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터 - 나희덕, 장석남 두 시인의 편지
나희덕.장석남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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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은 진보와 발전이라는 것이 사람을 더 더디고 작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진보는 정치적 의미의 그것이 아닌, 과학의 발전을 일컫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편지 쓰기이다. 이젠 편지를 쓰는 것도 앞에 을 굳이 붙여야만, 직접 쓰는 것임을 알게 된다.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하는 짓이 늘 어설픈 내가, 아주 오랜만에 책들을 정리하고 묵은 먼지를 털고, “? 이 책을 내가 언제 구입했지?”하며 한심한 감탄사를 연발하던 중, 아주 오래전 받은 책을 하나 발견했다. 읽은 기억조차 희미한 책, 펼치다 그만 맨 앞장에서 어마어마한 글귀를 찾았다.

 

스무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스무 번째 생일이라, , 과연 내가 그때 무엇을 했던가. 내 생애 스무 번째 생일은 어떠하였는가, 온전히 기억 날 리 없다. 설마 알코올과 알코올 속에 맺어진 전우들과 광란의 밤을 보냈던가. 아니면 어느 거리 어느 누군가와 함께 마냥 밤길을 걸었던가. 내 청춘의 기억들이 황망히 희미해져간다.

 

직접 손으로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적어준 그때의 벗은 지금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먼 기억 속에서나마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이미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을까. 아득하고, 아련하다.

 

더불어 생각해본다. 차디찬 컴퓨터가 아닌, 비록 악필이지만,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가며,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언제였던가. 천방지축 고교시절, 나름 생뚱맞은 문예반에 들어가 시를 쓰고, 문학을 이야기하던, 어설펐지만 아름다웠던, 그때 나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20년이 다 되어가는 그 옛날 벗의 글귀를 보며, 잠시 딴 생각에 빠질 수 있었다. 당시의 어설펐든 청춘이 그리웠고, 무모함과 치열함이 보고 싶었다.

 

어마무시한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에서 20년 가까이 구르다보니 참 많이도 필기를 했던 것 같다. 판서라고 하지 아마. 선생님이 칠판 빼곡하게 써주시는 글들을 우리는 숨을 죽여 가며, 그대로, 말 그대로 똑같이 베꼈다. 과연 그게 학습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그런 모습은 대학까지 이어졌다. 대학생이 열심히 베끼기나 하고 있었다니, 오호 통재라.

 

하지만 그 때는 필기 못지않게 이것저것 참 많이 쓰고 지웠다. 오직 나를 위한 일기도 열심히, 어줍지 않은 시와 소설도 열심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도 열심히 끼적거렸다. 누가 부러 읽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나만의 숨을 쉴 공간을 마련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지금은 참 많이 변했다. 이젠 손으로 무엇인가를 적는다는 것이,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일들이 되어버렸다. 무언가 해야 하니까 적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런 목적이 없는 글쓰기는, 온전히 내밀하고 비밀이 가득한 글쓰기는 어느 새 종적을 감추었다. 결론적으로, 참 재미없게 살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 누군가에게, 기계의 힘이 아닌 나의 손으로 편지를 쓰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우체통에 편지를 넣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가물거린다. 연말이나 명절을 앞두고 연하장에 손으로 인사를 눌러쓰는 것도 버겁다. 그나마 멈추지 않고 하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이 책은 눈이 해맑은 두 시인이 주고받은 편지글을 모았다. 눈이 맑으면 더 많은 것들이 다가오고, 또한 떠나간다. 그 만남과 이별을 덤덤히 적어 내려간 두 시인의 글은, 때문에 아득한 그리움을 전해준다.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려는, 우리들의 지극히 당연한 몸짓이 새삼 눈물겹다.

 

책을 읽고 책상과 책장과 주변을 더듬거렸다. 곧 조금은 색이 바래버린 편지지와, 원고지 뭉치가 발견된다. 다행이다.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은 나에게 이것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리움을, 기계가 아닌 손으로, 애틋함을, 클릭이 아닌 우표 한 장으로 전달할 수 있는, 아직은 나에게 여지가 남아있다.

