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다 된다 나는 된다 - 일과 인생이 술술 풀리는 자기암시법
니시다 후미오 지음, 하연수 옮김 / 흐름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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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산행기》라는 책을 시작으로 지난 해 백수 시절 사두었던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제 말하려는 책 역시 그 당시 사두었던 책이다. 인터넷 광고가 눈에 뜨여 주문했을 것이다. 하지만 입때까지 읽지 않고 고이 모셔두었다.




왜 그랬을까. 아니, 왜 이 책을 구입했을까. 대충 짐작은 하겠지만, 당시 내 상황이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무언가 해도 난 안 된다는 우울한 생각이 떠나질 않던 때였다. 나쁜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실제 행동도 좋은 방향보다는 그 반대가 많았다. 나이 먹고 또다시 찾아온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아마 정확히 6개월이었을 것이다. 공식적인 백수 생활을 한 것이. 그 사이 나름대로 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있었으며, 감동적인 일화도 수없이 발생했었다. 그냥 아무런 생각이나 혹은 대책 없이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고민을 많이 하는 것처럼 아내에게 보였을 뿐 기실 고민도 없었다. 정말 맘 편하게 그러나 대책 없이 보낸 시간들이었다.




그 대책 없음을 신중한 그리고 심각한 고민으로 바꾸어 준 것은 우습게도 이명박 정권이었다.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다고 떠들며 등장한 이 정권은 그러나, 전혀 준비되지 않은, 오직 복수와 그동안 손해 본 것들을 회수하겠다는 마음만 가진 고장 난 불도저였다.




그 첫 신호탄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었고,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고 다들 아시는 것처럼 촛불정국이 시작되었고 명박산성이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찾아온 바보의 죽음. 이는 나에게 더 이상 마음 편하게 빈둥거리지 못하게 만든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때, 그야말로 분노와 절망, 억울함과 비통함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지금 책을 읽은 후에 느끼게 된 감정과 혹은 결심이 과연 그 때에도 동일하게 찾아왔을까.




자신할 수 없다. 때문에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 당시 책을 읽었다면 그때 내 감정 상태였다면 바로 찢어 버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을 때는 일본판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물론 온전히 같다고 할 순 없지만, ‘네가 생각하는 대로 꿈은 이루어 진다’는 주제가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이자 전체를 꿰뚫고 있는 ‘운’이라는 것은 《꿈꾸는 다락방》과 차별성을 갖게 만들었다. 운, 행운.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자기 암시, 동기 부여. 그리고 확신에 찬 신념. 이것들은 모두 성공의 조건들이다. 그 성공이라는 것이 세속적인 것이든 아니든 아마 공통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일 것이다. 저자 니시다 후미오는 열심히 노력만 해서는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고 말한다. 먼저 ‘운’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운은 주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라 말한다.




‘운을 스스로 불러온다’,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누구나 자신이 운이 좋기를 바라지만, 모두에게 운이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운을 어떻게 불러들이는지도 잘 모르겠다. 여기에서 책은 강력하게 말한다. 감사하고 열정과 확신을 갖는다면 운은 반드시 자신에게 오게 되어있다고.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인정하는 이들을 살펴보면 사실, 그 사람의 실력도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기가 막힌 운이 작용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운 때문에 사람들은 그 사람의 성공을 조금은 깎아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운이란 것 역시 엄연히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결과라는 책의 말대로라면 이는 더더욱 성공한 이들을 빛나게 해주는 요소가 된다. 실력도 있고, 노력도 했는데 운까지 따라준 사람. 완벽한 성공의 모델이다.




자기계발서를 선천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책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행운을 속삭이며, 성공을 보장한다. 그리고 말한다. ‘넌 성공의 문 앞에 있다’고.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모든 것을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모든 가난한 이들이 자기 확신이 부족하고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열정적인 삶을 포기한 이들일까. 성공한 이들은 모두 강하게 스스로를 믿으며, 열정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온 이들일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이 나라는 너무나 공정한,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사뭇 다르지 않나. 대한민국, 그리고 저자의 조국인 일본 역시 이는 100%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 아닌가.




