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계 분쟁 - 국제 분쟁 전문가 김재명의 전선 리포트
김재명 지음 / 미지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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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쟁은 장엄한 서사시나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민초들의 눈물과 고통, 피를 남긴다. 전쟁은 무한 폭력이 합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특수한 공간이다. 문제는 그런 비극적 상황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죽음의 상인들, 어둠의 정치 세력들이 있다는 점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 하나만 따져도 누가 ‘더러운 전쟁’으로 피 묻은 석유를 챙기고 유가를 올리는가가 드러난다.

힘이 진리라고 믿는 어둠의 세력에게, 무엇보다 자국의 안보와 이익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전쟁의 유혹은 매우 강하다. ‘정의를 위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자유를 위해, 평화를 위해’ 등등의 교묘하고도 그럴듯한 논리로 전쟁을 부추기는 이들의 정체를 우리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 전쟁의 첫 희생자는 언제나 ‘진실’이기 때문이다.”

 

책은 지난 15년 동안 발칸 반도, 중동, 동남아시아, 서아프리카, 중남미 등 세계 15개 분쟁 현장을 취재·보도해온 국제 분쟁 전문가 김재명의 ‘전쟁과 평화론’이다. 처참한 죽음과 비통한 눈물이 멈추지 않는 세계 분쟁 지역을 취재하며, 저자는 진정한 지구촌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전쟁과 학살을 통해 이득을 얻는 ‘죽음의 세력’들의 정체를 먼저 알아야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임마누엘 칸트의 말처럼 “영구 평화는 무덤에서나 가능하다”면 평화를 기원하기보다 절망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소수자와 약자, 못 가진 자들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쪽을 택하겠다고 선언한다. 때문에 책은 그들이 탐욕스런 강자들과 벌이는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그의 지지의 표시이자 연대의 기록이다.

 

아울러 그는 세계 분쟁의 현장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고민한다. 세계 각지의 분쟁이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해결됐는지 그리고 무엇이 전쟁과 평화를 갈랐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 통일의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쟁의 본질을 알아야 평화를 꿈꿀 수 있다

 

▶ 전쟁과 평화를 다룬 책들이 예전보다 많이 나오고 있다. 현 정부가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전쟁을 함부로 이야기하는 모습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좋은 현상이다. 단지 막연하게 ‘전쟁은 나쁜 것’ 정도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전쟁으로 죽어가고 있는지는 알려 하지 않는다. 전쟁의 실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결국 전쟁을 반대할 수 있는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다. 최근 한반도의 분단을 전쟁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들린다. 그런 주장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전쟁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책의 주된 목적 역시 전쟁의 본질을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려는데 있는 것 같다.

 

“전쟁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는 대중적 욕구에 맞추려 했고, 지금 이 시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군사적 분쟁을 통해 과연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말하고 싶었다. 전쟁은 단순히 이해당사자 간의 물리적 충돌이 아니다. 거기에는 ‘강자들의 논리’가 폭력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민주주의 수출, 인권 등 듣기 좋은 명분으로 전쟁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 기자 시절 한반도 분단극복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국제 분쟁으로 그 폭을 넓힌 것으로 안다.

 

“세계 여러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여정은 곧 한반도 평화통일과 분단극복의 교훈을 얻기 위함이었다. 남의 싸움을 구경하듯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누가 전쟁을 일으키고, 누가 전쟁을 통해 고통을 당하는가. 누가 이득을 챙기는가. 민족 간의 내전은 왜 일어나는가. 어떻게 평화를 가져왔나 등 모든 것들이 한반도 문제를 푸는데 귀중한 자료들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내린 결론은 한반도 분단극복이 오히려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통역이 필요치 않다. 보스니아의 경우, 한 국가 안에 다양한 민족들이 존재하기에 언어도, 정서도 다르다.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이해할 때 중간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마주 얘기할 수 있다. 서로가 진정어린 얘기를 한다면 전쟁이 아닌 제3의 방법을 찾아내는데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지금까지 남북은 갈등해 왔는가. 결국 평화를 반대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그들의 존재에 경각심을 가지고, 그들의 대결적 목소리가 남북 정책에 반영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평화를 추구하는 이들이 정권을 잡고 정책을 펼치도록 표로 심판해야 한다.”

