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젊은 것들 - 발칙한 반란을 꿈꾸는
단편선.전아름.박연 지음 / 자리(내일을 여는 책)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발칙한 반란을 꿈꾸는”20대들의 이야기. 역시 20대인 필자들은 애초부터 보편성을 때려치우고, 분야를 막론하고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고군분투, 혹은 독고다이로 살아가고 있는 ‘보편적’이지 않은 20대들을 인터뷰 했다.

 

기성세대들이 저지르는 만행 중 하나는 무턱대고 훈계하고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가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지 헤아릴 줄 모른다. 그냥 닥치고 하라는 대로 하라고 떠든다. 그리고는 젊은 세대, 요새 것들은 무기력하다, 무능하다, 생각 없다 등등의 헛소리를 남발한다. 하지만 전에도 말한 바 있거니와 대체 생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냐는 말이다.

 

하긴 기성세대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이 조금 뻘쭘한 시대이긴 하다. 이유를 불문하고 싸움이 터졌다 하면 “넌 몇 살이나 처먹었어! 넌 부모도 없냐 이 자쉭아~!”를 일갈하는 기성세대. 난 그럴 때마다 ‘만약 저 어린 아해가 정말 부모님이 안 계신 아해라면…저 아저씨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생각하곤 한다. 대체 싸움에서 나이를 들먹이는 민족, 혹은 집단이 또 있을라나.

 

한때 회자되었던 ‘20대 개새끼론’이 있었다. 촛불 정국 이후에 조금 크게 불거진 개새끼론은 “20대에겐 희망이 없다. 우리는 10대 촛불소녀에게 올인할란다”로 요약할 수 있겠다. 지금의 20대는 시대를 고민하기보다는 당장의 생계, 즉 ‘먹고사니즘’에 빠져있다는 비판이다. 토익에 올인하고, 자격증에 올인하고, 스펙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젊은 세대들을 향해 준엄하게 꾸짖는 모양새다.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이 무뇌아들아!”

 

하지만 양심적으로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대충 그냥 한 번 생각이란 것을 해보자. 과연 지금 20대들이 생각 없는 무뇌아들일까. 잉여인간들일까. 그들은 이명박이 마냥 이뻐 죽겠고, 4대강 살리기가 베리 땡큐며, 삼성공화국에 이민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을까.

 

책에 등장하는 범상치 않은 20대들은, 물론 20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20대들의 진정한 고민이 무엇이며, 왜 대다수라 매도되는 20대들이 무기력해 보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조차 없이 치열해진, 아니 치열을 떠나 극단적인 생존경쟁 시스템에 이들을 몰아넣은 이들은 누구인가. 20대 스스로 이따위 개 같은 세상을 원했나. 그건 정말 아닐 것이다. 사춘기 당시 명퇴다 뭐다 해서 무너지는 아버지를 목격하고, 빌어먹을 민주화나 조국 통일의 숭고한 가치보다는 당장 월급이 끊긴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뼈저리게 느낀 이들이 지금의 20대들이다. 나 역시 IMF 당시 쫓기듯 군대로 피신한 기억이 있다. 에이 빌어먹을. 꺼이꺼이….

 

그런 20대들에게 사회는 결코 다양한 기회를 열어주지 않았다. 소위 기성세대들의 불의를 참지 못해 용감히 나섰던 386선배들도 결국 또이또이임이 드러났다. 그들은 학점이 아무리 개판이어도 대기업 취직이 가능했으며, 기득권이 된 이후에는 오히려 자신들의 자녀를 해외로 유학시키고, 원정출산이다 뭐다 개지랄을 떨었다. 또 노무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개혁 세력 역시 젊은이들이 휴일을 포기해가며 투표한 보람이 그야말로 무색하도록 무력했다. 열린우리당은 지들끼리도 열리지 못하고 무너졌고, 결국 이명박과 같은 과다한 결점의 소유자를 청와대로 이끌었다. 그런데, 지들이 판 다 만들어놓고, 온갖 개판을 다 쳐놓고, 이제 와서 20대들에게 기껏 한다는 소리가, “너희는 희망이 없다?”

 

하지만 20대들은 쉽사리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책에 등장하는 용감무쌍한 젊은이들부터 세상에 맞짱 뜨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그리고 이러한 ‘유뇌아’들이 결코 적지 않음을 알고 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지금 20대들은 정말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고, 고민하고 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걱정일 정도다. 그러니 쓸데없이 훈계하는 것보다는 이들이 보다 원만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보다 깔끔하게 고뇌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나마 세상을 이따위로 만든 기성세대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동혁이 형처럼 등록금이나 고속도로 통행료라도 깎아달라고 떠들어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범상치 않은 ‘글빨’의 소유자 한윤형, 장기하와 얼굴들이 소속되어 있는 붕가붕가레코드 곰사장, 한승수 총리를 ‘훈계’하고 이명박과 같은 학교임이 쪽팔리다고 일갈한 ‘고대녀’김지윤, ‘철학오타쿠’박가분, 살벌한 소설을 쓰는 그러나 결코 살벌하지만은 않은 소설가 김사과, 독립패션잡지 《크래커》의 편집장 장석종, 인문학의 보편화와 생활화를 꿈꾸는 부산 인디고서원의 팀장 박용준, 길거리 공연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좋아서 하는 밴드’, 20대들의 고민을 솔직하게 담은 다큐 《개청춘》의 여성영상집단 ‘반이다’까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흥미롭기 그지없다. 그리고 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 꿈꾸고 있는 것들이 새삼 가열차게 다가온다. 오히려 기성세대들에게 묻고 싶다. 이렇게 불리한 판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짓거리를 할 수 있냐고. 당신들은 그런 열정과 실력과 눈물이 남아있냐고.

