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다락방 Special edition - 내일의 성공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이지성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자본주의 사회는 미친 경쟁의 사회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 잘난 사람들을 모두 제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만이 성공자의 대접을 받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방법을 써서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고, 실제로 그런 방법이 잘 먹힌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계발이 아니다. 그것은 권모술수에 불과하다. 권모술수는 그것을 쓰는 사람 자체를 불행하게 만든다. 또 권모술수로 무엇인가를 이룬 사람은 성공자가 아니다. 그는 실패자다. 그것도 가장 부끄러운 실패자다.”

 

이른바 ‘자기계발서’치고는 양심적인 문구다. 그렇지. 자본주의는 미친 사회지. 그런데 지금까지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자기계발서들은 그 미친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의 성공을 위해 남을 짓밟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 일색이었다. 물론 대놓고 노골적으로 그렇게 써내려간 책들은 많지 않다고 해도, 누구나 읽어봐도 본 주제는 그러함이 나타난 책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나마 양심적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물론 그와 동시에 매우 영악한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성공하라고 너희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남을 돕고 남을 위해 쓸 수 있는 부를 얻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정도?

 

하지만 난 지금껏 자기계발서를 읽고(물론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거나 어떤 커다란 충격을 받아 당장 실천으로 옮기리라 눈물 흘린 경험이 전무하다. 물론 책들의 내용은 하나같이 구구절절 훌륭한 말씀들이었지만, 게으름과 타고난 의심 등 결함 많은 성격 탓에 자기계발서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왔다.

 

때문에 나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할 수 있는 불평 불만이 대충 어떤 것인지 알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역시도 미리 준비해 두었다. 암튼 똑똑하신 분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우리나라 독자 대부분은 자기 자랑 일색인 자기계발서 내용을 받아들이기를 힘들어한다. 그러나 진정한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자랑할 만한 사실은 사실로 인정하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헉. 이렇게 나오시는데 더 무어라 할 말이 있으랴. 아, 예예. 하고 따를 수밖에. 더구나 모두 옳은 말씀 아닌가. 배울 것은 배우고,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여라. 우리나라 정치가 상식이라는 것을 갖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도 단순한 진리 아닌가.

 

몰랐는데, 이미 책은 상당한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올랐다고 한다. 자기계발서라는 것이 하루가 멀다 하고 튀어나오고, 또 사라지기 때문에 웬만한 공력이 아니고서는 주목받기 힘들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책은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뭐 마시멜로 이야기 정도인가.

 

지금껏 나는 자기계발서로 인해 돈을 버는 것은 언제나 저자와 출판사뿐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사실 그렇기도 했다. 백만 부가 넘게 팔린 성공 지침서로 인해 백만 명의 부자가 탄생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저자는 거기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 자 지들 못난 탓이기에.

 

그 ‘지들’에 항상 속해있던 나는, 때문에 이런 자기계발서 부류를 읽지 않았다. 돈을 주고 구입하는 행동은 더더욱. 차라리 화끈한 소설이나, 인문사회과학 서적에 돈을 지출했다. 비록 짜증나고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내용 일색이라 하더라도, 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에 대한 자학 차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뭐 그렇다고 변태는 아니고.

 

어째 내용이 이 책을 계속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상 그렇지는 않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느낌이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은 스스로 최면을 걸고 꿈에 도전할 때 성공할 가능성이 배가된다. 미친 듯이 몰입하는 이들을 당할 자는 없다. ‘몰입’이라는 단어를 높으신 분께서 아주 잘못 사용하신 덕분에 부정적인 느낌이 엄청 늘었지만, 실상 몰입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또는 어떤 뚜렷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야말로 미친 듯 몰입하는 이들. 분명 아름답고 또한 배워 마땅한 사람들이다.

 

책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들의 성공사례가 책의 신뢰성을 높여 준다. 또한 저자가 주장하는 공식(R=VD)이 전혀 허황되지 않음을 말해준다. 사실 저자가 그렇게 공식을 만들어서 그렇지, 꿈을 위해 몰입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굳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나름의 방식으로 그 공식을 행동으로 옮겨 왔다.

