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세계화 - 대안신서 3
헬레나 노르베리-호지+ISEC 지음, 이민아 옮김 / 따님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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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릴 적 동네 앞 구멍가게 앞에서는 어르신들이 내기 장기를 두고 계셨고, 콩나물 500원 어치, 두부 한 모, 그리고 간혹 힘든 가장들을 위한 소주 한 병과 오징어 한 마리 외상(!) 세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 동네의 온갖 소문들을 전해들을 수 있었고, 당장 돈이 없어도 긴급한 상황에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그것이 라면 한 봉지였더라도 말이다)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것이 우리 동네 구멍가게였다.

지금은 그러나 그런 아지트를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도시에서는 말이다. 우리는 주변에 대형 할인마트와 백화점이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무수히 많은 소매점들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다. 사라지는 것은 소매점만이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만들어진 지역 공동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아울러 지역 경제 역시 말이다.

우리에게「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로 잘 알려진 스웨덴 출신의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와 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ISEC)가 함께 펴낸 「허울뿐인 세계화」는 세계화와 자유무역,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대형화, 획일화를 폭로하고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가치와 생명이 사라지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세계화라는 말을 듣게 된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 오랜 군사독재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직후가 아닐까. 어느 정도 경세 성장을 이루었다는 자신감과 이제는 세계를 상대로 크게 놀아보고 싶다는 자만심이 함께 했던 그 때. 물론 그러한 턱도 없는 자만심은 IMF라는 역풍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또 다시 고통의 시간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 이후부터 우리는 글로벌 마인드, 국제경쟁력, 글로벌 스탠더드 등 세계화에 동참하려는 필사의 몸부림을 펼쳐왔다. 주위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책은 말하고 있다. 세계화라는 것,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다국적 기업을 포함한 극소수에게 편중되어 있는 부와 이에 상대적으로 대다수 사람들이 한정된 자원으로 겨우 생존해나가는 세계. 이미 커질 대로 커진 기업을 온갖 특혜와 지원,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더욱 거대한, 결국에는 국가조차 감당할 수 없는 괴물로 만드는 세계. 모든 이들을 같은 방식, 같은 생각으로 살도록 조종하고, 결국 대기업의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시키는 언론매체와 수많은 광고들. 자본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이동은 절대 허락할 수 없는 세계.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는 국가와도 소송을 걸고, 그 소송이 결국 기업의 승리로 끝나는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화된 지구의 모습이다.

미국의 초대형 기업인 월마트 체인점이 하나 생겨난 후 5년이 지나면 주위 반경 20마일(32킬로미터) 안에 있는 소매점의 매출이 평균 19%까지 줄어든다는 통계가 있다. 참고로 서울에서 인천까지의 거리가 약 30킬로미터다. 값싸고 질 좋은 다양한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대형할인마트가 생겨나는 데에는 이미 우리의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수송이 가능한 인프라 구축에 공공자금이 적지 않게 지원되기 때문이다. 대형할인마트까지 물건을 수송하기 위해 만든 도로, 항공 요금, 컴퓨터 시스템, 하나 못해 바코드로 물건을 신속하게 찍고 계산할 수 있는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공공 지원을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결코 싸다고만은 할 수 없지 않을까.

책은 세계화가 만들어 놓은 대형화의 어리석음과 거대한 부를 영원히, 그리고 더욱 더 부풀리기 위해 온갖 비리와 만행을 멈추지 않고 있는 극소수의 다국적 기업, 그리고 국민들의 세금을 대기업의 발전을 위해 쏟아 붓고, 그것이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라 떠들고 있는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어느 하나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다른 것이 없다.


책에는 과거 18세기에 정상인과 비정상인은 구분하는 방법을 개발한 최초의 정신병의사 이야기를 살고 있다. 18세기의 이야기가 아직도 절실한 까닭은 우리가 분명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걸레와 양동이를 버리고 수도꼭지를 잠가야 한다.      

“그는 진단할 사람을, 한쪽에는 수도꼭지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대걸레와 양동이가 있는 방에 가두었다. 그 다음 수도꼭지를 틀고 지켜보았다. 미쳤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대걸레와 양동이로 달려갔고, 정상으로 믿어지는 사람은 수도꼭지를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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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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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대회의 「선비답게 산다는 것」, 이용범의 「인생의 참 스승 선비」를 읽은 바 있다. 두 책의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통하는 무엇이 있었는데 이 책 역시 그윽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글을 쓸 때에는 저자의 탁월한 지식과 뛰어난 재능 역시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 한자 한자를 써나감에 있어 절대 소홀함이 없는 정성. 그것이 담겨 있지 않은 책은 저자가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명성을 가진 이라도 감동을 얻을 수 없다.


