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 - 의사 오인동의 북한 방문기
오인동 지음 / 창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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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통일운동가 오인동 박사. 그는 인공고관절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정형외과 조교수와 MIT 생체공학 강사를 역임했고, 인공고관절과 관련한 미국 발명특허를 무려 11종이나 가지고 있는 최고 전문가이다.

 

1970년 선진 의학을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25년 간 정형외과의사로서 인공관절기 고안 연구와 수술법 개발에 몰두해 그 분야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분단된 조국에 눈을 돌릴 겨를은 솔직히 없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북과 특별한 인연을 맺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거창한 이념도 사상도 아닌, ‘같은 동포’라는 마음 하나 때문이었다. 같은 피를 나눈 동포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도움을 주고 싶다는 지극히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오 박사를 두 번이나 뵐 수 있는 영광이 있었다. 지난 해 말 이 책의 출판기념회를 위해 서울을 찾은 그를 처음 만났고, 최근 한겨레통일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 ‘한겨레통일문화상’을 받게 되어 서울을 찾은 그를 다시 만났다. 칠순이 넘은 연세에도 언제나 활기 넘치시는 오 박사는 한참 어린 나에게도 겸손함을 잃지 않으셨다. 진심으로 존경 받을 만한 분이란 생각을 뵐 때마다 할 수밖에 없었다.

 

1992년 재미한인의사회 방문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처음 찾은 오 박사는 난생 처음 밟은 북녘 땅에 큰 설렘과 함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그동안 알고 있던 북과 너무도 다른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아, 여기도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구나,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는 우리 땅이구나.’

 

이런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충격으로 받아들일 만큼 남쪽에서의 세뇌교육은 강력했다. 머리에 뿔 달린 빨간 괴물들이 살줄만 알았던 북녘 땅.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지극히 순박했고, 때 묻지 않은 예전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 후 다시 민족사와 조국의 근대사,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공부하게 된 그는 자신이 지금껏 알고 있던 사실들이 얼마나 파편적이고 때로 왜곡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에 살고 있는 동포라는, 어쩌면 유리할 수도 있는 입장을 충분히 살려 조국의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지극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미국 동포사회에서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이후 오 박사는 ‘Korea-2000’이라는 학술단체를 만들어 1998년 한반도 양쪽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총비서에게 각각 통일정책건의서를 전달하게 된다. 물론 두 사람을 직접 만나 전달할 순 없었지만, 오 박사는 동포들의 진심어린 고언을 전달하기 위해 직접 남북을 오가며 열심히 노력했다.

 

이런 그의 노력 때문이었을까. 2000년 드디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고, 6·15공동선언이 발표된다. 마침내 통일을 향한 한반도 형제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오 박사는 멀리 이국에서나마 뜨거운 눈물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의 10년 세월동안 소중히 지켜온 남북의 화해와 협력 무드는 무지막지한 이명박 정부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다시 북녘의 동포들은 머리에 뿔 달린 괴물로 각색되고 꾸며지고 있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었다. 오 박사는 다시 평양을 찾았다. 이번엔 재미한인의사회 일원도 ‘Korea-2000’의 일원도 아닌 ‘동포 의사’로서 찾아갔다. 그리고 북녘의 의사들과 함께 인공고관절 수술을 하며, 선진 의학을 전수해주기 시작했다.

 

고가의 인공관절기를 최대한 기증받아 여행 가방 가득 채우고 떠나는 그의 평양행, 하지만 돌아올 때 그의 가방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북녘 동포들에 대한 사랑과 신뢰 그리고 뜨거운 우정을 대신 담고 돌아왔다.

 

이렇게 2009년부터 평양을 방문해 인공고관절 수술을 가르쳐 온 오 박사는 자신의 수술가방을 평양에 두고 돌아온다. ‘곧 다시 만나자’는, ‘꼭 다시 와 달라’는 북녘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다.

 

사실 아무리 숨기고 왜곡하고 거짓말로 꾸미려 한다 해도, 진실은 숨길 수 없다. 우리가 북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사실들이 과연 사실인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지만 단언컨대 우리가 알고 있는 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며 오 박사가 절감한 것은 바로 이런 잘못된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역겨울 정도로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남쪽 고위 인사들의 한심함. 그는 구역질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하고, 동시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주성과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북녘 동포들을 떠올렸다.