 

개인적으로 필자 중 한 명인 전아름과 친하다. 아니 본인은 부정할 수도 있겠지만, 같이 일하고 있으니 일단은 친하다고 해둬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아름 씨가 책을 위해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때론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모습을 적지 않게 목격한 이로서, 말해주고 싶다. 적어도 고민하고 좌절한 보람은 있게 만들었다고. 아마 알만한 놈들은 책에 공감할 것이고, 알보다 작은 것들은 꺼이꺼이 울지도 모른다고. 박수 세 번 쳐준다.

 

모든 20대 들에게 지금 분연히 떨쳐 일어나 바리게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라고 말하기엔 상황이 조금 심각하게 수상하다. 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단계는 넘어선 듯한 모양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일단은 수긍과 인정과 반성과 양심이 동시다발적으로다가 필요하다. 기성세대들이 먼저 까놓고 ‘우리가 좀 어리바리해서 어떻게 하다 보니 요 모양 요 꼴이 됐다. 베리 쏘리다. 그런데 설마 우리가 다 말아먹고 싶었겠냐. 그러니 짜증나고 밉더라도 일단은 머리를 살포시 맞대고 같이 궁리해보자’고 해야 한다. 인간적으로, 여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다음에 훈계를 하던가, 지랄을 하던가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지난 10년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무조건 이명박 반대만을 외치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몰지각한 진보 진영과 다름이 없다.

 

책은 재미있다. 읽기에도 무리가 없고, 웃기에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넘어가기엔 상당한 무리가 있다. 생각 없다고 규정지어버린 20대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정작 기성세대가 생각이 없었음이 기냥 드러난다. 때문에 조금은 쪽팔리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이왕 팔릴 쪽, 먼저가 낫다.

 

책을 읽으며 느낀다. 아 빌어먹을, 나도 기성세대에 들어가는 건가. 뭐 20대는 아니니 말이다. 살짝 억울하기도 하고, “얘들아, 난 니들이 알고 있는 꼰대가 아니야”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어느 새 나이는 드셨고, 생각도 많이 굳어진 스스로를 느낀다. 다시 한 번 빌어먹을이다.

 

하지만 응원한다. 뭐가 되더라도 일단 한다는 게 멋진 것이다. 20대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20대들이 생각 없다고 떠드는 인간들에게 말하고 싶다. 4·19때, 5·18때, 6·10때 단결 단합으로 권력과 싸웠던 대학생, 20대들이 총 몇 십만 몇 천 몇 백 몇 십 몇 명이었니? 그때 모인 젊은이들이 당시 젊은이들의 다수였다고 자신할 수 있니? 유신 때, 전두환 때 도서관에 짱박혀 고시공부하고 있던 대학생들이 많았니, 나가서 화염병 날리던 아해들이 많았니?

 

미선이·효순이 때 촛불을 들고 나간 많은 이들 중 20대는 얼마나 되었을까. 탄핵 때, 그리고 쇠고기 정국, 촛불정국 때 슬며시 합세했던 20대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단지 예전처럼 총학의 깃발, 과 깃발이 없었을 뿐이지. 그들은 언제나 함께 있었다. 그걸 왜 기억 못하니. 교복입은 어여쁜 10대 아해들이야 워낙 눈에 잘 띄니까 그렇지, 20대들도 적지 않았다고. 이들은 학점에 생명 걸어야 하고 스펙에 명운을 걸어야 하는 이들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나갔다고! 기억 안해? 죽을래?

 

어찌하다보니 기성세대 군에 어정쩡하게 끼어버린 나지만, 책을 읽으며 유쾌했고, 소름이 돋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분명 88만원 세대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이 88만원에 굴복하리란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아예 안 하는 게 좋을 듯하다. 이들은 지금도 진화 중이고, 아직 그 끝을 알 수 없다. 감히 상상하지 마라. 그 이상을 보고 한껏 쫄고 말테니.

 

이들의 발칙한 반란을 힘껏 응원하며, 나 역시 무뇌아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한 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 놔. 역시나 세상은 엿 같지만, 그래도 젊은 너희들이 있어 다행이다. 건강하고!(주로 남) 아름답게!(주로 여)만 자라다오.

 

항상 베리 땡큐다!

 

(글 중 비속어 비스무리한 단어나 속어, 은어 등이 있더라도 하해와 같은 양해 바란다. 하지만 So 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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