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다 된다 나는 된다 - 일과 인생이 술술 풀리는 자기암시법
니시다 후미오 지음, 하연수 옮김 / 흐름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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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산행기》라는 책을 시작으로 지난 해 백수 시절 사두었던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제 말하려는 책 역시 그 당시 사두었던 책이다. 인터넷 광고가 눈에 뜨여 주문했을 것이다. 하지만 입때까지 읽지 않고 고이 모셔두었다.




왜 그랬을까. 아니, 왜 이 책을 구입했을까. 대충 짐작은 하겠지만, 당시 내 상황이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무언가 해도 난 안 된다는 우울한 생각이 떠나질 않던 때였다. 나쁜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실제 행동도 좋은 방향보다는 그 반대가 많았다. 나이 먹고 또다시 찾아온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아마 정확히 6개월이었을 것이다. 공식적인 백수 생활을 한 것이. 그 사이 나름대로 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있었으며, 감동적인 일화도 수없이 발생했었다. 그냥 아무런 생각이나 혹은 대책 없이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고민을 많이 하는 것처럼 아내에게 보였을 뿐 기실 고민도 없었다. 정말 맘 편하게 그러나 대책 없이 보낸 시간들이었다.




그 대책 없음을 신중한 그리고 심각한 고민으로 바꾸어 준 것은 우습게도 이명박 정권이었다.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다고 떠들며 등장한 이 정권은 그러나, 전혀 준비되지 않은, 오직 복수와 그동안 손해 본 것들을 회수하겠다는 마음만 가진 고장 난 불도저였다.




그 첫 신호탄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었고,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고 다들 아시는 것처럼 촛불정국이 시작되었고 명박산성이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찾아온 바보의 죽음. 이는 나에게 더 이상 마음 편하게 빈둥거리지 못하게 만든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때, 그야말로 분노와 절망, 억울함과 비통함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지금 책을 읽은 후에 느끼게 된 감정과 혹은 결심이 과연 그 때에도 동일하게 찾아왔을까.




자신할 수 없다. 때문에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 당시 책을 읽었다면 그때 내 감정 상태였다면 바로 찢어 버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을 때는 일본판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물론 온전히 같다고 할 순 없지만, ‘네가 생각하는 대로 꿈은 이루어 진다’는 주제가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이자 전체를 꿰뚫고 있는 ‘운’이라는 것은 《꿈꾸는 다락방》과 차별성을 갖게 만들었다. 운, 행운.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자기 암시, 동기 부여. 그리고 확신에 찬 신념. 이것들은 모두 성공의 조건들이다. 그 성공이라는 것이 세속적인 것이든 아니든 아마 공통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일 것이다. 저자 니시다 후미오는 열심히 노력만 해서는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고 말한다. 먼저 ‘운’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운은 주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라 말한다.




‘운을 스스로 불러온다’,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누구나 자신이 운이 좋기를 바라지만, 모두에게 운이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운을 어떻게 불러들이는지도 잘 모르겠다. 여기에서 책은 강력하게 말한다. 감사하고 열정과 확신을 갖는다면 운은 반드시 자신에게 오게 되어있다고.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인정하는 이들을 살펴보면 사실, 그 사람의 실력도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기가 막힌 운이 작용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운 때문에 사람들은 그 사람의 성공을 조금은 깎아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운이란 것 역시 엄연히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결과라는 책의 말대로라면 이는 더더욱 성공한 이들을 빛나게 해주는 요소가 된다. 실력도 있고, 노력도 했는데 운까지 따라준 사람. 완벽한 성공의 모델이다.




자기계발서를 선천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책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행운을 속삭이며, 성공을 보장한다. 그리고 말한다. ‘넌 성공의 문 앞에 있다’고.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모든 것을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모든 가난한 이들이 자기 확신이 부족하고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열정적인 삶을 포기한 이들일까. 성공한 이들은 모두 강하게 스스로를 믿으며, 열정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온 이들일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이 나라는 너무나 공정한,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사뭇 다르지 않나. 대한민국, 그리고 저자의 조국인 일본 역시 이는 100%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 아닌가.




못난 찌질이 처럼 모든 자신의 불행을 세상 탓으로, 타인 탓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계발서라 해도 일방적인 단정은 극히 위험하지 않을까. 보다 광범위한 한계를 두고, 그 한계의 원인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 책 역시 어쩔 수 없이 《꿈꾸는 다락방》과 같은 아쉬움을 전해준다. 특히 가난이 일종의 질병이고 가난한 이들은 환자라는 대목은 아무리 비유라 하지만 살짝 짜증이 났음을 인정한다. 그렇게 말하면 정말 안 되는 것이다. 위험한 발언이고 주제 넘는 생각이다.




이런 아쉬움과 잘못된 부분들이 있음에도 책은 나름대로 역할과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다. 읽은 이에게 강한 동기 부여나 자기 암시를 유도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유효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온전히 독자 개개인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책이 나름대로 높은 판매고를 올린 것도 어느 정도 대중적 공감대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시중에 널려있는 흔해빠진 자기계발서는 아니라는 소리다.




그동안 자기계발서를 거의 읽지 않았던 나에게 책은 일정 부분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다. 물론 자기계발서라는 책의 목적을 빤히 알면서도 내용에 불만을 갖고, 이의를 제기하는 내 못된 버릇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결국 ‘나는 안 돼, 어차피 여기가 내 한계야.’라고 말하는 사람에겐 인생의 전환을 가져올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는 진리. 그 기회마저 차츰 사라진다는 사실. 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반면 나는 자신 있다. 나는 분명히 운이 좋을 것이라 믿고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겐 외모와 능력을 떠나 아우라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아우라로 속속 ‘운’이라는 것이 따라 들어올 지도 모른다.




1년에 몇 억 버는 법. 몇 년 안에 얼마를 벌 수 있는 법 따위의 책들은 여전히 내 관심사가 아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은 이 책과 같이 잃어버린 자신감을 일정 부분 회복시켜주는 책은 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단지 세속적인 성공 하나에만 매몰되지 않고, 나눔과 공생을 위한 성공이라면 말이다. 때문에 자기계발서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에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열정과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것. 고마운 일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지난 백수 시절 도서목록을 뒤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당시의 암울했던 기억들까지 뒤적거려선 안 될 것이다. 아직 결승점에 이르지 못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역시나 비관이 아닌 긍정과 열정이다.




다시 환하게 웃고 어깨를 펴고 내일 아침을 맞아야겠다. 그리고 생각하자.




“난 정말 억세게 운이 좋은 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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