못난 찌질이 처럼 모든 자신의 불행을 세상 탓으로, 타인 탓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계발서라 해도 일방적인 단정은 극히 위험하지 않을까. 보다 광범위한 한계를 두고, 그 한계의 원인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 책 역시 어쩔 수 없이 《꿈꾸는 다락방》과 같은 아쉬움을 전해준다. 특히 가난이 일종의 질병이고 가난한 이들은 환자라는 대목은 아무리 비유라 하지만 살짝 짜증이 났음을 인정한다. 그렇게 말하면 정말 안 되는 것이다. 위험한 발언이고 주제 넘는 생각이다.




이런 아쉬움과 잘못된 부분들이 있음에도 책은 나름대로 역할과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다. 읽은 이에게 강한 동기 부여나 자기 암시를 유도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유효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온전히 독자 개개인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책이 나름대로 높은 판매고를 올린 것도 어느 정도 대중적 공감대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시중에 널려있는 흔해빠진 자기계발서는 아니라는 소리다.




그동안 자기계발서를 거의 읽지 않았던 나에게 책은 일정 부분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다. 물론 자기계발서라는 책의 목적을 빤히 알면서도 내용에 불만을 갖고, 이의를 제기하는 내 못된 버릇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결국 ‘나는 안 돼, 어차피 여기가 내 한계야.’라고 말하는 사람에겐 인생의 전환을 가져올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는 진리. 그 기회마저 차츰 사라진다는 사실. 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반면 나는 자신 있다. 나는 분명히 운이 좋을 것이라 믿고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겐 외모와 능력을 떠나 아우라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아우라로 속속 ‘운’이라는 것이 따라 들어올 지도 모른다.




1년에 몇 억 버는 법. 몇 년 안에 얼마를 벌 수 있는 법 따위의 책들은 여전히 내 관심사가 아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은 이 책과 같이 잃어버린 자신감을 일정 부분 회복시켜주는 책은 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단지 세속적인 성공 하나에만 매몰되지 않고, 나눔과 공생을 위한 성공이라면 말이다. 때문에 자기계발서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에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열정과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것. 고마운 일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지난 백수 시절 도서목록을 뒤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당시의 암울했던 기억들까지 뒤적거려선 안 될 것이다. 아직 결승점에 이르지 못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역시나 비관이 아닌 긍정과 열정이다.




다시 환하게 웃고 어깨를 펴고 내일 아침을 맞아야겠다. 그리고 생각하자.




“난 정말 억세게 운이 좋은 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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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 행복을 일구는 사람들 이야기 박원순의 희망 찾기 1
박원순 지음 / 검둥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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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6·2 지방선거는 여러모로 참 의미 있는 선거였다. 정부와 보수 언론이 있는 힘을 다해, 온갖 치졸한 방법을 동원해 국민들을 협박하고 겁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미 승리는 예정되어 있다”며 선거 이후 4대강 사업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얄미운 여당 중진의원의 호언장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국민들은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세상에, 과연 전쟁을 무기로 국민들을 협박하며, 그것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이 활개 치는, 그런 국가가 얼마나 존재할까. (일단 미국과 이스라엘이 있으니 MB는 외롭진 않겠다) 물론 이번 선거에도 여전히, 아니 극단적인 수위에까지 오르며 북풍을 이용할 것이라는 예상을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번에 보여준 정부와 언론, 여당의 모습은 치가 떨릴 만큼 치졸했고, 야비했다. 오죽하면, “박정희, 전두환 때에도 이렇게 무식하고 야비하게 국민들을 협박하고 억누르는 모습은 없었다. 그들은 적어도 스스로 체면은 지키려 노력했다. 한마디로 이 정권은 스스로에 대한 체면도 없는 부끄러운 정권”이라고 했을까. 상식 없는 정부, 양심 없는 정부, 비정상적인 정부와 대통령을 선출한 대가를 우리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

 

