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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아서
박산호 지음 / 더라인북스 / 2022년 8월
평점 :
스릴러 번역가로 익숙한 박산호의 첫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자신이 자주 번역한 스릴러 장르를 이번 소설에서 녹였다. 잔혹하고 음침한 스릴러 대신 세 명의 화자를 등장시킨 심리 스릴러로 말이다. 번역한 작품들처럼 기독성도 상당히 좋다. 적절하게 단서를 집어넣어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지막엔 반전도 일어난다. 하지만 약간의 반칙 같은 능력 하나를 넣었다, 그것은 아란의 과거를 잠깐 들여다보는 능력이다. 무당인 할머니의 능력을 이어받은 것인데 이 과거를 보는 능력은 아주 우발적이다. 자신이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 이 능력을 보았을 때는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제약이 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사라졌다.
세 명의 화자는 선우, 아란, 연우 등이다. 프롤로그에 한 남녀가 별장에 오고, 작은 다툼이 벌어진 후 가스 폭발로 죽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선우 이야기가 시작한다. 잘 생겼고, 영문학과 대학교수이지만 유학 시절 당한 교통사고로 다리를 전다. 그의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면서 진행한다. 과거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버지의 난폭하고 무절제한 삶과 그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는 자살했고, 아비는 자식을 애정이 아닌 전교1등 자랑거리 정도로 생각한다. 학교 성적이 떨어졌을 때 보여준 폭력과 문하생 선아 누나와 벌이는 섹스는 한 마리의 짐승 같다. 이런 그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 바로 아랑이다. 홀로 연우를 데리고 앞집에 이사 왔다. 선우는 아랑에게 완전히 빠져든다.
현실의 선우 앞에 아랑을 닮은 여자가 나타난다. 바로 지아다. 너무 닮아 처음에 보고 놀란다. 비 오는 날 그에게 우산을 씌워주면서 등장했다. 지아는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다.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청소년 시절 짝사랑했던 앞집 누나 아랑의 이미지가 겹친다. 가슴이 뛴다. 과거의 기억 중 일부를 잃고, 아픈 다리를 절면서 살아가는 그에게 지아는 새로운 사랑이다. 그러다 지아가 넘어져 다치고, 그녀를 치료하는데 그녀가 그에게 키스를 한다. 행복한 미래가 펼쳐질 것 같다. 하지만 뒤에 일어나는 몇 가지 이상한 일들은 그의 바람을 산산조각낸다.
아란은 아랑의 쌍둥이 언니다. 둘은 이란성 쌍둥이이고, 한 남자를 사랑했다. 그 남자가 연우의 아버지다. 그녀의 엄마는 미국에서 요식업으로 성공했다. 아란의 이야기를 통해 아랑의 삶이 흘러나온다. 왜 홀로 한국에 왔는지, 왜 혼자 아이를 키우는지. 의사 공부를 하던 중 아랑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온다. 혼자 집에 있다가 배고파 마트에 온 연우를 통해 이 실종을 알게 되었다. 연우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 왔다. 동시에 사라진 아랑의 흔적을 좇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아랑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만 데리고 미국에 돌아와 암에 걸린 엄마와 조카 연우를 돌본다. 그렇다고 아랑 찾기를 그만 둔 것은 아니다.
연우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의문을 자아낸 장면들의 답을 얻게 된다. 어린 연우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이모와 함께 미국에 와 살면서 마주한 문제들이 하나씩 나온다. 언어 문제, 인종차별 문제, 알 수 없는 영혼의 허기 문제 등. 미국에서의 삶이 가진 온갖 문제들이 폭식과 구토로 이어진다. 공황장애까지 생긴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이렇게 작가는 선우를 통해 시작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다른 사람에게 연결해서 조각들을 맞춘다. 어느 부분 예상한 것들이 나온다. 선우 이야기 마지막에 벌어진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보여줄 때 평범한 사람들의 한계가 드러난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나오고,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 나면서 그날의 사실이 밝혀진다.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장면들이 조금 아쉽다. 분명 가독성은 좋은 데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는 힘은 조금 부족한 것 같다. 그래도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