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라는 거짓말 - 경제성장의 장막에 가려진 중국
기 소르망 지음, 홍상희.박혜영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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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민족주의. 그렇게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다. 신자들에겐 정말 미안한 말이 아닐 수 없지만, 종교라는 단어 역시 나에겐 부정어다. 인류의 길지 않은 여정을 돌아봤을 때 종교 그리고 민족이라는 단어를 살육에 사용한 예가 얼마나 많았는가. 때문에 종교의 순기능, 민족의식의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여전히 나에겐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흔히 한민족이라 한다. 우리는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전통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역시 만만치 않다. 그들은 아예 세상의 중심이 자신들이 서있는 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건 과거형이 아니다. 중화주의. 이건 파시즘에 맞먹는 파괴력과 음모를 지니고 있다.

 

기 소르망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실천하는 우파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수많은 저서 중 《Made In USA》를 읽은 바 있다. 뭐 그다지 공감하는 내용은 없었다고 기억된다. 하지만 시시콜콜하게 사소한 것 하나까지 물고 늘어지는 끈기는 왠지 어디에선가 본 듯한 느낌이었다.

 

2006년에 발간된 이 책은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중국이 과연 ‘제대로 된’ 국가인지 꼴랑 1년간의 중국 체류를 바탕으로 풀어간다. 물론 그 전에도 수없이 중국을 오가며 자료를 모으고 사람들을 만나왔다고 저자는 밝히지만 뭐 그다지 신뢰는 가지 않는다.

 

나에겐 참 흔치 않은 일인데, 한 번 읽은 후 다시 페이지를 펼친 책이다. 책이 너무 어렵거나 문장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를 찾기 위함이 아니었다. 다만 한 번 읽고 던지기엔 왠지 그 음모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를 대충이라도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중국은 그리고 중국인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은 결코 정체되어 있던 적이 없었다. 끊임없는 반란과 이동, 왕조의 교체, 내전 등 중국은 역동적으로 그들의 역사를 일궈왔다. 물론 일제를 비롯해 서구 열강들에게 갈기갈기 찢길 때의 중국은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기력해 보였고, 자신들의 ‘세상’이 결코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느끼는 뼈저린 경험도 했다.

 

하지만 중국은 결코 그 순간에도 멈춰있지 않았다. 그들은 복수의 그날을 꿈꾸었고, 그럴 수 있다면 사회주의가 되었든, 공산주의가 되었든 묻거나 따지지 않았다. 그들은 위대한 중화민족 아닌가. 한낱 섬나라 일본에게 침탈당하고 서구의 작은 나라들에게 유린당했던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 중국은 그 후 그야말로 경악할 만한 부작용을 겪어가며 오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야말로 제국의 귀환이다.

 

그렇다면 살펴보자. 지금의 중국은 과연 예전 명성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제국이 되었는가. 그리고 중국 인민들이 원하는 것이 예전의 명성 혹은 악명을 되찾는 것인가. 그것을 위해 철저히 희생당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책은 중국의 주류, 즉 중국공산당이나 학계를 중심으로 풀어가지 않았다. 저자는 천안문 사태의 주역들, 혹은 일반 농민, 노동자들을 만나며 중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결론짓는다. 지금의 중국은 거짓말이라고.

 

파격적인 책이라고 선전했지만 나에겐 그렇게 파격적이지도 섹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본다. 이 책을 저자의 모국인 프랑스를 비롯해 서구 세계에서 봤다면 어느 정도의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 내가 봐도 서구가 바라보는 중국은 심하게 뒤틀려있기 때문이다.

 

우린 전생에 뭔 잘못을 했는지는 몰라도 빅 브라더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만만한 국가가 없다. 물론 어떤 국가라도 만만하게 봐선 안 되겠지만. 암튼 그렇다.

 

때문에 살아온 길들이 순탄치 않았고, 앞으로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주변의 빅 브라더들을 보다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동안은 미국 덕, 동족 간의 피터지는 살육 등으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게 되었지만, 앞으로는 국물도 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처절한 생존 게임이 벌어질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다.