 

▶ 15년의 분쟁지역 취재를 통해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그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을 여섯 차례 다녀왔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식민지와 같은 처지다. 일제 강점기의 경험이 있는 한민족으로서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끔 동행했던 일본 기자들은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냉정하다고 해야 하나. 이스라엘군의 불도저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집들이 파괴되고, 인명이 살상되는 현장에 가면 감정적으로 매우 흥분하게 되는데,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개인적 차이도 있겠지만, 결국 자신들의 문제로 절실히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 책의 말미에 향후 세계 평화가 여전히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역사의 큰 틀로 보자면 분명 인류는 진보해왔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강대국은 교묘한 형태로 약소국을 지배하고 있다. 경제적 주권을 빼앗고, 정치적 주권은 허울뿐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을 통해 전쟁을 ‘물리적 수단을 동원한 정치적 관계의 연장’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이젠 ‘물리적 수단을 동원한 경제적 관계의 연장’이라 불러야 할 듯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드러났듯, 강대국들이 약소국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전쟁이 여전히 계속된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있지만, 여전히 세계는 끊임없이 전쟁 중이다.”

 

▶ 한반도 역시 주요한 분쟁 지역 중 하나다.

 

“이라크 현지를 취재하려면 취재대상이 수니파인지 시아파인지 구분을 잘해야 한다. 그래서 항상 먼저 물어본다. 그런데 한 이라크인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나는 내가 어디에 속해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이라크 사람이다. 지금은 외세가 들어와 정치가 혼란스럽고 시아파·수니파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상당수의 이라크인들이 시아·수니를 따지지 않고 미국 점령세력에 저항해 싸우고 있다. 후세인에게 억압을 받던 시아파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이라크 점령에 대해서는 이라크 민족주의란 감정으로 저항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 역시 ‘분단된 두 개의 약한 코리아’보다는 ‘하나의 통일된 강한 코리아’가 되어야 한다. 한반도 문제를 분석하는 단위에서 민족은 중요한 항수다. 언제나 민족을 중심에 두고 한반도 문제를 봐야 한다.

 

민족은 한반도 문제의 영원한 항수

 

▶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정부는 정작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MB정권은 남은 임기 기간이라도 대결적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란과 마찬가지로 북도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 경제적 성장을 추구하려 한다. 하지만 오히려 MB정권은 대결적 대북정책의 연장에서 미국의 이란 봉쇄에 동참해, 결국 이스라엘의 대중동 정책에 놀아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북이 왜 핵을 개발했는지, 왜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은 전쟁을 위해서라기보다 생존과 대화를 위해 핵을 개발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물론 핵 개발을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북의 의도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면.

 

“지구상에 전쟁으로 이득을 얻고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 군인, 군수업자·군산복합체 등이다. 이들의 수가 줄어야 한다. 군인은 전쟁을 막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한반도 역시 군대의 수를 줄이고, 막대한 국방비를 민생 복지에 돌릴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 미국의 군사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 중 하나다. 우리의 평화를 위협해가며, 저 멀리 미국의 군수업자들의 배를 불려주는 일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전쟁과 평화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갖도록 도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지식인을 자처하는 이들조차 전쟁을 보는 시각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을 느낀다. 전쟁을 바로 보고, 평화를 생각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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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모든 것의 시작 - 우리 시대에 인문교양은 왜 필요한가?
서경식.노마 필드.가토 슈이치 지음, 이목 옮김 / 노마드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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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고 깊게 보며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존경해마지 않는 재일조선인 학자 서경식 선생과 ‘수전 손택’여사 이후 미국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노마 필드 교수 그리고 ‘일본의 루쉰’카토 슈이치 교수가 말하는 교양론입니다.

