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 축 당첨! 여름휴가 팡 그래픽노블
필립 베히터 지음, 김영진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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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몇 가지 나의 무지와 선입견에 대한 고백부터 하겠다.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이 의미하는 바를 모른다. 볼로나 문학상 정도로 생각했다. 그림체만 보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프랑스 작가라고 생각했다. <토니 : 티끌 모아 축구화>의 후속작이란 것도 생각도 못했다. 책 마지막까지 프랑스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재밌게 읽었다. 이야기가 끝난 후 작가에 대한 부분을 읽고 나서 독일 작가란 사실을 알았다. 나의 이런 착각은 다른 만화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길지 않은 만화이지만 내용은 결코 적지 않다. 여름 휴가를 가고 싶지만 경제적 문제로 갈 수 없다고 하는 엄마와 다툰다. 여름 휴가 취소에 절망하면서 시까지 짓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열심히 잡지의 이벤트에 응모한다. 그러다 아주 멋진 최고급 호텔 숙박권에 당첨된다. 아주 행복한 소식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호텔에 간다. 화려하고 멋진 호텔이다. 그런데 이 호텔은 할 수 없는 것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토니가 놀 아이들이 없다는 것이다. 수영장에서 첨벙첨벙 놀고 싶은 토니에게 어른들이 눈치를 준다. 즐겁고 행복해야 할 여름 휴가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가득한 휴가가 되었다. 이때 엄마가 근처에 사는 친구 크리시에게 연락을 한다. 그들은 쿨하게 하루만 자고 그 멋진 호텔을 떠난다.


작가는 이후 토니의 즐거운 하루들을 보여준다. 엄마 친구 집에서 그 집 아이들과 강에서 놀고, 그 집에서 빌린 차와 캠핑 용품으로 바다에 간다. 바다는 사람으로 가득하지만 아이들도 많다.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논다. 축구를 하고, 수영도 하고, 보트도 타고, 게임도 하면서. 작가는 이 장면들과 상황을 많지 않은 분량 속에 착실하게 그려 놓는다. 수많은 아이들이 모인 곳에서 스마트폰을 가진 아이가 한 명 밖에 없다고 했을 때 솔직히 조금 놀랐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일은 그 아이와 함께 조가 된 후 일어나는 일들이다. 스마트폰의 위력과 그 위력을 숨기기 위한 노력들이 만들어낸 작은 행위들 말이다. 이 아이들이 게임에서 이겨 받는 것은 큰 빙수 한 그릇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그림과 사람들의 표정, 생략된 감정들이 눈길을 끈다. 토니는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엄마는 자신만의 휴가를 즐긴다. 아이는 일이 있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엄마에게 달려온다. 흔한 장면들이지만 그 흔한 장면이 우리의 행복이자 일상이다. 행복한 시간이 지나가면서 토니는 언제 돌아갈지 묻는다. 하지만 엄마의 대답은 며칠 더 있을 거란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연장되고, 토니의 여름 휴가는 계속된다. 그리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다.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 뒤에 남은 것은 즐겁고 행복한 추억과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다. 화려함보다 일상의 연속성과 즐거운 놀이로 가득한 휴가가 얼마나 두 사람을 행복하게 했는지 보여준다. 내가 아이와 이렇게 놀아주지 못한 것 같아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읽으면서 그 뜨거운 햇볕에 살이 벗겨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여름 해변에서 내 피부가 얼마나 자주 피부 물집이 잡혔던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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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비 - 금오신화 을집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9
조영주 지음 / 폴앤니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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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조영주 작가의 장편 소설이다. 집에 작가의 장편이 몇 권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상당히 늦게 읽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 책소개만 보고는 읽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작가의 이름을 보고 선택했다. 책을 읽기 전 <금오신화 을집>이란 후기를 우연히 먼저 보았다. 아직 한 번도 읽지 않은 고전 <금오신화>를 생각하면서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자 낯선 이야기와 조금은 이해되지 않는 설정들이 나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가독성이 좋은 편이라 끝까지 읽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고, 다시 <금오신화>에 대한 관심만 높아졌다.