 

처음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오 박사에게 힘들고 어려운 모습을 감추었던 그들. 하지만 몇 번의 만남이 이어지자 그들 역시 마음을 열게 된다. 처음부터 그들이 감추고 싶은 부분만을 드러내려 하는, 그래서 상처를 주고 자존심을 짓밟으려는 이들이 바로 현 정권이었다. 비핵·개방·3000은 말 그대로 북이 발가벗고 항복하면 3000불 주겠다는 소리였다.

 

최근 정부의 정상회담 비밀 접촉 과정을 봐도 이러한 천박한 대북인식은 그대로 드러난다. 국민들에겐 정상회담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뒤에선 몰래 돈으로 정상회담을 사려 했다. 전 정권들을 그렇게 매도하더니, 자신들이 하는 짓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생각이다. 그게 한나라당이고, 그게 이명박 정권이고, 그게 이 시대 한반도를 잡고 있는 보수 세력들의 수준이다. 천박하고 반민족적이고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한심한 먼지들 말이다.

 

이런 권력, 사람들이 남북관계를 파탄 내는 과정에도 오인동 박사와 같은 이들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북녘 사람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남과 북의 오해를 풀려 노력했고, 서로가 더욱 가까워지도록 힘썼다.

 

사람은 딱 아는 만큼만 생각하게 된다. 물론 기형적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억지로 생각을 주입받으며 살면서도, 그것이 마치 자기의 생각인양 착각하고 산다. 더럽고 짜증나는 정치 이야기는 관심도 없다며 손사래 치지만, 정작 대선이나 총선이 오면 알아서 보수를 찍는 사람들. 투표로 나라를 망치는 이들이다.

 

오 박사의 삶을 보면 존경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역사를 깨우치고, 민족의 미래를 고민하고, 동포들의 아픔에 눈감지 않았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헤어진 동포들이 다시 만나야 한다는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를 오 박사는 단 한 시도 잊지 않았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이 도둑처럼 올 것이라 말했다. 좋은 말을 이렇게 나쁜 뜻으로 인용해도 되는가 싶다. 분노가 솟구친다. 그가 말하는 도둑처럼 오는 통일은 아마도 북의 붕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가리키는 것일 테다. 그럼 과연 현 정부는 그처럼 떠드는 흡수통일에 자신이 있나? 또 다시 죽어라 서민들에게 세금만 걷어내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오인동 박사의 평양 방문기는 한반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방북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역사와 북의 현재,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까지 조심스레 담고 있기 때문이다.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필요한 사람들은 한 권씩 사주고 싶을 정도다.

 

오 박사는 다시 평양으로 떠날 것이다. 북녘 의사들에게 전달할 인공관절기를 구하는 대로 다시 떠날 것이다. 항상 건강하셔서 오래 오래 북녘 의사들과의 우정을 나누시길 바란다.

 

“남북관계가 극도로 나빠진 현 상태로는 정부가 교류·협력 사업이라도 다시 하려면 훨씬 크게 ‘더 퍼주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미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에서 그렇게 제안했다는 얘기도 들리더군요. 그러니 이대로 나가다가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와 더불어 대북압박정책 3년여에 ‘중국에 잃어버린 북 5년’이 될 처지입니다. ‘화해협력 7년’으로 북과 동행하게 되었는데, ‘강압대결 3년여’에 한 푼 못 건지고 다 잃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G-20, 핵안보정상회의 등 ‘허장성세 행사 5년은 북 잃은 5년’이 될까 두렵습니다. ‘한미찰떡공조’와 ‘한중 갈등고조’를 잘 조율해야 할 일이며, 관계 단절로 ‘한반도의 섬 아닌 섬’ 남쪽의 대륙 진출 활로도 찾아야 합니다. ‘천안함 폭침 맞고 스텔스 무기 사고’ ‘연평도 쑥밭 되어 미사일 방어체계’하고, ‘국방개혁 307’해서 국방비 늘인다고 합니다. 65만 국군에 300억 달러 쓰고도 110만 인민군에 50억 달러 쓰는 북을 제어 못한다는데, 500억 달러를 쓰면 할 수 있을까요? 핵과 미사일의 비대칭 군사력에 대항해 ‘남핵 해야 한다’는 소리도 들리는데, 혈맹 미국이 들어 주려는지요? 가장 확실한 안보는 군비확충이 아니고 평화체제 구축입니다.”

