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 걸작선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곽영미 외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자네는 침묵할 줄 아는 탁월한 재능이 있어, 왓슨. 그래서 자네가 내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되는 걸세. 정말이지 이야기할 친구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네. 나 자신의 생각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으니까 말일세.”

- <입술이 비틀린 사나이>

 

새로운 이야기들이 홍수를 이루는 지금이다. 세상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그들의 치열한 노력 덕분에 많은 독자들이 행복해하며 오늘도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있어, 새삼 고전의 힘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명탐정이란 단어와 뗄 수 없는 존재, ‘셜록 홈스이다. 150년가량의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탐정이자, 가장 많이 다른 분야로 재탄생된 주인공. 지금도 영화와 연극, 드라마 등 수많은 장르를 통해 리메이크되는 불멸의 캐릭터, 그가 바로 홈스인 것이다.

 

홈스는 또한, 내 유년시절의 추억을 만들어준 캐릭터이기도 하다. 1980년대~90년대, 유년기를 통과한 이들에게 홈스는, 뤼팽과 함께 소중한 추억의 한 부분으로 각인되어 있다. 아마도 일본 출판계의 영향이지 않았나 싶은데, 어린 시절 홈스와 뤼팽은 나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통과의례 중 하나였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아동용으로 만들어진 홈스 시리즈와 역시 청소년용으로 만들어진 뤼팽 시리즈를 섭렵한 바 있다. 지금도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오래된 한옥 집 다락방에는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그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번역을 통해 홈스를 만난 것은 아마도 이 책이 처음이지 않나 싶다. 코카인에 심취되어 방안을 하얀 연기로 가득 채우는 모습 따위가 깔끔하게 삭제된, 아주 건전한(!) 청소년용으로 만났던 홈스와 본래 그의 모습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 번역에 충실했다면, 당시 영국의 시대적 분위기를 알 길 없었던 아이들이 코카인을 담배 태우듯 즐기는 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솔직히, 지나친, 쓸데없는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어느 아이가 책을 통해 알게 된 코카인을 태우기 위해 노력하겠는가! 더구나 한국에서!

 

홈스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그의 이야기는 친구인 왓슨을 통해 소개된다. 친구이자,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동원(!)되기도 하는 파트너인 왓슨은 충실히 홈스의 활약을 기록하고 또한 소개한다. 얼핏 생각하면 왓슨을 단순한 홈스의 조수 정도로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왓슨이 없었다면 홈스의 수많은 활약상은 단지 베이커가 221B번지 내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일본을 위시로 한 수많은 추리소설,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 출판계에 쏟아지고 있다. 하드보일드, 스파이물, 스릴러, 본격, 신본격 추리소설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독자들을 행복케 한다. 아울러 아가사 크리스티 등 옛 고전들이 새롭게 번역되어 소개되는 모습도 흥미롭다. 미스 마플과 엘큘 포와로의 부활에 기뻐하는 팬들도 적지 않으리라.

 

하지만 여전히 명탐정의 대명사, 진정한 추리소설의 전설은 셜록 홈스로 귀결된다. 제아무리 조금은 과장된 그의 모습이나,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억지스럽다고 느낄지 모르는 추리 과정에 대해 비판한다 하더라도, 홈스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탐정이라는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그만큼 그의 매력이 치명적이기 때문이고, 또한 무엇 하나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 이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소리 없는 불만의 표현일지 모른다. 경찰은커녕 왓슨조차 영문을 몰라 하는 사이, 이미 범인을 확신한 홈스가 자신의 추리를 설명하는 장면, 이 장면은 이후 수많은 후배 탐정들에 의해 재탄생되고 있는 추리소설의 핵심이다. 여기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홈스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11개의 단편과 장편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가 수록되어 있다. 어느 작품 하나 지나칠 수 없는 명작이다. 아울러 홈스의 탁월한 추리력과 그의 쇼맨십(!)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들이기도 하다.

 

홈스는 저자 코난 도일에 의해 장렬한 최후를 맞았지만, 팬들의 뜨거운 성원에 다시 부활한 불멸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홈스를 탄생시킨 코난 도일마저 그의 죽음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을 정도로, 그 시대에도 홈스는 열광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꼬마 탐정들의 우상이 되고 있다.

 

진실에 목말라 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미스터리, 추리소설은 더욱 인기를 얻게 된다. 온갖 음모론이 가득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당연히 진실을, 알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데 추리소설은 무시할 수 없는 큰 역할을 맡고 있다.

 

때문에 홈스의 활약은 어쩌면 지금도 현재일지 모른다. 코카인 혹은 담배로 온 방안을 뿌옇게 만드는 그 시간, 그 과정에서 명쾌히 사건의 진실을 찾아내는 전설의 명탐정. 고전 추리소설의 절정이자, 이 후 쏟아지는 수많은 서브 장르에 영감을 준, 셜록 홈스의 이름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구상에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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