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박한 기적 - 마더 테레사의 삶과 믿음
T. T. 문다켈 지음, 황애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2014년 8월, 대한민국은 참으로 오랜만에 ‘위안과 치유’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바로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이 있었던 것이다. 방한 기간 동안 교황이 보여주었던 것, 우리에게 전해준 것은, 그동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잃어버렸던, 사랑과 용서, 위로와 연대, 타인을 위한 기도와 눈물이었다.
한 학자가 지인의 말을 빌려 ‘이제 교회오빠의 시대는 갔다. 성당오빠의 시대가 왔다’고 표현한 것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는 가히 전 세계적이다. 바티칸을 찾는 이들의 수가 과거보다 세 배 이상 늘었고, 교황의 어록을 비롯한 관련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교황의 실천은 분명, 지금 이 시대 민중들이 바라마지 않던 모습이었다. 교황은 그것을 말 뿐만이 아닌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다.
내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에 관련된 책이 서너 권 보인다. 하지만 그의 방한 중에는 어쩐지 읽고 싶지 않았다. 교황을 바라보고 느끼는 나의 감정을, 적어도 방한 중에는 다른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그를 느낀 후, 그의 책을 읽어도 괜찮으리라 여겼다. 그리고 이제 그가 한국을 떠난 지금, 차근차근 한 권씩 읽어나갈 생각이다.
종교의 힘, 종교의 미덕은 무엇보다 사랑의 실천이라고, 그렇게 나는 믿고 이해하고 있다. 무신론자인 내가 종교의 심오한 철학과 가치를 논할 주제는 물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비극과 학살, 무지와 편견, 차별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종교뿐이다. 종교의 사랑, 그 실천만이 과거의 잘못을 용서받고 또한 치유할 수 있다고, 그렇게 나는 믿는다.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한 세계인들의 사랑과 지지는 한낱 연예인, 정치인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교황은 세속적인 목표로 자신의 삶을 이끌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그보다 더한 권력 앞에서도, 눈과 손길은 오직 약한 자들을 향해 있다. 광화문 시복식 당시 유민아빠 김영오 씨의 손을 잡아준 것은, 그 어떤 천박한 수구세력이나 일베와 같은 정신이상자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지극히 숭고한 실천의 행위였다. 권력 앞에 무참히 짓밟힌 약자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자신이 곧 그들임을, 그들과 함께 함이 자신의 역할이자 임무임을 전 세계에 알린 무언의 메시지였다.
그동안 한국의 일부 종교 세력들에 대한 비판이 멈추지 않았다. 개신교를 비롯해 불교, 천주교 어느 종교라도 예외는 아니다. 도저히 종교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천박하고, 또한 금전과 권력에 추악하게 집착하고 기생해온 한국 종교는 분명, 종교로서의 역할과 가치, 철학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수많은 평신도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일부 종교인들은, 그리고 종교지도자라는 이들은 그렇게 썩어가고 있고, 이미 도려낼 수 없을 정도로 썩었다.
온갖 더러운 말들이 교회에서 터져 나오고, 평범한 시민들도 생각하기 어려운, 역사와 민족을 망각한 무지한 행동들이 다름 아닌 종교인들로부터 비롯된다. 물론 그들이 절대 다수는 아닐 것이지만, 무시 못 할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렇게 타락한 종교인과 종교단체들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들에게 프란치스코의 메시지는 얼마나 큰 위안을 주었는가. 그의 방한은 앞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를 남기며,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 분명하다.
성직자에게 고결함과 숭고함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오히려 그들이 권력의 충실한 하수인이 되어, 권력이 하고픈 말을 대신 전달하는 앵무새로 전락해버린 지금, 우리는 섣부른 기대를 이미 감추었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는 그 어떤 축복보다 더한 의미가 될 수밖에 없다.
마더 테레사의 삶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인도의 빈민가, 구더기와 쥐들로 살이 썩어가고 떨어져나간, 아무도 그들의 삶과 죽음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그런 버림받은 이들에게 테레사 수녀는 손길을 내밀었다. 아무도 모르게 남을 도우라는 어머니의 말을 평생 가슴에 품고, 또한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평생을 가난한 이와 함께 한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생전 즐겨 낭송했고, 또한 존경해마지 않았던 이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이고 그의 기도문이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가난한 자와 함께 했던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온 교황은, 지금까지 현재의 교황이 최초이다.
책은 마더 테레사의 삶과 믿음을 담담한 어조로, 그 어떤 과장과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고 그대로 담았다. 수녀님에 대한 너무도 솔직한 이야기는 오히려 많은 감동을 전해준다. 자신이 지극히 간절하게 기도하고, 타인에게 지극히 다가가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리라 믿었던, 성모 마리아께서 도와주시리라 믿었던 테레사 수녀.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기적이, 자신의 힘이 아닌 수많은 이들의 기도와 또한 하나님의 전능하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겸손히 받아들일 줄 알았던, 그런 분이었다.
담담하고, 솔직하고, 말 그대로 소박한 내용의 이 책은 1998년 인도 최고의 전기물로 선정되어, 권위 있는 ‘카카세리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어떤 상을 떠나, 마더 테레사의 소박하지만 위대한 기적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속세에 찌든 우리들에게 샘물이 될 것이다.
마더 테레사의 묘지 대리석 위에 새겨진 문구, “내가 너희를 사랑했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우리는 이 메시지를 얼마나 충실히 따르며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끝끝내 무너지게 만드는, 그렇게 비정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마더 테레사의 조용한 외침이 유독 와 닿는 이유는, 분명하리라. 그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추천사를 쓴 <야생초 편지>의 저자, 바우 황대권은 “무언가 좋은 일을 할 때면 아무도 모르게 하라, 마치 바다에 돌 하나를 던지듯.” 이라는, 테레사 수녀의 어머니가 늘 딸에게 말했던 이야기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물론 심심풀이로 또는 장난으로 바닷물에 돌을 던지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돌 하나를 던지더라도 자신의 온 존재를 걸고 던지면 해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지극함과 무한한 열정이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외면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세상이란 바다 속에 끊임없이 작은 돌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파문과 기적을 낳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을 위한 기도가 점점 들리지 않는 이 시대. 프란치스코 성인의 아름다운 기도를, 가끔은 떠올려야겠다. 그리고 나만의 작은 조약돌을 저 무심한 바다에 던져봐야겠다. 비록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겠지만 말이다.
주님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살다 죽어가는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을 통하여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우리의 이해와 사랑을 통하여
그들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소서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마음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