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모든 것의 시작 - 우리 시대에 인문교양은 왜 필요한가?
서경식.노마 필드.가토 슈이치 지음, 이목 옮김 / 노마드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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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을 넓고 깊게 보며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존경해마지 않는 재일조선인 학자 서경식 선생과 ‘수전 손택’여사 이후 미국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노마 필드 교수 그리고 ‘일본의 루쉰’카토 슈이치 교수가 말하는 교양론입니다.

 

서 선생이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도쿄게이자이대학에서 진행하는 ‘21세기 교양프로그램’준비과정에서 노마 필드, 카토 슈이치 박사를 강사로 초빙해 강연한 내용과 서 선생이 카토 슈이치 선생과 대담을 나눈 내용 등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 시대 과연 교양은 존재하고 있을까요? 아직 존재한다면 이 시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요. 인간의 탐욕과 잔악성으로 그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지성, 이성, 인간성, 도덕성 등이 모두 위태로운 지금, 과연 인간에게 희망을 걸 수 있을까요.

 

책은 인문교양의 재생 혹은 회복을 통해 다시금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단지 교양의 재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교양을 고민합니다. 교양과 인문이 경시되고 상품화 되는 이 시대에 어찌 보면 무모하고, 또한 허망한 노력일 수도 있습니다.

 

서경식 선생의 글을 가능한 빼먹지 않고 읽으려 노력합니다. 어떤 이들은 선생의 글이 너무 어둡다거나, 비관적이라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수, 혹은 억압받는 타자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 동일화는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임이 분명합니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 믿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인문교양 과목이 점차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현실. 대학에서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전문적으로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리낌 없이 쏟아지는 지금, 과연 우리 개개인은 어떠한 방법으로 교양을 축적하고 이를 통해 평화와 공존, 타자와의 동일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서 선생은 “인간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더불어 그 실용적인 목적으로 살아가는 경우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의 알맹이라 할 인격이 그런 실용적 목적으로만 채워지는 것 역시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왜 공부하려는가에 대한 철학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말이며, 그 답을 얻기 위해서는 교양에 대한 부단한 자기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소리일 것입니다.

 

노마 필드 교수의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2주기를 지난 지금, 더욱 절실하게 와 닿았습니다.

“민주주의란 한번 확보하고 나면 영원히 지속되는 존재가 아니라 영구혁명을 필요로 하는 제도요 사상이며,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상상력을 해방시켜 인문교양의 재생을 도모해야만 한다.”

 

노마 필드 교수는 “불평등의 수많은 폐해들 가운데 하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이다. 내 자신과 동떨어져 있으면 타인의 고통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과 동일시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 그 과정에 교양이 필요하고 인문학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카토 슈이치 교수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걸어온 길을 평가하며 일본의 만장일치 집단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민주주의의 최대 위기는 다수당의 횡포라고 말했던 존 스튜어트 밀의 지적과 같은 맥락입니다. 카토 교수는 또한 바람직한 교양이 다양한 영역, 다양한 문화 사이를 오갈 때의 자유로움, 일종의 유연함 같은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노마 교수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입장에 서보는 것이 사회와 사회, 국가와 국가, 개인에게도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합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 과정에 교양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매일 같이 좌절하게 만드는 세상입니다. 정의와 상식 따위는 “개한테나 줘버려!”라고 말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국가와 정부의 모습에서, 희망이란 단어는 이미 화석이 된 것이 아닌지, 절망하게 만드는 지금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맥없이 무너진다거나, 혹은 이러한 부조리에 동화되어, 혹은 더욱 광포하게 세상에 물들어버린다면, 그것은 결국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그 의지를 지켜내는 데 인문학과 교양은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렇게 희망은 다시 살려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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