 

그렇다고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책은 쉽고, 또한 의욕적으로(이게 가장 중요하다) 읽는 이에게 떨쳐 일어설 것을 말한다. 그리고 실제 많은 이들이 책으로 인해 목표를 이루었고, 성공이란 쾌감을 맛보았다. 실용서, 자기계발서라는 이름에 걸 맞는 역할을 해낸 것이다. 그 점에서 책과 저자는 나름의 인정과 대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많은 사람들이 중도에 꿈을 포기한다. 그리고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될 때까지 안 했기 때문에 안 됐다는 사실을”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지극히 잔인한 말이기도 하다. 책을 관통하는(물론 자기계발서라는 책의 성격이 있기에 어쩔 수 없겠지만) 가치는 ‘하면 된다’이다. 하긴 어떤 자기계발서가 “해도 안 된다”고 말하겠나. 그러나 세상에는 정말 해봤는데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게 삶이고 인생이다. 그것을 온전히 개인의 게으름이나 열정의 부족, 몰입의 부족으로 탓할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사회란 것은 더 이상 아름답게, 더 낫게 만들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해야 한다. 그래야만 개인을 탓할 수 있다.

 

뛰어난 저자가 그것을 모르고 책을 썼을 리는 없다. 분명, ‘너희들이 알아서 찾아내고 알아서 받아들여라’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이들의 조건이 같지 않다면 결과 역시 같을 수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정작 개인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사회를 넓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라고 느낀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회 시스템. 개천에서 나온 용들이 더 이상 개천을 외면하지 않고, 다시 개천으로 돌아가 또 다른 용을 키울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민 역시, 개인의 성공 못지않게 중요하다. 자기계발서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바람을 이야기하는 것은 저자가 그만큼 뛰어난 능력과 또한 양심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자가 성공의 열쇠를 쥐기 시작한 계기를 만들어 준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이란 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읽지 않았다. 아내는 상당히 재미있고, 또한 유익한 책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런 것 같다. 아내는 여간해선 책을 읽고 칭찬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끝내 읽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책의 제목 때문이었다. 힐러리에 대해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연구한 저자이겠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 제목이 마음에 닿지 않았다. 한 개인으로 힐러리가 성공한 정치인이자, 여성의 롤 모델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이 땅.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바라본 힐러리는 결코 존경하거나 배울 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단지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아니 솔직히 말해 항상 눈치를 봐야 하는 국가의 퍼스트레이디였고, 정치인일 뿐이다.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의 능력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가 단지 미국의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지금 이 땅에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혹은 단지 이웃들의 행복과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여성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이 힐러리와 같은 주목을 받지 못한다고, 그들의 땀과 눈물, 헌신이 가벼울 순 없다.

 

물론 안다. 저자가 힐러리를 모델로 삼은 것이 꼭 우리나라에는 그만한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팔리기 쉬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인에다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모두 힐러리처럼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도 안 된다.

 

이런 개인적인 기억으로 저자가 자기계발서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안 나는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았다. 오랜 시간 쌓인 내공을 바탕으로 흡입력 있는 글들을 써내려간 저자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인 ‘인정’을 하지 않았던 이유다.

 

결론을 내자.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책을 읽은 이들이 한 번 쯤은 굳은 결심으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면 책은 허접한 쓰레기들보다 훨씬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저자 스스로 자신의 성공을 그처럼 확신하고 있다면 그 성공을 보다 많은 이들과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외에 자신의 책들이 알려져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날리는 것 보다, 진정 이 땅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작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꿈꾸는 다락방’을 단순한 자기계발서로 보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게 이 책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찬사가 아닐까. 저자의 성공을 축하하고, 아울러 더 좋은 책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 + 모더니즘 + 제국주의 + 몬스터 + 종교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런 사람들이 꼭 하나쯤은 있었다. 시시콜콜 별 걸 다 아는 사람. 사실 그 사람의 전문 분야가 무어라고 딱히 말할 것은 없는데, 신기하게 온갖 잡다한 지식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쓸데없는 것을 알아서 무얼 해?”라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부러웠던 사람. 그런 사람이 하나쯤은 꼭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라에서, 사회에서 ‘한 가지에 전문적인 지식과 소양을 갖춘’이들을 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런 만물박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것’보다는 쓸데 있는 것. 즉 한국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돈’이 되는 것에만 사람들이 열광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너 그거 알어?”라며 말문을 여는 이들이 주변에서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글쎄,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이게 좋은 현상인지, 나쁜 것인지. 별 걸 다 아는 사람들이 사라진 지금은 솔직히 심심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 잘난 네이버나 다음 등의 포털에서 시시콜콜히 모든 것을 다 알려주는, 하다못해 이제는 핸드폰만 몇 번 두드리면 알고 싶은 것을 모조리 다 알 수 있는 참으로 ‘편한’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책으로 돌아가 보자. 나름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저자는 다시금 ‘백과사전식’역사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에 맞게 책을 썼다.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그리고 종교라는 다섯 가지로 세계사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 ‘아 그게 그런 거였어?’를 연발하게 하는 시시콜콜한 지식들이 선보인다.