제목이 한글로 <비와 비>다. 이 ‘비’는 중의적으로 사용된다. 하나는 두 인물 이비와 박비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왕비 공혜왕후를 의미한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금호신화 속 이야기를 끌고 와 엮었다.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을 상상력으로 한곳에 모아 조선 초기 정쟁의 결과를 새롭게 풀어낸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은 박팽년의 후손이다. 사육신 박팽년의 일가는 삼족이 멸족했다. 하지만 역사 속에는 항상 이 힘든 시기를 벗어난 후손들이 등장한다. 실존인물이 있다는 사실과 그들이 복원되었다는 것은 후대의 일이고, 이 시기는 아직 압구정 한명희가 살아 있던 시절이다. 박팽년의 손자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를 살리는 것이 하나의 목적이다.


전라 감찰사 이극균의 딸 이비, 전라감영의 관노비 박비. 이 둘은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이 비밀은 나중에 밝혀지는데 이 소설의 핵심과 이어져 있다. 이비는 수양딸이지만 가족들의 사랑을 받고 아주 활발하게 살아간다. 그녀의 곁에는 박비가 있다. 박비는 외모가 아주 출중해 많은 양반집 마나님들이 탐낸다. 자신의 사노비와 교환하자는 요청이 많다고 한다. 이 시기에 사노비와 관노비를 바꾸는 것이 가능했던 모양이다. 박비는 노비이지만 말을 타고 활을 들고 다닌다. 말을 타는 이유는 이비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둘은 주인과 노비 관계이지만 마음이 아주 잘 맞다. 하지만 신분의 벽은 쉽게 감정에 휘둘리게 하기에는 너무 높다.


전라감영에 한명희가 보낸 어사가 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극렬을 어떻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왔다. 어느 날 이비를 본 어사가 깜짝 놀란다. 돌아가신 왕비 공혜왕후가 복숭아 나무 아래 있는 것이다. 귀신인가? 환생인가? 이 일이 두 비를 떠나게 한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바로 매월당 김시습이다. 오세 천재 김시습. 놀라운 무술 실력을 가지고 있고, 뛰어난 머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천천히 움직인다. 이비와 박비는 감영을 떠난다. 매월당이 준비한 주막에서 주모의 욕심이 사건을 만든다. 둘은 헤어지게 되고, 이비는 매월당의 제자가 된다. 이제 이야기는 한양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몽유도원도’와 엮인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현재 일본에 있다.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우린 진품을 보려면 일본에 가야 한다. 그림도 유명하지만 그 속에 든 시문도 중요하다. 조선 초기 명필 안평대군의 발문도 있다. 이 그림이 수양대군에게 꼬투리가 잡혀 안평대군은 죽었다. 시대를 건너 성종 초기 성종의 형 월산대군은 유명한 화가에게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같은 ‘몽유도원도’을 요청한다. 이 그림 속에는 성종의 죽은 왕후의 얼굴이 들어가 있길 바란다. 인물화로 이름난 화가도 월산대군의 설명만으로 그 얼굴을 그리는 것은 힘들다. 왕비의 소문이 있는 무계정사를 찾아가 영감을 받으려고 한다. 이때 남자로 분장한 이비를 만난다. 전라감영에서 사라진 그녀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새롭게 진행된다.


성종은 죽은 비를 잊지 못해 시름시름 앓는다. 우연히 남장한 이비를 보고 깜짝 놀란다. 죽은 비와 닮았기 때문이다. 남장을 했지만 그의 입술은 이비를 덮는다. 뭐지? <커피프린스 1호점>의 설정이 떠오른다. 박비와 닮은 이에 끌리는 이비. 연락이 두절된 박비. 이 모든 판들은 매월당이 조금씩 준비한 것이다. 물론 이 준비가 완벽할 수는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비다. 이야기는 엮이고, 꼬이고, 뒤틀린다. 닮은 외모와 감추어져 있던 비밀이 하나로 묶인다. 이 사이사이를 채우는 이야기는 <금오신화>의 오마주와 한시이지만 이 부분은 낯설다. 아마도 <금오신화>를 잘 기억한다면 더 재밌을 것이다. 읽으려다 시작도 못한 많은 한국 고전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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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월드 영 월드 1
크리스 웨이츠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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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미국의 각본가, 프로듀스, 감독이다. 솔직히 말해 최근 영화를 잘 보지 않는 나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영화 제목을 보면 아주 낯익다. 그리고 이 책소개에 나오는 <헝거 게임>이나 <메이즈 러너> 등은 영화로 본 적이 없다. 소설도 읽은 적이 없다. 집에 책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관심이 생긴 것은 전염병으로 어린이와 어른은 모두 죽고 청소년만 살아남은 세상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굉장히 범위를 좁혀 놓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소설의 설정대로라면 인류는 몇 년 안에 멸종할 수밖에 없다. 실제 도입부에 워싱턴스퀘어의 리더 워싱턴이 나이가 차면서 죽는다. 아주 암울한 세상이지만 이 암울한 세상에서도 작은 희망과 각자 자신들만의 삶을 꾸리는 무리들이 나온다.