조선왕조를 비롯한 과거 역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일반 백성에게는 고려가 되었든 조선이 되었든, 고달픔은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이 양반이라는 귀족들은 백성을 수탈하며 호화로움을 누렸고, 결국 그렇게 백성들을 궁지로 몰아넣다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역사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책은 말하고 있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신분의 굴레 속에 꿈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깨끗한 삶으로 학문을 닦고 풍류를 즐겼던 이들, 그리하여 그 이름의 고결한 기품이 지금도 남아 전해지는 이들의 이야기. 지금처럼 ‘선비’라는 이름, ‘지성인’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쓰기 어려운 시대에 먼저 이 땅에 살다간 이들의 간결하고 티끌 없는 삶은 절로 존경의 마음을 갖게 한다.

그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 예술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함이 묻어 있던 이야기들. 마치 과거로의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저자의 친절하고도 해박한 지식이 담겨있는 설명은 마치 과거 인물들이 바로 옆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찌 물질문명의 발달을 인간 가치 추구와 행복의 척도로 삼을 수 있을까. 온갖 더러운 음모와 추태와 아귀다툼이 멈출 줄 모르는 이 시대. 과연 이 시대는 과거에 비해 진보한 것일까. 인간쓰레기들이 권력을 잡고, 힘없는 백성들을 끊임없이 수탈하며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 조선 왕조 당시 불의를 견디다 못해 모든 걸 버리고 산으로 계곡으로 숨어들어 자신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고자 했던 이들은 과연 지금 우리 시대를 본다면 무어라 할지. 온전한 영혼, 온전한 삶조차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이 미쳐버린 시대에 그들은 우리를 무어라 할지 궁금하다.

 

미쳐야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에 미치는가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권력 추구와 헛된 욕망, 부의 맹목적 숭배 등에 미친다면 그야말로 인간이길 포기하는 미친 이가 될 것이다. 저자의 의도는 무조건 미치라는 것이 아닌 정도에 미치라는 말일게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 후 자기 계발이나 경영과 관련하여 제목을 비슷하여 옮겨 쓰며, 마치 경제적 동물로 미치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이라는 듯이 떠들어대는 것을 볼 때, 저자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해 본다. 예나 지금이나 진정한 선비는 드물었다. 온갖 더러운 인간들이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기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종착역이 거의 보인다는 생각이다. 더 이상 타락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썩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하면 좋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를 맴돌았던 생각이다.

우리가 이렇게 세상을 망쳐놓고, 이제 어찌하면 좋을까. 선현들에게 간절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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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별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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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고등학교 내내 학업보다는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으리라 믿어왔고 행동했던 나는 결국 예상했던 수능 점수를 얻었고, 아무런 고민이나 생각 없이 점수에 맞추어 대학을 결정하고 원서를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꼴이었으나, 마땅히 가고 싶던 대학도 학과도 없던 나에게 낮은 점수 역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때 원서를 넣은 학교 중 한 곳에 문예창작학과에 지원했던 기억이 난다. 얼추 점수를 계산하고 합격 가능성을 타진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점수보다는 약간 높은 점수를 원하던 학교요, 학과였다. 문예창작이라, 글쟁이가 되겠다는 이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인생과 예술을 논하는 곳이 아닌가. 어불성설이었다. 내가 있기에는 말이다.

면접을 치르는 과정에서 당대의 이름을 날리던 소설가가 한 분 계셨다. 지금도 그의 명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 소설가는 나에게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지원한 학생들이 많았기에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고, 가장 간단하면서도 지원자의 내공이랄까, 혹은 문학적 소질을 탐색할 수 있는 적절한 질문이었으리라.

그때 생뚱맞게도 내 입에서 나온 책이라는 것이 바로 백범일지와 만화 슬램덩크였다. 문학을 하겠다는 사람에게서 나올만한 답이 아니었다. 소설가는 슬램덩크라는 만화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추억이지만, 난 그렇게 눈치도, 상식도 없는 천둥벌거숭이였다. 하지만 지금도 만약 내가 다시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다면 결국 같은 답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긴 한다. 물론 당연히 난 떨어졌다.

백범의 삶은 그야말로 한국 근현대사 자체라 할 수 있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자신의 본심은 어찌 되었든 존경하는 이로 백범을 꼽을 정도로 그는 어찌 보면 만만한 대상이기도 하고, 모두가 인정하는 스승이기도 하다. 이승만, 박정희를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차마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하는 보수나, 여운형, 장준하, 조봉암 등을 진심으로 우러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던 진보나 백범은 안전한 피난처가 되었고, 해방 후 귀국하여 백범이 보여준 방황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진 그는 영원한 구국의 표상이요, 하얀 눈길에 곧게 먼저 걸어간 발자국이 되었다.