 

그런데 그게 얄밉지가 않다. 오히려 신기하고,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스타벅스가 세계를 주름잡는 이유를 떠들다가, “근데 너 그거 알어? 왜 커피가 세계를 지배했는지? 그게 다 자본주의의 결과라는 거지.”하면서 커피의 각성 효과, 즉 잠이 오는 것을 막는 효과가 결국 자본주의의 무한 생산과 맞물려 각광을 받게 됐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무식하게 말하자면 잠도 자지 말고 커피 처먹어가며 일하라는 말씀.

 

그렇게 생각하면 살짝 약 오른다. 사람이 졸리면 자야지, 얼마나 일을 부려먹으려고 잠도 자지 말라는 게냐.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은가. 커피는 각성하기 위해 마시고 차는 쉬기 위해, 생각하기 위해 마시지 않았나. 알고 보면 참 무서운 음료가 또 커피이다.

 

이런 식이다. 책은 세계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따라가다, 중간 중간 특정 물질, 특정 사건을 꼬집으며 그 영향을 설명한다. 쏠쏠한 재미다. 세계사 선생님이 고등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치셨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무턱대고 필기만 하지 말고 말이다.

 

몬스터, 즉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이 일으킨 세계사의 격변은 흥미로움 그 자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와 파시즘을 더 많이 공부했던 나로서는 그냥 대충 읽을 수 없는 부분이다. 자본주의가 왜 수많은 오류와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럭저럭 굴러가는지, 사회주의가 왜 완벽한 사회를 꿈꾸었으면서도 스스로 무너졌는지, 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이 국가의 일사불란한 통제에 따라 학살과 전쟁에 나섰는지. 흥미를 떠나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왜 항상 남을 사랑하라고 떠드는 종교가 전 세계 분쟁의 핵심이 되었으며, 무차별 학살과 전쟁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근대에 들어 신은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선포했던 인간들이 현대에 들어와 다시 신을 추종하고 종교에 의지하려 하는지. 인간의 나약함과 잔인함, 그리고 무분별한 광신 등이 하나 둘 떠오른다.

 

역사라고 하면 왠지 따분하고 재미없게 느끼던 이들에게 책은 세계사에 대한 관심을 조금은 갖도록 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아울러 잡다한 지식들이 단순히 흥밋거리가 아닌 진지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게 책의 미덕이다.

 

아울러 우석훈 교수의 해제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진정 무엇인지 한 번 쯤은 고민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에 사회의 지배계층은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도 요구되었던 것은 개인이 사회나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의 하나의 부품처럼 되어가는 패턴들이었다. 그것을 ‘포디즘의 시대’라고 부르며, IMF 경제위기를 한국은 ‘다시 한 번 포디즘’이라는 형태로 극복하려 하였고, 어떻게든 사람들을 비정규직으로 바꾸어서 인건비라도 줄이고, 또다시 쥐어짜서 ‘세계의 공장’의 시대로 복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내핍형 경제를 끝까지 몰고 가는 하나의 시대는 이제 종착역에 이르렀다. 마지막 힘으로, 이제는 국토를 파먹는 토건형 경제로라도 어떻게 뭔가 해보려고 발악을 하는 중이지만, 이 방식은 지속가능하지가 않다.”

 

그렇다. 우리는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중이다. 24시간, 1년 내내 공사가 멈추지 않는 나라. 이명박 시대 이후 우리의 모습이다. 어디에서나 땅을 파고, 건물을 부수고, 다시 올린다. 이 무의미한 짓거리를 반복하는 동안 땅을 썩고, 인간들도 썩어가고 있다. 아는 사람들은, 아니 모든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어찌할 바 모르고 따라간다. 그렇지 않으면 낙오되고, 죽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말만 하지 않을 뿐이지, 지금은 전시 체제, 집단동원체제와 다르지 않다.

