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농장 (그래픽 노블) 동물 농장 (만화)
백대승 지음, 조지 오웰 원작, 김욱동 해설 / 아름드리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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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에서 나온 김욱동 번역본을 불과 몇 년 전에 읽었던 것 같은데 찾아보니 10년이 넘었다. 책 소개 방송에 이 책이 나와 잠시 인기를 끈 것 같은데 그 방송은 보지 않았다. 워낙 유명한 고전이고, 알고 읽으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책이지만 청소년들이 읽기엔 그렇게 쉬운 소설이 아니다. 아니라고? 최소한 나한테는 그랬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두 번째 읽고, 소련 등에 대한 정보가 쌓이면서 이 소설은 정말 재밌었다. 책 속에 나오는 상징과 비유 등을 해석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우리의 현실을 비추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밌게 읽었다고 해도 다시 그 책을 읽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백대승의 그래픽 노블로 나왔다. 그래픽 노블이라면 나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만화가는 이 그래픽 노블을 그리면서 어떤 번역본을 참고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워낙 많은 번역본이 있고, 원전도 그렇게 두툼하지 않으니 다양한 참고 서적이 있었을 것이다. 해설에 김욱동이 있는 것을 보고, 비채 판을 참고해서 그렸을까 생각했지만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사실 이전에 아주 재밌게 읽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책 내용을 자세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강렬한 상징과 비유만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물론 기억력도 그렇게 좋지 않다. 그림으로 표현된 이 소설은 읽으면서 점점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 사소한 변화들이, 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눈에 바로 들어왔다.


동물농장은 농장주를 몰아낸 뒤 만들어진 것이다. 돼지 이미지가 들어간 것은 그들의 지능지수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자를 읽을 수 있고, 문자를 다른 동물들에게 가르친다. 지능지수가 떨어지는 동물들은 글을 읽지 못한다. 그런데도 농장 벽에 7계명을 적어 놓았다. 이 계명의 변화도 만화가는 아주 잘 포착해 표현해 놓았다. 처음엔 모든 동물을 위한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 투쟁으로, 권력 유지와 영구화로 흘러간다. 민중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가장 열심히 일하는 복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결말을 알기 때문이고, 우리의 현실과 역사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국가 단위가 아닌 회사 단위로 생각해도 이 부분은 연결 가능하다.


공포. 독재자들이 항상 내세우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항상 내세우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려고 하면 그들은 민중을 겁준다. 언론은 나팔수가 되고, 독재자와 자본가는 그 뒤에 숨어서 그들을 부린다. 이 과정에 너무 나선 언론 등이 나오기도 한다. 단순히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해야 한다. 나폴레옹이 부리는 개들이 이 역할을 한다. 동물들을 위협하고, 어느 순간에는 물어 죽인다. 물론 그들을 물리칠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민중은 그 순간에 실수한다. 다시 그들을 믿는 것이다. 왜곡된 정보와 지식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이지만 왜 인류의 역사가 직선으로 진보하지 못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재밌는 원작에 재밌고 사실적인 연출이 가미된 그래픽 노블이다. 큰 틀은 원작을 따라가면서 작은 부분에서 작가의 창의성이 발휘된다. 원작에서 보지 못한 듯한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읽을 때는 그냥 재밌고 보고 지나갔는데 지금은 주석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으로 보기 때문에 가독성이 좋다. 물론 섬세하게 보지 않으면 소소한 재미나 주석 같은 내용을 놓칠 수 있다. 이 그래픽 노블을 보면서 고전을 옮긴 그래픽 노블에 관심이 간다. 내가 재밌게 읽은 책들은 복습용으로, 읽지 않은 책은 내용 공부용으로 말이다. 강렬한 이미지로 가득한데 한가지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돼지 이미지에 대한 편견이다. 아이들이 읽을 때는 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어릴 때 본 만화 영화 <똘이 장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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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즐랜드 자매로드 - 여자 둘이 여행하고 있습니다
황선우.김하나 지음 / 이야기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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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가 터지기 전 2019년에 다녀온 퀸즐랜드 여행 이야기다.

퀸즐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의 주 이름이다. 한 동안 내 입에는 퀸즈랜드로 달라붙어 있었다.

이 책의 공저자인 황선우와 김하나는 호주 퀸즐랜드주 관광청의 초청으로 그곳에 갔다.

관광청의 요구 조건 중 하나가 책으로 내는 것이다. 물론 영상에 대한 조건도 있었다.

