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일지 창비시선 479
이용훈 지음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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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첫 시집이고, 창비시선 479권이다.

이 시집, 상당히 어렵다. 시집의 첫 시 <당신의 외국어>의 첫 문장부터 나를 혼란에 빠트렸다.

“가다와꾸 가도(는) 가리고야, 가이당 가랑(은) 가라(고), 함마 (든) 함바(의) 한빠 (간다), 후앙(은) 후쿠레두, 데모도(의) 데마찡(은) 데마찌(야), 보루박스(에) 시로도, 쇼쿠닝 (중에) 쓰미, 오오가네(의) 쓰마(는)”

다행이라면 이 문장에 대한 해석을 주석으로 적어놓았다는 것이다. 

공사 현장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을 조금은 안다고 생각한 나의 자신감을 산산조각내는 순간이다.

이런 말보다 나를 더 곤혹스럽게 한 것은 마침표나 쉼표 등이 거의 없는 시어들이다.

이런 시를 오래 전 허영심에 들떠 읽었던 이상의 시에서 경험한 적이 있지만 이전처럼 난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시집을 단숨에 읽지 못하고, 며칠에 걸쳐 조금씩 다 읽었다. 한 번에 읽기엔 나의 내공이 너무 부족하다.

시인이 표현하는 문장의 끊어 읽기를 나 자신의 호흡으로 이어가고, 시인이 쓴 단어와 시어 속에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조금씩 예측해본다. 정말 다양한 노동과 삶의 흔적이 드러난다.

시를 읽다 보면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노동 현장의 다른 면을 살짝 들여다본다. 하지만 그것 또한 단면이다.

노동자의 삶을 살면서 시를 쓰는 그의 하루가 시 속에서 드러난다. 괜히 반갑다.

이 시집의 시들은 기존 시집과 형식이 다르다.

문단을 끊지 않고 쉼표도 없이 이어간다. 호흡을 길게 뽑아야 하는 것도 있다.

간결한 문장의 연속으로 이어진 시도 물론 있다. <제작기법> 속 문장은 명사와 동사의 연속이다.

영화 속 장면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런 시는 읽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용용 죽겠지>란 시는 읽다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오래 전 한자 이름 때문에 생긴 수많은 오류들이 떠올랐다. 미(未)를 말(末)로 보고 표기한 실수도 있고, 옥편에 없다고 다른 한자를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오함마 백씨 행장>은 읽으면서 백두영 씨가 누군지 몰라 괜히 인터넷 검색을 한다. 하지만 더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그의 마지막과 그가 남긴 유물들이다. 이 적은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는 모습이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시집이 난해해서 오랜만에 해설을 읽었다. 노동 시라는 단어와 시대의 변화가 드러난다. 해설 속에 인용된 시어들은 새로운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용훈의 시들은 산문이 시를 압도하고 시가 다시 산문을 포용하는 순환을 만들어낸다.”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 속에 각주를 넣어 ‘시 속의 시’를 빚어낸 것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늘 하는 말이지만 훗날 다시 읽게 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다음 시집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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