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5 - 사과와 링고
이희주 외 지음 / 북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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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처음 읽었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 몇 권을 사 놓기만 했다.

그 당시는 한참 한국 소설을 읽을 때였고, 이상문학상 최고 전성기였다.

이 시기를 한동안 보낸 후 새로운 한국 작가에 대한 폭이 좁아졌다.

최근에 나온 작가들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이런 일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한국 문학상 수상작들을 조금씩 읽고 있다.

장르 소설 쪽을 더 많이 읽지만 기회가 되면 문학상에도 눈길을 준다.

작년에 오랜만에 읽었던 이상문학상이 좋았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대부분의 작가들이 낯설다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이 문학상은 다른 문학상과 다른 구성이 하나 있다.

수상 작가의 작품론을 중간에 넣은 것이다.

처음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이 작품론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옛날 수상작품집을 보면 낯익은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순간 한국 소설과 멀어지면서 대부분 낯설게 된 것이다.

우수작품상을 받은 작가 중 낯익은 이름은 김경욱과 김혜진뿐이다.

그렇다고 이 둘의 소설을 많이 읽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만 이 둘의 소설은 집에 한두 권 이상 있는 것만 기억한다.

기수상작가 손보미라면 낯익고 몇 권의 소설도 읽었지만.


이희주의 <사과와 링고>는 제목부터 이상했다.

링고가 일본어로 사과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펼쳐지는 K-장녀 이야기는 조금은 흔한 설정이라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사라에게 돈을 빌려 달라는 동생 사야의 연락도 낯익은 설정이다.

가족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가족 일원의 이야기는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라가 사야에게 기대한 감정과 현실의 괴리가 드러나면서 변주가 일어난다.

단숨에 관계를 끊지 못하는 이유가 나올 때 고개를 끄덕인다.

사라가 빠진 뮤지컬 이야기, 그녀의 팍팍한 일상에서 유일한 탈출구인 뮤지컬.

동생의 사치와 애완묘 사과와 링고, 사라와 사야의 관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라의 행동과 너무나도 완강한 그녀의 마지막 행동.

뻔한 설정은 어느 새 사라지고 억눌리면서 뒤틀린 그녀의 행동과 심리에 멍해진다.


자선작인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는 아이돌 덕질 이야기다.

실제 자신의 작업을 넣고, 얼마 전에 있었던 법원 습격 사건과 덕질을 엮었다.

요즘 아이돌 덕질을 소설 속에 가져오는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실제 작가 자신도 아이돌을 덕질하고 있고, 그 팀이 NCT WISH라고 알려준다.

소설 속 유리의 흔적을 뒤쫓고, 그가 속한 팀을 열심히 알린다.

나에게는 낯선 행동이지만 덕질인에게 이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다.

자신의 과거와 유리의 과거를 엮으면서 갑자기 마주한 현재의 유리를 보여준다.

그가 이렇게 된 데에 대한 기원을 과거의 덕질 속에서 파헤친다.

팬픽에 대한 부분도 아주 낯설지만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가장 낯익은 이름인 김경욱, <너는 별을 보자며>도 덕질 이야기다.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아내가 최근 덕질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간다.

그곳에 가기 전 그의 간단한 이야기와 콘서트 현장 분위기 등이 뒤섞인다.

상상이란 한자를 파자해 나무, 눈, 마음, 사람, 코끼리로 표현한 부분도 재밌다.

그리고 없는 아내에 대해 글을 쓴 과거를 말하는데 이 글 속 아내는 존재할까?

김남숙의 <삽>은 앞부분에 잠시 집중을 못했다.

학원 강사 재구가 겪게 되는 미성년자 성추행 신고에 대한 정보를 제때 발견하지 못했다.

뒤에 나오는 이 사건의 전말과 재구에 대한 동료 선생들의 반응이 복잡하다.

자신의 무죄를 의심했던 동료에 대한 재구의 집요한 질문.

자신이 놓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알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전처럼 능청스럽고 잔혹하게 연락하는 소녀.

마지막의 강렬한 장면들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김혜진의 <빈티지 엽서>는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속내를 파고든다.

자신에게 스쿼트 자세를 자세하게 알려준 중년 남성.

가르쳐준 대로 연습해서 효과를 봤지만 한 동안 그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동안 스위스 등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한때 번역사를 꿈꾼 그녀, 그가 가진 빈티지 엽서를 보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들을 불륜의 본 누군가의 경고 메시지. 불편한 감정.