 

바쁜 척,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고 사는 척 하지만, 결국 나는 사소하다. 하지만 내 사소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 사소함은 또한 추억이 될 것이고, 함께 한다는 든든함과 그리움이 될 것이다. 이제 다시 편지를 써야겠다. 꼭 흐린 가을날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부디 받아주시라.

 

내가 느낀 시간과 풍경과 눈물과 미소와 그리움을 함께 담아 우표 한 장의 여운으로 그대에게 보내리라. 그리고 아름다웠던 내 청춘에게도. 난 아직 추억을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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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기적 - 마더 테레사의 삶과 믿음
T. T. 문다켈 지음, 황애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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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48, 대한민국은 참으로 오랜만에 위안과 치유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바로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이 있었던 것이다. 방한 기간 동안 교황이 보여주었던 것, 우리에게 전해준 것은, 그동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잃어버렸던, 사랑과 용서, 위로와 연대, 타인을 위한 기도와 눈물이었다.

 

한 학자가 지인의 말을 빌려 이제 교회오빠의 시대는 갔다. 성당오빠의 시대가 왔다고 표현한 것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는 가히 전 세계적이다. 바티칸을 찾는 이들의 수가 과거보다 세 배 이상 늘었고, 교황의 어록을 비롯한 관련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교황의 실천은 분명, 지금 이 시대 민중들이 바라마지 않던 모습이었다. 교황은 그것을 말 뿐만이 아닌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다.

 

내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에 관련된 책이 서너 권 보인다. 하지만 그의 방한 중에는 어쩐지 읽고 싶지 않았다. 교황을 바라보고 느끼는 나의 감정을, 적어도 방한 중에는 다른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그를 느낀 후, 그의 책을 읽어도 괜찮으리라 여겼다. 그리고 이제 그가 한국을 떠난 지금, 차근차근 한 권씩 읽어나갈 생각이다.

 

종교의 힘, 종교의 미덕은 무엇보다 사랑의 실천이라고, 그렇게 나는 믿고 이해하고 있다. 무신론자인 내가 종교의 심오한 철학과 가치를 논할 주제는 물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비극과 학살, 무지와 편견, 차별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종교뿐이다. 종교의 사랑, 그 실천만이 과거의 잘못을 용서받고 또한 치유할 수 있다고, 그렇게 나는 믿는다.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한 세계인들의 사랑과 지지는 한낱 연예인, 정치인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교황은 세속적인 목표로 자신의 삶을 이끌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그보다 더한 권력 앞에서도, 눈과 손길은 오직 약한 자들을 향해 있다. 광화문 시복식 당시 유민아빠 김영오 씨의 손을 잡아준 것은, 그 어떤 천박한 수구세력이나 일베와 같은 정신이상자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지극히 숭고한 실천의 행위였다. 권력 앞에 무참히 짓밟힌 약자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자신이 곧 그들임을, 그들과 함께 함이 자신의 역할이자 임무임을 전 세계에 알린 무언의 메시지였다.

 

그동안 한국의 일부 종교 세력들에 대한 비판이 멈추지 않았다. 개신교를 비롯해 불교, 천주교 어느 종교라도 예외는 아니다. 도저히 종교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천박하고, 또한 금전과 권력에 추악하게 집착하고 기생해온 한국 종교는 분명, 종교로서의 역할과 가치, 철학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수많은 평신도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일부 종교인들은, 그리고 종교지도자라는 이들은 그렇게 썩어가고 있고, 이미 도려낼 수 없을 정도로 썩었다.

 

온갖 더러운 말들이 교회에서 터져 나오고, 평범한 시민들도 생각하기 어려운, 역사와 민족을 망각한 무지한 행동들이 다름 아닌 종교인들로부터 비롯된다. 물론 그들이 절대 다수는 아닐 것이지만, 무시 못 할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렇게 타락한 종교인과 종교단체들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들에게 프란치스코의 메시지는 얼마나 큰 위안을 주었는가. 그의 방한은 앞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를 남기며,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 분명하다.

