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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세계화 - 대안신서 3
헬레나 노르베리-호지+ISEC 지음, 이민아 옮김 / 따님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동네 앞 구멍가게 앞에서는 어르신들이 내기 장기를 두고 계셨고, 콩나물 500원 어치, 두부 한 모, 그리고 간혹 힘든 가장들을 위한 소주 한 병과 오징어 한 마리 외상(!) 세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 동네의 온갖 소문들을 전해들을 수 있었고, 당장 돈이 없어도 긴급한 상황에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그것이 라면 한 봉지였더라도 말이다)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것이 우리 동네 구멍가게였다.
지금은 그러나 그런 아지트를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도시에서는 말이다. 우리는 주변에 대형 할인마트와 백화점이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무수히 많은 소매점들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다. 사라지는 것은 소매점만이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만들어진 지역 공동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아울러 지역 경제 역시 말이다.
우리에게「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로 잘 알려진 스웨덴 출신의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와 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ISEC)가 함께 펴낸 「허울뿐인 세계화」는 세계화와 자유무역,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대형화, 획일화를 폭로하고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가치와 생명이 사라지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세계화라는 말을 듣게 된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 오랜 군사독재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직후가 아닐까. 어느 정도 경세 성장을 이루었다는 자신감과 이제는 세계를 상대로 크게 놀아보고 싶다는 자만심이 함께 했던 그 때. 물론 그러한 턱도 없는 자만심은 IMF라는 역풍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또 다시 고통의 시간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 이후부터 우리는 글로벌 마인드, 국제경쟁력, 글로벌 스탠더드 등 세계화에 동참하려는 필사의 몸부림을 펼쳐왔다. 주위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책은 말하고 있다. 세계화라는 것,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다국적 기업을 포함한 극소수에게 편중되어 있는 부와 이에 상대적으로 대다수 사람들이 한정된 자원으로 겨우 생존해나가는 세계. 이미 커질 대로 커진 기업을 온갖 특혜와 지원,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더욱 거대한, 결국에는 국가조차 감당할 수 없는 괴물로 만드는 세계. 모든 이들을 같은 방식, 같은 생각으로 살도록 조종하고, 결국 대기업의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시키는 언론매체와 수많은 광고들. 자본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이동은 절대 허락할 수 없는 세계.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는 국가와도 소송을 걸고, 그 소송이 결국 기업의 승리로 끝나는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화된 지구의 모습이다.
미국의 초대형 기업인 월마트 체인점이 하나 생겨난 후 5년이 지나면 주위 반경 20마일(32킬로미터) 안에 있는 소매점의 매출이 평균 19%까지 줄어든다는 통계가 있다. 참고로 서울에서 인천까지의 거리가 약 30킬로미터다. 값싸고 질 좋은 다양한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대형할인마트가 생겨나는 데에는 이미 우리의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수송이 가능한 인프라 구축에 공공자금이 적지 않게 지원되기 때문이다. 대형할인마트까지 물건을 수송하기 위해 만든 도로, 항공 요금, 컴퓨터 시스템, 하나 못해 바코드로 물건을 신속하게 찍고 계산할 수 있는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공공 지원을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결코 싸다고만은 할 수 없지 않을까.
책은 세계화가 만들어 놓은 대형화의 어리석음과 거대한 부를 영원히, 그리고 더욱 더 부풀리기 위해 온갖 비리와 만행을 멈추지 않고 있는 극소수의 다국적 기업, 그리고 국민들의 세금을 대기업의 발전을 위해 쏟아 붓고, 그것이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라 떠들고 있는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어느 하나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다른 것이 없다.
책에는 과거 18세기에 정상인과 비정상인은 구분하는 방법을 개발한 최초의 정신병의사 이야기를 살고 있다. 18세기의 이야기가 아직도 절실한 까닭은 우리가 분명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걸레와 양동이를 버리고 수도꼭지를 잠가야 한다.
“그는 진단할 사람을, 한쪽에는 수도꼭지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대걸레와 양동이가 있는 방에 가두었다. 그 다음 수도꼭지를 틀고 지켜보았다. 미쳤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대걸레와 양동이로 달려갔고, 정상으로 믿어지는 사람은 수도꼭지를 잠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