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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가는 길
케니 켐프 지음, 이은선 옮김 / 이콘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아버지는 누구한테나 그런 식이었다. 부탁을 받았다고 해서, 아버지가 방법을 안다고 해서 대신 해주는 법이 없었다. 비록 내 솜씨가 형편없고 두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차를 못 쓴다 해도 직접 고치면서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물고기를 그냥 주는 것과 미끼 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의 차이를.”
천천히 읽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한 분량의 책입니다. 하지만 뭐랄까요. 읽은 후가 더 난감한 책이라고 할까요. 그냥 먹먹함이 다가옵니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도 아니고, 가슴을 찌르는 죄책감이 다가오는 것도 아니건만, 그냥 괜시리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전 남잡니다. 아들입니다. 보통의 딸들처럼 아버지에게 귀여움을 떨지도, 살갑게 대하지도 못하는 그냥 무뚝뚝한 아들입니다. 오히려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대들고 이제 머리 좀 컸다고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기를 쓰는 그런 아들입니다.
저자의 아버지 역시 우리네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자식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그대로 표현하는데 서툴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사랑했습니다. 또한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그 어떤 설움과 무시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다 했습니다.
저자는 아버지가 떠난 뒤에야 아버지의 위대함을 느끼게 됩니다. 뭐든지 구입하기 보다는 재료를 구해 만들어내기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 단순한 합판을 가지고 여러 가지를 창조해냅니다. 그 과정을 설명하는 저자의 글에는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나고 있습니다.
“차고에 그렇게 서 있는데, 아버지가 목재 하치장에서 집어든 순간부터 마지막 한 조각이 내 손에 쥐여진 30년 뒤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합판이 거친 진화과정이 모조리 떠올랐다. 그 묵직함이 느껴지는 순간,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정말 저 세상으로 떠났고, 오래돼서 낡은 물건 속에서 새롭고 쓸모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능력도 아버지와 더불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아버지에게 있어 합판 조각은 단순한 목재가 아니었다. 여행 때 쓸 수 있는 상자였고, 2층 침대였고, 기차 세트 받침이었고, 서랍장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이 합판을 가지고 만든 물건과 더불어 거의 한평생을 보냈다.”
전쟁에 나가 비행사로 활약하며 조국의 부름에 성실히 답했던 아버지. 이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성실히 살아왔던 가장. 그의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삶은, 이제 남은 자식들에게 이어져 또 다시 그 자식들에게 이어질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우리들의 부모들도 곁을 떠날 것입니다. 이미 그들을 떠나보낸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채 충분히 하지 못해 후회하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더 많이 안아주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 아직 아버지라는 이름을 갖지 못한 저는 아직도 아들의 이름으로, 그 이름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돈을 벌어 아버지께 사드리고 싶은 모든 것들을 사드리지도 못하고, 근사하고 멋진 지위에 올라 아버지의 자존심을 높여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빤한 핑계일 뿐이겠지만, 전 아버지의 이름에 오점이 되지 않는 그런 아들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나에게 굽실거리거나 아부를 일삼는 이들은 없다고 해도, 적어도 나를 믿고 어깨동무해줄 이들은 적지 않다는 사실. 내가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는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은 부디 지켜나가고 싶습니다.
여전히 나는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어려워 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아버지에게 서툴게 대들며 내가 옳다고 우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약속드리고 싶습니다. 가고자 하는 길에서 쉽사리 포기하거나 주눅들지 않을 것을.
이 힘든 세상 속에서 오늘도 열심히 땀 흘리며, 쓰러지면서도 자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 우리 시대 모든 아버지들에게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드립니다.
한 아들이 기억하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책. 따뜻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