아직 그 어떤 명쾌한 진실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또한 진실을 숨기고 왜곡하려는 정부와 군의 모습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천안함 사건’을 이용해 선거에 유리한 영향을 주려했던 정부와 여당. 감히 대통령이란 사람의 입에서 ‘전쟁’이란 단어가 거침없이 나오고, 코리아 리스크의 폭발로 단 하루에 시가 총액 44조 원이 날아가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들은 선거에서 이기려 발악했다. 도저히 정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는 나라. 당장 전쟁이 날 것처럼 호들갑 떨고 괜히 군 장병들의 영정 사진이나 찍어대며 쇼를 하는 나라. 당장이라도 미국이, 중국이 한마디 하면 ‘깨깽’을 연발하면서, 전쟁에 ‘전’자도 겪어보지 못했고, 군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병역기피자, 면제자들이 국가의 안보를 논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한 번도, 단 한 번도! 독자적인 군사훈련을 한 기억이 없기에(왜?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게 있으니까!) 막상 전시 상황이 벌어지면 미국의 얼굴만 바라볼 나라가 바로 우리의 위대한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그들은 국민을 속이고 기만하며 오늘까지 오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으로 무상급식이나 4대강 사업 등 정작 중요한 것들을 수면아래고 가라앉히고 오직 전쟁, 북풍으로만 다시 권력을 얻으려 한 치졸하고도 야비한 세력들. 그게 정부와 여당 그리고 수구 언론들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지옥에서 다시 건져낸 강남 3구, 그 지역구의 한나라당 의원은, 그래, 고승덕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가 오세훈을 살렸다며 자랑한다. 사람이 얼굴만 착해 보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바보였다. 아주.



그랬다. 그들에게 선거는 아주 명확한 것이었다. 그들은 결코 투표권 행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왜? 계급투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나든, 남의 새끼들이 밥을 굶어가며 학교를 다니든, 4대강이 썩어 문드러지든 알바 아니다. 오직 내 밥그릇, 내 땅, 내 집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세훈은 이제 강남특별구청장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라도 그는 정치권에서, 한나라당 내에서 사라질 존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대행인이기 때문이다.

 

왜 선거 이야기를 자꾸 하는가. 그것은 박원순 변호사가 찾고자 했던 희망. 그 희망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바로 이번 선거였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는 수많은 문제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주권 행사도 거부하면서 주제넘게 다른 문제들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이 살아야 경제가 살고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이 살 수 있다는 자명한 진리. 그 진리를 내던지고 오직 서울만, 오직 중심부만을 외쳐댄 것이 현 정권이다. 4대강을 작살내며 얻을 수 있는 수익이 과연 그 지역으로 돌아갈까. 자연을 해쳐가며 얻는, 후손들의 미래마저 앗아가며 얻은 이익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기실 그 이익도 확실치 않지만), 그 이익이 과연 그 지역으로 갈 것인가 말이다. 어림도 없는 소리인 것은 누구나 안다. 소수의 건설기업, 소수의 정치인, 소수의 지역 토호 세력에게 갈 뿐이다.

 

때문에 이번 선거가 중요했고, 그 결과가 의미 있는 것이다. 다행히 국민들은 멍청하지 않았고, 속지 않았으며,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수많은 젊은이들, 단지 88만 원 세대라며 놀림이나 당하고, 정치적 의식은 쥐뿔도 없다는 조롱을 받아야 했던 그들은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촛불의 열정을 불태우며 거리로 나왔고, 노무현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에 눈물로 대항했으며, 이번 선거에서도 확실하게 그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들은 살아있는 생명이었던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전국을 누비며 찾아다닌 이들. 그들은 기실 대한민국의 희망이었다. 거대 기업의 자본논리, 정부의 안이한 태도에 맞서 싸워온 그들은 지역에서 소중한 결실을 맺으며 이를 확산시켜나가고 있다.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상징이라 떠드는 서울의 수장인 오세훈 시장보다 충북 단양의 작은 마을 한드미를 마을 운동의 모범 사례로 일군 정문찬 이장이 더 위대한 이유가. 때문이다. 거대한 자본을 무기로 영세 상인들을 죽이며, 이것이 고용 창출이고 경제성장이라고 떠드는 대기업들보다 자발적인 노력과 열정으로 재래식 시장의 문화와 숨결을 살려낸 충북 청주 육거리 시장 상인들이 위대한 이유가.