 

아,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이번 6·15공동선언 11주년에 한 보수단체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인 웃지 못 할 퍼포먼스가 떠오른다. 분명 어디에서 ‘구입했거나 얻었을 미제 군복’을 입은 채, ‘6·15공동선언 폐기’를 주장하며, 그들은 선언문을 인쇄한 현수막을 찢고 불태웠다. 그들은 오인동 박사와 같은 연배로 보였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증오이든, 사랑이든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다 같을 것이다. 모두 존중하자. 모두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하나 더, 오인동 박사의 마지막 당부 역시 함께 가슴에 담자. 일단 그거면 됐다.

 

“남과 북, 모두 병든 다리를 갖고 있습니다. 다리 치료하는 이 정형외과의사의 말입니다. 한 발로 서자니 불안정하고 자신이 없습니다. 남과 북이 한 발씩 균형을 이루어서면 모국의 앞날이 창창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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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 성공한다 - 위대한 인물 33인의 놀라운 성공 비법
장준수.김영욱 지음 / 라이프콤파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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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 6일의 일정으로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대련에서 단둥을 거쳐 환인, 집안, 이도백하, 연길, 용정, 도문, 훈춘, 방천에 이르기까지 1400km의 여정이었습니다. 버스로 오랜 시간 이동하는 바람에 살짝 피곤했지만 매우 의미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옛 고구려 선조들의 기상을 느낄 수 있었던 ‘고구려 유적지 순례’와 ‘북중 접경지역 답사’였습니다. 중국 역사왜곡의 영향으로, 초라해 보일 정도로 방치된 고구려 유적지와 북과 중국의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있는 ‘경제 협력의 현장’을 직접 접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단둥에서 손닿을 듯 가까이 있는 신의주를 바라볼 때면, MB정권 이후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악화된 남북관계의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가고 싶어도 지금은 갈 수 없는 북녘 땅을 남의 나라에서 바라보는 현실. 과연 대한민국은 언제쯤 섬나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번 여행에 가져간 책 중 하나가 바로 《여행하면 성공한다》였습니다. 왠지 어울릴 것 같아서요. 사실 저 역시 책의 제목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너무 자기계발서의 냄새가 나는 게 싫어서요. 하지만 뭐, 이 책이 자기계발서가 맞으니 아주 틀린 것은 아니겠지요.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타고난 게으름으로 이 나이가 되도록 여행다운 여행을 그리 많이 해볼 수 없었던 저 역시 ‘떠남’이란 언제나 설레고 즐거운 경험입니다. 가보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아직은 많은, ‘철없는 30대’거든요.

 

책은 공자, 석가모니를 비롯해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33인의 ‘여행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이 여행이란 것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여행을 했는지, 그들의 여정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한 번 쯤은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약간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만약 이 책이 100% 자기계발서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책이라면,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춘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정말 뻔뻔하고 해로운 말들로 가득한 자기계발서가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계발서를 가장한 유해 물질들입니다.

 

책에서도 말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행은 조금 여유가 있는 이들만의 특권처럼 여겨졌습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진지도 얼마 되지 않은 대한민국 아닙니까. 그야말로 ‘좀 사는’이들이나 감히 해외여행을 꿈꿨죠.

 

그런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많은 이들이 여행을 떠납니다. 비록 반 쪽 뿐이지만, 한반도의 아름다운 곳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리고 세계는 말 그대로 ‘무궁무진’한 호기심과 신비를 안고 있죠.

