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가는 길
케니 켐프 지음, 이은선 옮김 / 이콘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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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누구한테나 그런 식이었다. 부탁을 받았다고 해서, 아버지가 방법을 안다고 해서 대신 해주는 법이 없었다. 비록 내 솜씨가 형편없고 두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차를 못 쓴다 해도 직접 고치면서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물고기를 그냥 주는 것과 미끼 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의 차이를.”

 

천천히 읽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한 분량의 책입니다. 하지만 뭐랄까요. 읽은 후가 더 난감한 책이라고 할까요. 그냥 먹먹함이 다가옵니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도 아니고, 가슴을 찌르는 죄책감이 다가오는 것도 아니건만, 그냥 괜시리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전 남잡니다. 아들입니다. 보통의 딸들처럼 아버지에게 귀여움을 떨지도, 살갑게 대하지도 못하는 그냥 무뚝뚝한 아들입니다. 오히려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대들고 이제 머리 좀 컸다고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기를 쓰는 그런 아들입니다.

 

저자의 아버지 역시 우리네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자식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그대로 표현하는데 서툴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사랑했습니다. 또한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그 어떤 설움과 무시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다 했습니다.

 

저자는 아버지가 떠난 뒤에야 아버지의 위대함을 느끼게 됩니다. 뭐든지 구입하기 보다는 재료를 구해 만들어내기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 단순한 합판을 가지고 여러 가지를 창조해냅니다. 그 과정을 설명하는 저자의 글에는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나고 있습니다.

 

“차고에 그렇게 서 있는데, 아버지가 목재 하치장에서 집어든 순간부터 마지막 한 조각이 내 손에 쥐여진 30년 뒤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합판이 거친 진화과정이 모조리 떠올랐다. 그 묵직함이 느껴지는 순간,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정말 저 세상으로 떠났고, 오래돼서 낡은 물건 속에서 새롭고 쓸모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능력도 아버지와 더불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아버지에게 있어 합판 조각은 단순한 목재가 아니었다. 여행 때 쓸 수 있는 상자였고, 2층 침대였고, 기차 세트 받침이었고, 서랍장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이 합판을 가지고 만든 물건과 더불어 거의 한평생을 보냈다.”

 

전쟁에 나가 비행사로 활약하며 조국의 부름에 성실히 답했던 아버지. 이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성실히 살아왔던 가장. 그의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삶은, 이제 남은 자식들에게 이어져 또 다시 그 자식들에게 이어질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우리들의 부모들도 곁을 떠날 것입니다. 이미 그들을 떠나보낸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채 충분히 하지 못해 후회하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더 많이 안아주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 아직 아버지라는 이름을 갖지 못한 저는 아직도 아들의 이름으로, 그 이름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돈을 벌어 아버지께 사드리고 싶은 모든 것들을 사드리지도 못하고, 근사하고 멋진 지위에 올라 아버지의 자존심을 높여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빤한 핑계일 뿐이겠지만, 전 아버지의 이름에 오점이 되지 않는 그런 아들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나에게 굽실거리거나 아부를 일삼는 이들은 없다고 해도, 적어도 나를 믿고 어깨동무해줄 이들은 적지 않다는 사실. 내가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는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은 부디 지켜나가고 싶습니다.

 

여전히 나는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어려워 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아버지에게 서툴게 대들며 내가 옳다고 우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약속드리고 싶습니다. 가고자 하는 길에서 쉽사리 포기하거나 주눅들지 않을 것을.

 

이 힘든 세상 속에서 오늘도 열심히 땀 흘리며, 쓰러지면서도 자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 우리 시대 모든 아버지들에게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드립니다.

 

한 아들이 기억하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책. 따뜻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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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108
로베르트 반 홀릭 지음, 신혜연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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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추리소설에 다시 빠져들고 있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시작으로 다시금 바람이 들었나 봅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후 계속 추리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황금 살인자》는 우연찮게 발견한 작품입니다. 사실 저자나 ‘명판관 디 공 시리즈’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문화, 문학에 많은 관심이 있었던 외교관이었습니다. 그러다 중국 전통 추리담의 영웅으로 알려진 디런지에에 대한 자료를 접하게 되었고, 이를 번역 소개하다, 결국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추리물을 발표하게 됩니다.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학문적 연구와 번역의 영역에서 창작이라는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별 어려움 없이 건너뛸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노력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가 중국에 머문 시간은 몇 번의 짧은 방문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몇 년 간 근무한 것이 전부였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짧은 중국 체류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제국 중국의 생활상을 비교적 정확히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었지만, 당·청나라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아울러 중국인들의 유교 사대부적인 생활상, 사고방식 등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디런지에라는 인물은 실존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7세기 당나라 시대라고 하는데, 적인걸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쳤던 재상이었다고 합니다. 전설적인 수사방법,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바른 품행, 초인적 통찰력으로 상징되는 그는 예전 TV드라마 ‘판관 포청천’처럼 명판관으로서 영웅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나온 바 있습니다.