초청으로 간 곳이다 보니 좋은 시선을 담아 풀어낸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솔직히 이렇게 초청을 받고 가면서 나쁜 소리를 할 사람이면 다음에 일이 끊어질 것이다.

하지만 여행지에 대한 좋은 느낌과 기분을 제대로 담아 내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


두 명의 저자가 번갈아 가면서 자신들의 감상을 하나씩 풀어낸다.

이 여행은 잘 짜인 일정에 따라 진행되었다. 풍부한 경험이 녹아 들어 있다.

이 풍부한 경험은 혹시 이곳을 여행할 사람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들이 경험한 것들에 대한 가격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풍족한 여행객이라면 가격보다 자신의 선택을 우선하겠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예산 압박을 받는다.

물론 2019년 여행이라 그만큼 큰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독자들이 참고할 수는 있다.

가서 경험할 마음이 강하면 검색으로 그 가격을 확인할 수 있지만 1차 정보가 있다면 더 편하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곳은 대부분 골드코스트에 있다.

서핑은 해 본 적이 없지만 환상을 가지고 있고, 실내 스카이다이빙은 늘 경험하고 싶은 것이다.

스카이 포인트 클라이밍은 다른 고층 건물에서 할 수 있는 것이고, 어느 순간 생긴 고소공포증으로 힘들다.

나무판 하나를 들고 모래 사구를 신나게 내려가는 모습은 여행 방송에서 볼 때마다 욕망을 일깨운 것이다.

골드코스트 해변을 이른 아침부터 달리고 수영하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왠지 한강변 풍경이 떠오른다. 왜지?

내가 여행을 가면 아마 해변으로 나가기 보다 해변을 보면서 책을 펼쳐 읽을 것이다.


커럼빈 와일드 생추어리에서 경험한 야생과 인간의 조화는 눈길을 끈다.

목차에 나오는 웜뱃의 똥이 정육면체란 게 신기하지만 그렇게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을 경험하고 글을 쓴 황선우의 시선과 인식은 잠시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2019년 9월에 발생해 다음해까지 이어진 호주 산불을 보고 그들이 느낀 감정은 나와 확연히 다르다.

김하나의 아주 열렬한 코알라 예찬과 사랑을 읽다 보면 그 감정이 조금은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친구가 우리 애 주라고 선물로 보낸 코알라 인형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 글을 읽을 때 떠올랐다.


가끔 투움바 파스타를 먹는다. 그런데 투움바란 지명이 호주에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꽃이나 나무 등에 무지한 나에게 투움바 플라워 페스티벌은 조금 지루할 수 있지만 실제 가면 모를 일이다.

읽으면서 살짝 웃은 이야기는 호주의 공기밥을 다룬 것이다.

호주의 공기밥이 무엇이냐고? 바로 감자튀김이다. 우리의 공기밥처럼 모든 메뉴에 곁들여진다.

이 여행에서 단 한 곳만 감자튀김이 같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때 와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열심히 마시면서 취향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술이 약하고, 마신 뒤 숙취가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묵직한 바디감을 가진 시라즈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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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아서
박산호 지음 / 더라인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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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번역가로 익숙한 박산호의 첫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자신이 자주 번역한 스릴러 장르를 이번 소설에서 녹였다. 잔혹하고 음침한 스릴러 대신 세 명의 화자를 등장시킨 심리 스릴러로 말이다. 번역한 작품들처럼 기독성도 상당히 좋다. 적절하게 단서를 집어넣어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지막엔 반전도 일어난다. 하지만 약간의 반칙 같은 능력 하나를 넣었다, 그것은 아란의 과거를 잠깐 들여다보는 능력이다. 무당인 할머니의 능력을 이어받은 것인데 이 과거를 보는 능력은 아주 우발적이다. 자신이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 이 능력을 보았을 때는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제약이 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사라졌다.


세 명의 화자는 선우, 아란, 연우 등이다. 프롤로그에 한 남녀가 별장에 오고, 작은 다툼이 벌어진 후 가스 폭발로 죽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선우 이야기가 시작한다. 잘 생겼고, 영문학과 대학교수이지만 유학 시절 당한 교통사고로 다리를 전다. 그의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면서 진행한다. 과거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버지의 난폭하고 무절제한 삶과 그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는 자살했고, 아비는 자식을 애정이 아닌 전교1등 자랑거리 정도로 생각한다. 학교 성적이 떨어졌을 때 보여준 폭력과 문하생 선아 누나와 벌이는 섹스는 한 마리의 짐승 같다. 이런 그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 바로 아랑이다. 홀로 연우를 데리고 앞집에 이사 왔다. 선우는 아랑에게 완전히 빠져든다.