 

책에 담긴 모든 공동체, 지역 들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때야 함을 보여준다. 크기와 숫자로 평가받는 미친 세상에서 정과 이웃, 공동체 의식으로 희망을 일구어 나가는 이들. 이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박원순 변호사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자신들은 좋은 유기농 음식만 처먹겠다고 깝치면서, 정작 농민들이 여의도에 모여 살려달라고 외칠 때에는 이기주의라고 매도하는 쓰레기들이 사라지는 그날. 서울이 잘돼야 대한민국이 잘 된다는 기이한 논리로 지방의 고사를 조장하는 정책입안자들이 사라지는 날. 그때야 대한민국은 숨 쉴 수 있는 땅이 될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책이었다. 책에 소개된 마을들, 공동체들을 꼭 한 번 가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서울이라는, 수도권이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나도 쓰레기가 되어 가지는 않았는지, 처절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모든 풀뿌리 운동가들의 건투를 빌며, 모든 지역 공동체의 발전과 행복을 빌며, 나 역시 소소한 것 하나부터 고쳐나가야 겠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대한민국이, 지방이, 이 땅과 산과 물과 모든 자연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더 이상 인간 이하의 삶을강요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다.

 

희망에 굶주린 이들에게 권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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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산행기 - 평일에 산에 가는 나, 나도 정상에 서고 싶다
김서정 지음, 지만 그림 / 부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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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해 초 덜컥,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회사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도 원인이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내 스스로가 무너져 버릴 것 같다는 위기감도 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옳은 결정이었는지 아닌지 지금도 자신할 수는 없지만, 뭐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별안간 백수가 된 나는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재충전의 시기이니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다시 일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맞았지만, 일단은 아무 생각 없이 세월아 네월아 하며 빈둥거리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예쁜 마누라의 얼굴이 가면 갈수록 무서워짐을 느끼며 난 되도 않는 영어 공부다 뭐다 하며 부산을 떨었고, 일일 계획을 거창하게 세워 그것을 월 단위로 달성하겠다는 허무맹랑한 프로젝트까지 구성했다. 생각해보면 나에 대한 지극한 과신이었다.

 

백수로 지내는 사이 아파트 이웃 아줌마들과 친해졌고, 평생 우습게 여기던 집값, 땅값에 대한 그네들의 심오한 철학에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 이래서 사람들이 한나라당에 목숨 거는구나”느끼기도 했다.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들의 노고를 절감했으며, 음식 쓰레기 재활용과 쓰레기 분리수거의 소중함, 설거지의 노하우 등을 익혀 나갔다. 바야흐로 소중한 삶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정말 문득 이 책의 저자처럼 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전까지 등산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했던 나이기에, 그리고 저자의 처음 생각처럼 “결국 내려올 걸 왜 굳이 땀 삐질삐질 흘려가며 기어 올라가?”를 고수했던 나이기에 생뚱맞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국 집을 나섰다. 우이동까지 버스를 타고 가 도선사로 향한 아스팔트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갔다. 물론 등산에 ‘등’자도 모르는 내가 제대로 된 장비나 옷을 갖추었을 리 만무하다. 청바지에 운동화, 배낭에 김밥과 물, 오이 두 개가 전부였다. 스틱도, 하다못해 장갑도 없이, 디지털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그렇게 산행을 시작했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도선사 위에서 시작되는 산행은 백운대를 가장 빨리 오를 수 있는 코스 중 하나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오르면 1시간 반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말동무할 이 없이 혼자 오르는 길이니, 더디게 갈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그저 땅만 보며 꾸역꾸역 기어 올라갔다.