형 워싱턴이 죽으면서 제퍼슨이 워싱턴스퀘어의 무리를 이끈다. 형이 죽는 날 업타운의 무리들이 돼지를 끌고 와 여자 둘과 바꾸자고 한다. 이 무리에겐 황당한 일이다. 업타운 무리와 실랑이가 벌어지고, 돼지는 죽는다. 업타운 무리는 떠나고, 워싱턴스퀘어 무리는 이 고기로 오랜만에 파티를 한다. 즐거운 일이지만 워싱턴의 죽음이 그들의 현실을 일깨워준다. 제퍼슨은 미래를 꿈꾼다. 이 무리의 브레인인 브레인박스가 전염병의 원인을 찾을 수 있는 논물에 대해 알고 공립 도서관에 가봐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라면 지하철이나 버스 등을 타고 쉽게 갈 수 있지만 이젠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수많은 집단의 위협 속에 놓인다. 조각 조각 나누어진 무리들이 자신들만의 구역에서 암울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간다.


소설은 두 화자가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두 시점은 제퍼슨과 제퍼슨의 소꿉친구이자 짝사랑 상대인 돈나다. 제퍼슨은 이야기꾼이자 적은 희망도 버리지 않는다. 돈나는 총을 든 저젹수이자 활발한 소녀다. 브레인박스는 뛰어난 과학 실력을 바탕으로 워싱턴스퀘어의 전력 등을 만든다. 그의 지식이 이 무리에 큰 힘이 되지만 미래까지 책임질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지식으로 바꾸어 나가는 현실의 몇몇 장면들은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사회 기반 시설이 무너진 세상에선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필요 지식이다. 실제 전투 등에서는 거의 무력하지만 그의 지식이 빛을 발할 때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는 청소년들이 모르는 과학을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어른들이 모두 전염병으로 죽는 과정을 보면서 어떤 대목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의 코로나19 팬데믹이 떠올랐다. 2014년에 출간된 소설임을 감안하면 초기 미국 뉴욕의 대처와 상황이 이 소설 속 장면 일부와 맞닿아 있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보여주는 장면은 각각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선택에 의해 나누어진다. 공립 도서관에 사는 유령 같은 아이들이 보여준 삶의 방식은 참혹하다. 강력한 무기도 없고, 농사 지을 땅도, 힘도 없는 이들이 선택한 생존 방식 중 하나가 드러날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도서관에 도착한 제퍼슨 일행을 공격하는 이들이 나오는데 바로 업타운 무리다. 이들의 공격으로 제퍼슨이 타고 온 차량은 불탄다. 이제 이들은 도보로 움직여야 한다.


이후 제퍼슨 일행이 걸으면서 처음 이 전염병이 퍼진 섬으로 가려고 한다. 160킬로미터다. 과거 차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이젠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가는 도중에 만날 무리들이 얼마나 호의적일지도 생각해야 한다. 실제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곳곳에서 만나는 이 무리들이다. 각각의 무리들이 어떤 선택을 했고, 그 무리를 어떻게 유지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제퍼슨 일행 각자의 능력과 개성도 이야기 속에 적절하게 녹아들면서 소소한 재미를 만든다. 미국의 현재 모습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재밌는 점은 제퍼슨 형제가 혼혈이고, 피터는 혼혈이고, 시스루로 불리는 작은 소녀도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경험하고 말하는 과거와 현재는 이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변함없이 적용된다. 1권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다음 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어떤 식으로 이들의 미래가 이어지고, 변화가 생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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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딸이다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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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애거사 크리스티가 1952년에 메리 웨스트매콧이란 필명으로 낸 소설이다.