 

서 선생이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도쿄게이자이대학에서 진행하는 ‘21세기 교양프로그램’준비과정에서 노마 필드, 카토 슈이치 박사를 강사로 초빙해 강연한 내용과 서 선생이 카토 슈이치 선생과 대담을 나눈 내용 등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 시대 과연 교양은 존재하고 있을까요? 아직 존재한다면 이 시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요. 인간의 탐욕과 잔악성으로 그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지성, 이성, 인간성, 도덕성 등이 모두 위태로운 지금, 과연 인간에게 희망을 걸 수 있을까요.

 

책은 인문교양의 재생 혹은 회복을 통해 다시금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단지 교양의 재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교양을 고민합니다. 교양과 인문이 경시되고 상품화 되는 이 시대에 어찌 보면 무모하고, 또한 허망한 노력일 수도 있습니다.

 

서경식 선생의 글을 가능한 빼먹지 않고 읽으려 노력합니다. 어떤 이들은 선생의 글이 너무 어둡다거나, 비관적이라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수, 혹은 억압받는 타자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 동일화는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임이 분명합니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 믿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인문교양 과목이 점차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현실. 대학에서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전문적으로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리낌 없이 쏟아지는 지금, 과연 우리 개개인은 어떠한 방법으로 교양을 축적하고 이를 통해 평화와 공존, 타자와의 동일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서 선생은 “인간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더불어 그 실용적인 목적으로 살아가는 경우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의 알맹이라 할 인격이 그런 실용적 목적으로만 채워지는 것 역시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왜 공부하려는가에 대한 철학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말이며, 그 답을 얻기 위해서는 교양에 대한 부단한 자기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소리일 것입니다.

 

노마 필드 교수의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2주기를 지난 지금, 더욱 절실하게 와 닿았습니다.

“민주주의란 한번 확보하고 나면 영원히 지속되는 존재가 아니라 영구혁명을 필요로 하는 제도요 사상이며,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상상력을 해방시켜 인문교양의 재생을 도모해야만 한다.”

 

노마 필드 교수는 “불평등의 수많은 폐해들 가운데 하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이다. 내 자신과 동떨어져 있으면 타인의 고통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과 동일시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 그 과정에 교양이 필요하고 인문학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카토 슈이치 교수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걸어온 길을 평가하며 일본의 만장일치 집단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민주주의의 최대 위기는 다수당의 횡포라고 말했던 존 스튜어트 밀의 지적과 같은 맥락입니다. 카토 교수는 또한 바람직한 교양이 다양한 영역, 다양한 문화 사이를 오갈 때의 자유로움, 일종의 유연함 같은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노마 교수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입장에 서보는 것이 사회와 사회, 국가와 국가, 개인에게도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합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 과정에 교양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매일 같이 좌절하게 만드는 세상입니다. 정의와 상식 따위는 “개한테나 줘버려!”라고 말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국가와 정부의 모습에서, 희망이란 단어는 이미 화석이 된 것이 아닌지, 절망하게 만드는 지금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맥없이 무너진다거나, 혹은 이러한 부조리에 동화되어, 혹은 더욱 광포하게 세상에 물들어버린다면, 그것은 결국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그 의지를 지켜내는 데 인문학과 교양은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렇게 희망은 다시 살려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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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 스티브 잡스 vs 빌 게이츠 - 세상을 바꾸는 두 CEO의 도전과 성공
다케우치 가즈마사 지음, 김정환 옮김 / 예인(플루토북)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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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관계로 읽게 된 책입니다. 사실 평상시에는 이런 종류의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입니다. 주로 자서전이나 주위 사람들이 쓴 평전들을 즐겨 읽죠. 제가 보기에 저자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두 사람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내 덕분에 생각지 않게 아이패드를 하나 얻었습니다. 지금은 ‘아이패드2’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죠. 아이패드의 등장은 그야말로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IT분야는 물론 거의 모든 산업의 생태계를 바꾸어 놓았으니까요.