 

하지만 산은 역시나 산이었다. 저질 체력의 대명사인 내가 바위길이 많고, 경사가 심한 편인 코스로 올라가자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주위에 아름다운 경치, 나무 사이로 바람이 흘러가는 소리나, 산새들의 노래도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올라가는 중이었다. 정말 북한산에 대한 모독이자, 음악에 대한 모독이었다. 멀티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아니 내 경험상 대부분 불필요하다.

 

얼마쯤 올랐을까. 쇠줄이 나타나며 경사가 높은 바윗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는 뭐 나도 별수 있나. 저자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며, 때로는 11자로 발을 새우며 조심스레 올라갔다. 평일 임에도 불구하고 산을 찾은 적지 않은 등산객들이 변변한 장비 하나 없이 무턱대고 기어오르는 나를 보고, 조소 반 걱정 반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주위 시선이 문제가 아니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점점 주인을 배반하려는 다리 때문에 정신이 없을 뿐이었다.

 

그렇게 오른 백운대. 글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주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꽉 막혀 있는 가슴을 뻥 뚫어주는 기분. “아 이래서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구나.”어설픈 초보 등산객의 첫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그랬다. 앞날에 대한 대책이 전무했던 내게, 산은 저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유 없는 희망과 자신감을 넣어줬다. 흘린 땀이 아깝지 않았고, 내려가는 길이 두렵지 않았다.

 

그 이후 촛불 정국,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 등 내 인생을 슬며시 흔드는 일들이 연이어 터져 꾸준한 산행이 이뤄지지 못했지만, 삶이 나를 속이려 할 때 난 슬며시 산으로 대피하곤 했다. 저자처럼 코스의 변화를 주지도 못했고, 산과 주위 봉우리들에 얽힌 전설을 알지도 못했지만, 그냥 난 산으로 향했고, 오이를 빠드득 깨물었으며, 캔 커피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산을 오른 것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산에 오르며 난 더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대처 방법 3종 세트, 찌질이 남편을 믿고 어린 나이에 결혼해 마음 고생의 초입에 들어선 아내, 알면서도 모른 척 “밥 챙겨 먹고 다니라”하시는 부모님들, 그리고 그야말로 너무나 맘에 안 들어 꼭지가 돌아버릴 것만 같은 이명박 정부와 대한민국. 산에 오르는 동안 구상했던 글들이 몇 백 편이었으며, 아내에게 바치는 반성문이 원고지 몇 천 장이었나.

 

하지만 어느 때고 산은 말이 없었다. 시끄러운 건 오직 인간뿐이었다. 산은 그저 마음 편하게 인간들을 받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나도 포함되었다. 불안한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준 것은 그 당시 북한산이 유일했다. 그리고 어느 새 백운대와 난 친한 친구마냥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다. 가끔 모양새 안 나게 자빠져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어찌되었든 태어났으면 어찌해서든 살아남아야 한다. 인간이 원해 그렇게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백수 생활 반년을 보내며, 산을 오르며, 난 건방진 생각도 종종 했다. “내가 고작 먹고 사는 것밖에 고민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나?”“내가 생각해온 내가 꿈꿔온 것들은 지금 다 어디로 숨었을까?”“이 세상은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야말로 건방진 생각들이었다. 물론 이 건방진 생각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난 불만이고, 불순하며, 불온하다. 아울러 불량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산을 오르는 동안 그 건방진 생각에 다른 생각도 함께 하게 되었다. 소중한 그 무엇을 지키기 위해 난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어떤 투쟁과 노력으로 내 것을 지킬 수 있는가 보다는 어떤 희생과 눈물로 남과 나눌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난 소유욕이 엄청나다. 신자유주의, 미친 자본주의 세상에 어쩌면 적합한 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외로 내 것에 대한 집착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일단 갖게 되면 그 이후엔 시큰둥이다. 이것 역시 자본주의에 찌든 인간의 전형일 것이다.

 

하지만 산은 그렇지 않았다. 산은 가진 것을 모두 내어주고, 또 내어주었다. 물론 그 사이 사이 오만한 인간에게 불벼락을 내리기도 하지만, 일단은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 준다. 그게 산이 가지고 있는 인간과 가장 다른 모습이다.