 

때문에 역사를 보는 눈, 역사를 이해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절실하다. 과거를 잊지 않아야 미래를 조망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까지 현 정부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뉴라이트의 황당무계한 역사관을 설파하고, 북과의 전면적인 대결상태에 들어갔다. 다시 주적이란다. 기껏 수많은 이들이 피흘려 가며 만들어낸 통일의 열정, 그 의지를 단 한 순간에 꺾어 놓겠다는 심산이다. 그리고 역사는 되도록 공부하지 말란다. 시험에 안 나오니까.

 

역사 공부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일본이 독도를 가지고 도발하고,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며 시비를 거는 것에만 흥분했지. 일본의 역사교육, 역사연구 수준과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 우리와 비교할 때 놀랄 만큼 체계적이고 오래 된 일본의 역사연구. 이는 우리가 말로만 그들에게 떠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는 재미없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선덕여왕이나 동이 따위는 인기 폭발이다. 왜 그럴까. 기존 교육 체계의 한계이자 문제점이다. 우리는 한 순간도 역사를 즐겁게 배운 기억이 없다. 연도를 외우고, 왕들의 이름과 그 족보만 줄줄이 외우느라 정작 중요한 역사의 진실, 그 안에 숨어져있는 재미있는 가치들을 알 수 없었다. 국가를 상대로 역사관 왜곡과 기피 현상에 대한 집단 소송이라도 내야 한다.

 

이 작은 책 한 권이 역사에 대한 흥미를 갑자기 일으키리라는 것은 솔직히 무리지 싶다. 하지만 적어도 백과사전식 지식, 백과사전식 역사 공부가 주는 즐거움과 흥미를 알게 해줄 것 같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모르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해주는 역할도 하리라 믿는다. 짧지만 즐거운 독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잃어버린 시간을 만나다 - 라오스에서의 1년, 행복한 삶의 기록
최희영 지음 / 송정문화사(송정)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불교를 믿는 국가들은 하나같이 가난한 저개발 국가이다. 따라서 불교는 후진적인 종교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어느 유명한 교회의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랍니다. 그렇죠. 그들이 보기엔 불교를 믿는 나라들은 하나같이 다 미개한 나라로 보이겠죠. 목사님께서 바라보시는 천당과 지옥도 빈부의 차이에 따라 입장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런 비정상적인 눈으로 본다면 라오스란 국가 역시 정말 가난하고 미래가 없는 국가로 보이겠습니다. 그 잘난 GDP가 700달러도 안 되고, 국민들의 평균 수명은 53세를 밑돈다고 하네요. 또 인구의 절반이 문맹인 나라. 의료나 교육 시설은 형편없고, 이른 바 선진국이 보기엔 제대로 된 문화 시설도 갖추지 못한 나라가 바로 라오스입니다.

 

하지만 정말 신기한 것이 하나 있네요. 이런 라오스가 해마다 실시하는 행복지수에는 언제나 선두를 다툰다고 합니다. 국민들 스스로는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어떻게 이런 나라에 사는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물음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오만이고, 무지의 결과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어떻게 행복이란 기준을 물질과 한낱 문명의 이기 소유 여부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대한민국 1%”“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따위의 무식한 폭력이 난무하는 이곳에 살다보니 우리 스스로도 모든 것을 물질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 것이죠.

 

저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많이 변했어. 눈빛도, 생각도, 내가 알던 옛날의 네 모습이 아니야.”란 말에 ‘체증처럼 가슴이 울렁이고 답답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이 혹시 ‘명함 속 직책이 부여해주는 알량한 기득권과 안락함에 안주해 사는’것은 아닌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허위의식과 지적 허영심이 몸에 배어 있는 또 하나의 내’가 된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떠날 결심을 합니다. ‘욕망이 멈추는 곳’이라는 라오스로.

 

열한 살짜리 딸과 함께 떠난 라오스. 그 곳에서 저자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단순함을 알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우리는 언제나 모든 일을 겪은 후에야 소중함을 알지 않았던가요.

