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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디언은 절대 무슨 뜻을 달거나 이유를 붙여서 선물하지 않는다. 선물을 할 때는 그냥 상대방의 눈에 띄는 장소에 놔두고 가버린다.”
상당히 유명한 작품이다. 장기간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지금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다. 언제나 그렇듯 뒷북으로 이제야 읽었다.
사람들이 열광하고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는 책들을 신뢰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때문에 뭐 결국은 읽게 되더라도 남들 읽을 때에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무슨 심보인지…. 이 책이 대단히 유명하거나 사람들이 열광한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목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책이었음은 고백해야겠다.
하지만 이제 책을 덮고 오랜 만에 느끼는 먹먹함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고 찾는 책에는 그만한 이유도 얼마쯤은 있다는 사실을. 아주 오랜만에 눈물을 글썽이게 했으니 말이다.
인디언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내 기억에 의한 것이지만, 우리 윗세대들은 헐리우드에서 만든 기형적 서부영화의 영향으로 인디언들을 악으로 생각했고, 이제 젊은 세대들은 과거에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던 원주민, 미개인 정도? 그리고 최근에야 각종 영화나 서적을 통해 인디언들의 삶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조금씩 알고 있는 정도다.
뭐 여전히 인디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담은 드라마나 영화들이 나오기는 한다. 인디언 구역에서 카지노 등 도박 시설을 통한 수익에 의존하고, 마약이나 알코올에 찌들어 미래를 잃어버린 민족 정도로. 아주 가끔은 말도 안되는 능력을 부리는 초능력자로 비쳐지기도 한다. 뭐 그야말로 만드는 사람 맘대로다.
하지만 인디언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들이 자연과 어떻게 조화로운 삶을 이루어왔는지, 그들의 소유하지 않는 삶을 서구 문명이 어떻게 파괴하고 짓밟았는지, 의외로 자세히 알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드물다. 최근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영화 《아바타》의 영향으로 과거 캐빈 형의 《늑대와 춤을》이 다시 이야기되고, 미국 건국 초기 일어났던 인디언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미국인들, 그리고 세계인들은 인디언의 치열했던 삶을 알지 못한다.
책은 바로 그 인디언, 체로키의 후예 ‘작은 나무’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산 생활 이야기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 속에서 생활하게 된 ‘작은 나무’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생명에 대한 예의, 자연에 대한 예의를 배워가며 진정한 인디언 체로키로 성장한다. 그 하나 하나의 장면들은 눈을 감으면 떠오를 정도로 생생하고, 또한 아름답다. 결코 재미로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할아버지의 가르침. 언제나 필요한 만큼만 자연에게 얻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가르침은 정작 ‘작은 나무’가 아닌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죽비이다.
‘작은 나무’가 보내는 산 속의 생활들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작은 나무’는 자연의 냉혹함과 포근함을 동시에 알게 된다. 언제나 인간이 노력하고 존중하는 정도 내에서만 보답해주는 자연의 이치. 욕심을 부리면 더 이상 자연은 너그럽지 않다. 자연은, 또 이 세상은 결코 인간 혼자만이 살 수 없는 ‘모두의 터전’임을 책을 이야기한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가 무색한 지금에서, 책은 더욱 소중하다.
‘작은 나무’의 너무나 행복한 삶을 깨뜨리려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문명이다. 이는 체로키 인디언들이 강제로 살던 고향에서 추방당하고 산 속으로 숨어들었던 역사와 같다. 그리고 종교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부정하고 타 집단을 미개인으로 규정해 버리는 죄악. ‘작은 나무’는 ‘사생아’라는 단어의 뜻도 모른 채 사생아라는 욕을 들어야 했고, 결국 ‘악의 씨앗’이라는 말까지 듣는다. 하지만 인디언의 마음을 이미 가진 ‘작은 나무’는 화내기는커녕 왜 목사가 화를 내야 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자신은 다만 짝짓기하려는 사슴들의 사진을 보고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말이다.
책 속에 담겨진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모두 독자들을 위한 선물이다. 읽는 이들은 함께 웃고 함께 즐거워하다, 함께 울게 된다. 자연의 이치에 순종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절제된 삶을 살아갔던 체로키 인디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들에겐 너무나 값진 선물이다. 우리는 다시는 체로키 인디언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왔지 않은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못 참고 말았다. 약간 쑥스러운 눈물이다. 하지만 오히려 고마웠다. 책을 덮고도 한참을 그냥 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이곳을 새삼 둘러본다. 그리고 기억하려 애쓴다.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했던 이들의 얼굴을.
자신이 가야 할 때를 알고 있는 이들의 작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할머니가.”
너무나 많은 삶의 교훈이 담겨 있는 귀한 작품이다. 책 읽는 즐거움은 이래서 멈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