 

저자는 백수 생활을 등산으로 극복했다. 북한산과 함께 한 그의 백수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물론 아내와 아이 얼굴 보기가 민망했던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평일에 산에 오르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자 행복이다. 주말, 휴일에 잘 알려진 등산길에 오른다는 것은 큰 각오가 필요한 일이 되었다. 그야말로 줄을 서서 사람들이 오르기 때문이다. 사색과 고독 같은 단어보다는 질서와 스피드가 강요된다. 으! 산마저 말이다.

 

때문에 저자와 나처럼 평일에 산을 탔던 이들은 조금 행복한 거다. 그래서 그 유혹을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한다. 한적한 산길을 홀로 오르는 기분. 안 해본 이들은 짐작할 수 있을까. 길이 길이 아니고, 또 길이 그저 길임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

 

내가 “어디가 길인가요?”라고 물을 때마다 그들은 늘 “가면 길이죠”라고 대답했는데,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아니 북한산 길을 훤히 알고 있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산에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사람이 오르려다 보니 길이 생겼고, 가기 힘든 길도 장비를 쓰든 쓰지 않든 누군가가 가고 나니 길이 된 것이다. 그렇게 산 전체가 하나의 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길이라는 것을,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두려움에 떨면서도 익혔다. 그런데 그 길을 익혔더니 또 다른 길이 떡 하니 펼쳐졌고, 다시 다른 길을 또 익히고 보니 길은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든 길은 늘 있었고, 그 길을 찾기 위해 무슨 운명처럼 또 부지런히 산에 몸을 맡겨야 했다.

 

저자처럼 근사한 산행기를 쓸 자신은 죽어도 없지만, 책을 덮은 후 다시 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살고 있는 곳도 나의 북한산행을 부추긴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쉽게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마음이었다. 언제나 산은 거기에 있었지만,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해 온 것이다.

 

싸구려 등산화가 있다. 지팡이를 하나 샀다. 아내가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라며 고어텍스 등산모를 건넨다. 아직 제대로 된 등산복도 없다. 하지만,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내 고독과 상처와 아픔을 고스란히 알고 있는 산. 그 산에 걸어 들어가면 말이다.

 

만약 내가 꾸준한 산행으로 건강이 좋아지고, 담배마저 끊을 수 있게 된다면 저자에게 꼭 한 번 만나자고 하고 싶다. 시원한 막걸리에 김치 파전 한 번 쏜다고 말할 테다.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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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광시곡 1
김주연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장르를 초월하고 예술인들에게는 일정한 광기가 느껴진다. 물론 모든 예술인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감탄하고 감동을 느낄만한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 이들은 강약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런 광기를 뿜어내곤 했다.

 

사실 예술은 광기, 고통, 절망이 수반되는 행위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한 유에서 다시 무로 끝없이 추락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영혼이라도 팔아 시대가 감동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을 만들려 한다. 그들의 피나는 노력과 뛰어난 영감, 그리고 광기어린 집착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난 어쩔 수 없이 음악을 떠올린다. 솔직히 미술이나 그밖에 예술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녀석이기도 하고, 그나마 내 짧은 생에서 음악이 가장 친근한 벗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장르로 국한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락 음악이다.

 

어떤 예술 분야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음악은 그야말로 광기의 산물이다. 다른 음악 장르를 건방지게 논하고 싶지는 않고, 락 음악만 보더라도 한 곡의 탄생을 위해 수많은 고통과 광기가 수반되는 것이 사실이다.

 

90년대 초 등장해 세상을 바꿔버린 〈Smells Like Teen Spirit〉의 주인공. 그룹 Nirvana의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 커트 코베인. 그는 차고에서 연습을 하며 지독한 가난을 벗 삼아 음악을 했던 고독한 시인이었다. 하지만 단 한 곡으로 그의 인생이 바뀌고 전 세계가 그와 Nirvana에 열광하자, 차마 견딜 수 없었다. 아름다운 부인과 너무도 사랑스러운 딸을 남겨두고 그는 결국 엽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야만 했다.

