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 열다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헬스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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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었던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와 같은 편집자가 엮었다.

편집자 폴커 미헬스는 이미 여러 권의 헤세 글을 엮은 적이 있다.

그의 이력에 최초의 헤세 전집을 발간했다는 말이 나온다.

정말 대단한 헤세 덕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책에서는 헤세의 글에서 구름에 관련된 것을 뽑아 묶었다.

구름은 한때 내가 하늘을 보면서 가장 즐겁게 보던 것이다.

사무실에 갇혀 있다 보니 이제는 그 관심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행을 가거나 가끔 하늘을 볼 때면 구름의 다양한 모양에 감탄한다.

헤세는 이런 구름을 시인의 마음과 시선으로 풀어낸다.


가장 먼저 풍경화가와 구름에 대해 말하면서 시작한다.

하늘에 있는 구름만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것은 대개 실패작이라고 한다.

구름의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관찰자와의 거리가 불확실해 아름다운 효과가 모두 사라”진다.

처음에는 이 문장에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땅에 누워, 길을 가다 하늘의 구름을 보는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더 생각하면 우리의 시각은 단순히 그 구름만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단순히 구름만 보는 경우는 더욱 없다.

하늘과 땅이 함께 어우러지고, 그 속에 구름이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준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런 글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사실 헤세의 소설들은 너무 오래 전에 읽었었다.

<데미안>을 재밌게 읽은 다음에 다른 소설들은 취향과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헤세의 소설은 왠지 모르게 계속 관심을 두고 모으게 한다.

나의 최근 취향을 생각하면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읽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이런 편집 글들에 눈길이 가는 지도 모르겠다.

소설에 비해 짧고, 핵심을 요약한 글들이기 때문이다.

구름과 바람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의 영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는 내 취향과 많이 다르다.

현실에 더 밀착한 글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많은 글들이 쓴 연도가 표시되어 나온다.

대부분의 글들을 그가 초기에 쓴 글들이다.

독자적인 산문이나 시도 나오지만 다른 글에서 인용한 것도 있다.

부분 인용한 글 중에서 한 아이가 헤세의 초기 시를 암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자신의 시인 줄 몰랐다고 한다.

자신의 시라는 것을 알고 소년을 보려고 할 때 사라졌다.

장엄한 원시 풍경에 대한 그의 감탄은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자각으로 넘어간다.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그가 그 시대와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았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푄 바람과 구름을 같이 풀어낸 글들은 잠시 그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그 바람과 구름을 본 적 없어 내가 알고 있는 구름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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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곳에서 안전가옥 오리지널 7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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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오리지널 7권이다.

작가의 다른 소설을 처음 읽고 관심을 두고 있다가 이제야 읽었다.

책을 선택할 때 어떤 내용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았다.

많은 책을 읽다 보니 몇 가지 조건과 작가 이름만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이전에 본 책소개를 다른 책과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은 조건 몇 개와 작가만으로 선택한 경우고, 타임리프란 사실은 잊고 있었다.

덕분에 중반까지 읽으면서 뭐지? 하는 느낌과 예상과 다른 전개에 놀랐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작가가 그려낸 수많은 해미의 활동에 빨려 들어갔다.

2025년 그날 그곳에서 엄마를 살리기 위한 해미는 과거 속으로 뛰어든다.


2025년 해미의 가족은 해운대로 여행을 갔다.

가족의 화해를 위한 여행은 작은 오해와 용기 부족으로 뒤틀렸다.

그리고 그날 고리 원전의 방사능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반경 30킬로미터 이상을 벗어나야 안전하다.

엄마는 딸을 찾아서, 딸은 엄마를 찾아 돌아다니면서 서로가 엇갈린다.

결국 두 딸 해미와 다미는 군인의 도움으로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떠난다.

이때 다미가 문밖으로 내민 다리는 부러지고, 긴 시간이 흐른 후 죽은 엄마가 발견된다.

두 자매는 서로 의지하지만 삶은 둘이 같이 있게 하지 못하게 한다.

동생의 학비 등을 위해 군에 입대하지만 동생이 바란 것은 이것이 아니다.

생존과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 가끔 최악으로 변하기도 한다.


엄마에 대한 과거 기억은 해미의 삶을 뒤흔든다.

그녀가 전전한 직업들은 바로 엄마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다이버 직업을 그만둔 어느 날 밤 그녀의 문을 두드리는 쌍둥이가 있다.

