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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 행복을 일구는 사람들 이야기 ㅣ 박원순의 희망 찾기 1
박원순 지음 / 검둥소 / 2009년 4월
평점 :
이번 6·2 지방선거는 여러모로 참 의미 있는 선거였다. 정부와 보수 언론이 있는 힘을 다해, 온갖 치졸한 방법을 동원해 국민들을 협박하고 겁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미 승리는 예정되어 있다”며 선거 이후 4대강 사업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얄미운 여당 중진의원의 호언장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국민들은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세상에, 과연 전쟁을 무기로 국민들을 협박하며, 그것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이 활개 치는, 그런 국가가 얼마나 존재할까. (일단 미국과 이스라엘이 있으니 MB는 외롭진 않겠다) 물론 이번 선거에도 여전히, 아니 극단적인 수위에까지 오르며 북풍을 이용할 것이라는 예상을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번에 보여준 정부와 언론, 여당의 모습은 치가 떨릴 만큼 치졸했고, 야비했다. 오죽하면, “박정희, 전두환 때에도 이렇게 무식하고 야비하게 국민들을 협박하고 억누르는 모습은 없었다. 그들은 적어도 스스로 체면은 지키려 노력했다. 한마디로 이 정권은 스스로에 대한 체면도 없는 부끄러운 정권”이라고 했을까. 상식 없는 정부, 양심 없는 정부, 비정상적인 정부와 대통령을 선출한 대가를 우리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
아직 그 어떤 명쾌한 진실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또한 진실을 숨기고 왜곡하려는 정부와 군의 모습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천안함 사건’을 이용해 선거에 유리한 영향을 주려했던 정부와 여당. 감히 대통령이란 사람의 입에서 ‘전쟁’이란 단어가 거침없이 나오고, 코리아 리스크의 폭발로 단 하루에 시가 총액 44조 원이 날아가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들은 선거에서 이기려 발악했다. 도저히 정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는 나라. 당장 전쟁이 날 것처럼 호들갑 떨고 괜히 군 장병들의 영정 사진이나 찍어대며 쇼를 하는 나라. 당장이라도 미국이, 중국이 한마디 하면 ‘깨깽’을 연발하면서, 전쟁에 ‘전’자도 겪어보지 못했고, 군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병역기피자, 면제자들이 국가의 안보를 논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한 번도, 단 한 번도! 독자적인 군사훈련을 한 기억이 없기에(왜?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게 있으니까!) 막상 전시 상황이 벌어지면 미국의 얼굴만 바라볼 나라가 바로 우리의 위대한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그들은 국민을 속이고 기만하며 오늘까지 오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으로 무상급식이나 4대강 사업 등 정작 중요한 것들을 수면아래고 가라앉히고 오직 전쟁, 북풍으로만 다시 권력을 얻으려 한 치졸하고도 야비한 세력들. 그게 정부와 여당 그리고 수구 언론들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지옥에서 다시 건져낸 강남 3구, 그 지역구의 한나라당 의원은, 그래, 고승덕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가 오세훈을 살렸다며 자랑한다. 사람이 얼굴만 착해 보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바보였다. 아주.
그랬다. 그들에게 선거는 아주 명확한 것이었다. 그들은 결코 투표권 행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왜? 계급투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나든, 남의 새끼들이 밥을 굶어가며 학교를 다니든, 4대강이 썩어 문드러지든 알바 아니다. 오직 내 밥그릇, 내 땅, 내 집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세훈은 이제 강남특별구청장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라도 그는 정치권에서, 한나라당 내에서 사라질 존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대행인이기 때문이다.
왜 선거 이야기를 자꾸 하는가. 그것은 박원순 변호사가 찾고자 했던 희망. 그 희망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바로 이번 선거였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는 수많은 문제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주권 행사도 거부하면서 주제넘게 다른 문제들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이 살아야 경제가 살고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이 살 수 있다는 자명한 진리. 그 진리를 내던지고 오직 서울만, 오직 중심부만을 외쳐댄 것이 현 정권이다. 4대강을 작살내며 얻을 수 있는 수익이 과연 그 지역으로 돌아갈까. 자연을 해쳐가며 얻는, 후손들의 미래마저 앗아가며 얻은 이익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기실 그 이익도 확실치 않지만), 그 이익이 과연 그 지역으로 갈 것인가 말이다. 어림도 없는 소리인 것은 누구나 안다. 소수의 건설기업, 소수의 정치인, 소수의 지역 토호 세력에게 갈 뿐이다.
때문에 이번 선거가 중요했고, 그 결과가 의미 있는 것이다. 다행히 국민들은 멍청하지 않았고, 속지 않았으며,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수많은 젊은이들, 단지 88만 원 세대라며 놀림이나 당하고, 정치적 의식은 쥐뿔도 없다는 조롱을 받아야 했던 그들은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촛불의 열정을 불태우며 거리로 나왔고, 노무현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에 눈물로 대항했으며, 이번 선거에서도 확실하게 그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들은 살아있는 생명이었던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전국을 누비며 찾아다닌 이들. 그들은 기실 대한민국의 희망이었다. 거대 기업의 자본논리, 정부의 안이한 태도에 맞서 싸워온 그들은 지역에서 소중한 결실을 맺으며 이를 확산시켜나가고 있다.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상징이라 떠드는 서울의 수장인 오세훈 시장보다 충북 단양의 작은 마을 한드미를 마을 운동의 모범 사례로 일군 정문찬 이장이 더 위대한 이유가. 때문이다. 거대한 자본을 무기로 영세 상인들을 죽이며, 이것이 고용 창출이고 경제성장이라고 떠드는 대기업들보다 자발적인 노력과 열정으로 재래식 시장의 문화와 숨결을 살려낸 충북 청주 육거리 시장 상인들이 위대한 이유가.
책에 담긴 모든 공동체, 지역 들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때야 함을 보여준다. 크기와 숫자로 평가받는 미친 세상에서 정과 이웃, 공동체 의식으로 희망을 일구어 나가는 이들. 이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박원순 변호사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자신들은 좋은 유기농 음식만 처먹겠다고 깝치면서, 정작 농민들이 여의도에 모여 살려달라고 외칠 때에는 이기주의라고 매도하는 쓰레기들이 사라지는 그날. 서울이 잘돼야 대한민국이 잘 된다는 기이한 논리로 지방의 고사를 조장하는 정책입안자들이 사라지는 날. 그때야 대한민국은 숨 쉴 수 있는 땅이 될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책이었다. 책에 소개된 마을들, 공동체들을 꼭 한 번 가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서울이라는, 수도권이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나도 쓰레기가 되어 가지는 않았는지, 처절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모든 풀뿌리 운동가들의 건투를 빌며, 모든 지역 공동체의 발전과 행복을 빌며, 나 역시 소소한 것 하나부터 고쳐나가야 겠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대한민국이, 지방이, 이 땅과 산과 물과 모든 자연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더 이상 인간 이하의 삶을강요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다.
희망에 굶주린 이들에게 권하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