로키 인디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들에겐 너무나 값진 선물이다. 우리는 다시는 체로키 인디언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왔지 않은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못 참고 말았다. 약간 쑥스러운 눈물이다. 하지만 오히려 고마웠다. 책을 덮고도 한참을 그냥 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이곳을 새삼 둘러본다. 그리고 기억하려 애쓴다.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했던 이들의 얼굴을.

 

자신이 가야 할 때를 알고 있는 이들의 작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할머니가.”

 

너무나 많은 삶의 교훈이 담겨 있는 귀한 작품이다. 책 읽는 즐거움은 이래서 멈출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새 젊은 것들 - 발칙한 반란을 꿈꾸는
단편선.전아름.박연 지음 / 자리(내일을 여는 책)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발칙한 반란을 꿈꾸는”20대들의 이야기. 역시 20대인 필자들은 애초부터 보편성을 때려치우고, 분야를 막론하고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고군분투, 혹은 독고다이로 살아가고 있는 ‘보편적’이지 않은 20대들을 인터뷰 했다.

 

기성세대들이 저지르는 만행 중 하나는 무턱대고 훈계하고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가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지 헤아릴 줄 모른다. 그냥 닥치고 하라는 대로 하라고 떠든다. 그리고는 젊은 세대, 요새 것들은 무기력하다, 무능하다, 생각 없다 등등의 헛소리를 남발한다. 하지만 전에도 말한 바 있거니와 대체 생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냐는 말이다.

 

하긴 기성세대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이 조금 뻘쭘한 시대이긴 하다. 이유를 불문하고 싸움이 터졌다 하면 “넌 몇 살이나 처먹었어! 넌 부모도 없냐 이 자쉭아~!”를 일갈하는 기성세대. 난 그럴 때마다 ‘만약 저 어린 아해가 정말 부모님이 안 계신 아해라면…저 아저씨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생각하곤 한다. 대체 싸움에서 나이를 들먹이는 민족, 혹은 집단이 또 있을라나.

 

한때 회자되었던 ‘20대 개새끼론’이 있었다. 촛불 정국 이후에 조금 크게 불거진 개새끼론은 “20대에겐 희망이 없다. 우리는 10대 촛불소녀에게 올인할란다”로 요약할 수 있겠다. 지금의 20대는 시대를 고민하기보다는 당장의 생계, 즉 ‘먹고사니즘’에 빠져있다는 비판이다. 토익에 올인하고, 자격증에 올인하고, 스펙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젊은 세대들을 향해 준엄하게 꾸짖는 모양새다.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이 무뇌아들아!”

 

하지만 양심적으로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대충 그냥 한 번 생각이란 것을 해보자. 과연 지금 20대들이 생각 없는 무뇌아들일까. 잉여인간들일까. 그들은 이명박이 마냥 이뻐 죽겠고, 4대강 살리기가 베리 땡큐며, 삼성공화국에 이민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을까.

 

책에 등장하는 범상치 않은 20대들은, 물론 20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20대들의 진정한 고민이 무엇이며, 왜 대다수라 매도되는 20대들이 무기력해 보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조차 없이 치열해진, 아니 치열을 떠나 극단적인 생존경쟁 시스템에 이들을 몰아넣은 이들은 누구인가. 20대 스스로 이따위 개 같은 세상을 원했나. 그건 정말 아닐 것이다. 사춘기 당시 명퇴다 뭐다 해서 무너지는 아버지를 목격하고, 빌어먹을 민주화나 조국 통일의 숭고한 가치보다는 당장 월급이 끊긴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뼈저리게 느낀 이들이 지금의 20대들이다. 나 역시 IMF 당시 쫓기듯 군대로 피신한 기억이 있다. 에이 빌어먹을. 꺼이꺼이….

 

그런 20대들에게 사회는 결코 다양한 기회를 열어주지 않았다. 소위 기성세대들의 불의를 참지 못해 용감히 나섰던 386선배들도 결국 또이또이임이 드러났다. 그들은 학점이 아무리 개판이어도 대기업 취직이 가능했으며, 기득권이 된 이후에는 오히려 자신들의 자녀를 해외로 유학시키고, 원정출산이다 뭐다 개지랄을 떨었다. 또 노무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개혁 세력 역시 젊은이들이 휴일을 포기해가며 투표한 보람이 그야말로 무색하도록 무력했다. 열린우리당은 지들끼리도 열리지 못하고 무너졌고, 결국 이명박과 같은 과다한 결점의 소유자를 청와대로 이끌었다. 그런데, 지들이 판 다 만들어놓고, 온갖 개판을 다 쳐놓고, 이제 와서 20대들에게 기껏 한다는 소리가, “너희는 희망이 없다?”