대통령 직속기관 소속이고 바쁘다면서 문을 쾅쾅 때린다.

둘을 내쫓기 위해 움직이다 오히려 그녀가 당한다.

그리고 이상한 곳에서 동생 다미와 함께 잔혹한 테스트를 받는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해미가 2025년 해운대의 그날로 시간 여행하는 것이다.

두 자매의 평생을 짓누르는 고통이자 악몽인 엄마를 구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이 시간 여행은 우리가 알고 있던 방식이 아니고, 조건도 많다.


일단 기본 수칙이 열 가지가 넘는다.

이 수칙 하나 하나가 이야기를 쌓아가는데 중요한 열쇠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의 자신과 접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접촉하면 시간 패러독스에 의해 문제가 생긴다.

단 한 번의 그날 그곳의 다이브로 해결되면 좋지만 아니다.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나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인식해도 문제다.

새로운 다이브를 할 때마다 다른 옷으로 바꿔 입는다.

한 번 간 시간과 공간은 이미 이전에 다이브한 해미가 있다.

이렇게 먼저 다이브한 해미의 동선은 다미가 기록한다.

비슷한 시간대에 수많은 해미가 미래로부터 와 있다.


한 번의 다이브가 실패할 때마다 이전에 다이브한 해미가 쌓여간다.

조금씩 엄마의 동선을 바꾸는 작업은 진행하는데 변화가 없다.

왜 이런 것일까? 이유는 뒤에 나온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다른 다이버들이 들어와 있다.

다른 목적, 다른 의도, 엇갈리는 서로의 바람.

그리고 어느 순간 예측이 가능해지는 쌍둥이의 정체.

다른 소설에서 다루어졌던 고리 원전 폭파 이야기.

뒤틀린 과거를 바로잡으려는 욕망, 잘못을 용서받으려는 마음.

이야기가 층층이 쌓이고, 감정은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려는 그 마음은 진짜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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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가로지르는 은하향초
김청귤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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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사연과 여백으로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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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가로지르는 은하향초
김청귤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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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에 연재한 엽편소설을 모은 책이다.

각각의 이야기가 짧지만 마녀와 향초 가게를 통해 이어진다.

재밌는 설정 중 하나는 이 향초 가게가 고정된 위치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 위치는 지구만이 아니라 우주 속 어느 행성도 가능하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은 죽어서 별이 된다는 설정이다.

마녀가 만든 향초를 통해 터널을 만들고 의뢰자는 그 별로 간다.

향초가 다 타면 터널이 닫히고 돌아오게 된다.

황당한 듯하지만 마법 세계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다.

이 은하향초는 간절하게 누군가를 만나기 바라는 사람 근처에 가게가 열린다.


여덟 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 은하향초에 다양한 의뢰가 온다.

유기된 고양이 치즈를 키운 세즈의 간절한 그리움.

놀라운 요리를 만들던 안드로이드 헤이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

유기된 자신을 돌보아주던 할머니를 만나고 싶은 진돌이.

엄마가 떠올라 별동별처럼 우주를 가로지른 아기별.

자신의 소설책을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는 작가의 울분.

바다 오염되어 언제 멸망할지 알 수 없는 어느 행성.

유령이 되어 나타난 개 노이체와 노이체를 그리워하는 리토.

마지막에 진돌이가 기억하는 향을 복원하면서 살짝 흘리는 마녀의 그리움.


작가는 짧은 각각의 이야기 속에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녹여 넣었다.

주인의 욕심이 반려동물의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고 자기 만족하는 문제를.

이 과정에 기계화를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차별과 비하 표현.

안드로이드에 가해지는 폭력과 그 바닥에 깔린 차별의식.

인간으로 늙어 죽고자 했지만 진돌이와 오래 살고자 몸을 개조한 할머니의 사랑.

종이책이 비싸고, 소설을 천천히 읽지 않게 된 현실의 문제.

오염된 환경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힘든 지, 중요한지 말한다.

사랑의 깊이가 보이는 리토의 손짓과 몸짓과 둘의 진한 연대와 사랑.

결코 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게 이 이야기들이 풀려나온다.


이 단편들을 읽으면서 좀더 긴 이야기에 대한 욕심이 처음에는 있었다.

