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 + 모더니즘 + 제국주의 + 몬스터 + 종교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런 사람들이 꼭 하나쯤은 있었다. 시시콜콜 별 걸 다 아는 사람. 사실 그 사람의 전문 분야가 무어라고 딱히 말할 것은 없는데, 신기하게 온갖 잡다한 지식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쓸데없는 것을 알아서 무얼 해?”라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부러웠던 사람. 그런 사람이 하나쯤은 꼭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라에서, 사회에서 ‘한 가지에 전문적인 지식과 소양을 갖춘’이들을 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런 만물박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것’보다는 쓸데 있는 것. 즉 한국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돈’이 되는 것에만 사람들이 열광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너 그거 알어?”라며 말문을 여는 이들이 주변에서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글쎄,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이게 좋은 현상인지, 나쁜 것인지. 별 걸 다 아는 사람들이 사라진 지금은 솔직히 심심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 잘난 네이버나 다음 등의 포털에서 시시콜콜히 모든 것을 다 알려주는, 하다못해 이제는 핸드폰만 몇 번 두드리면 알고 싶은 것을 모조리 다 알 수 있는 참으로 ‘편한’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책으로 돌아가 보자. 나름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저자는 다시금 ‘백과사전식’역사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에 맞게 책을 썼다.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그리고 종교라는 다섯 가지로 세계사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 ‘아 그게 그런 거였어?’를 연발하게 하는 시시콜콜한 지식들이 선보인다.

 

그런데 그게 얄밉지가 않다. 오히려 신기하고,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스타벅스가 세계를 주름잡는 이유를 떠들다가, “근데 너 그거 알어? 왜 커피가 세계를 지배했는지? 그게 다 자본주의의 결과라는 거지.”하면서 커피의 각성 효과, 즉 잠이 오는 것을 막는 효과가 결국 자본주의의 무한 생산과 맞물려 각광을 받게 됐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무식하게 말하자면 잠도 자지 말고 커피 처먹어가며 일하라는 말씀.

 

그렇게 생각하면 살짝 약 오른다. 사람이 졸리면 자야지, 얼마나 일을 부려먹으려고 잠도 자지 말라는 게냐.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은가. 커피는 각성하기 위해 마시고 차는 쉬기 위해, 생각하기 위해 마시지 않았나. 알고 보면 참 무서운 음료가 또 커피이다.

 

이런 식이다. 책은 세계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따라가다, 중간 중간 특정 물질, 특정 사건을 꼬집으며 그 영향을 설명한다. 쏠쏠한 재미다. 세계사 선생님이 고등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치셨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무턱대고 필기만 하지 말고 말이다.

 

몬스터, 즉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이 일으킨 세계사의 격변은 흥미로움 그 자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와 파시즘을 더 많이 공부했던 나로서는 그냥 대충 읽을 수 없는 부분이다. 자본주의가 왜 수많은 오류와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럭저럭 굴러가는지, 사회주의가 왜 완벽한 사회를 꿈꾸었으면서도 스스로 무너졌는지, 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이 국가의 일사불란한 통제에 따라 학살과 전쟁에 나섰는지. 흥미를 떠나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왜 항상 남을 사랑하라고 떠드는 종교가 전 세계 분쟁의 핵심이 되었으며, 무차별 학살과 전쟁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근대에 들어 신은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선포했던 인간들이 현대에 들어와 다시 신을 추종하고 종교에 의지하려 하는지. 인간의 나약함과 잔인함, 그리고 무분별한 광신 등이 하나 둘 떠오른다.

 

역사라고 하면 왠지 따분하고 재미없게 느끼던 이들에게 책은 세계사에 대한 관심을 조금은 갖도록 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아울러 잡다한 지식들이 단순히 흥밋거리가 아닌 진지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게 책의 미덕이다.

 

아울러 우석훈 교수의 해제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진정 무엇인지 한 번 쯤은 고민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에 사회의 지배계층은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도 요구되었던 것은 개인이 사회나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의 하나의 부품처럼 되어가는 패턴들이었다. 그것을 ‘포디즘의 시대’라고 부르며, IMF 경제위기를 한국은 ‘다시 한 번 포디즘’이라는 형태로 극복하려 하였고, 어떻게든 사람들을 비정규직으로 바꾸어서 인건비라도 줄이고, 또다시 쥐어짜서 ‘세계의 공장’의 시대로 복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내핍형 경제를 끝까지 몰고 가는 하나의 시대는 이제 종착역에 이르렀다. 마지막 힘으로, 이제는 국토를 파먹는 토건형 경제로라도 어떻게 뭔가 해보려고 발악을 하는 중이지만, 이 방식은 지속가능하지가 않다.”

 

그렇다. 우리는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중이다. 24시간, 1년 내내 공사가 멈추지 않는 나라. 이명박 시대 이후 우리의 모습이다. 어디에서나 땅을 파고, 건물을 부수고, 다시 올린다. 이 무의미한 짓거리를 반복하는 동안 땅을 썩고, 인간들도 썩어가고 있다. 아는 사람들은, 아니 모든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어찌할 바 모르고 따라간다. 그렇지 않으면 낙오되고, 죽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말만 하지 않을 뿐이지, 지금은 전시 체제, 집단동원체제와 다르지 않다.

 

때문에 역사를 보는 눈, 역사를 이해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절실하다. 과거를 잊지 않아야 미래를 조망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까지 현 정부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뉴라이트의 황당무계한 역사관을 설파하고, 북과의 전면적인 대결상태에 들어갔다. 다시 주적이란다. 기껏 수많은 이들이 피흘려 가며 만들어낸 통일의 열정, 그 의지를 단 한 순간에 꺾어 놓겠다는 심산이다. 그리고 역사는 되도록 공부하지 말란다. 시험에 안 나오니까.

 

역사 공부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일본이 독도를 가지고 도발하고,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며 시비를 거는 것에만 흥분했지. 일본의 역사교육, 역사연구 수준과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 우리와 비교할 때 놀랄 만큼 체계적이고 오래 된 일본의 역사연구. 이는 우리가 말로만 그들에게 떠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는 재미없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선덕여왕이나 동이 따위는 인기 폭발이다. 왜 그럴까. 기존 교육 체계의 한계이자 문제점이다. 우리는 한 순간도 역사를 즐겁게 배운 기억이 없다. 연도를 외우고, 왕들의 이름과 그 족보만 줄줄이 외우느라 정작 중요한 역사의 진실, 그 안에 숨어져있는 재미있는 가치들을 알 수 없었다. 국가를 상대로 역사관 왜곡과 기피 현상에 대한 집단 소송이라도 내야 한다.

 

이 작은 책 한 권이 역사에 대한 흥미를 갑자기 일으키리라는 것은 솔직히 무리지 싶다. 하지만 적어도 백과사전식 지식, 백과사전식 역사 공부가 주는 즐거움과 흥미를 알게 해줄 것 같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모르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해주는 역할도 하리라 믿는다. 짧지만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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