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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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대회의 「선비답게 산다는 것」, 이용범의 「인생의 참 스승 선비」를 읽은 바 있다. 두 책의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통하는 무엇이 있었는데 이 책 역시 그윽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글을 쓸 때에는 저자의 탁월한 지식과 뛰어난 재능 역시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 한자 한자를 써나감에 있어 절대 소홀함이 없는 정성. 그것이 담겨 있지 않은 책은 저자가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명성을 가진 이라도 감동을 얻을 수 없다.


조선왕조를 비롯한 과거 역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일반 백성에게는 고려가 되었든 조선이 되었든, 고달픔은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이 양반이라는 귀족들은 백성을 수탈하며 호화로움을 누렸고, 결국 그렇게 백성들을 궁지로 몰아넣다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역사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책은 말하고 있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신분의 굴레 속에 꿈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깨끗한 삶으로 학문을 닦고 풍류를 즐겼던 이들, 그리하여 그 이름의 고결한 기품이 지금도 남아 전해지는 이들의 이야기. 지금처럼 ‘선비’라는 이름, ‘지성인’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쓰기 어려운 시대에 먼저 이 땅에 살다간 이들의 간결하고 티끌 없는 삶은 절로 존경의 마음을 갖게 한다.

그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 예술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함이 묻어 있던 이야기들. 마치 과거로의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저자의 친절하고도 해박한 지식이 담겨있는 설명은 마치 과거 인물들이 바로 옆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찌 물질문명의 발달을 인간 가치 추구와 행복의 척도로 삼을 수 있을까. 온갖 더러운 음모와 추태와 아귀다툼이 멈출 줄 모르는 이 시대. 과연 이 시대는 과거에 비해 진보한 것일까. 인간쓰레기들이 권력을 잡고, 힘없는 백성들을 끊임없이 수탈하며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 조선 왕조 당시 불의를 견디다 못해 모든 걸 버리고 산으로 계곡으로 숨어들어 자신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고자 했던 이들은 과연 지금 우리 시대를 본다면 무어라 할지. 온전한 영혼, 온전한 삶조차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이 미쳐버린 시대에 그들은 우리를 무어라 할지 궁금하다.

 

미쳐야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에 미치는가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권력 추구와 헛된 욕망, 부의 맹목적 숭배 등에 미친다면 그야말로 인간이길 포기하는 미친 이가 될 것이다. 저자의 의도는 무조건 미치라는 것이 아닌 정도에 미치라는 말일게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 후 자기 계발이나 경영과 관련하여 제목을 비슷하여 옮겨 쓰며, 마치 경제적 동물로 미치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이라는 듯이 떠들어대는 것을 볼 때, 저자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해 본다. 예나 지금이나 진정한 선비는 드물었다. 온갖 더러운 인간들이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기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종착역이 거의 보인다는 생각이다. 더 이상 타락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썩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하면 좋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를 맴돌았던 생각이다.

우리가 이렇게 세상을 망쳐놓고, 이제 어찌하면 좋을까. 선현들에게 간절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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