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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5월은 저에겐 참 감당키 힘든 달입니다. 기쁘고 고마운 시간이기도 하지만 한없이 슬프고 무참한 달이기도 하죠. 특히 지난해 이후엔 더욱 더 5월이 망설여지는 것 같습니다. 괜한 자격지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참 무력하게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홍세화 선생님은 물론 제가 존경하는 분 중 한 분입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은 후부터 그의 아픔과 희망에 대한 집착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비로소 웃을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써왔던 칼럼과 그 밖의 글을 모아 책으로 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접하는 그의 책입니다. 그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그 근거인 젊은이들을 위해 어렵게 다시 대화를 시작한 듯합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그의 슬픔이 더 무참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부인과의 말없는 대화 장면은 그가 얼마나 힘들어해 왔는지, 아파해 왔는지 느낄 수 있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지요. 사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희망이란 단어는 정말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일일이 다 말하기도 벅찰 만큼 이 사회는 썩었고, 또 맹렬히 썩어가고 있죠. 정의와 상식이란 단어가 실종된 지 오래고, 남을 짓밟더라도 오직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극심한 이기주의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같은 민족끼리의 증오를 부추겨 이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구태의연한 모습이 여전히 맹렬한 기세를 떨치고 있죠. 정확한 사실 판단에 기인한 것이 아닌 오직 증오와 분노를 이용한 정치. 이는 결국 공멸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죠.
이번 지방선거가 진보 세력 혹은 일반 서민들에겐 다시없는 중요한 판단의 기로임에도 불구하고, 선거보다는 월드컵을 광고하는 데 혈안이 되어버린 언론과 기업들의 추잡한 모습이 토악질을 하게 만듭니다. 벌써부터 묻지마 투표란 단어가 나오더군요. 그렇게 되면 또 다시 우리는 희망을 스스로 차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겠군요.
하지만 홍 선생님도, 그리고 저 역시 아직 포기란 단어는 입 밖에 꺼내선 안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역시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셨죠. 우리는 어쩌면 선생님의 말처럼 “다시금 ‘그렇게 싸워왔는데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했나’라고 말하기보다 ‘소수의 부단한 노력으로 이나마 덜 비인간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는 편에 서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정부의 ‘천안함’발 북풍이 예전같이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불행 중 정말 다행이죠.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은 당연히 ‘내 생각은 어디에서 왔는가,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가’일 것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물론 모든 세대들이 심각하게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도대체 내가 생각하는 것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세력들로부터 나에게 온 것일까요. 결코 쉽지 않은 물음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한 번은 해야 할, 아니 어쩜 평생을 두고 해야 할 질문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러지는 않겠지만, 선생님이 더욱 더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선생님들의 글이나 말, 그리고 묵묵히 이어지는 행동을 통해 희망과 용기를 얻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분노와 절망을 희망과 낙관으로 바꿀 수 있는 동력, 그 중요한 동력 중 하나가 선생님일 수도 있다는 생각,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매 순간 비겁한 인간으로 비루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삶을 배신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제 의지와 용기가 부디 꺾이지 않도록 매 순간 기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다음 책을 기다립니다. 부디 그 때엔 쓸쓸함과 눈물보다는 희망과 웃음이 더 도드라지는 책이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때엔 적어도 지금보다는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편한 내용이 담긴 책이었지만, 편하게 읽었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의 뜻과 바람이 온전히 이뤄지길 바라며 읽었습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이들이 책을 읽었으면 합니다. 불편한 진실이라도 그게 진실이라면 피해선 안 되는 법이니까요.
이번 투표, 비록 완전한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제 양심과 상식을 믿고 임하렵니다. 다른 분들도 그래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투표의 결과로 어쩌면 지금 정권이,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10년 단위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더군요. 정말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그 희망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