 

우리는 다른 국가를 여행하면 일단 ‘해외여행’이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알고 계시죠? 우리는 섬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국가를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바다를 건너야만 합니다. 때문에 전 타국으로의 여행 때마다 일종의 ‘억울함’과 ‘슬픔’을 느끼곤 합니다. 왜 우리는 걸어서, 제 발로 다른 나라를 여행할 수 없을까요.

 

여행의 목적과 가능 방법 그리고 각자가 경험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 스타일의 여행을 하게 되죠. 어느 여행이 더 훌륭하고 위대하다고 말하긴 살짝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 여행의 격은 존재합니다. 위대하신 대통령께서 즐겨 쓰시는 ‘국격’이란 것이 있듯, 여행도 격은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새로운 곳에서 즐겨보고 싶다는 욕심 역시 개인의 자유니, 뭐라 나무랄 순 없지만 최소한 여행을 통해 무엇 한 가지라도 얻고 돌아온다면 더욱 좋겠죠. 아울러 현지인과의 공감을 시도하고, 현지인에게 도움이 되는 여행이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사람이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이 말이 딱 맞아 떨어집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지만, 타국에서 한국인의 ‘파워’는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지만, 정말 같은 동포인 것이 창피할 때도 많습니다. 그 오만함과 무지, 타인에 대한 무시는 슬플 정도입니다.

 

여행은 끊임없이 자신과 소통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인과의 소통 역시 함께 합니다. 그리고 때론 그 소통이 더욱 큰 울림을 전해 주기도 합니다. 타인과의 소통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국 거울 속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지 않을까요.

 

꼭 성공하기 위해 여행을 하진 않을 생각입니다. 뭐 어차피 성공과는 그다지 친분관계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무슨 목적이 있어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다만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때론 더 많이 울고 웃고 싶을 때, 그때 조심스레 여행 가방을 꾸리려 합니다.

 

우연히 여정이 겹친다면 인사 한 번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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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의 유쾌한 100만 민란 -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
문성근 외 지음 / 길가메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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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성근이란 배우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뭐, 지금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죠. 저는 그 분을 알지만, 그 분은 제 이름과 소속을 말해야, “아~!”하실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뭐, 그렇다고 아쉬운 것은 아닙니다. 페이스북의 여유가 있으면 친구 신청만 받아주시면 됩니다. 너무나 친구가 많으셔…^^

 

어떤 이들은 문성근이란 배우를 볼 때 그의 부친 문익환 목사님을 떠올립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버님을 닮아간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립니다. 문 목사님이 살아생전 보여주셨던 불굴의 투지와 열정 그리고 민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차츰 그 아들도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정치인 노무현이 대통령이란 자리에 오르기까지 노사모와 문성근이 한 역할은 적지 않습니다. 피를 토하는 듯한 지지연설은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들의 노력과 함께 변화를 바라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힘을 모아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극악스런 보수 세력들은 이내 문성근을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오직 배우이고자 했던 그를 협잡꾼이나 정치 모리배로 몰아갔습니다. 그의 절친한 친구 명계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 대신 ‘저주의 형벌’을 내릴 대상으로 그들을 정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철저히 그들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잘 생각해 볼까요. 노무현 대통령이 승리하는데 누구보다 많은 역할을 한 그였지만, 그는 다시 배우의 길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그는 한 순간도 배우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시작한 것이었기에, 아쉬울 것도 섭섭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냥 좋은 세상을 꿈꾸는 배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노무현 대통령이 허무하게 돌아가신 뒤 1년 만에 다시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野! 뭉쳐!”라고요. 다시는 이명박 정권과 같은 파렴치하고 극악스러운 정권이 탄생되지 않도록, 다시 지금과 같은 끔찍한 세상을 만들지 않도록, 야권의 통합을 외친 것입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 세력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진보 진영의 후보 단일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이 양보하지 않으면 힘듭니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민주당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죠.

 

사실 민주당은 많은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하게 되는 정당입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의미 있는 많은 성과를 이룩한 정당입니다. 하지만 오랜 역사가 가져오는 구태의연함 역시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약간의 거만함? 착각? 이런 것들을 종종 느끼게 됩니다.