 

스티브 잡스는 IT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마니아들에게 거의 신적인 존재입니다. 애플은 그가 만든 또 하나의 세계이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잡스를 추종하며 열광합니다. 그가 2000년대 이후 선보인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은 “기존에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겠다”는 그의 신조와 철학이 실현된 예입니다.

 

빌 게이츠 역시 전설적인 인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제국을 세워, 절대 군주로 군림했던 그는 지구상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를 장악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13년 동안 세계 억만장자 순위 1위를 고수했던 어마어마한 갑부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에 필적할 정도의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부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사람이죠.

 

저자는 이 두 사람의 능력과 자질을 여러 분야로 나누어 비교 평가하고 있습니다. 왜 이 두 사람이 성공할 수 있었는지,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비교적 세세히 구분합니다. CEO로서의 능력, 예견 능력, 매니지먼트, 성장 환경, 인재 확보 능력, 신제품 개발 능력, 협상 능력, 라이벌 대응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마케팅 능력, 업무에 몰두하는 힘까지 두 사람의 우위를 분야별로 가립니다.

 

사실 두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 이루기 어려운 커다란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입니다. 세계 IT업계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때문에 이 두 거물에 대한 호기심이 유명 연예인 못지않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대단하다는 것과 존경할 만하다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입에 담기조차 역겨운 바람으로 사람들은 이제 거리낌 없이 물신을 숭배하고, 또한 돈 많은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을 ‘훌륭한 사람들’과 착각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입니다.

 

한낱 미국의 사기업이 평가한 국가신용도에 따라 여러 나라들이 흔들리고, 그 순위를 올려보겠다고 호들갑을 떱니다. 세상에 감히 어떤 주체가 다른 국가의 신용도를 맘대로 재단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 나라에 투자하면 본전을 뽑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국가신용도라 할 수 있을까요? 정신 나간 짓거리에 모두가 혼이 빠져 버렸습니다. 그따위로 맘대로 다른 나라를 평가하는 미국의 기업들이 왜 자국에 대한 평가는 그리도 서툴기만 할까요.

 

이런 기형적인 생각들이 타인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삐뚤어진 잣대를 들이대게 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또한 이 사회가 나아지기 위해 노력해 왔는가보다는 단지 얼마나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많은 부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존경의 기준이 정해집니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의 CEO들이 마땅히 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존경을 받고 그 사람들의 리더십을 운운하는 책들이 쏟아지는 것도 그러한 맥락의 하나죠. 개인적으로는 그딴 쓰레기같은 글을 쓰는 작자와 그딴 책을 펴내기 위해 아까운 종이를 낭비하는 출판사들이 역겨울 따름입니다. 참 먹고 살기 힘들죠?

 