다른 이름으로 낸 이번 소설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현재 나온 책은 개정판이고, 이전과 달라진 것은 해설이 덧붙여져 있다는 것 정도다.

세부적인 번역의 차이가 어느 정도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절판된 책이 새로 나오는 일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왠지 연극 무대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앤의 집을 배경으로 상당히 많은 일이 벌어지고, 대사나 행동 등이 연극적으로 다가온다.

“아들은 아내를 얻을 때까지만 아들이지만, 딸은 영원히 딸이다.”이란 문장은 상당히 편협적이다.

아들인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딸과 엄마의 관계가 분명히 있겠지만 모든 것을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 데 시간의 흐름과 그들의 상황과 엮여 있다.

1부는 엄마 앤 프렌티스가 딸 세라를 스위스로 3주 동안 여행을 보낸 후 이야기다.

딸을 그리워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앤은 외롭게 살고 있는 리처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감정에 빠져 당연히 딸도 그녀의 결혼을 축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세라는 리처드의 외피만 보고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리처드 또한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어리석고 싸우는 두 사람에 사이에 낀 앤은 고통받는다.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서고, 자신의 미래 하나를 포기한다.

2부에서 변한 앤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외모도 바뀌고, 집의 인테리어도 바꾸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바쁘기만 할 뿐 내면은 공허하다.

이 내면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파악한 인물은 데임 로라다.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세라의 결혼이다.

위험한 남자이자 결혼을 세 번 했고 아주 부유한 남자의 청혼이다.

돈으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행복일까?


작가는 복잡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앤과 세라의 상황을 보여주고, 그들의 선택을 알려준다.

이 선택 이면에 놓인 감정을 3부에 날카롭고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딸과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상대방의 선택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개인적으로 감초 역할을 하는 하녀 이디스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 집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이 두 모녀를 도와준 그녀의 통찰력은 놀랍다.

친절하지 않지만 자신이 할 일에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그녀다. 퉁명스러운 그녀가 어느 순간 사랑스럽다.

연극적으로 갈등을 만들고, 이 갈등을 키우고, 해결하는 과정을 거친다.

애거사 크리스티란 이름을 생각하고 읽으면 조금 밋밋하지만 상당히 가독성이 좋다.

그리고 상류층의 삶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데 약간 거부감이 생긴다.

그들이 노동이나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보여주는 시각 때문일 것이다.

소설 곳곳에 통찰력을 보여주는 문장들이 나오고, 공감할 대목들이 보인다.