 

그의 노래는 비관과 우울, 어둠과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결혼과 득녀 이후 “나도 이젠 행복한 내용의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했었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일본 밴드 X-Japan의 명 기타리스트였던 Hide. 그 역시 자신의 음악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수많은 명곡을 만들며 밴드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기억되는 히데. 그의 페르난데스 기타가 뿜어내던 강렬한 사운드는 아직도 많은 팬들을 감동케 하지만, 정작 그는 그렇게 팬들 곁을 떠나버렸다.

 

우리나라엔 김광석이 있다. 시대가 흘러도 영원히 남을 것 같은 아름다운 노래들. 힘든 시절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던 노래들을 남긴 채 그는 그렇게 떠나갔다. 지금도 라디오를 틀면 흘러나오는 노래. 술 취한 중년들이,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이, 서른 살에 막 다다른 청춘들에게 그는 여전히 따뜻한 위로다.

 

잔혹한 살인사건을 다룬 소설을 읽으며 나는 생뚱맞게도 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수많은 음악가들을 떠올렸다. 책처럼 교향곡이나, 오페라는 아니지만, 나에겐 이들이 먼저 떠올랐다. 결국 살아온 인생이 이렇게 내 생각의 기억마저 만들어 버린 것일 테다.

 

주인공 서연의 삶은, 음악과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음악 그 자체였다. 하지만 정작 아름다워야 할 음악은, 모든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쳐주는 바로 그 음악은, 본인에겐 고통일 뿐이었다. 자신은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 자신이 만든 음악이 곧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고독과 절망, 아픈 유년의 기억들.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음악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주었지만, 결국 파국을 향해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에 더 이상 내용을 말하진 않겠다. 소설은 매우 뛰어나다. 최근 일본의 미스터리, 추리물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현실을 본다면 이 책은 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음악적 진행 묘사는 압권이다. 이는 그동안 축적된 저자의 지식과 노력의 결과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 긴박한 구성과, 한 번 책을 펴면 도저히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속도감과 구성. 근래에 읽은 소설 중 가장 흡입력이 강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신의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작품이기에 문장마다 자신감이 넘친다. 또한 끊어야 할 곳과 이어야 할 곳을 비교적 정확히 판단하고 실행에 옮긴 솜씨가 기성 작가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책을 통해 받은 감동은, 음악에 대한 열정 그 자체다. 서연의 비밀을 알았지만 그의 新환상교향곡 시연을 멈출 수 없었던 형운. 그리고 자신의 과거와 연결될 것을 느꼈지만, 그 과거를 잊기 위해 오히려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리는 채원. 이 모든 것들은 음악이라는 커다란 구심점을 향해 미친 듯 달려간다.

 

아름다운 음악 속에 이어지는 잔혹한 살인. 그리고 집념과 집착이 만들어낸 광기와 환희의 음악. 절묘한 만남이다. 저자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흔히 말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물론 잘 찾아보면 공짜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99.999999%는 정답이다. 공짜는 없다. 저자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아픔, 집념이 고스란히 느껴지기에 책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또한 독자로서 충분히 즐겨야 한다. 저자의 책머리에 담았던 고통의 토로와 스스로의 위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책이다. 다시금 음악과 고독, 절망과 환희가 느껴지는 시간들이었다. 즐겁고도 가슴 아픈 독서였다.

 

“만 시간의 통곡 속에 삭아 내린 내 심장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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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
피트 런 지음, 전소영 옮김 / 흐름출판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나란 인간이 원체 무지한 녀석이지만, 특히나 경제에 대한 부분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가정의 수입과 지출, 그리고 장기적인 계획 등 모든 경제 문제는 아내가 도맡아 하고 있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그나마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아내의 덕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경제학과 관련된 책 역시 거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이라는 것이 본디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 있어 하는 부분에 더욱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지금껏 읽었던 책들을 살펴보니 경제학 관련 서적은 그야말로 손꼽을 정도다.