후일담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하지만 간결하게 끝난 이야기는 여운으로 남고,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치즈를 만난 세즈의 기쁨과 앞으로의 삶은 어떨지?

노이체와 리토는 함께 별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

오염된 바다가 점점 정화되어 가는 행성의 미래는 밝기만 한 것일까?

아직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마녀의 커피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향기가 사람의 기억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내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다면 어떤 향기가 어울릴까?

기존에 읽었던 작가의 소설과 다른 느낌이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SF소설 #연작소설 #우주향초 #은하향초 #우주를가로지르는은하향초 #김청귤 #다산책방 #리뷰어스클럽 #리뷰어스클럽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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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새 우는 소리
류재이 외 지음 / 북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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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현대적 감각으로 전설을 호러로 다시 쓴 앤솔러지다.

여섯 작가가 참여했는데 낯익은 작가는 한 명이다.

추억의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말해 더 눈길이 갔다.

이 앤솔러지에 참여한 작가들은 호러 소설 창작 그룹 ‘괴이학회’ 소속이다.

이 그룹을 여기저기에서 봤지만 솔직히 말해 잘 모른다.

이들이 택한 여섯 전설도 사실 잘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창귀’는 다른 장편 소설로 만난 적이 있어 그나마 조금 익숙하다.

기억을 더 돌아보면 한두 전설 정도 더 알지 모르지만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여섯 편이 그 시대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부분은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류재이의 <금녀>는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에 내려오는 ‘금돼지와 원’ 설화를 바탕으로 했다.

금녀는 미지의 존재에게 현감의 아내가 잡혀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아내가 되었다.

어느 날 사라진 여성들이 모인 곳에 도착한 금녀.

조선 시대는 여성의 인권이 제대로 있을 때도 아니다.

각자의 사연이 나오고, 그분과 함께 사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기녀 홍매가 그분의 아이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씩 드러나는 인간의 탐욕과 전설의 존재.

조선 여성 잔혹사와 마지막 장면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지유의 <여우의 미소>는 제주도, 전라북도 지역의 ‘여우 누이’ 전설을 바탕으로 했다.

양반 자제들이 연속적으로 죽어나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여우의 피를 가진 영인은 이 살인 사건에 묘하고, 관심이 생긴다.

양반들이 평민 여성을 겁간하고 살인한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

성폭행의 희생자가 된 여종들과 양반의 치외법권적 권력.

유상의 <달리 갈음, 다리가름>은 경상남도 고성의 천도굿인 ‘다리가름’을 바탕으로 한다.

다리가름이란 천도굿은 처음 듣는다.

사람의 모습을 한 수백, 수천 마리의 쥐떼들.

이 쥐떼를 몰아내려는 늙은 무당의 굿과 이것을 막으려는 쥐떼.

마지막 장면은 열린 결말로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다.


박소해의 <폭포 아래서>는 개성시 천마산 박연 폭포에 내려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했다.

피리를 잘 부는 박 씨 선비와 박연 폭포 속 용녀와의 결합 이야기가 내려온다.

박연 폭포하면 황진희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 폭포 속에 용녀의 대저택이 있다.

전설처럼 피리 명인 박이선은 용녀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하지만 이 이후 새로운 사실이 나오면서 조금은 낯익은 공식 속으로 흘러간다.

서로 다른 공간과 다른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낸 마지막 장면은 살짝 웃게 한다.

무경의 <웃는 머리>는 ‘창귀와 관련되어 있다.

암행어사와 웃는 표정의 머리. 산군 호랑이의 위협적인 모습과 그 옆에 있는 창귀.

창귀와 어사와의 은밀한 대결은 갑작스럽게 펼쳐진다.

중첩되는 이야기와 도식적인 듯한 반전들. 가독성과 달리 아쉬움동 있다.


위래의 <반쪽이가 온다>는 경기도 양주시에 내려오는 ‘반쪽이’ 설화가 바탕이다.

꽃님이가 꾸게 되는 이상한 꿈, 동네에 퍼진 반쪽이 이야기.

쉽게 그려지지 않는 반쪽이의 모습.

반쪽이가 꽃님이와 혼약을 맺고 싶다는 소문과 진격의 반쪽이.

이 상황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꽃님이.

초반에 풀어놓은 설정이 후반부에 적패지와 엮여 이 소동의 이유가 나온다.

꽃님이의 냉정한 시선과 상황 판단이 인상적이고, 마지막 배짱도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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