현실의 선우 앞에 아랑을 닮은 여자가 나타난다. 바로 지아다. 너무 닮아 처음에 보고 놀란다. 비 오는 날 그에게 우산을 씌워주면서 등장했다. 지아는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다.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청소년 시절 짝사랑했던 앞집 누나 아랑의 이미지가 겹친다. 가슴이 뛴다. 과거의 기억 중 일부를 잃고, 아픈 다리를 절면서 살아가는 그에게 지아는 새로운 사랑이다. 그러다 지아가 넘어져 다치고, 그녀를 치료하는데 그녀가 그에게 키스를 한다. 행복한 미래가 펼쳐질 것 같다. 하지만 뒤에 일어나는 몇 가지 이상한 일들은 그의 바람을 산산조각낸다.


아란은 아랑의 쌍둥이 언니다. 둘은 이란성 쌍둥이이고, 한 남자를 사랑했다. 그 남자가 연우의 아버지다. 그녀의 엄마는 미국에서 요식업으로 성공했다. 아란의 이야기를 통해 아랑의 삶이 흘러나온다. 왜 홀로 한국에 왔는지, 왜 혼자 아이를 키우는지. 의사 공부를 하던 중 아랑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온다. 혼자 집에 있다가 배고파 마트에 온 연우를 통해 이 실종을 알게 되었다. 연우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 왔다. 동시에 사라진 아랑의 흔적을 좇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아랑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만 데리고 미국에 돌아와 암에 걸린 엄마와 조카 연우를 돌본다. 그렇다고 아랑 찾기를 그만 둔 것은 아니다.


연우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의문을 자아낸 장면들의 답을 얻게 된다. 어린 연우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이모와 함께 미국에 와 살면서 마주한 문제들이 하나씩 나온다. 언어 문제, 인종차별 문제, 알 수 없는 영혼의 허기 문제 등. 미국에서의 삶이 가진 온갖 문제들이 폭식과 구토로 이어진다. 공황장애까지 생긴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이렇게 작가는 선우를 통해 시작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다른 사람에게 연결해서 조각들을 맞춘다. 어느 부분 예상한 것들이 나온다. 선우 이야기 마지막에 벌어진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보여줄 때 평범한 사람들의 한계가 드러난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나오고,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 나면서 그날의 사실이 밝혀진다.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장면들이 조금 아쉽다. 분명 가독성은 좋은 데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는 힘은 조금 부족한 것 같다. 그래도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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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일지 창비시선 479
이용훈 지음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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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첫 시집이고, 창비시선 479권이다.

이 시집, 상당히 어렵다. 시집의 첫 시 <당신의 외국어>의 첫 문장부터 나를 혼란에 빠트렸다.

“가다와꾸 가도(는) 가리고야, 가이당 가랑(은) 가라(고), 함마 (든) 함바(의) 한빠 (간다), 후앙(은) 후쿠레두, 데모도(의) 데마찡(은) 데마찌(야), 보루박스(에) 시로도, 쇼쿠닝 (중에) 쓰미, 오오가네(의) 쓰마(는)”

다행이라면 이 문장에 대한 해석을 주석으로 적어놓았다는 것이다. 

공사 현장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을 조금은 안다고 생각한 나의 자신감을 산산조각내는 순간이다.

이런 말보다 나를 더 곤혹스럽게 한 것은 마침표나 쉼표 등이 거의 없는 시어들이다.

이런 시를 오래 전 허영심에 들떠 읽었던 이상의 시에서 경험한 적이 있지만 이전처럼 난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시집을 단숨에 읽지 못하고, 며칠에 걸쳐 조금씩 다 읽었다. 한 번에 읽기엔 나의 내공이 너무 부족하다.

시인이 표현하는 문장의 끊어 읽기를 나 자신의 호흡으로 이어가고, 시인이 쓴 단어와 시어 속에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조금씩 예측해본다. 정말 다양한 노동과 삶의 흔적이 드러난다.

시를 읽다 보면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노동 현장의 다른 면을 살짝 들여다본다. 하지만 그것 또한 단면이다.

노동자의 삶을 살면서 시를 쓰는 그의 하루가 시 속에서 드러난다. 괜히 반갑다.

이 시집의 시들은 기존 시집과 형식이 다르다.

문단을 끊지 않고 쉼표도 없이 이어간다. 호흡을 길게 뽑아야 하는 것도 있다.

간결한 문장의 연속으로 이어진 시도 물론 있다. <제작기법> 속 문장은 명사와 동사의 연속이다.