 

성직자에게 고결함과 숭고함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오히려 그들이 권력의 충실한 하수인이 되어, 권력이 하고픈 말을 대신 전달하는 앵무새로 전락해버린 지금, 우리는 섣부른 기대를 이미 감추었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는 그 어떤 축복보다 더한 의미가 될 수밖에 없다.

 

마더 테레사의 삶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인도의 빈민가, 구더기와 쥐들로 살이 썩어가고 떨어져나간, 아무도 그들의 삶과 죽음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그런 버림받은 이들에게 테레사 수녀는 손길을 내밀었다. 아무도 모르게 남을 도우라는 어머니의 말을 평생 가슴에 품고, 또한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평생을 가난한 이와 함께 한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생전 즐겨 낭송했고, 또한 존경해마지 않았던 이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이고 그의 기도문이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가난한 자와 함께 했던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온 교황은, 지금까지 현재의 교황이 최초이다.

 

책은 마더 테레사의 삶과 믿음을 담담한 어조로, 그 어떤 과장과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고 그대로 담았다. 수녀님에 대한 너무도 솔직한 이야기는 오히려 많은 감동을 전해준다. 자신이 지극히 간절하게 기도하고, 타인에게 지극히 다가가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리라 믿었던, 성모 마리아께서 도와주시리라 믿었던 테레사 수녀.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기적이, 자신의 힘이 아닌 수많은 이들의 기도와 또한 하나님의 전능하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겸손히 받아들일 줄 알았던, 그런 분이었다.

 

담담하고, 솔직하고, 말 그대로 소박한 내용의 이 책은 1998년 인도 최고의 전기물로 선정되어, 권위 있는 카카세리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어떤 상을 떠나, 마더 테레사의 소박하지만 위대한 기적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속세에 찌든 우리들에게 샘물이 될 것이다.

 

마더 테레사의 묘지 대리석 위에 새겨진 문구, “내가 너희를 사랑했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우리는 이 메시지를 얼마나 충실히 따르며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끝끝내 무너지게 만드는, 그렇게 비정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마더 테레사의 조용한 외침이 유독 와 닿는 이유는, 분명하리라. 그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추천사를 쓴 <야생초 편지>의 저자, 바우 황대권은 무언가 좋은 일을 할 때면 아무도 모르게 하라, 마치 바다에 돌 하나를 던지듯.” 이라는, 테레사 수녀의 어머니가 늘 딸에게 말했던 이야기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물론 심심풀이로 또는 장난으로 바닷물에 돌을 던지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돌 하나를 던지더라도 자신의 온 존재를 걸고 던지면 해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지극함과 무한한 열정이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외면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세상이란 바다 속에 끊임없이 작은 돌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파문과 기적을 낳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을 위한 기도가 점점 들리지 않는 이 시대. 프란치스코 성인의 아름다운 기도를, 가끔은 떠올려야겠다. 그리고 나만의 작은 조약돌을 저 무심한 바다에 던져봐야겠다. 비록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겠지만 말이다.

 

주님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살다 죽어가는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을 통하여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우리의 이해와 사랑을 통하여

그들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소서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마음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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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에서 기적으로 - 김태원 네버엔딩 스토리
김태원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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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까지, 삼십 년이 걸렸다. 모자람이 완성의 실마리임을 증명하고 싶다. 부족하기에 완성되어질 수 있다는 표본이고 싶다

-16p

 