 

중국은 대국이다. 인민들 각자가 그런 자격을 갖추었는지, 집권 세력인 중국공산당이 그런 능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무시할 수 없는 대국으로 우뚝 선 국가다. 마오쩌둥이 대장정을 하며 이룩한 중화인민공화국 당시의 중국이 아니다. 공산주의를 외치며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때문에 거대한 경제적 성과를 이루었지만 그에 따른 인민들의 삶의 향상까지는 가지 못한 어정쩡한 상태.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국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세계는 중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중국의 13억 인민들은 무엇을 꿈꾸는가. 민주주의, 인권, 시민의 권리 등이 온전히 담보되는 중국은 가능할 것인가.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으며 어떤 존재가 될 것이며,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무엇하나 쉬운 녀석이 없다.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 다시 말하지만 난 민족이란 말을 싫어한다. 때문에 한민족의 미래, 동북아에서의 한국의 위상 따위는 관심도 없다. 그저 남 안 괴롭히고 우리 안의 또 다른 계급들을 만들지 아니하며, 그들을 착취하며 살아가는 구조를 깨부수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민족을 거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부정할 수 없다.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볼 수 없으며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참으로 식상한 말을 할 필요도 없다. 과거에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이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어떤 후과로 다가왔는지 기억하지 못하면 안 된다.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책은 흥미롭다. 중국공산당의 공식적인 입장과 함께 그 이면에 있는 대다수 중국 인민들의 생각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그 안에 있는 모든 모순들을 외면하는 세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결코 중국은 이 상태로 가선 희망이 없다는 저자의 말에도 동의할 수 없지만, 막연한 기대감으로 중국이 바른 길로 갈 것이라 믿는 서구, 그리고 세계의 시각에도 동의할 수 없다.

 

책에는 기가 막힌 내용들이 넘친다. 에이즈에 감염된(그것도 조직적 매혈 과정을 통해) 마을을 고립시켜 마을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한 중국 당국의 놀라운 처사. 모든 부정적 현상들을 ‘과도기’란 단 한 단어로 설명하는 중국 당국의 뛰어난 단순함. 그리고 중국과 중국공산당을 일치시켜 바라보는 외부의 착시. 그 사이 무섭게 군사력을 키우는 중국공산당.

 

저자의 시각으로 희망. 그리고 절망이 동시에 드러나는 책. 중국이라는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되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인민들의 고통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는, 그야말로 서구의 양심적 지식인이라는 수식어에 부합되는 결론은 식상하다. 하지만 중국을 새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미덕이다.

 

중국은 중국이다.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중국은 우리에겐 그냥 중국이 아니다. 이를 잊는다면 우리는 또 다시 귀찮은, 치명적으로 귀찮은 일들에 휘말릴 것이다. 중국은 생각보다 거대하고 생각보다 영악하다. 또 생각보다 허약하다.

 

내 밥벌이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 금강산 피격 사건 이후 금강산, 개성 관광이 중단된 이래 지지부진 지금까지 정부가 재개를 하지 않은 덕분(!)으로 현재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금강산, 개성 관광이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북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가 관광을 재개할 의지가 더 이상 없어 보이면, 이제 다시 금강산과 개성을 갈 수 있는 길은 없어질 것이다.

 

그깟 관광 안가면 어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할 수 없지만. 그 이후의 남북관계를 생각해보면 참 암담하다는 생각뿐이다. 뭐 대통령을 두 분이나 보내고도 정신 못 차리는 민주당에게도 큰 책임이 있지만, 일차적으로 통일에 대해, 남북관계에 대해, 우파들이 그렇게나 강조하는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철학이 없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각하의 마인드가 나를 슬프게 한다.

 

뭐 역사가 정말 심판을 한다고 한다면, 이들은 역사가 보증하는 죄인들이 될 터. 한심함을 떠나 연민을 느낀다.

 

그렇게 살다 어여 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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