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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산행기 - 평일에 산에 가는 나, 나도 정상에 서고 싶다
김서정 지음, 지만 그림 / 부키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지난 해 초 덜컥,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회사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도 원인이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내 스스로가 무너져 버릴 것 같다는 위기감도 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옳은 결정이었는지 아닌지 지금도 자신할 수는 없지만, 뭐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별안간 백수가 된 나는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재충전의 시기이니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다시 일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맞았지만, 일단은 아무 생각 없이 세월아 네월아 하며 빈둥거리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예쁜 마누라의 얼굴이 가면 갈수록 무서워짐을 느끼며 난 되도 않는 영어 공부다 뭐다 하며 부산을 떨었고, 일일 계획을 거창하게 세워 그것을 월 단위로 달성하겠다는 허무맹랑한 프로젝트까지 구성했다. 생각해보면 나에 대한 지극한 과신이었다.
백수로 지내는 사이 아파트 이웃 아줌마들과 친해졌고, 평생 우습게 여기던 집값, 땅값에 대한 그네들의 심오한 철학에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 이래서 사람들이 한나라당에 목숨 거는구나”느끼기도 했다.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들의 노고를 절감했으며, 음식 쓰레기 재활용과 쓰레기 분리수거의 소중함, 설거지의 노하우 등을 익혀 나갔다. 바야흐로 소중한 삶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정말 문득 이 책의 저자처럼 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전까지 등산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했던 나이기에, 그리고 저자의 처음 생각처럼 “결국 내려올 걸 왜 굳이 땀 삐질삐질 흘려가며 기어 올라가?”를 고수했던 나이기에 생뚱맞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국 집을 나섰다. 우이동까지 버스를 타고 가 도선사로 향한 아스팔트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갔다. 물론 등산에 ‘등’자도 모르는 내가 제대로 된 장비나 옷을 갖추었을 리 만무하다. 청바지에 운동화, 배낭에 김밥과 물, 오이 두 개가 전부였다. 스틱도, 하다못해 장갑도 없이, 디지털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그렇게 산행을 시작했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도선사 위에서 시작되는 산행은 백운대를 가장 빨리 오를 수 있는 코스 중 하나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오르면 1시간 반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말동무할 이 없이 혼자 오르는 길이니, 더디게 갈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그저 땅만 보며 꾸역꾸역 기어 올라갔다.
하지만 산은 역시나 산이었다. 저질 체력의 대명사인 내가 바위길이 많고, 경사가 심한 편인 코스로 올라가자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주위에 아름다운 경치, 나무 사이로 바람이 흘러가는 소리나, 산새들의 노래도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올라가는 중이었다. 정말 북한산에 대한 모독이자, 음악에 대한 모독이었다. 멀티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아니 내 경험상 대부분 불필요하다.
얼마쯤 올랐을까. 쇠줄이 나타나며 경사가 높은 바윗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는 뭐 나도 별수 있나. 저자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며, 때로는 11자로 발을 새우며 조심스레 올라갔다. 평일 임에도 불구하고 산을 찾은 적지 않은 등산객들이 변변한 장비 하나 없이 무턱대고 기어오르는 나를 보고, 조소 반 걱정 반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주위 시선이 문제가 아니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점점 주인을 배반하려는 다리 때문에 정신이 없을 뿐이었다.
그렇게 오른 백운대. 글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주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꽉 막혀 있는 가슴을 뻥 뚫어주는 기분. “아 이래서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구나.”어설픈 초보 등산객의 첫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그랬다. 앞날에 대한 대책이 전무했던 내게, 산은 저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유 없는 희망과 자신감을 넣어줬다. 흘린 땀이 아깝지 않았고, 내려가는 길이 두렵지 않았다.
그 이후 촛불 정국,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 등 내 인생을 슬며시 흔드는 일들이 연이어 터져 꾸준한 산행이 이뤄지지 못했지만, 삶이 나를 속이려 할 때 난 슬며시 산으로 대피하곤 했다. 저자처럼 코스의 변화를 주지도 못했고, 산과 주위 봉우리들에 얽힌 전설을 알지도 못했지만, 그냥 난 산으로 향했고, 오이를 빠드득 깨물었으며, 캔 커피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산을 오른 것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산에 오르며 난 더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대처 방법 3종 세트, 찌질이 남편을 믿고 어린 나이에 결혼해 마음 고생의 초입에 들어선 아내, 알면서도 모른 척 “밥 챙겨 먹고 다니라”하시는 부모님들, 그리고 그야말로 너무나 맘에 안 들어 꼭지가 돌아버릴 것만 같은 이명박 정부와 대한민국. 산에 오르는 동안 구상했던 글들이 몇 백 편이었으며, 아내에게 바치는 반성문이 원고지 몇 천 장이었나.