그야말로 철없이, 어설프게, 그리고 치열하게 음악을 한 적이 있었다. 감히 음악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내 안 어디에선가 객기가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음악이라는 영원한 동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재수생 시절, 밴드를 만들어 미친 듯 공연을 했던 추억이 있다. 비록 변변한 자작곡 하나 없는 카피 밴드였지만(후에 3곡의 자작곡을 보유하게 되었다. 우리 곡이라서 하는 이야기는 절대 맞지만, 모두 명곡이다) 당시 우리들의 열정은 대단했고,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몇 곡이든 연주하고, 노래 부르고, 또 미쳐버렸다. 내일 따위는 무엇이든,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모습들, 그리고 시간들. 참 사랑스럽던 날들이었다.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부서지듯 쏟아지는 드러밍, 그리고 묵직한 베이스가 전해주는 야릇한 편안함까지, 그땐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든 것이 치열했다. 공연의 대가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다만 시원한 맥주 한 잔이면 행복했다. 우리의 음악을 듣고 머리를 흔들어대는 관객들이 있다면,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우리는 젊었기에,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다.

 

마땅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닌 듯싶다. 잡지에도 실리고, 음반을 제작할 뻔 한 기회도 있었지만, 우리는 다만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에만 만족했다. 대학엘 들어가서도 주말을 통째로 바쳐야 했지만,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행복했다. 때로는 돈이 부족해 다섯 명이 라면 두 개를 나눠 먹으며 연습하기도 했다. 대신 단무지만 무한리필. 그렇게 연습하고, 무대에 오르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틀려도 그만, 실수해도 그만, 반응이 시큰둥해도 그만이었다. 그렇게 즐거웠다.

 

다시 그때와 같은 행복 혹은 치열함을 경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꽤 괜찮은 시간을 추억으로 만들 수 있었다. 각자 생각하는 것, 사는 것, 바라보는 것이 모두 달라진 지금에도, 우리는 오직 음악으로, 당시의 열정으로 다시금 하나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음악은 우리에겐 신기루가 아닌 오아시스였던 셈이다.

 

군대엘 가야 했다. 밴드는 자연스레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걱정하지 않았다. 누구 하나 제대 후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언젠가 다시 함께 무대에 오를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제대 후 그렇게 당연한 것처럼 우리는 다시 공연을 했다. 무뎌진 칼날을 다시 갈아,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세상을 향해, 여전히 우리는 함께 하고 있음을, 여전히 우리는 음악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그렇게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책에서 김태원은 음악은 죽을 때까지 곁에 두는 것이지 결코 시작하거나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곤 음악을 자주 듣는다면, “그대는 음악 하는 사람이 맞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우리는 재수생 시절, 음악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 이전까지 듣고 있었던 음악을 함께 들은 것’ ‘부른 것뿐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음악이 멈춘 것 역시 아닐 것이다. 우리는 늘 음악과 함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린 우리에게 그룹 부활은 그야말로 전설이었다. 우리 밴드가 합주를 하던 연습실은 종로 6가 약국 사이를 뚫고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오래된 곳이었는데, 그 곳에서는 무명 시절 서태지가 연습을 했던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합주실 사장님의 주장은 물론, 그곳에서 연습하는 밴드 대부분이 알고 있었던 이야기이니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태지 음악의 근원 시나위, 그런 시나위와 함께 한국의 락을 이끌었던 부활. 어찌 경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언감생심 부활의 곡은 연습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물론 부활의 음악이 우리 밴드의 성격에 맞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부활을 30년 넘게 지켜온 리더, 김태원을 얼마 전 만날 수 있었다. 지금 나의 직업으로는 도저히 만날 인연이 없을 것 같았는데, 세상일이란 역시 알 수 없는 것. 그가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 다음, 그 일을 계기로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가 성사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에, 또한 시간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떨림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진정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었다.

 

그와의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 이후, 우연처럼 우리 밴드는 다시 공연을 상상하게 되었다. 그리곤 덥석 다시 공연을 하기로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렇다. 마음을 먹으면 나머지는 어떻게 해서든 이뤄진다.

