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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고전 유람 - 이상한 고전, 더 이상한 과학의 혹하는 만남
곽재식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8월
평점 :
이 책의 주제 분류를 보면 인문, 자연과학, 문학 등에 걸쳐 있다. 사실 나는 소설로 생각하고 선택했다. 목차를 읽고 난 후에도 고전을 새롭게 풀어 쓴 소설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착각은 첫 번째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설보다는 인문, 과학 에세이에 더 가깝다. 인문과 과학을 덧붙인 것은 고전들을 인용하고, 현대 과학의 발견 등을 이야기 속에서 녹여내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오랫동안 작업해온 고전들에 과학지식과 상상력을 덧붙였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혹은 최근 동화나 전설 등을 비틀고, 나름의 가설을 세웠던 일들이 떠올랐다. 물론 작가처럼 전문적이지도, 그렇게 많은 이야기도 아니다.
4부, 열여섯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은 1부 괴이한 생명체를 다룬 것이다. 이무기, 원숭이, 여우, 혼백 전이 등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로웠다. 첫 이야기는 나도 한 번쯤 어딘가에서 상상했던 것이고, 원숭이 이야기는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대한 조금은 새로운 해석이다. 여우 이야기는 늘 반갑다. 혼백에 씐 사람 이야기는 최근 많은 판타지 무협에서 다루고 있는 환생이나 영혼 전이 등을 떠올리게 한다. SF소설로 넘어오면 전뇌 같은 설정과도 맞물린다. 멀리서 보면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 적용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많은 사소하고 큰 문제들이 놓여 있는지 알 수 없다.
과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때 세상에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된다. 달콤한 이슬(감로)에 대한 해석은 낯설지만 재밌고, 멸망 전 백제에서 일어난 자연재해 중 하나를 적조현상과 엮은 것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카메라오브스쿠라로 우리가 본 기이한 모습을 해석한 것은 재밌다. 알고 보면 별것 아닌데 말이다. <금오신화> 속 ‘남염부주지’를 다룬 이야기는 이 소설에 대하 호기심을 더욱 키웠다. 예상을 벗어난 전개가 이어진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우리가 생각하는 저승에 대한 다른 시선은 눈길을 우주로까지 돌리게 한다.
이상한 믿음을 다룬 3부에 오면 비약과 주문과 주술의 세계가 나온다. 도교의 영단법이 중금속중독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이것을 발해와 연결한 것은 조금 과한 것 같다. 세종의 며느리 휘빈 김씨가 남편 문종의 사랑을 얻기 위해 부린 술법을 해석한 부분은 누구나 한 번 이상 경험한 것들이다. 발표편향에 대한 것은 우리 주변에 수없이 일어나는 일들이다. 주문과 질병 치료를 엮은 이야기도 이것과 관계 있다. 성종이 불꽃놀이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된 것이고, 이 기술이 군사 무기와 관계 있다는 지적은 재밌다. 폭죽의 어원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마지막은 우주에 대해 다루는 데 조금 내 취향과 맞지 않는 부분도 나온다. 직성이란 단어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지만 이성계가 금성을 숭배한 이유를 외계인과 엮은 것은 너무 나간 것 같다. 궁예와 왕건에 대한 예언을 토성과 엮은 것은 우주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역시 과학적 상상력은 더 먼 곳까지 나간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속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이 책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다. 그냥 보통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을 세세하게 기록했다는 부분이다. 이 소소한 이야기들이 열하 여행기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후대에 많은 참고가 되었다고 한다. 고이 모셔 둔 <열하일기>를 언젠가 읽고 확인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