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만나다 - 라오스에서의 1년, 행복한 삶의 기록
최희영 지음 / 송정문화사(송정)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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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믿는 국가들은 하나같이 가난한 저개발 국가이다. 따라서 불교는 후진적인 종교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어느 유명한 교회의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랍니다. 그렇죠. 그들이 보기엔 불교를 믿는 나라들은 하나같이 다 미개한 나라로 보이겠죠. 목사님께서 바라보시는 천당과 지옥도 빈부의 차이에 따라 입장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런 비정상적인 눈으로 본다면 라오스란 국가 역시 정말 가난하고 미래가 없는 국가로 보이겠습니다. 그 잘난 GDP가 700달러도 안 되고, 국민들의 평균 수명은 53세를 밑돈다고 하네요. 또 인구의 절반이 문맹인 나라. 의료나 교육 시설은 형편없고, 이른 바 선진국이 보기엔 제대로 된 문화 시설도 갖추지 못한 나라가 바로 라오스입니다.

 

하지만 정말 신기한 것이 하나 있네요. 이런 라오스가 해마다 실시하는 행복지수에는 언제나 선두를 다툰다고 합니다. 국민들 스스로는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어떻게 이런 나라에 사는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물음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오만이고, 무지의 결과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어떻게 행복이란 기준을 물질과 한낱 문명의 이기 소유 여부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대한민국 1%”“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따위의 무식한 폭력이 난무하는 이곳에 살다보니 우리 스스로도 모든 것을 물질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 것이죠.

 

저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많이 변했어. 눈빛도, 생각도, 내가 알던 옛날의 네 모습이 아니야.”란 말에 ‘체증처럼 가슴이 울렁이고 답답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이 혹시 ‘명함 속 직책이 부여해주는 알량한 기득권과 안락함에 안주해 사는’것은 아닌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허위의식과 지적 허영심이 몸에 배어 있는 또 하나의 내’가 된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떠날 결심을 합니다. ‘욕망이 멈추는 곳’이라는 라오스로.

 

열한 살짜리 딸과 함께 떠난 라오스. 그 곳에서 저자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단순함을 알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우리는 언제나 모든 일을 겪은 후에야 소중함을 알지 않았던가요.

 

신의 저주를 받은 땅이지 싶을 정도로 척박한 자연환경과 지정학적으로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으면서도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 대물림되는 가난 속에서도 절제와 미덕을 잃지 않고 여유로움까지 풍기는 사람들. 그들을 통해 나는 다시 찾았다. 잃어버렸던 내 유년의 기억,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지난 시절의 풍경 속에서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도 세상살이에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그들을 통해 나는 새삼 깨달았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줄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훨씬 더 포근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어디나 모두 고향 같고 누구나 다 고향 사람 같다는 것을, 자연과 인생 앞에서 순리를 거스르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저자는 라오스 여행 1년 동안 열심히 발품을 팔며 이곳저곳을 누빕니다. 그리고 많은 사진들과 글을 통해 라오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그들의 문화와 삶, 그들의 죽음과 사랑, 그들의 종교와 전통, 그들의 기쁨과 그들의 슬픔까지. 생전 가보지 못한 라오스가 어느 덧 친근한 고향처럼 느낄 정도로 정감어린 글과 사진이 돋보입니다.

 

책이 가지고 있는 미덕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저자는 라오스의 풍경 사이로 보이는 자신의 고향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립니다. 저자 기억 속에 고향 역시, 지금의 라오스와 다르지 않았음을, 정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가난이 있었음을 그는 기억합니다.

 

특히 전 다음의 글이 너무 재미있어 한바탕 웃었습니다. 웃고 나니 그 시절이 그립기도 했고요.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다 생각난 김형수 시인의 ‘개사돈’입니다.

 

눈 펑펑 오는 날

겨울 눈 많이 오면 여름 가뭄 든다고

동네 주막에서 술 마시고 떠들다가

늙은이들 간에 쌈질이 났습니다.

작년 홍수 때 방천 막다 다툰

아랫말 나주 양반하고 윗말 광주 양반하고

둘이 술 먹고 술상 엎어가며

애들처럼 새삼 웃통 벗고 싸우는데

고샅 앞길에서 온 동네 보란 듯이

나주 양반네 수캐 거멍이하고

광주 양반네 암캐 누렁이하고

그 통에 그만 홀레를 붙고 말았습니다.

막걸리 잔 세 개에 도가지까지 깨뜨려

뒤꼭지 내물이에 성질 채운 주모 왈

오사럴 인종들이 사돈 간에 먼 쌈질이여 쌈질이

 

사는 게 정말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곤 따라오듯 지금은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지금이 그렇게 살기 좋은 시절일까요. 전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라오스의 모습이 한없이 부럽고 또 슬프고 그렇습니다. 저들의 사소한 행복, 소소한 기쁨이 언제 자본주의라는 괴물에게 습격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먼저 부라는 것을 얻은 인간들의 건방진 낭만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말대로 ‘사람’을 보고 싶다면 라오스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태국이나 미얀마보다 더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하지만, 전 태국만 가봤어도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꼈습니다.

 

사람다운 사람, 사람들이 살 만한 곳. 세상 어디에도 이상적인 그런 나라는 없겠죠. 하지만 라오스는 아직도 그리움을 전해주는 곳인 것 같습니다.

 

가보고 싶은 나라가 늘었습니다. 여러분도 책을 읽으시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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