 

책은 음악인 김태원, 락커 김태원 그리고 아빠이자 남편이자 한없이 여린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상처받고 때로는 상처를 주며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이자, 음악을 향한 변함없는 열정의 이야기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검증된 그의 탁월한 말솜씨만큼 그의 글 솜씨 역시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그 수면 아래에는 너무도 많은 상처와 고독과 절망과 그리고 희망이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이제 20152월 공연을 목표로 오랜만에 우리는 다시 뭉친다. 물론 이제 더 이상 청춘이 아니기에, 그리고 그만큼 세상의 짐을 짊어지고 있기에, 예전처럼 무지막지한 열정과 뜨거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10여 년 전과 지금, 달라지지 않은 것 하나가 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라는 것이다. 그것 하나로 끝! 이다.

 

내년이면 부활 결성 30주년이다. 그리고 나에겐 마지막 30대의 해이다. 마지막 30대를 우리들과 함께 무대에서 맞이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고맙다.

 

장르의 차이는 있겠지만, 음악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차 안에서, 출근길에, 혹은 술에 취해 노래방에서 어마무시하게 버럭 거리며 음악을 듣고 부르고 있다면, 또한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고, 어디에선가 들리는 음악 소리에 귀가 쫑긋해 진다면, 맞다. 그대는 음악 하는 사람이다.

 

음악 하는 사람, 김태원의 이야기. 나쁘지 않았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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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 걸작선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곽영미 외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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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침묵할 줄 아는 탁월한 재능이 있어, 왓슨. 그래서 자네가 내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되는 걸세. 정말이지 이야기할 친구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네. 나 자신의 생각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으니까 말일세.”

- <입술이 비틀린 사나이>

 

새로운 이야기들이 홍수를 이루는 지금이다. 세상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그들의 치열한 노력 덕분에 많은 독자들이 행복해하며 오늘도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있어, 새삼 고전의 힘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명탐정이란 단어와 뗄 수 없는 존재, ‘셜록 홈스이다. 150년가량의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탐정이자, 가장 많이 다른 분야로 재탄생된 주인공. 지금도 영화와 연극, 드라마 등 수많은 장르를 통해 리메이크되는 불멸의 캐릭터, 그가 바로 홈스인 것이다.

 

홈스는 또한, 내 유년시절의 추억을 만들어준 캐릭터이기도 하다. 1980년대~90년대, 유년기를 통과한 이들에게 홈스는, 뤼팽과 함께 소중한 추억의 한 부분으로 각인되어 있다. 아마도 일본 출판계의 영향이지 않았나 싶은데, 어린 시절 홈스와 뤼팽은 나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통과의례 중 하나였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아동용으로 만들어진 홈스 시리즈와 역시 청소년용으로 만들어진 뤼팽 시리즈를 섭렵한 바 있다. 지금도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오래된 한옥 집 다락방에는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그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번역을 통해 홈스를 만난 것은 아마도 이 책이 처음이지 않나 싶다. 코카인에 심취되어 방안을 하얀 연기로 가득 채우는 모습 따위가 깔끔하게 삭제된, 아주 건전한(!) 청소년용으로 만났던 홈스와 본래 그의 모습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 번역에 충실했다면, 당시 영국의 시대적 분위기를 알 길 없었던 아이들이 코카인을 담배 태우듯 즐기는 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솔직히, 지나친, 쓸데없는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어느 아이가 책을 통해 알게 된 코카인을 태우기 위해 노력하겠는가! 더구나 한국에서!

 

홈스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그의 이야기는 친구인 왓슨을 통해 소개된다. 친구이자,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동원(!)되기도 하는 파트너인 왓슨은 충실히 홈스의 활약을 기록하고 또한 소개한다. 얼핏 생각하면 왓슨을 단순한 홈스의 조수 정도로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왓슨이 없었다면 홈스의 수많은 활약상은 단지 베이커가 221B번지 내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일본을 위시로 한 수많은 추리소설,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 출판계에 쏟아지고 있다. 하드보일드, 스파이물, 스릴러, 본격, 신본격 추리소설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독자들을 행복케 한다. 아울러 아가사 크리스티 등 옛 고전들이 새롭게 번역되어 소개되는 모습도 흥미롭다. 미스 마플과 엘큘 포와로의 부활에 기뻐하는 팬들도 적지 않으리라.