 

얼마 전 6·15공동선언 11주년 기념행사에 갔습니다. 개성에서 열기로 했던 남북· 해외 공동행사는 결국 정부의 방북 불허조치로 무산되고, 남측은 임진각 망배단 앞에서 행사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참 기가 막힌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임진각 전망대에서 열렸습니다. 정동영, 손학규, 박주선, 조배숙, 천정배 등 많은 의원들이 모여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다시금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촉구했습니다. 바람직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6·15남측위가 진행하는 기념행사 도중 그들은 일제히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냥 그것으로 끝나면 아무 문제없었을 것입니다. 기왕이면 행사를 함께 축하해주고 같이 밥을 먹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이들이 현장에 나와 있는 사진 및 취재 기자들을 불러다가 함께 밥을 먹은 것입니다. 행사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상상해 보세요. 갑자기 취재와 촬영을 하던 기자들이 우르르 식당으로 들어가고, 행사를 진행하는 분들은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기만 하고…. 더 기가 막힌 것은 스스로 진보적 언론이라 자처하는 언론사의 기자들마저 거기에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참 씁쓸했습니다. 그깟 냉면 한 그릇이 뭐 그리 대수라고. 같은 기자로서 행사장에서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고 계셨던 어르신들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생명을 버린 대가로 다시 기사회생했습니다. 인정해야죠. 그런데 자기들이 잘 해서, 국민들이 지지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어이가 없죠. 과거를 잊으면 곤란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온갖 파행과 실정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갈 때에도 민주당의 지지도는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민주당에서 그 어떤 인물이 나와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이기지 못합니다. “근혜 공주와 일곱 난장이”는 장난으로 나온 말이 아니거든요.

 

때문에 민주당을 쇄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문성근이 외치고 있습니다. 그냥 쇄신하라고, 양보하라고 하면 절대 들을 것 같지 않으니, 국민의 바다에 빠져 100만의 힘으로 ‘변화’를 강제하자는 것입니다. 국민의 힘으로 못 이룬 것이 없다고 믿는 그이기에 가능한 생각합니다.

 

“국민의 명령 ‘유쾌한 100만 민란’은 국민 100만 명이 모여 5개로 분열되어 있는 야당을 불러 모아 전국에서 골고루 지지받는 민주적인 야권단일정당을 만들어 내자는 시민운동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10만, 20만이 모였을 때 우리 역사에 못 이룬 일이 도대체 뭐가 있습니까? 학생들은 촛불 들었죠. 우리 세대는 6월 항쟁 했고요. 우리 윗세대는 4·19혁명 성공시켰습니다. 정권, 정책, 헌법도 바꾸었는데, 까짓 정당 정도 못 바꿉니까?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를 곰곰이 보면, 아니 대충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꼭 권력에 기생해 살아가는 기생충들이 있고, 아무런 대가없이 제 한 몸 바쳐 민중을 이끌어내고, 시대를 변화해 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이 그 역할을 해내고 사라져갔습니다.

 

다시는 이명박 정권과 같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집단에게 국사를 맡길 수 없습니다. 다시는 부패와 불의와 위선과 무지가 전부인 집단에게 정권을 맡길 수 없습니다. 다시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가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때문입니다. 문성근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그의 말에 찬성하기 싫다면 그 이유를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한나라당과 수구 세력을 이길 수 있을지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당장 뚜렷한 답이 없다고요? 정치인으로서 그 어떤 능력도 검증받지 못한 박근혜에게 다음 5년을 맡기고 싶지는 않으시죠? 그렇담 일단 문성근을 믿고 힘을 보태는 것은 어떨까요. 한 줌의 권력을 붙잡고 아웅다웅 다투는 야권에 한 번 큰 소리로 외쳐볼까요?

 

“野! 국민에 바다에 뛰어들어 하나로 뭉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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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게 딴짓을 권한다 - 미치도록 인생을 바꾸고 싶은
임승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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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특히 베네수엘라의 혁명을 국내에 소개하며 미국과 같은 허접쓰레기 국가 말고도 세상엔 참 다양한 국가와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 저자가 이번엔 젊음에게 외친다. “쫀쫀하게 살지 말고, 꿈을 펼쳐라!”라고.