몽양이나 죽산, 또는 장준하 선생에 대한 연구서적들에 비해 백범에 대한 자료와 서적은 월등히 많다. 한반도의 모든 이들은 백범을 알고 그를 존경한다. 하지만 정작 인간 김구의 아픔과 고독, 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자식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비로서의 슬픔을 담은 것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김별아의 ‘백범’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인 백범이 아닌 인간 김구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태산과 같은 모습으로 민족의 고통에 아파하고, 한반도의 온전한 독립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친 백범은 그러나, 당연하게도 아비와 어미의 죽음에 눈물 흘리고, 아내에게,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함을 서러워한 한 인간이었음을, 우리는 잊고 지내온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자니 분노를 넘어 슬픔이 다가온다.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1945년 8월15일을 건국절이라 떠드는 무리들. 이승만을 위한 무한한 찬양을 위해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무시하고 폄하하는 무리들. 그들이 과연 북한 역사의 정통성을 독점하고 있는 김일성, 김정일과 무엇이 다른가.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이었다고 다시 고치겠다는 무리들. 역사를 자신의 입맛대로 만들어 교육하겠다는 무리들. 그들이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일본의 우익 세력들과 무엇이 다른가. 고작 5년의 임기를 가지고 있는 정부가 50년의 역사를 바꾸려 하고 있다. 백범이 원했던 조국은 과연 지금의 모습이었을까.

먼저 가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혁명가들을 생각하며, 백범을 비롯한 수많은 거인들이 걸어간 길을 생각하며, 나 역시 쓰린 눈을 썩썩 비비게 된다. 우리는 여지없이 못난 후손이요, 또한 후손에게 부끄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강압적이고, 획일적인 애국심에 혐오감을 느끼지만, 그 보다는 공동체의 안녕과 행복 추구에 더욱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고 느끼지만, 적어도 백범이 빈 라덴과 같은 테러리스트였다고 떠들어대는 후손이 아님을 감사하며 오늘도 부끄럽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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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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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선 한 달이 넘게 걸린 독서 기간이 책이 어렵다거나 혹은 내가 정성을 기울여 읽어 발생한 것이 아님을 밝힌다. 그 사이 다른 매력적인 책들에게 정신이 팔렸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우선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독서 편력 과정을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흥미롭기만 하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 중엔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도 있고, 혹은 처음 접하는 이들도 있었다. 좋아하는 인물들은 반가웠고, 처음 접하는 이들도 새로웠다.

이 책은 다양한 책들을 아우르고 있다. 저자가 워낙 책을 좋아하고 또한 다독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처음 접하는 책들도 많았고 평소에 알고 있었지만 미처 손을 대지 못한 책들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일단 다양한 책들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유익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은 저자였다. 자신의 독서 편력을 인터뷰 대상들의 편력과 적절히 섞어가며 보여준 것은 저자의 의도이니 뭐라 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인터뷰 대상보다 빈번하다 싶을 만큼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어떤 저자의 어떤 책을 읽고 어떠한 느낌과 영향을 받았다면, 자신은 그 저자의 다른 어떤 책을 통해 어떠한 이미지를 얻었다. 등등. 이러한 것들의 반복은 나를 지치게 했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저자에게 일정한 반감과 우스움을 자아내게 했다.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을 비웃게 만드는 것은 겸손과는 다른 문제다.


물론 저자의 다양한 독서 편력은 범인들의 일상적인 모습과는 다른 개성이 될 수 있고, 많은 책을 읽는다는 것 역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니, 저자의 지식과 다소 생경스런 표현들도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적절치 못한 모습이었다. 책의 부제는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이 내용은 정작 정혜윤의 독서 편력, 또는 내가 읽은 책들을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읽었나 정도가 어울리다 생각할 정도였다.

책에는 아름다운 문구가 많았고, 생각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았다. 다양한 책들의 소개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도 많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굳이 자신의 다독을 뽐낸다고밖에 할 수 없는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없다. 독백과도 같은 수준의 자기 고백이나 해석, 평가를 읽고 싶지도 않다.


어떤 이가 이 책의 서평에서 지승호와 저자를 비교한 것을 읽은 바 있다. 잘못된 비교다. 지승호는 오랜 시간동안 인터뷰를 진행해 온 전문 인터뷰어다. 저자는 PD인 것으로 알고 있다. 더구나 지승호의 인터뷰 대상과 저자의 인터뷰 대상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의도는 다분히 다르다. 사회적 인터뷰 그리고 개인적 만남 정도. 수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지승호에 대해 조금 더 말하자면 그의 인터뷰집을 거의 읽은 입장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절제할 수 있다. 그게 큰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 중 몇몇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좋은 책을 소개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하지만 저자가 이와 같은 성격의 책을 다시 펼쳐냈을 때 내가 선택할 것 같지는 않다. 저자의 홀로 즐기기가 다함께 생각하기로 바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물론 저자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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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 푸른숲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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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히 어르신들이 말한다. 너희들은 정말 살기 좋은 시대에 태어나 배고프고 무서운 전쟁을 겪지 않아도 되는 ‘복’받은 아이들이라고. 참고로 난 7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