 

하지만 20대들은 쉽사리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책에 등장하는 용감무쌍한 젊은이들부터 세상에 맞짱 뜨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그리고 이러한 ‘유뇌아’들이 결코 적지 않음을 알고 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지금 20대들은 정말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고, 고민하고 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걱정일 정도다. 그러니 쓸데없이 훈계하는 것보다는 이들이 보다 원만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보다 깔끔하게 고뇌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나마 세상을 이따위로 만든 기성세대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동혁이 형처럼 등록금이나 고속도로 통행료라도 깎아달라고 떠들어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범상치 않은 ‘글빨’의 소유자 한윤형, 장기하와 얼굴들이 소속되어 있는 붕가붕가레코드 곰사장, 한승수 총리를 ‘훈계’하고 이명박과 같은 학교임이 쪽팔리다고 일갈한 ‘고대녀’김지윤, ‘철학오타쿠’박가분, 살벌한 소설을 쓰는 그러나 결코 살벌하지만은 않은 소설가 김사과, 독립패션잡지 《크래커》의 편집장 장석종, 인문학의 보편화와 생활화를 꿈꾸는 부산 인디고서원의 팀장 박용준, 길거리 공연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좋아서 하는 밴드’, 20대들의 고민을 솔직하게 담은 다큐 《개청춘》의 여성영상집단 ‘반이다’까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흥미롭기 그지없다. 그리고 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 꿈꾸고 있는 것들이 새삼 가열차게 다가온다. 오히려 기성세대들에게 묻고 싶다. 이렇게 불리한 판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짓거리를 할 수 있냐고. 당신들은 그런 열정과 실력과 눈물이 남아있냐고.

 

개인적으로 필자 중 한 명인 전아름과 친하다. 아니 본인은 부정할 수도 있겠지만, 같이 일하고 있으니 일단은 친하다고 해둬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아름 씨가 책을 위해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때론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모습을 적지 않게 목격한 이로서, 말해주고 싶다. 적어도 고민하고 좌절한 보람은 있게 만들었다고. 아마 알만한 놈들은 책에 공감할 것이고, 알보다 작은 것들은 꺼이꺼이 울지도 모른다고. 박수 세 번 쳐준다.

 

모든 20대 들에게 지금 분연히 떨쳐 일어나 바리게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라고 말하기엔 상황이 조금 심각하게 수상하다. 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단계는 넘어선 듯한 모양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일단은 수긍과 인정과 반성과 양심이 동시다발적으로다가 필요하다. 기성세대들이 먼저 까놓고 ‘우리가 좀 어리바리해서 어떻게 하다 보니 요 모양 요 꼴이 됐다. 베리 쏘리다. 그런데 설마 우리가 다 말아먹고 싶었겠냐. 그러니 짜증나고 밉더라도 일단은 머리를 살포시 맞대고 같이 궁리해보자’고 해야 한다. 인간적으로, 여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다음에 훈계를 하던가, 지랄을 하던가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지난 10년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무조건 이명박 반대만을 외치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몰지각한 진보 진영과 다름이 없다.

 

책은 재미있다. 읽기에도 무리가 없고, 웃기에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넘어가기엔 상당한 무리가 있다. 생각 없다고 규정지어버린 20대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정작 기성세대가 생각이 없었음이 기냥 드러난다. 때문에 조금은 쪽팔리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이왕 팔릴 쪽, 먼저가 낫다.

 

책을 읽으며 느낀다. 아 빌어먹을, 나도 기성세대에 들어가는 건가. 뭐 20대는 아니니 말이다. 살짝 억울하기도 하고, “얘들아, 난 니들이 알고 있는 꼰대가 아니야”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어느 새 나이는 드셨고, 생각도 많이 굳어진 스스로를 느낀다. 다시 한 번 빌어먹을이다.

 

하지만 응원한다. 뭐가 되더라도 일단 한다는 게 멋진 것이다. 20대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20대들이 생각 없다고 떠드는 인간들에게 말하고 싶다. 4·19때, 5·18때, 6·10때 단결 단합으로 권력과 싸웠던 대학생, 20대들이 총 몇 십만 몇 천 몇 백 몇 십 몇 명이었니? 그때 모인 젊은이들이 당시 젊은이들의 다수였다고 자신할 수 있니? 유신 때, 전두환 때 도서관에 짱박혀 고시공부하고 있던 대학생들이 많았니, 나가서 화염병 날리던 아해들이 많았니?

 

미선이·효순이 때 촛불을 들고 나간 많은 이들 중 20대는 얼마나 되었을까. 탄핵 때, 그리고 쇠고기 정국, 촛불정국 때 슬며시 합세했던 20대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단지 예전처럼 총학의 깃발, 과 깃발이 없었을 뿐이지. 그들은 언제나 함께 있었다. 그걸 왜 기억 못하니. 교복입은 어여쁜 10대 아해들이야 워낙 눈에 잘 띄니까 그렇지, 20대들도 적지 않았다고. 이들은 학점에 생명 걸어야 하고 스펙에 명운을 걸어야 하는 이들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나갔다고! 기억 안해? 죽을래?

 

어찌하다보니 기성세대 군에 어정쩡하게 끼어버린 나지만, 책을 읽으며 유쾌했고, 소름이 돋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분명 88만원 세대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이 88만원에 굴복하리란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아예 안 하는 게 좋을 듯하다. 이들은 지금도 진화 중이고, 아직 그 끝을 알 수 없다. 감히 상상하지 마라. 그 이상을 보고 한껏 쫄고 말테니.

 

이들의 발칙한 반란을 힘껏 응원하며, 나 역시 무뇌아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한 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 놔. 역시나 세상은 엿 같지만, 그래도 젊은 너희들이 있어 다행이다. 건강하고!(주로 남) 아름답게!(주로 여)만 자라다오.

 

항상 베리 땡큐다!

 

(글 중 비속어 비스무리한 단어나 속어, 은어 등이 있더라도 하해와 같은 양해 바란다. 하지만 So Wha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