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에서 기적으로 - 김태원 네버엔딩 스토리
김태원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사람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까지, 삼십 년이 걸렸다. 모자람이 완성의 실마리임을 증명하고 싶다. 부족하기에 완성되어질 수 있다는 표본이고 싶다

-16p

 

그야말로 철없이, 어설프게, 그리고 치열하게 음악을 한 적이 있었다. 감히 음악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내 안 어디에선가 객기가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음악이라는 영원한 동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재수생 시절, 밴드를 만들어 미친 듯 공연을 했던 추억이 있다. 비록 변변한 자작곡 하나 없는 카피 밴드였지만(후에 3곡의 자작곡을 보유하게 되었다. 우리 곡이라서 하는 이야기는 절대 맞지만, 모두 명곡이다) 당시 우리들의 열정은 대단했고,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몇 곡이든 연주하고, 노래 부르고, 또 미쳐버렸다. 내일 따위는 무엇이든,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모습들, 그리고 시간들. 참 사랑스럽던 날들이었다.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부서지듯 쏟아지는 드러밍, 그리고 묵직한 베이스가 전해주는 야릇한 편안함까지, 그땐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든 것이 치열했다. 공연의 대가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다만 시원한 맥주 한 잔이면 행복했다. 우리의 음악을 듣고 머리를 흔들어대는 관객들이 있다면,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우리는 젊었기에,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다.

 

마땅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닌 듯싶다. 잡지에도 실리고, 음반을 제작할 뻔 한 기회도 있었지만, 우리는 다만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에만 만족했다. 대학엘 들어가서도 주말을 통째로 바쳐야 했지만,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행복했다. 때로는 돈이 부족해 다섯 명이 라면 두 개를 나눠 먹으며 연습하기도 했다. 대신 단무지만 무한리필. 그렇게 연습하고, 무대에 오르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틀려도 그만, 실수해도 그만, 반응이 시큰둥해도 그만이었다. 그렇게 즐거웠다.

 

다시 그때와 같은 행복 혹은 치열함을 경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꽤 괜찮은 시간을 추억으로 만들 수 있었다. 각자 생각하는 것, 사는 것, 바라보는 것이 모두 달라진 지금에도, 우리는 오직 음악으로, 당시의 열정으로 다시금 하나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음악은 우리에겐 신기루가 아닌 오아시스였던 셈이다.

 

군대엘 가야 했다. 밴드는 자연스레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걱정하지 않았다. 누구 하나 제대 후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언젠가 다시 함께 무대에 오를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제대 후 그렇게 당연한 것처럼 우리는 다시 공연을 했다. 무뎌진 칼날을 다시 갈아,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세상을 향해, 여전히 우리는 함께 하고 있음을, 여전히 우리는 음악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그렇게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책에서 김태원은 음악은 죽을 때까지 곁에 두는 것이지 결코 시작하거나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곤 음악을 자주 듣는다면, “그대는 음악 하는 사람이 맞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우리는 재수생 시절, 음악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 이전까지 듣고 있었던 음악을 함께 들은 것’ ‘부른 것뿐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음악이 멈춘 것 역시 아닐 것이다. 우리는 늘 음악과 함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린 우리에게 그룹 부활은 그야말로 전설이었다. 우리 밴드가 합주를 하던 연습실은 종로 6가 약국 사이를 뚫고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오래된 곳이었는데, 그 곳에서는 무명 시절 서태지가 연습을 했던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합주실 사장님의 주장은 물론, 그곳에서 연습하는 밴드 대부분이 알고 있었던 이야기이니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태지 음악의 근원 시나위, 그런 시나위와 함께 한국의 락을 이끌었던 부활. 어찌 경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언감생심 부활의 곡은 연습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물론 부활의 음악이 우리 밴드의 성격에 맞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부활을 30년 넘게 지켜온 리더, 김태원을 얼마 전 만날 수 있었다. 지금 나의 직업으로는 도저히 만날 인연이 없을 것 같았는데, 세상일이란 역시 알 수 없는 것. 그가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 다음, 그 일을 계기로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가 성사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에, 또한 시간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떨림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진정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었다.

 

그와의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 이후, 우연처럼 우리 밴드는 다시 공연을 상상하게 되었다. 그리곤 덥석 다시 공연을 하기로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렇다. 마음을 먹으면 나머지는 어떻게 해서든 이뤄진다.

 

책은 음악인 김태원, 락커 김태원 그리고 아빠이자 남편이자 한없이 여린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상처받고 때로는 상처를 주며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이자, 음악을 향한 변함없는 열정의 이야기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검증된 그의 탁월한 말솜씨만큼 그의 글 솜씨 역시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그 수면 아래에는 너무도 많은 상처와 고독과 절망과 그리고 희망이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이제 20152월 공연을 목표로 오랜만에 우리는 다시 뭉친다. 물론 이제 더 이상 청춘이 아니기에, 그리고 그만큼 세상의 짐을 짊어지고 있기에, 예전처럼 무지막지한 열정과 뜨거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10여 년 전과 지금, 달라지지 않은 것 하나가 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라는 것이다. 그것 하나로 끝! 이다.

 

내년이면 부활 결성 30주년이다. 그리고 나에겐 마지막 30대의 해이다. 마지막 30대를 우리들과 함께 무대에서 맞이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고맙다.

 

장르의 차이는 있겠지만, 음악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차 안에서, 출근길에, 혹은 술에 취해 노래방에서 어마무시하게 버럭 거리며 음악을 듣고 부르고 있다면, 또한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고, 어디에선가 들리는 음악 소리에 귀가 쫑긋해 진다면, 맞다. 그대는 음악 하는 사람이다.

 

음악 하는 사람, 김태원의 이야기. 나쁘지 않았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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