 

신의 저주를 받은 땅이지 싶을 정도로 척박한 자연환경과 지정학적으로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으면서도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 대물림되는 가난 속에서도 절제와 미덕을 잃지 않고 여유로움까지 풍기는 사람들. 그들을 통해 나는 다시 찾았다. 잃어버렸던 내 유년의 기억,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지난 시절의 풍경 속에서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도 세상살이에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그들을 통해 나는 새삼 깨달았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줄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훨씬 더 포근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어디나 모두 고향 같고 누구나 다 고향 사람 같다는 것을, 자연과 인생 앞에서 순리를 거스르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저자는 라오스 여행 1년 동안 열심히 발품을 팔며 이곳저곳을 누빕니다. 그리고 많은 사진들과 글을 통해 라오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그들의 문화와 삶, 그들의 죽음과 사랑, 그들의 종교와 전통, 그들의 기쁨과 그들의 슬픔까지. 생전 가보지 못한 라오스가 어느 덧 친근한 고향처럼 느낄 정도로 정감어린 글과 사진이 돋보입니다.

 

책이 가지고 있는 미덕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저자는 라오스의 풍경 사이로 보이는 자신의 고향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립니다. 저자 기억 속에 고향 역시, 지금의 라오스와 다르지 않았음을, 정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가난이 있었음을 그는 기억합니다.

 

특히 전 다음의 글이 너무 재미있어 한바탕 웃었습니다. 웃고 나니 그 시절이 그립기도 했고요.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다 생각난 김형수 시인의 ‘개사돈’입니다.

 

눈 펑펑 오는 날

겨울 눈 많이 오면 여름 가뭄 든다고

동네 주막에서 술 마시고 떠들다가

늙은이들 간에 쌈질이 났습니다.

작년 홍수 때 방천 막다 다툰

아랫말 나주 양반하고 윗말 광주 양반하고

둘이 술 먹고 술상 엎어가며

애들처럼 새삼 웃통 벗고 싸우는데

고샅 앞길에서 온 동네 보란 듯이

나주 양반네 수캐 거멍이하고

광주 양반네 암캐 누렁이하고

그 통에 그만 홀레를 붙고 말았습니다.

막걸리 잔 세 개에 도가지까지 깨뜨려

뒤꼭지 내물이에 성질 채운 주모 왈

오사럴 인종들이 사돈 간에 먼 쌈질이여 쌈질이

 

사는 게 정말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곤 따라오듯 지금은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지금이 그렇게 살기 좋은 시절일까요. 전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라오스의 모습이 한없이 부럽고 또 슬프고 그렇습니다. 저들의 사소한 행복, 소소한 기쁨이 언제 자본주의라는 괴물에게 습격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먼저 부라는 것을 얻은 인간들의 건방진 낭만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말대로 ‘사람’을 보고 싶다면 라오스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태국이나 미얀마보다 더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하지만, 전 태국만 가봤어도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꼈습니다.

 

사람다운 사람, 사람들이 살 만한 곳. 세상 어디에도 이상적인 그런 나라는 없겠죠. 하지만 라오스는 아직도 그리움을 전해주는 곳인 것 같습니다.

 

가보고 싶은 나라가 늘었습니다. 여러분도 책을 읽으시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5월은 저에겐 참 감당키 힘든 달입니다. 기쁘고 고마운 시간이기도 하지만 한없이 슬프고 무참한 달이기도 하죠. 특히 지난해 이후엔 더욱 더 5월이 망설여지는 것 같습니다. 괜한 자격지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참 무력하게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홍세화 선생님은 물론 제가 존경하는 분 중 한 분입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은 후부터 그의 아픔과 희망에 대한 집착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비로소 웃을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써왔던 칼럼과 그 밖의 글을 모아 책으로 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접하는 그의 책입니다. 그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그 근거인 젊은이들을 위해 어렵게 다시 대화를 시작한 듯합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그의 슬픔이 더 무참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부인과의 말없는 대화 장면은 그가 얼마나 힘들어해 왔는지, 아파해 왔는지 느낄 수 있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지요. 사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희망이란 단어는 정말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일일이 다 말하기도 벅찰 만큼 이 사회는 썩었고, 또 맹렬히 썩어가고 있죠. 정의와 상식이란 단어가 실종된 지 오래고, 남을 짓밟더라도 오직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극심한 이기주의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같은 민족끼리의 증오를 부추겨 이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구태의연한 모습이 여전히 맹렬한 기세를 떨치고 있죠. 정확한 사실 판단에 기인한 것이 아닌 오직 증오와 분노를 이용한 정치. 이는 결국 공멸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죠.