 

중국의 전통추리소설은 대부분 수령이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포청천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이해가 되실 것 같습니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기괴한 살인사건이나 끔찍한 죽음에 대해 수령은 자신의 직분과 통찰력을 이용해 공정한 심판을 내립니다. 마치 CSI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하나하나 꿰맞춰가며 결국 통쾌하게 해결합니다.

 

《황금 살인자》는 디 공의 데뷔작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663년, 디 공이 처음 지방 수령으로 발령받은 시기의 첫 사건입니다. 이른 바 ‘디 공 시리즈’에서 그를 보필하는 충실한 두 부하 마중과 차오타이를 처음 만나게 되는 과정이 소개되고, 첫 수령의 임무를 맡아 다소 서툴지만 열정적으로 사건에 집중하는 초보 판관 디 공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밀실에서 독살당한 전임 수령의 살해 사건. 뒤이어 벌어지는 실종사건과 관아에서 나타나는 전임 수령의 유령. 또 다시 벌어지는 살인사건. 고구려에서 끌려온 의문의 여인 ‘유수’. 과연 작은 항구도시 펑라이에선 어떤 음모가 꾸며지고 있는 것일까요.

 

디런지에 시리즈는 모든 사건들이 실제 중국에 내려오던 사건 기록과 판결 등을 참고로 만들어졌습니다. 때문에 중국 역사 속의 각종 문화와 전통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아울러 저자는 직접 소설의 내용과 관련된 중국풍의 삽화를 그려 넣었고, 소설의 배경이 된 지역의 지도, 사건이 일어난 곳의 도면이나 사건 해결과 관련된 암호문 등을 함께 담았습니다. 덕분에 더욱 실감나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 소개된 디 공의 활약상은 네 작품입니다. 살짝 제목이 촌스럽기는 하지만 《쇠종 살인자》《쇠못 살인자》《황금 살인자》《호수 살인자》등입니다. 56세의 나이로 저자가 사망할 때까지 디 공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15편이나 썼다고 하니 그의 디 공에 대한 애정을 짐작하게 합니다.

 

포청천과 함께 중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디런지에의 활약을 담은 ‘중국판 셜록 홈즈’디 공 시리즈. 다소 초현실적인 장면들도 나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중국이라는 나라의 신비함과 더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정통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살짝 다른 면이 있지만, 재미에 있어서만큼은 부족하지 않은 디 공 시리즈. 앞으로도 디 공의 활약을 계속 지켜보고 싶습니다. 사실 벌써 《호수 살인자》를 집어 들긴 했습니다만.

 

아, 한 가지 아쉬운 부분. 《황금 살인자》에는 전쟁에서 패배한 고구려에서 끌려온 포로, 노예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고구려 여인 유수가 창녀로 등장하고, 고구려인들이 범죄에 가담하는, 다소 불편한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패배해 결국 멸망하기는 했지만, 결코 맥없이 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언급돼 그나마 위안이 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당나라 역시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얼마 못가 무너졌다는 사실. 저자도 인정하고 있었겠지요. 일독을 권합니다.

 

“고구려는 아름다운 나라지. 지난 전쟁 때 가 본 적이 있어.”

차오타이가 여자의 허리를 팔로 감싸 안으며 말했다.

여자가 차오타이를 밀쳐내며 경멸하는 눈으로 쏘아보았다.

차오타이는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고는 황급히 말했다.

“고구려인들은 정말 훌륭한 전사들이야. 할 만큼 했지만, 우리 군이 워낙 수적으로 우세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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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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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던 한가위 연휴가 끝나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을 다시금 다잡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 의미가 있었습니다. 또한 간단하게나마 집안 정리도 했고요. 책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은 되었지만요.

 

마음이 어수선하고 붕붕 뜬 것처럼 느껴질 때는 책에도 쉽사리 손이 가질 않습니다. 그때 정말 어울리는 것이 바로 추리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담 없이 읽기에도 좋고, 또 잡스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게 해주는 묘미가 있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들은 언제 읽어도 매력이 넘칩니다. 에르큘 포와로의 회색 뇌세포가 움직여 범인을 지목하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무릎을 치곤 했습니다. 게다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작품이었으니 그 재미는 더 했습니다.