맞는 말씀이다. 어르신들이, 그것도 이 땅에 태어나 지금까지 버티고 버티며 살아온 어르신들이 보기에 지금 이 시대는 태평성대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기도 하다. 지금 이 시대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속도로 붕괴되어가고 있고, 자연의 파괴, 빈곤의 무한 반복, 경쟁을 통한 타자의 배제 혹은 살인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태연히 벌어지고 있는 살벌한 정글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탄생과 지금까지의 발전, 혹은 그냥 오늘까지 이어져온 과정을 본다면 흔히 경제인들이 마치 자랑처럼 지껄이는 “우리는 단 한 번도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시기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흔히 어르신들이 보기에 ‘철없고, 개념 없고, 싸가지 없어 보이는’ 지금 세대들 역시 정말 박 터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진중권의 글을 즐겨 읽는 사람으로서 이 책은 적어도 진중권을 “단순히 말 빨과 글 빨로 어설프게 행세하는 예의 없는 지식인 흉내”정도로 치부할 수 없음을 알게 해 준다. 그는 분명 행동하는 지식인(이 당연한 말이 왜 이 땅에서는 무슨 커다란 명예인 것처럼 들릴 정도인가)이고, 약자와 함께하는 진정한 의미의 글쟁이, 그리고 확성기이다.

물론 말 빨로 치면 유시민을 비롯하여 몇 몇 지식인들이 더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유시민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는 우를 범했고, 스스로 무너졌다. 그리고 다른 지식인들 역시 행동하기보다는 골방에 틀어박혀 온갖 날선 단어들의 생산으로 자위행위에만 집착한 면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진중권은 다르다. 그가 빨갱이건, 혹은 또라이건 말이다. 그만큼 우리는 행동하는 이들을 그리워한 것이다.

시청 광장과 청계천에 촛불이 넘실거릴 때 쉽사리 접근할 수 있었던 지식인들은 많지 않았다. 이른 바 보수를 자처하는 자칭 우익들은 두려움과 또는 평가 절하로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평소 진보를 외치고 정의를 떠들던 인간들 역시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곳에서 인터넷으로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고,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네티즌에게 전달한 이가 바로 진중권이었다. 그는 급기야 자신이 경찰에 체포되어 닭장차에 잡혀가는 상황에서도 중계를 멈추지 않았다. 살아있는 민주주의 교육을 직접 보여준 셈이다.

민주화 투쟁, 노동 투쟁 등을 통해 얻은 고난과 상처를 밑천삼아 자신들이 그토록 저주했던 기득권 세력과 사실상의 연합을 이룬 소위 민주화 세력의 지도자들과 자신의 얄팍한 지식을 바탕으로 권력과 명예의 전당에 오르려 삽질을 마다하지 않았던 수많은 지식인들 사이에 진중권이 돋보이는 이유다.

여기까지 보자면 내가 진중권 팬클럽 회장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절대 아니다. 엄정화 이후 팬레터 한 장 써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다만 나는 지식인이, 이 땅의 지식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중권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이문열이 말한 대로 검도 1단인 주제에 5단들에게 덤비는 아마추어, 혹은 사이비 지식인이라고 치자. 그리고 그의 지식이 SKY의 지식인들과 조중동의 Pen들과 비교했을 때 수준차이가 있다고 치자.(물론 절대 아니지만. 난 지금까지 진중권에게 논리에 맞게, 상식적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가. 그는 자신의 지식이 50이라면 50을 몽땅 털어 행동으로,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이, 위치가 100이라 느끼는 인간들은 그 10, 20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게 중요한 차이라는 것이다.(그들이 정말 100이라고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언젠가 꼭 한 번 만나 진지하게 농담을 주고받고 싶은 지식인. 그가 진중권이다. 앞으로도 그 싸가지 변치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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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 2009-01-19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촛불집회현장에서 밤새면서 중계하시고 직접 발로뛰시는 모습에 굉장히 감동받았습니다.다른 이야기지만.
하두 인기가 좋으셔서 사람들이 몇백이 모여서 사진찍고싸인해달라고 하는데도 피곤한 표정없으시더라구요. 아무튼 정말 그 많은지식들과 말씀 하시는 모습들을 배우고 싶더라구요!ㅎㅎㅎ아직 책이 좀 어렵게다가와서 다 읽지못했지만 차근차근 다 읽어보려구요!

메틀키드 2009-01-23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다른 저서들도 충분히 읽어볼만 합니다~~차근차근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