 

이번 지방선거가 진보 세력 혹은 일반 서민들에겐 다시없는 중요한 판단의 기로임에도 불구하고, 선거보다는 월드컵을 광고하는 데 혈안이 되어버린 언론과 기업들의 추잡한 모습이 토악질을 하게 만듭니다. 벌써부터 묻지마 투표란 단어가 나오더군요. 그렇게 되면 또 다시 우리는 희망을 스스로 차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겠군요.

 

하지만 홍 선생님도, 그리고 저 역시 아직 포기란 단어는 입 밖에 꺼내선 안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역시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셨죠. 우리는 어쩌면 선생님의 말처럼 “다시금 ‘그렇게 싸워왔는데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했나’라고 말하기보다 ‘소수의 부단한 노력으로 이나마 덜 비인간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는 편에 서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정부의 ‘천안함’발 북풍이 예전같이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불행 중 정말 다행이죠.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은 당연히 ‘내 생각은 어디에서 왔는가,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가’일 것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물론 모든 세대들이 심각하게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도대체 내가 생각하는 것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세력들로부터 나에게 온 것일까요. 결코 쉽지 않은 물음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한 번은 해야 할, 아니 어쩜 평생을 두고 해야 할 질문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러지는 않겠지만, 선생님이 더욱 더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선생님들의 글이나 말, 그리고 묵묵히 이어지는 행동을 통해 희망과 용기를 얻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분노와 절망을 희망과 낙관으로 바꿀 수 있는 동력, 그 중요한 동력 중 하나가 선생님일 수도 있다는 생각,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매 순간 비겁한 인간으로 비루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삶을 배신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제 의지와 용기가 부디 꺾이지 않도록 매 순간 기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다음 책을 기다립니다. 부디 그 때엔 쓸쓸함과 눈물보다는 희망과 웃음이 더 도드라지는 책이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때엔 적어도 지금보다는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편한 내용이 담긴 책이었지만, 편하게 읽었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의 뜻과 바람이 온전히 이뤄지길 바라며 읽었습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이들이 책을 읽었으면 합니다. 불편한 진실이라도 그게 진실이라면 피해선 안 되는 법이니까요.

 

이번 투표, 비록 완전한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제 양심과 상식을 믿고 임하렵니다. 다른 분들도 그래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투표의 결과로 어쩌면 지금 정권이,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10년 단위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더군요. 정말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그 희망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간절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는 사랑한다, 행복할 자유를! - 대한민국 보통 아줌마 이보경 기자가 들여다본 프랑스의 속살
이보경 지음 / 창해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프랑스의 기본 키워드는 일단 ‘다양성’이다. 단조로운 흑백 TV가 아니라 시민 머릿수만큼의 수백만 화소가 어우러져 색상을 발하는 고화질 TV랄까. 그런데 쇠고집도 있다. 파리는 40년째 건물 신·증축의 고도를 37미터, 13층으로 제한하고 있음을 보라. 현대 도시가 저마다 아찔한 S라인으로 자태 경쟁을 하든 말든 개의치 않는 뚝심. 초선 재임 7년 동안 시민 세금을 한푼도 올리지 않았고 관용차와 홍보 등의 지출 항목에서 수백 억 원을 절감했다는 시장이 있는 파리. 신뢰지존의 한 주간지는 100년째 ‘무광고’를 고집한다.”

 

프랑스, 그리고 파리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회사연수 6개월, 그리고 휴직 후 자발적인 1년. 모두 1년 6개월간의 파리 체류 경험을 풀어놓는다. 직업이 기자이다 보니, 또한 강력한 파워 엔진을 장착한 대한민국의 ‘아줌마’이다 보니 파리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도 심상치 않다.

 

우선 이런 종류의 책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어설픈 평가나 결론짓기가 없다는 것이 책의 미덕이다. 그는 딱 본 만큼만, 아는 만큼만 이야기한다. 1년의 프랑스 탐사를 위해 4년간 어학을 공부한 ‘고집’이 있는 저자지만, 정작 평가는 매우 조심스러워 보인다. 여기에 특유의 유머가 함께 하니 성실히 만든, 하지만 적당히 마음을 풀어놓고 읽을 만한 에세이는 나왔다.