한동안 손 놓고 있던 추리소설에도 눈길을 주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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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강 캐트린 댄스 시리즈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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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트린 댄스 시리즈 4권이다. 5년만에 나왔다. 캐트린 댄스는 링컨 라임 시리즈에 비중 있는 단역으로 나왔다가 새로운 시리즈의 주인공이 된 인물이다. 역시 두툼하고, 재밌고, 예상 외의 반전에 놀란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깨닫는다.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 속에는 극단적 이기심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 소설 속 악당은 이런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테러를 펼친다. 밀폐된 공간과 화재가 맞물리면서 벌어지는 첫 장면은 결코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안과 공포는 우리 사회의 기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한정된 공간만이 아니다. 괜히 공포 마케팅이란 단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읽다 보면 과연 저런 상황에서 나는 이성을 유지하고 다르게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클럽 솔리튜드크리크에서 공연 중에 화재가 난 것 같은 냄새를 맡는다. 불이 났을 때 최대한 빨리 피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비상구가 거대한 버스로 막혀 있다는 것이다. 이성이 날아간 사람들은 조금 열린 비상구로 나가려고 서로를 밀친다. 이 과정에 3명이 죽는다. 여러 명이 부상을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작가는 한 발 더 나아가 이 사건의 희생양을 찾으려는 욕망을 그려낸다. 트럭 운전수의 실수라고 단정한 희생자 가족들이 보여주는 폭력은 또 다른 공포를 만든다.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보다 자신의 감정을 먼저 폭발시키는 사람들의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다. 이들을 조금 더 파고들어 간략하게 풀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캘리포니아 연방수사국(CBI)의 동작학 전문가 캐트린 댄스는 마약밀매 조직을 수사하는 중이다. 그녀는 용의자 심문에 실패하고 총까지 빼앗긴다. 이 일로 징계를 받고 민사부로 전출된다. 이때 솔리튜드크리크 사건을 맡는다. 댄스가 이 장소에 와서 상황 등을 보고, 단서를 따라가면서 단순 화재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된다. 실제 불이 나지 않았고, 냄새만으로 공연장 관객들을 패닉으로 몰아간 것이다. 왜,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일까? 단순한 재미라고 하기엔 너무 치밀하다. 그리고 일회성 사건도 아니다. 자기계발서 작가의 사인회에서 벌어진 참극은 또 어떤가. 비상구를 열어두었지만 그 앞에 총을 던 악당이 총을 쏘면서 다가온다. 달아날 곳은 단 한 곳. 창밖 바다뿐이다. 이성적으로 문을 닿고, 경찰에 연락하면서 시간을 벌어야 하지만 공포는 많은 사람들의 이성을 날려버린다.


이 공포로 최악의 상황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인물이 있다. 안티오크 마치다. 그는 이런 상황을 연출하고 패닉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온라인에 올려 판매한다. 새로운 추악한 사업이다. 잔혹한 사진을 다운받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이 바라는 장면을 연출해주기를 바란다. 마치는 이 일에 최적화된 악당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타인의 죽음과 고통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존재가 있다. 그는 이것을 겟(GET)이라고 부른다. 이 겟을 만족시켜야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나중에 그가 어떤 일을 벌였는지, 어떻게 이 사업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보여주는데 크게 놀랄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사업과 연결했다. 물론 이 과정에 다른 한 명이 끼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은 마치다.


댄스는 이 마치의 사건을 수사하면서 여전히 마약밀매 조직 수사를 놓지 않는다. 한 지역 사건만을 다루지 않다 보니 관할권 문제가 여전히 있다. 민사부로 전출된 댄스가 이 수사에 참여하면 안 되지만 그녀는 몰래 끼어든다. 그녀의 심문 기술은 아주 탁월하고, 다른 단서를 쫓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의 중심은 솔리튜드크리크 사건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마치의 작업 대상이 될 수 있기에 시 정부는 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행사를 미루라고 말한다. 그러다 또 하나 사건이 발생한다. 이번엔 엘리베이터다. 역시 밀폐된 공간이다. 다행이라면 아주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고, 불행이라면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타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번 이야기에는 댄스의 아이들 비중이 조금 더 되는 것 같다. 이전 작품들을 읽은 지 오래되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동작학 전문가이지만 자신의 아이들의 동작을 정확하게 읽지 못하고 실수하는 모습은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 웨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미국 학생들이 얼마나 역사에 무지한지 알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그리고 잔혹한 게임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 게임이 아이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하지만 이 연구 결과가 결코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실제 그 게임을 하는 인물들은 수없이 많고, 그 게임의 영향이라고 단정한다고 해도 다른 영향을 결코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 중독은 결코 좋게 볼 수 없다.


빠른 속도감을 보여준다. 단 며칠 동안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다시 아픈 미국의 역사를 본다. 미국이 눈을 가린 수많은 인권 문제 중 하나를 다룬다. 솔리튜드 크리크에서 있었던 2차 대전 당시 있었던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소 문제다. 현재로 넘어오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등에 대한 폭격은 입을 다물고 있는 현실이 있다. 선별적 인권문제는 정치적 목적과 이어져 있다. 마치가 만들어낸 영상을 구독하는 인물들보다 더 큰 비극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미국 작가가 이 문제까지 파고들어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있다. 바로 삼성 제품을 곳곳에서 말하고 있는데 PPL인가 하는 의문이다. 재밌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에 놀란다. 다음 댄스 이야기는 언제쯤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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