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의 세계 분쟁 - 국제 분쟁 전문가 김재명의 전선 리포트
김재명 지음 / 미지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전쟁은 장엄한 서사시나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민초들의 눈물과 고통, 피를 남긴다. 전쟁은 무한 폭력이 합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특수한 공간이다. 문제는 그런 비극적 상황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죽음의 상인들, 어둠의 정치 세력들이 있다는 점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 하나만 따져도 누가 ‘더러운 전쟁’으로 피 묻은 석유를 챙기고 유가를 올리는가가 드러난다.
힘이 진리라고 믿는 어둠의 세력에게, 무엇보다 자국의 안보와 이익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전쟁의 유혹은 매우 강하다. ‘정의를 위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자유를 위해, 평화를 위해’ 등등의 교묘하고도 그럴듯한 논리로 전쟁을 부추기는 이들의 정체를 우리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 전쟁의 첫 희생자는 언제나 ‘진실’이기 때문이다.”
책은 지난 15년 동안 발칸 반도, 중동, 동남아시아, 서아프리카, 중남미 등 세계 15개 분쟁 현장을 취재·보도해온 국제 분쟁 전문가 김재명의 ‘전쟁과 평화론’이다. 처참한 죽음과 비통한 눈물이 멈추지 않는 세계 분쟁 지역을 취재하며, 저자는 진정한 지구촌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전쟁과 학살을 통해 이득을 얻는 ‘죽음의 세력’들의 정체를 먼저 알아야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임마누엘 칸트의 말처럼 “영구 평화는 무덤에서나 가능하다”면 평화를 기원하기보다 절망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소수자와 약자, 못 가진 자들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쪽을 택하겠다고 선언한다. 때문에 책은 그들이 탐욕스런 강자들과 벌이는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그의 지지의 표시이자 연대의 기록이다.
아울러 그는 세계 분쟁의 현장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고민한다. 세계 각지의 분쟁이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해결됐는지 그리고 무엇이 전쟁과 평화를 갈랐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 통일의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쟁의 본질을 알아야 평화를 꿈꿀 수 있다
▶ 전쟁과 평화를 다룬 책들이 예전보다 많이 나오고 있다. 현 정부가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전쟁을 함부로 이야기하는 모습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좋은 현상이다. 단지 막연하게 ‘전쟁은 나쁜 것’ 정도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전쟁으로 죽어가고 있는지는 알려 하지 않는다. 전쟁의 실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결국 전쟁을 반대할 수 있는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다. 최근 한반도의 분단을 전쟁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들린다. 그런 주장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전쟁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책의 주된 목적 역시 전쟁의 본질을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려는데 있는 것 같다.
“전쟁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는 대중적 욕구에 맞추려 했고, 지금 이 시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군사적 분쟁을 통해 과연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말하고 싶었다. 전쟁은 단순히 이해당사자 간의 물리적 충돌이 아니다. 거기에는 ‘강자들의 논리’가 폭력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민주주의 수출, 인권 등 듣기 좋은 명분으로 전쟁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 기자 시절 한반도 분단극복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국제 분쟁으로 그 폭을 넓힌 것으로 안다.
“세계 여러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여정은 곧 한반도 평화통일과 분단극복의 교훈을 얻기 위함이었다. 남의 싸움을 구경하듯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누가 전쟁을 일으키고, 누가 전쟁을 통해 고통을 당하는가. 누가 이득을 챙기는가. 민족 간의 내전은 왜 일어나는가. 어떻게 평화를 가져왔나 등 모든 것들이 한반도 문제를 푸는데 귀중한 자료들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내린 결론은 한반도 분단극복이 오히려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통역이 필요치 않다. 보스니아의 경우, 한 국가 안에 다양한 민족들이 존재하기에 언어도, 정서도 다르다.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이해할 때 중간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마주 얘기할 수 있다. 서로가 진정어린 얘기를 한다면 전쟁이 아닌 제3의 방법을 찾아내는데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지금까지 남북은 갈등해 왔는가. 결국 평화를 반대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그들의 존재에 경각심을 가지고, 그들의 대결적 목소리가 남북 정책에 반영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평화를 추구하는 이들이 정권을 잡고 정책을 펼치도록 표로 심판해야 한다.”
▶ 15년의 분쟁지역 취재를 통해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그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을 여섯 차례 다녀왔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식민지와 같은 처지다. 일제 강점기의 경험이 있는 한민족으로서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끔 동행했던 일본 기자들은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냉정하다고 해야 하나. 이스라엘군의 불도저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집들이 파괴되고, 인명이 살상되는 현장에 가면 감정적으로 매우 흥분하게 되는데,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개인적 차이도 있겠지만, 결국 자신들의 문제로 절실히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 책의 말미에 향후 세계 평화가 여전히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역사의 큰 틀로 보자면 분명 인류는 진보해왔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강대국은 교묘한 형태로 약소국을 지배하고 있다. 경제적 주권을 빼앗고, 정치적 주권은 허울뿐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을 통해 전쟁을 ‘물리적 수단을 동원한 정치적 관계의 연장’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이젠 ‘물리적 수단을 동원한 경제적 관계의 연장’이라 불러야 할 듯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드러났듯, 강대국들이 약소국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전쟁이 여전히 계속된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있지만, 여전히 세계는 끊임없이 전쟁 중이다.”
▶ 한반도 역시 주요한 분쟁 지역 중 하나다.
“이라크 현지를 취재하려면 취재대상이 수니파인지 시아파인지 구분을 잘해야 한다. 그래서 항상 먼저 물어본다. 그런데 한 이라크인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나는 내가 어디에 속해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이라크 사람이다. 지금은 외세가 들어와 정치가 혼란스럽고 시아파·수니파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상당수의 이라크인들이 시아·수니를 따지지 않고 미국 점령세력에 저항해 싸우고 있다. 후세인에게 억압을 받던 시아파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이라크 점령에 대해서는 이라크 민족주의란 감정으로 저항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 역시 ‘분단된 두 개의 약한 코리아’보다는 ‘하나의 통일된 강한 코리아’가 되어야 한다. 한반도 문제를 분석하는 단위에서 민족은 중요한 항수다. 언제나 민족을 중심에 두고 한반도 문제를 봐야 한다.
민족은 한반도 문제의 영원한 항수
▶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정부는 정작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MB정권은 남은 임기 기간이라도 대결적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란과 마찬가지로 북도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 경제적 성장을 추구하려 한다. 하지만 오히려 MB정권은 대결적 대북정책의 연장에서 미국의 이란 봉쇄에 동참해, 결국 이스라엘의 대중동 정책에 놀아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북이 왜 핵을 개발했는지, 왜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은 전쟁을 위해서라기보다 생존과 대화를 위해 핵을 개발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물론 핵 개발을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북의 의도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면.
“지구상에 전쟁으로 이득을 얻고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 군인, 군수업자·군산복합체 등이다. 이들의 수가 줄어야 한다. 군인은 전쟁을 막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한반도 역시 군대의 수를 줄이고, 막대한 국방비를 민생 복지에 돌릴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 미국의 군사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 중 하나다. 우리의 평화를 위협해가며, 저 멀리 미국의 군수업자들의 배를 불려주는 일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전쟁과 평화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갖도록 도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지식인을 자처하는 이들조차 전쟁을 보는 시각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을 느낀다. 전쟁을 바로 보고, 평화를 생각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