 

사실 지금 20~30대처럼 재수가 지지리도 없는 세대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죽어라 공부해서 대학 갔더니, 대학에서도 낭만과 사색과 철학과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기는커녕 또 다시 스펙 쌓기에 올인해야 하는 청춘들. 대학만 살찌우는 더럽게 비싼 등록금을 도대체 왜 100% 그들이 책임져야 하는지도 모른 채, 부모님들의 등골을 빼먹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저주스럽고, 그렇게 저항하다 많은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이게 지금 청춘들의 현 주소다.

 

그런데 더 억울한 건 같잖게 떠드는 어른들의 소리다. ‘나약하다’‘개념이 없다’‘자기 생각만 하고 사회를 걱정하지 않는다’ 등등.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헛소리들만 연속 발사하는 모습들이란. 그럼 지들이 입장 바꿔 한 번 이 시대의 젊음을 살아보든가. 다들 등 따시고 배부르니 하는 소리들이다.

 

최소한 등록금 반값 실현 집회에 한 번이라도 참여해서 응원의 박카스 한 병이라도 사주고 그런 개소리를 떠들든가. 따지고 보면 다 지들 아들 딸뻘 되는 아이들이 이렇게 생고생하고 있는 건데, 청소년 성매매나 할 줄 알고, 영계 운운 개소리나 할 줄 알지. 당최 아이들 이해를 하려 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기성세대가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돈 좀 있고, 빽 좀 있는 것들에 대한 소리다. 지 자식들은 해외에 유학 보내고 적당히 돈 써서 군대 뺄 줄 만 알았지. 다른 아이들 걱정을 안 한다는 소리다.

 

위대하신 가카께서는 얼마 전 포부도 당당하시게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셨다. 정말 더럽게 옳은 소리 아닌가. 공정하다는 개념을 제대로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과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정말 선량하고, 위법이라고는 가끔 무단횡단하고 술 많이 드시면 노상방뇨 정도 하시는 분들이 보시기에 이 사회가 공정할까? 정말?

 

권력이 썩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만, 애초에 썩은 것들이 온갖 구라로 국민들을 꼬신 후에 정권을 잡자마자 있는 것들끼리의 잔치를 벌였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흐르니, 돈 없는 것들은 죽어나가고 있고, 최소한의 계층 이동을 가능케 해주었던 교육 시스템도 애초에 할아버지가 부자가 아닌 이상 절대 허용불가 시스템으로 만들어 놓은 집단이 현 정부와 고위층 놈들이다.

 

이런 엿 같은 세상이 공정하다면, 오호라 통재라. 난 불공정한 사회를 찾아 여행을 떠나리라. 저자는 이렇게 ‘공정한 사회’에서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시스템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시대의 ‘전사’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꿈을 물었고, 꿈을 위해 그들이 흘리고 있는 땀과 눈물을 책에 담았다.

 

사실 편하게 살고 싶지 않은 인간이 얼마나 될까. 다들 한 세상 편하게 살다 가면 좋지 아니한가.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런가. 결국 있는 놈들이 있으면 없는 것들도 생기게 마련. 여기에 태클을 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렷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그것이 지극히 불공평한 시스템에서 대를 이어 계승되는 아름다운 전통이 되었다면? 이건 정말 아니다 싶지 않은가.

 

저자가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꿈을 위해 과감히 세상에 맞짱을 뜨고 있는 이들이다. 까짓 굶어죽진 않으니, 쫀쫀하게 살지 말자는 생각으로 부단히도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쉽지만은 않은 도전이다.

 

모두가 다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모두가 다 루시드폴이나 고건혁처럼 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이 꼭 그들과 같은 삶을 살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내가 왜 이렇게 억울하고 부당하고 엿 같은 대우를 받아가며 살아야 하는지, 이유는 알고 살자는 말일 것이다.