책에서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단점들이 함께 소개됩니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끝까지 내 아이가 아니라고 부정한 잡스와 약속 따위는 상관없이 오로지 성공하기만 된다는 오만함에 가득 차 있던 빌 게이츠. 부하 직원들에게 거침없이 폭언을 해대며 거의 노동 착취에 가까운 업무 부담을 주면서도, 단 한 번도 미안해하지 않는 두 CEO. 물론 게이츠가 자선사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으며 미국 정부도 하지 않는 좋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은 존경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또한 잡스가 IT의 혁신을 가져와 많은 이들을 즐겁고 편리하게 만들어 준 점도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오류에 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들은 어찌되었든 기업가입니다.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이들인 것입니다. 이윤 창출이 그들에겐 신조이며 신앙이며 철학인 것입니다.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과연 훌륭한 사람인가는 온전히 독자들의 판단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성장 과정, 두 걸출한 CEO의 다양한 능력을 알게 된 점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만든 세상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다 주었는지도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짝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혹시나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정말 훌륭한 ‘위대한’ 위인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엔 알려지지 않아도, 묵묵히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정말 멋진 훌륭한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주류의 생각, 또한 그걸 어설프게 흉내 내어 이 시대의 선비론 운운하며, 1%, 2% 엘리트들이 사회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이들에겐 이해되지 않겠지만, 정말 많은 평범한 이들이 있기에 사회는, 세상은 움직이고 발전해 나가고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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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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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중 《도련님》과 《마음》을 읽었습니다. 《그 후》는 《산시로》로 시작해 《문》으로 끝나는 ‘나쓰메 전기 3부작’ 중 가운데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상당히 지루하거나, 혹은 쓸데없이 장황스럽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세세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는 것이지요. 뭐랄까, 아무튼 그의 작품이 현대적 감각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지금까지 읽는 세 편의 작품 중 지루하거나, 장황스럽다고 느낀 것은 단 한 작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감탄과 감탄의 연속이었다고 하면 너무 뻔한 이야기일까요? 인물의 심리 상태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탁월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수박 겉핥기식의 근대화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근대화야말로 ‘근대 일본의 비극’이라는 것이지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걸어온 길을 보면 그의 판단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잘못된 일본의 근대화가 가져온 파장은 비단 일본 한 국가로 끝나지 않았죠. 수많은 동아시아 구성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영국 유학시절 검은 연기를 마구 뿜어내는 공장 굴뚝의 연기를 바라보며 나쓰메는 ‘근대’의 모순 그리고 어둠을 느끼게 됩니다. 그 느낌이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에서 반복되는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일 수 있겠습니다. 근대적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이는 단순한 과정이 근대화가 아니라 그것이 가져다 줄 정신적 변화에 주목하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경지. 나쓰메는 바로 그것을 원한 것은 아닐까요.

 

나쓰메의 소설은 또한 인간의 원죄의식을 집요하게 탐구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한 금욕주의가 엿보입니다. 젊은 시절 친구의 여인을 가로챘다는 죄책감에 결국 유서를 쓰고 자살하고 마는 《마음》은 그 대표적 경우입니다. 《그 후》 역시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친구의 부인을 사랑하는 주인공의 심적 괴로움과 고통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결국 친구와 절교를 각오하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순간, 파국은 예고된 것일지 모릅니다.

 

저자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쓰메의 작품은, 특히 《마음》과 같은 것은 일본 근대 문학사의 최대 정전으로 평가되며 각급 교육 현장에서 읽히고 있다고 하니, 일본의 국가주의에 한 몫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금욕적 정신주의가 서양의 퇴폐적 문화와 다른 일본의 문화라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이죠. 과연 나쓰메가 그것을 바랐을까 궁금하긴 합니다.

 

일본이 나쓰메의 작품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용하고 있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작품들이 저평가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자의 진정한 의도를 찾아가는 여정이 더욱 즐거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쓰메의 작품들은 하나하나 모두 충분히 다양한 사고와 평가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게 바로 그의 작품의 매력일 것입니다.

 

아직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지 못했습니다. 이제 3권의 작품을 읽은 입장에서 그의 작품세계나 주제, 의식을 평가할 깜냥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 ‘지루하다’는 딱지를 붙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문학 작품을 좋아하고 혹은 직접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나쓰메는 충분히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의 책들을 많은 기대를 가지고 읽어나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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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통일 이야기 - <민족21> 안영민 기자의 유쾌한 희망 만들기
안영민 지음 / 자리(내일을 여는 책)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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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매일 매일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역시 우둔함은 떨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혹은 먼저 세상을 살았던 이들의 지혜를 통해 조금씩 배워나갈 뿐입니다.

 

그런 제가 유독 흥분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할 때입니다. 그럴 땐 저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구치곤 합니다. 또한 울분과 분노와 그럼에도 불구한 열정이 타오릅니다.

 

저자인 안영민 기자는 제가 일하고 있는 《민족21》의 편집주간이십니다. 그리고 제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분 중 한 분입니다. 그동안 월간 《말》지와 《민족21》을 통틀어 14년이란 시간 동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써 오시고, 또한 많은 글들을 써온 분입니다.