 

하지만 여전히 명탐정의 대명사, 진정한 추리소설의 전설은 셜록 홈스로 귀결된다. 제아무리 조금은 과장된 그의 모습이나,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억지스럽다고 느낄지 모르는 추리 과정에 대해 비판한다 하더라도, 홈스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탐정이라는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그만큼 그의 매력이 치명적이기 때문이고, 또한 무엇 하나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 이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소리 없는 불만의 표현일지 모른다. 경찰은커녕 왓슨조차 영문을 몰라 하는 사이, 이미 범인을 확신한 홈스가 자신의 추리를 설명하는 장면, 이 장면은 이후 수많은 후배 탐정들에 의해 재탄생되고 있는 추리소설의 핵심이다. 여기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홈스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11개의 단편과 장편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가 수록되어 있다. 어느 작품 하나 지나칠 수 없는 명작이다. 아울러 홈스의 탁월한 추리력과 그의 쇼맨십(!)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들이기도 하다.

 

홈스는 저자 코난 도일에 의해 장렬한 최후를 맞았지만, 팬들의 뜨거운 성원에 다시 부활한 불멸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홈스를 탄생시킨 코난 도일마저 그의 죽음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을 정도로, 그 시대에도 홈스는 열광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꼬마 탐정들의 우상이 되고 있다.

 

진실에 목말라 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미스터리, 추리소설은 더욱 인기를 얻게 된다. 온갖 음모론이 가득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당연히 진실을, 알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데 추리소설은 무시할 수 없는 큰 역할을 맡고 있다.

 

때문에 홈스의 활약은 어쩌면 지금도 현재일지 모른다. 코카인 혹은 담배로 온 방안을 뿌옇게 만드는 그 시간, 그 과정에서 명쾌히 사건의 진실을 찾아내는 전설의 명탐정. 고전 추리소설의 절정이자, 이 후 쏟아지는 수많은 서브 장르에 영감을 준, 셜록 홈스의 이름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구상에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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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크로아티아
정유선 지음 / 뮤진트리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먹고 살기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항상 본업은 있었지만, 그것으로 생계를 꾸리기엔 빡빡했다. , 다양하다고는 하지만 서른이 넘고 부터는 주로 로 빌어먹는 일들이 많았다.

 

2009년 여름 즈음, 경남 하동의 명소, 송림공원을 찾아 그 곳에서 열리는 체험프로그램을 취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이 겹쳐 결국 취재일 새벽에 서울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서울을 벗어나자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점차 줄어들었고, 어느 새 국도에 접어드는 순간, 온전히 홀로였다.

 

꽤 단단한 장마철이었다. 어느 새 내리는 비는 점점 거세지고 곧 눈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졌다. 그런데, 행복했다. 굳이 음악을 틀지 않아도, 굳이 동행이 없어도.

 

캄캄한 밤, 도로를 온전히 홀로 달리고 있는 느낌. 그리고 지금은 힘겹지만, 무언가 좋은 일들이 별안간 나에게도 닥쳐 올 것 같은 막연한 설렘까지.

 

그해 여름 밤 하동으로 가는 길은 나에게 선물같이 주어진 행복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이 아닌 여행으로 이름 붙였다.

 

<아이와 함께, 크로아티아>는 마흔 한 살 워킹맘이 다섯 살 딸과 떠난 33일의 크로아티아 여행기다. 더 미루면 인생마저 미뤄질까, 큰 맘 먹고 떠난 여행에서 사랑스런 두 모녀는 같은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바그너가 그랬던가,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고. 뒤보다는 앞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세상. 내안의 생명을 확인하는 여행을 훌쩍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 두 살이 되기 위해 무럭 자라고 있는 딸. 언젠가 나도 이 아이와 아주 예쁜 곳을 찾아 한 발 한 발 같은 보폭으로 여행하고 싶다. 인생도, 사랑도, 아픔도, 추억도, 모두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며, 그렇게 대화하고 싶다.

 

그 해 여름, 하동송림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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