 

일단 사람이 알게 되면 그 전과 100% 같은 삶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딴 짓’은 혁명도 민란도 아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내 안의 변화와 깨달음’일 것이다. 물론 쉽진 않지만, 포기하는 순간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 자기계발서가 주춤거린다는 소리가 들린다. 당연하다. 말도 안 되는 뻥만 잔뜩 쳐발라놓은 활자공해가 이제는 약발이 안 먹힌다는 것을 다들 알기 때문이다. 이 책과 같은 ‘청춘’ 시리즈가 더 많이 나와야 함은 물론이다. 진정한 자기계발서는 일단 구라를 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책이 대박 나서 저자와 청춘 모두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관세음보살 알라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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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아이들 (양장) - 히로세 다카시 반핵평화소설, 개역개정판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30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그 진실은 끝내 모두 밝혀졌을까. 청정 무공해 에너지라 칭송해마지않는 원자력. 과연 원자력은 인류에게 구원인가, 재앙인가.

 

우리는 얼마 전 일본에서 벌어진 사상 최악의 재앙을 목격했다. 센다이 지방을 강타한 쓰나미와 후쿠오카 원전 누출 사고는 인류가 만들어낸 핵에너지가 어떠한 재앙을 가져오는지를 똑똑히 보여줬다.

 

1인 대안언론이라고 불리는 히로세 다카시는 20년 전부터 이러한 원자력이 가져올 재앙을 경고해왔다. 반핵평화소설의 상징이라 불리는 이 책은 바로 그러한 히로세의 경고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평화롭던 체르노빌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밀어닥친 재앙. 이반의 가족이 겪은 비극은 비단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좁디좁은 한반도에 얼마나 많은 원자력 발전소가 있고, 또 얼마나 많은 핵이 존재하고 있는지 깨닫는다면 말이다.

 

히로세 다카시는 정부가 주장하는 원자력 발전소 추진책이 세간에서 흔히 선전하는 에너지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독점 자본의 이익과 결부된 문제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굳이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라도 인류의 지혜를 모은다면 충분히 대체 가능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률이 상당히 낮다고 선전해왔다. 발전소 1기당 사고의 위험성은 2만 년에 한 번이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전 세계의 발전소가 2천기가 넘는다면? 그것은 계산상 10년에 한 번 꼴로 사고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소리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전 세계엔 무수히 많은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21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 세계 어는 나라를 봐도 원자력이 청정에너지라거나, 친환경적이라 떠드는 나라는 없다. 다만 한국뿐이다. 원자력은 그 엄청난 위험성으로 인해 점차 그 수를 줄여나가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다. 하지만 역시 우리나라는 해가 갈수록 그 숫자를 늘려나간다는 방침이다. 물론 후쿠오카 원전 사태로 인해 잠시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원자력 발전소와 관련된 무수히 많은 이익집단들이 호락호락하게 자신들의 이권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재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이웃나라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원자력 발전은 인간이 누려야 할 것들을 넘어서 누리기 시작했을 때 어떠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를 현실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핵폭탄’과 같다. 철저한 조사와 사후대책을 마련해 둔다 해도 100%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물질이다. 그것은 자연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오만함은 결국 그에 따른 대가를 가져오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겸손하고 또한 성찰하는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된다. 자연을 이기려는 오만함은 결국 재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지금도 체르노빌의 구체적 피해는 집계되지 않고 있다. 후쿠오카의 재앙 역시 복구와 원상태 회복에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한반도에 끼치는 영향도 100% 안전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저자는 책을 통해 어른들이 무책임하게 만들어놓은 재앙을 거부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반대하라고 말한다. 안전하다는, 청정한 에너지라는 거짓말에 속지 말고, 스스로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나서라 말하고 있다. 사실 어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어린 친구들이 ‘잘 모를 것’이라는 것이다. 모르긴!

 

이 책은 단순한 소설로 볼 수 없다. 실재 일어난 비극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그 어떤 꾸밈이나 과장도 없다. 다만 이 비극이 왜 일어나야 하고, 왜 죄 없는 이들이 죽어야 하는지 생각게 할 뿐이다.

 

두말하면 입이 아프지만, 자연은 소중하고 지구는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정신 차리지 않고 나댄다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결국 ‘죽을 수 있는 권리’만 남을 것이다. 그것도 크다 큰 고통을 겪으면서 말이다. 여기엔 부자와 가난한 자,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금의 시간차는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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