 

사실 요즘 당연시되는 ‘반전’의 효시는 추리소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결국 범인으로 지목되는 순간, 우리는 반전의 묘미가 무엇인지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말도 되지 않는 억지가 아닌 치밀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반전이란, 그야말로 신선한 경악입니다.

 

이 작품 역시 반전의 묘미가 그대로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자신의 남편을 독살한 부인이 일년 후 자살을 택합니다. 그리고 죽기 전 자신을 사랑했던 재력가 애크로이드 씨에게 편지를 남기는데….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죽음. 은퇴 후 조용한 삶을 살아가던 포와로의 뇌세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요.

 

추리소설의 전형적 공식을 보여주며, 여사의 명성을 널치 떨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의 필독서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포와로의 활약에 자극을 받아서인가요. 책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미스터리물을 쏙쏙 골아내어 한 곳에 모아두었습니다. 지금은 로베르트 반 훌릭의 《황금 살인자》를 읽고 있습니다. 명 판관 디 공이 활약하는 이 작품은 중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신나는 모험극입니다.

 

독서의 편식은 물론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좀처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릴 때, 추리소설, 미스터리로 가볍게 다시 페이지를 넘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즐거움과 보람을 얻기 위해 한 가지 일에만 힘을 기울이고, 노동을 하고,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얻고 나서 그에게 남겨진 것은 단지 분주했던 옛 시절과 그때에 대한 그리움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심정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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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하는 악마
테오 R.파익 지음, 박미화 옮김 / 수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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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과연 선할까요. 인간의 ‘악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악마의 본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이 추잡하고 더러운 세상이 우리를 점차 악마로 만드는 것일까요.

 

이처럼 결코 간단히 대답하기 어려운 주제인 ‘악’에 대해 논하고 있는 이 책은 신화에 등장하는 악의 화신부터 중세를 거쳐 이성이 발달한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악의 기원과 양상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우리는 심심찮게 연쇄살인범이나 ‘묻지마’ 대량살인범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유영철과 조승희 사건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 우리 곁에도 ‘사이코패스’라는 이름으로 언제 학살을 저지를지 모르는 이들이 있다는 점을 느끼게 해줍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공격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때로는 다른 생명을 빼앗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다른 대부분의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육식동물의 경우 잔인하게 먹잇감을 죽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만 동물과 같은 공격성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탐욕과 이기심, 때로는 그저 재미를 위해 다른 생명을 빼앗는 일에 주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같은 인간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무수히 많은 학살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핑계로 한 인종 간, 민족 간 대량학살은 과연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국가라는 권력집단에 의해 자행되는 수많은 학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너무나 뼈아픈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두고 같은 동족끼리 자행했던 학살의 역사. 우리는 어쩌면 이념을 핑계로 극단적 증오를 풀어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바로 우리들의 형제, 자매들에게 말이죠.

 

때문에 인간에게 악함이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은 다른 한 편으론 지극히 당연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죠. 인간은 지구상 어떤 생명체보다 사악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잔인하고 극단적 존재이죠.

 

역사상 수많은 살인마들이 존재해 왔습니다.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찰스 맨슨을 비롯해 테드 번디, 조디악, 잭 더 리퍼, 제프리 다머, 마크 뒤트로 등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연쇄살인마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행렬은 아마 인류의 역사가 끝나지 않는 한 이어질 것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고대 로마 시대 시인인 플라우투스의 ‘호모 호미니 루푸스’라는 말을 인용해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다”라는 말로 인간의 본성을 적절하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럼 정말 인간의 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종말을 고할까요. 어쩔 수 없는 사악함으로 서로가 서로를 모두 죽여야 끝나는, 그런 지옥이 이어질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간은 악함에 대한 유혹만큼 ‘더불어 살아가는’공동체 정신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러한 공동체 정신이 사라진다면 그때는 정말 인류는 종말을 고하겠죠. 하지만 전 믿습니다. 공동체 정신은 인류의 소중한 가치이자, 태어날 때부터 간직한 정신이라는 것을요.

 

개인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소설이나 영화를 즐겨보기 때문에 이 책 역시 처음엔 단순한 즐길 거리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악함과 선함을 어떻게 통제하고 조절해야 하는지, 또한 전쟁이라는 인류 공멸의 순간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저자의 서술 중에는 몇몇 이해가 되지 않거나 찬성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구 소련, 중국 등에 대한 설명에서 그러한 부분이 눈에 보였고, 또한 자본주의 국가가 저지르는 대량학살에 대해서는 일견 눈을 감아버리는 모습도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종교가 저지른 추악함과 현대 인류가 안고 있는 생명 경시 풍조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마녀 사냥이라니…. 정말, 기가 찰 노릇입니다.