영화 속 장면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런 시는 읽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용용 죽겠지>란 시는 읽다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오래 전 한자 이름 때문에 생긴 수많은 오류들이 떠올랐다. 미(未)를 말(末)로 보고 표기한 실수도 있고, 옥편에 없다고 다른 한자를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오함마 백씨 행장>은 읽으면서 백두영 씨가 누군지 몰라 괜히 인터넷 검색을 한다. 하지만 더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그의 마지막과 그가 남긴 유물들이다. 이 적은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는 모습이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시집이 난해해서 오랜만에 해설을 읽었다. 노동 시라는 단어와 시대의 변화가 드러난다. 해설 속에 인용된 시어들은 새로운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용훈의 시들은 산문이 시를 압도하고 시가 다시 산문을 포용하는 순환을 만들어낸다.”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 속에 각주를 넣어 ‘시 속의 시’를 빚어낸 것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늘 하는 말이지만 훗날 다시 읽게 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다음 시집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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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고전 유람 - 이상한 고전, 더 이상한 과학의 혹하는 만남
곽재식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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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 분류를 보면 인문, 자연과학, 문학 등에 걸쳐 있다. 사실 나는 소설로 생각하고 선택했다. 목차를 읽고 난 후에도 고전을 새롭게 풀어 쓴 소설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착각은 첫 번째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설보다는 인문, 과학 에세이에 더 가깝다. 인문과 과학을 덧붙인 것은 고전들을 인용하고, 현대 과학의 발견 등을 이야기 속에서 녹여내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오랫동안 작업해온 고전들에 과학지식과 상상력을 덧붙였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혹은 최근 동화나 전설 등을 비틀고, 나름의 가설을 세웠던 일들이 떠올랐다. 물론 작가처럼 전문적이지도, 그렇게 많은 이야기도 아니다.


4부, 열여섯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은 1부 괴이한 생명체를 다룬 것이다. 이무기, 원숭이, 여우, 혼백 전이 등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로웠다. 첫 이야기는 나도 한 번쯤 어딘가에서 상상했던 것이고, 원숭이 이야기는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대한 조금은 새로운 해석이다. 여우 이야기는 늘 반갑다. 혼백에 씐 사람 이야기는 최근 많은 판타지 무협에서 다루고 있는 환생이나 영혼 전이 등을 떠올리게 한다. SF소설로 넘어오면 전뇌 같은 설정과도 맞물린다. 멀리서 보면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 적용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많은 사소하고 큰 문제들이 놓여 있는지 알 수 없다.


과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때 세상에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된다. 달콤한 이슬(감로)에 대한 해석은 낯설지만 재밌고, 멸망 전 백제에서 일어난 자연재해 중 하나를 적조현상과 엮은 것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카메라오브스쿠라로 우리가 본 기이한 모습을 해석한 것은 재밌다. 알고 보면 별것 아닌데 말이다. <금오신화> 속 ‘남염부주지’를 다룬 이야기는 이 소설에 대하 호기심을 더욱 키웠다. 예상을 벗어난 전개가 이어진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우리가 생각하는 저승에 대한 다른 시선은 눈길을 우주로까지 돌리게 한다.


이상한 믿음을 다룬 3부에 오면 비약과 주문과 주술의 세계가 나온다. 도교의 영단법이 중금속중독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이것을 발해와 연결한 것은 조금 과한 것 같다. 세종의 며느리 휘빈 김씨가 남편 문종의 사랑을 얻기 위해 부린 술법을 해석한 부분은 누구나 한 번 이상 경험한 것들이다. 발표편향에 대한 것은 우리 주변에 수없이 일어나는 일들이다. 주문과 질병 치료를 엮은 이야기도 이것과 관계 있다. 성종이 불꽃놀이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된 것이고, 이 기술이 군사 무기와 관계 있다는 지적은 재밌다. 폭죽의 어원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마지막은 우주에 대해 다루는 데 조금 내 취향과 맞지 않는 부분도 나온다. 직성이란 단어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지만 이성계가 금성을 숭배한 이유를 외계인과 엮은 것은 너무 나간 것 같다. 궁예와 왕건에 대한 예언을 토성과 엮은 것은 우주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역시 과학적 상상력은 더 먼 곳까지 나간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속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이 책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다. 그냥 보통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을 세세하게 기록했다는 부분이다. 이 소소한 이야기들이 열하 여행기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후대에 많은 참고가 되었다고 한다. 고이 모셔 둔 <열하일기>를 언젠가 읽고 확인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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