 

그동안 방북 취재만 20여 차례. MB정권의 무지막지하고도 정말 어리석은 대북정책 이전까지 남북을 오가며, 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우리들에게 전달해 온 안 기자는 14년의 기록을 이렇게 책으로 우리들에게 내놓았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통일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 먹고 사는 걱정이 우선이고, 또한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통일은 결국 “거지같은”북한을 우리가 먹여 살려야 할지도 모르는 “결코”반기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통일은 반갑지 않은 손님인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정말 통일은 우리에게 비극일까요? 통일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모두 엄청난 세금 폭탄으로 신음하게 될까요? 우리는 막대한 비용의 통일 비용을 감당치 못해 후진국으로 몰락하고 말까요?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1년 7개월 정도 남은, 현재의 정부라는 집단도 통일 비용을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계산해, 국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합니다. 그래놓고, 또 통일은 해야 된다고 떠들죠.

 

이들의 주장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전쟁을 통해, 갈등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기생충들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죠. 하지만 아쉬운 점은 우리의 역사는 너무도 오랫동안 그들에게 기득권을 빼앗겨 왔다는 점입니다.

 

최근 북에 대한 근거 없는, 불확실한 정보를 통한 악의적 기사들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일전에 만난 친구가 저에게 묻더군요? “정말, 북한 여군들은 승진을 위해 성상납을 하는 거야?”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술잔을 입으로 가졌죠. 슬펐습니다. 그리고 분노했습니다. 통일을 하자고 떠들면서, 그 대상인 북한에 대해 아무런 근거 없는 이야기들로 다시 악마화하려는 집단들에 구역질도 아까웠습니다.

 

저자의 책에는 우리가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통일이 왜 행복한 일인지, 절실히 담겨 있습니다. 굳이 통일을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이 현실이 슬프지만, 현실은 엄혹합니다. 때문에 설명이 필요하다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진실성이 담겨 있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대답이 바로 안 기자의 이야기입니다. 왜 우리가 다시 통일을 꿈꾸어야 하는지, 왜 분단세력을 몰아내고 통일을 위해 열정을 불태워야 하는지 말이죠. 통일은 단지 회복이 아닙니다. 더 큰 희망과 더 넓은 세상을 위한 시작일 따름입니다.

 

책은 남북을 나누지 않고 모든 “우리”를 향한 저자의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북의 사람들 역시 살아 숨쉬고, 하나됨을 갈망하는 우리임을 말해줍니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고, 몇 번이나 목울대를 떨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통일을 노래하는 책이나 글보다는 북에 대한 저주와 갈등의 부추김을 위한 책과 글들이 난무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존중 없이 일방적인 힘의 굴복을 원하는 우리의 모습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힘으로 굴복시키고, 빈 라덴 사살을 역사적 쾌거라 떠드는 저 야만적인 미국과 하나도 다를 바 없습니다.

 

통일은 우리에게 더 큰 꿈을 꾸도록 해줄 수 있는 희망입니다. 이 참혹한 세상에 다시 따뜻함과 연대를 가져올 수 있는 희망입니다. 갈등과 반목과 증오를 화합과 나눔과 돌봄으로 바꿀 수 있는 희망입니다.

 

그 희망의 시작을 이 책과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통일은 행복입니다. 그 누구의 행복도 아닌 우리들의 행복입니다.

 

“통일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나눔과 연대의 정신이다. 기득권층에게는 통일이 가진 것을 빼앗기는 일이라고 여겨지겠지만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통일은 가진 것을 나누면서 더 큰 것을 얻는 과정이 될 것이다. 농민들에게 통일은 민족농업을 지키며 농업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길이다. 노동자들에게 통일은 새로운 경제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늘이고 분배의 파이를 키우는 길이다.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통일은 미국 중심의 20세기가 아닌 동아시아 중심의 새로운 21세기의 비전을 품는 길이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 만약 이 책을 읽고도 “이거 너무 빨갱이 같은 생각아니야?”라고 생각이 든다면, 그대는 정녕 어찌할 도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안타깝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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