 

살인과 약탈, 증오와 탐욕은 인간 본성의 하나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본성이 바꿀 수 없는 영원함과 동의어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위를 돌아보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삶을 통해 그 본성마저 이겨낼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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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의 탄생 - 일본 서스펜스 단편집
사카치 안고 외 지음, 이진의.임상민 옮김 / 시간여행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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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젠가부터 일본 추리소설, 미스터리 소설이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의 마니아층도 확보하고 있는 것 같고, 꽤 유명한 작품들은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하곤 합니다.

 

저 역시 추리소설,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읽습니다. 물론 직업과 관련해 읽어야 할 책들이 적지 않아 자주 읽지는 못하지만, 충분히 그 매력을 알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홈즈와 뤼팽, 에르큘 포와로와 미스 마플과 친숙했으니까요.

 

《스릴의 탄생》은 현재 많이 소개되고 있는 일본 추리·미스터리 소설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일본 초기 추리·미스터리 전성시대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작가들도 있고, 유메노 큐사쿠와 같은 유명한 작가의 작품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현재와 비교하면 다소 어설프거나 혹은 미스터리라고 부르기 애매한 작품들도 있지만, 초기 일본 추리문학의 전형을 느낄 수 있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근대화 과정을 심각하게 기형화시킨 일본. 하지만 정작 그들은 스스로 서구의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다양한 문화를 일찍 접했습니다. 여전히 국내 추리소설, 미스터리 분야가 협소한 상황인 것에 반해 일본은 이미 1984년에 추리·미스터리 소설 출판‘하루 한 권’시대를 열었다고 하니 부럽기도 합니다.

 

당연히 탄탄한 작가군과 독자층을 확보하며 지금의 추리 문학 분야의 저변을 다져왔겠죠. 그리고 그 결과 지금처럼 다양하고 수준높은 작품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문학계는 여전히 ‘폼 잡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최 알 수 없는 ‘순수문학’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추리나 판타지, 미스터리물은 경시하는 풍토가 있죠. 엄연한 문학의 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물론 일본의 강점기를 거치고, 전쟁까지 겪으며 제대로 된 근대화 과정을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전히 폼 잡으며 양반이 어쩌고 상놈이 어쩌고 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하지만 문학을 비롯한 예술은 다양성이 상실되는 순간 그 존재 가치를 동시에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순수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타 장르의 문학을 경시하는 어처구니없는 풍토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1920~30년대 작품들이 주로 수록된 이 책은 일본 추리·미스터리 문학의 태동과 발전 과정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아울러 근대화를 거치며 ‘공포’‘스릴’이 탄생하는 과정을 느끼게 해줍니다. 과거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별하며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에서, 이제는 같은 인간 사이에서 ‘나’와 ‘남’을 구별하며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 바로 거기에서 스릴은 탄생하고 있습니다.

 

마을공동체를 영위하며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던 시절엔 외부인, 혹은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철저히 개인화가 되어버린 지금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타인들에 대한 공포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죠. 개인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스릴의 탄생. 미스터리, 공포 소설들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구전에도 자주 등장하는 ‘인육 먹기’를 주제로 한 하야마 요시키의 〈시체를 먹는 남자〉, 판타지적 요소가 다분한 히사오 주란의 〈곤충도〉, 인간 내면의 악마성에 주목한 유메노 큐사쿠의 〈쇠망치〉,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의 미스터리 버전처럼 느껴지는 고가 사부로의 〈함정에 빠진 인간〉, 한 여인을 둘러싼 형제의 애증을 그린 와타나베 온의 〈승부〉, 정교한 트릭을 작품에 대입시키며 추리소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사카구치 안고의 〈가면의 비밀〉과 오사카 케이키치의 〈등대귀〉에 이르기까지. 각 작품마다 가지고 있는 개성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 줍니다.

 

태어날 때부터 타인에 의존하고 타인의 그 무엇을 빼앗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인간. 때문에 인간은 본성 자체가 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근원적 물음에 앞서 다만 문학의 한 장르로, 가벼운 즐길거리로 추리·미스터리 문학은 상당한 매력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 즐거움을 포기하기엔 아직은 이른 것 같습니다. 국내 미스터리 문학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아, 그런 의미로 계간 《미스터리》를 구입했다는.^^

 

“운명이야. 운명이라는 놈은 언제든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어. 그것이 인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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