때문에 어쩌면 이 책 역시 그 존재 자체를 모르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학’이란 단어가 책 제목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책이니 아마 더더욱 외면하지 않았을까. 심리학, 철학 등을 쉽고 재미나게 풀어 쓴 책들이 유행하는 요즘, 아마 다른 ‘학’을 표방하는 책에 손이 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익한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흔히 정통 경제학에서 떠드는, 때로는 무자비한 신자유주의를 합리화하는 대표적 이론들이 사실, 그 정체를 의심해봐야 할 정도로 허점이 많다는 사실, 또한 실재 경제 주체인 국민과 기업들의 ‘현실’과는 동 떨어져있다는 사실을 책은 말해주고 있다.




사실 책이 완전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번역 과정에서 약간의 껄끄러움이 느껴졌고(물론 내가 이해를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저자 자체가 약간은 산만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리고 자질구레한 문장들도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단점들이 무색할 만큼 책의 중심적인 내용들은 유익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미 살아가며 경제생활을 실재로 하고 있는 우리들이 보기엔 지극히 당연한 말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통경제학자들은 오직 그래프와 도표,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경제학을 진리인양 받들었고,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은 그 이론을 신봉하며 경제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진리인양 받들어진 명제는 사실상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무색하다.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6가지 기존 정통경제학에서 주장해온 사실들을 반박하고 있다.

1. 인간은 무조건 이익을 추구한다.

2. 세상은 예측 가능하다.

3. 인간은 이기적이다.

4. 아무리 광고해도 소용없다.

5. 조직은 합리적이다.

6.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




사실상 누가 봐도 허점이 많은 명제들이다. 인간은 물론 이익을 추구하지만, ‘무조건’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세상이 예측 가능하다는 것과 광고가 소용없다는 것은 한 눈에 봐도 말이 안 된다. 세상은 한치 앞을 알 수 없고, 제품 구매에 있어 광고는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것과 조직이 합리적이라는 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이 6가지 명제들을 저자는 하나하나 반박한다. 그 반박이란 또 다른 그래프와 도표가 아닌, 실재 일어났던 사건들과 또한 여러 가지 실험의 결과로서 이루어진다. 그만큼 이해가 빠르고 신뢰할 수 있어 보인다. 특히 다음과 같은 글들은 더욱 생각할 거리를 준다.




“다른 곳에서 더 많이 벌 수 있는데도 대의를 위해 일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분야에서는 특히 팀 정신과 상호 지원이 바탕이 되어야 업무도 만족스럽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이러한 직장에 금전적인 장려책과 생산성 목표를 강제로 도입하는 것은 자신의 직업을 더럽히는 행위다. 그러한 시도는 증거가 아닌 전제를 바탕으로 한 불량 경제학이다.”




“우리는 효과적이고 자발적인 사회적 교환,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호의의 교환을 위해 이기적인 본능을 극복한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상호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본능은 직장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사기업이든 공익 단체이든 모든 조직은 동료 및 상사와 호의를 주고받는 직원들의 능력에 전폭적으로 의지한다. 조직이 신뢰와 팀워크 문화를 얼마나 잘 구축하느냐에 따라 능력이 결정된다. 이러한 능력은 경제 활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 불린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사실 얼마나 불합리한 존재인지. 우리는 매일 같이 후회할 일들을 저지르고 또 매일 같이 후회한다. 이런 불합리한 인간들에게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완벽한 인간’을 내세우며, 불행을 강요해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인간은 사실 그렇게 완전하지도, 또한 그렇게 사악하지도 않다. 다만 사회가, 시스템이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더욱 키워왔을 뿐이다.




경제학에 대한 책이었지만, 나에겐 경제 외에도 인간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신나게 개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과연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불합리하고 멍청하고 고집스러운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어쩌랴. 이 지긋지긋한 세상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 그것이 정답이라고 믿고 있음을.




행동경제학이 무엇인지, 경제 본능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이들도 마찬가지. 때문에 난 당연히 재미있게 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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