하지만 어느 때고 산은 말이 없었다. 시끄러운 건 오직 인간뿐이었다. 산은 그저 마음 편하게 인간들을 받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나도 포함되었다. 불안한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준 것은 그 당시 북한산이 유일했다. 그리고 어느 새 백운대와 난 친한 친구마냥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다. 가끔 모양새 안 나게 자빠져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어찌되었든 태어났으면 어찌해서든 살아남아야 한다. 인간이 원해 그렇게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백수 생활 반년을 보내며, 산을 오르며, 난 건방진 생각도 종종 했다. “내가 고작 먹고 사는 것밖에 고민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나?”“내가 생각해온 내가 꿈꿔온 것들은 지금 다 어디로 숨었을까?”“이 세상은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야말로 건방진 생각들이었다. 물론 이 건방진 생각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난 불만이고, 불순하며, 불온하다. 아울러 불량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산을 오르는 동안 그 건방진 생각에 다른 생각도 함께 하게 되었다. 소중한 그 무엇을 지키기 위해 난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어떤 투쟁과 노력으로 내 것을 지킬 수 있는가 보다는 어떤 희생과 눈물로 남과 나눌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난 소유욕이 엄청나다. 신자유주의, 미친 자본주의 세상에 어쩌면 적합한 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외로 내 것에 대한 집착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일단 갖게 되면 그 이후엔 시큰둥이다. 이것 역시 자본주의에 찌든 인간의 전형일 것이다.
하지만 산은 그렇지 않았다. 산은 가진 것을 모두 내어주고, 또 내어주었다. 물론 그 사이 사이 오만한 인간에게 불벼락을 내리기도 하지만, 일단은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 준다. 그게 산이 가지고 있는 인간과 가장 다른 모습이다.
저자는 백수 생활을 등산으로 극복했다. 북한산과 함께 한 그의 백수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물론 아내와 아이 얼굴 보기가 민망했던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평일에 산에 오르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자 행복이다. 주말, 휴일에 잘 알려진 등산길에 오른다는 것은 큰 각오가 필요한 일이 되었다. 그야말로 줄을 서서 사람들이 오르기 때문이다. 사색과 고독 같은 단어보다는 질서와 스피드가 강요된다. 으! 산마저 말이다.
때문에 저자와 나처럼 평일에 산을 탔던 이들은 조금 행복한 거다. 그래서 그 유혹을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한다. 한적한 산길을 홀로 오르는 기분. 안 해본 이들은 짐작할 수 있을까. 길이 길이 아니고, 또 길이 그저 길임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
내가 “어디가 길인가요?”라고 물을 때마다 그들은 늘 “가면 길이죠”라고 대답했는데,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아니 북한산 길을 훤히 알고 있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산에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사람이 오르려다 보니 길이 생겼고, 가기 힘든 길도 장비를 쓰든 쓰지 않든 누군가가 가고 나니 길이 된 것이다. 그렇게 산 전체가 하나의 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길이라는 것을,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두려움에 떨면서도 익혔다. 그런데 그 길을 익혔더니 또 다른 길이 떡 하니 펼쳐졌고, 다시 다른 길을 또 익히고 보니 길은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든 길은 늘 있었고, 그 길을 찾기 위해 무슨 운명처럼 또 부지런히 산에 몸을 맡겨야 했다.
저자처럼 근사한 산행기를 쓸 자신은 죽어도 없지만, 책을 덮은 후 다시 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살고 있는 곳도 나의 북한산행을 부추긴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쉽게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마음이었다. 언제나 산은 거기에 있었지만,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해 온 것이다.
싸구려 등산화가 있다. 지팡이를 하나 샀다. 아내가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라며 고어텍스 등산모를 건넨다. 아직 제대로 된 등산복도 없다. 하지만,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내 고독과 상처와 아픔을 고스란히 알고 있는 산. 그 산에 걸어 들어가면 말이다.
만약 내가 꾸준한 산행으로 건강이 좋아지고, 담배마저 끊을 수 있게 된다면 저자에게 꼭 한 번 만나자고 하고 싶다. 시원한 막걸리에 김치 파전 한 번 쏜다고 말할 테다.
즐거운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