 

유럽인들은 보통 미국을 조롱하거나 경멸하는 분위기가 있다. 자신들이 보기엔 너무나 천박한 자본주의의 노예이고, 또한 지구 전체를 일순간에 파괴할 수 있는 무서운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거나 운용할 수 있는 ‘내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즉 미국은 성찰을 잃어버린 ‘공룡’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럽이 가지고 있는 원죄 역시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실 그들도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이 남들보다 한 발 더 먼저 착취하고 살육했기에 지금과 같은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음을. 그럼 모른 척? 그렇다. 그들은 짐짓 점잖은 척하며 시치미를 떼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맞을까? 아님 그냥 우리도 적당히 모른 척하고 넘어가 주는 게 좋을까? 글쎄, 단정하기 힘든 문제다. 저자 역시 단정 짓지 않는다. 다만 보여준다.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힘과 또한 약점. 아픈 부분들을 말이다. 우리는 일단 그들의 다양성과 함께 의외로 툭툭 튀어나오는 살벌함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먼저인 것 같다. 누드모델을 했던 영부인, 약간 모자란 듯 해 보이는 대통령, 피 튀기게 공부를 시키지는 않지만, 어느새 성인이 되면 세계 모범 시민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프랑스인들. 얼핏 조화롭지 않아보이는 것들이 적당히 조화되는 것. 바로 그것이 프랑스의 힘이자 또한 약점이 아닐까.

 

우리는 어설프게 서구문명을 받아들였고, 어설프게 그것을 모방해왔다. 선이든 악이든 일단 서구 것이면 환장했던 과거가 지금도 가끔 튀어나온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진국이란 게 미국을 비롯한 ‘전혀’ 선진국이지 않은 국가라는 게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또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즉 어느 정도 ‘쟤네’들과 비슷해져 간다고 좋아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선진국이란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지금 아닐까. 어차피 공존과 공생, 연대와 조화의 가치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멸망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는 지금의 모습으로는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 혁명, 즉 인간의 자발적 반란으로 뒤집어지는 게 아니라 자연의 비자발적 발란으로 멸망할 것이다. 이대로 가면 지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런데 이대로 가야만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다면? 답은 나온다. 우리는 거대 우주선을 만들어, 그게 빠삐용이든 엘리우스든, 제2의 지구를 향해 우주로 나가야 할 것이다.

 

매일 지구상에서 석유 자원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미국이 정작 중국에겐 ‘너희 인구가 다 차를 가지게 되면 지구는 멸망해’라고 외친다. 중국의 답은? ‘웃기네’. 중국으로선 당연하다. 왜 우리는 차를 타면 안 되냐는 항변이다. 너희들이 지구를 다 망쳐놓고, 이제와서 우리는 닥치고 자연보호나 하라는 소리? 이렇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는 그나마 미국 보다는 양심적으로 보인다. 단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파리엔 고층건물을 짓지 못한다. 자전거 타기가 일상화 되었고,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개발이다 뭐니 해서 자본을 축적하려는 세력들을 ‘무식한 야만인’ 정도로 취급한다. 우리도 지금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녹색 성장’이니 ‘그린 에코’니 떠들지만, 지금 프랑스도 생태주의, 환경주의가 대단히 큰 화두가 되고 있다.

 

일견 우리가 참고할 만한 것들이 있어 보이긴 하다. 여전히 환경 보호는 남 얘기라고 생각하는 미국보다는 참 바람직한 모습들이다. 그럼 우리는 슬슬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뭐가 똥이고, 된장인지 말이다. 여전히 똥을 사랑하는 파리들이 위에 있는 것이 우울하긴 하지만 말이다.

 

책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눈길과 발길을 따라 파리를 산책하고, 프랑스를 슬쩍이나마 돌아본 느낌이다. 하지만 그곳 역시 다양한 고민과 아픔이 있음을 놓쳐선 안 될 듯하다. 인간의 이성을 의심케 하는 수많은 죄악 속에서 프랑스가 짊어져야 할 과제, 과오 역시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들의 과오와 고민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진정 에펠탑을 봐도 봐야 하지 않을까.

 

예전 홍세화 선생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으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프랑스, 그리고 파리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매력적인 도시, 예술의 도시, 낭만의 도시. 하지만 강인한 저항과 함께 똘레랑스가 있는 나라. 그 관용과 저항 속에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도 있고, 더 한층 세련된 자본의 힘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조금은 부드럽고, 조금은 오밀조밀하다. 조금은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 오밀조밀 속에 적지 않은 메시지가 담겨 있음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를 꿈꾸었던 이들, 파리의 멋진 풍경과 사람들을 동경했던 이들. 편한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겨도 될 듯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변화까지는 책임지지 못하겠다. 저자는 가능하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