긴 이야기가 아니지만 감정과 취미 등이 생각의 고리를 이어간다.

이미상의 <옮겨붙은 소망>은 낯선 세계로 시작한다.

빈티지 장신구를 사는 데 단순히 클릭을 빨리 하기 위해 고용된 화자.

화자를 고용한 n&n’s 의 사연과 그 장신구에 얽힌 이야기들.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장신구 이야기가 섬뜩한 이미지를 만든다.


함윤이의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는 좋은 가독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천문대를 산 사람들의 정체가 너무 불분명하다.

명확한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을 막는 듯한 연출이다.

불과 노아의 관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손보미의 <자연의 이치>는 거식증에 걸린 영유 이야기다.

키가 크고 몸집이 있던 그녀는 음식량을 조절하면서 체형이 바뀐다.

그녀를 보는 친구들의 시선이 바뀌고, 선생은 그녀라는 것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음식을 더 먹지 않으면서 점점 더 말라간다.

이런 그녀를 걱정하는 존재가 할머니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서울 언니다.

영유가 느끼는 청소년기의 오해와 판단 착오 등이 묵직하게 흘러나온다.

전체 이야기를 다시 돌아봐야 조금이나마 더 이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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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계가 하나였다 픽셔너리 1
박대겸 지음 / 북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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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중편 시리즈 〈픽셔너리〉 첫 번째 작품이다.

픽셔너리는 픽션과 딕셔너리의 합성어로 ‘나’를 픽션화하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출판사는 작가에게 소설과 에세이를 결합한 작품을 의뢰한다.

작가는 혼란을 겪는데 이것을 소설 속에 그대로 말한다.

당연히 에세이가 담겨 있다 보니 자신의 작품들을 하나씩 말한다.

생각보다 많은 작품과 그 사이에 읽었던 단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안전가옥 앤솔로지 <미세먼지> 속 ‘미세먼지 살인사건 - 탐정 진슬우의 허위’다.

다행스럽게 이 책을 읽어 그때 평을 찾아보니 연작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글이 보인다.

작가의 다른 소설들을 읽지 않아 연작으로 나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소설은 간결한 진행 속에 살짝 살짝 상황을 꼬았다.

첫 장면에 집에 들어온 작가가 현관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

누구지? 같이 사는 동거인 에른스트? 아니다.

고민하고 있는데 집안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혹시 살인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한다.

언제나로 나갈 준비를 하는데 에른스트가 보인다.

그가 한 말은 황당한데 이세계에서 왔다는 것이다. 뭐지?

그리고 엎드린 자세의 남자를 돌려 눕히는데 박대겸 그 자신이다.

이 황당하지만 재밌는 프롤로그를 지나면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실제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인물은 박대겸이다.

그런데 박대겸 한 명이냐고 하면 아니다.

다른 박대겸도 등장해서 이야기의 꼬임을 만들어낸다.

프롤로그에 쓰러져 있던 인물도 박대겸이지 않은가.

여기에 박대겸과 함께 사는 에른스트가 이 황당한 설정의 해설자 역할을 한다.

부산에서 책방을 하다 탐정 재능을 발견하고 탐정으로 전직한 인물이다.

그는 일반적인 탐정이 아니라 멀티버스 탐정으로 활동한다.

쓰러져 있던 박대겸을 보고 이세계라고 말한 것도 그의 이 능력 때문이다.

그렇다고 에른스트가 박대겸의 삶에 뛰어들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박대겸은 자신의 삶과 주어진 목표를 엮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사실과 거짓이 엮이지만 어디까지 사실인지 알 수 없다.

그가 출간한 작품들이 나오고,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감상평을 말한다.

타로 점을 보는 장면과 현실적 고민이 만나는 순간 또 꼬인다.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 능청스럽게 풀려나가는 꼬리를 문 이야기들이다.

어느 순간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관심이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가면서 황당함은 더 거대해진다.

이상의 시를 패러디한 시와 장면들은 잠시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하지만 이 장면들 속에서 다중우주의 가능성은 닫지 않는다.

나중에 작가의 다른 책을 읽으면 왠지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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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함께하는 여름
실뱅 테송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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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랑스 라디오 방송에서 방송한 같은 제목의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다.

이 프로그램은 프랑스 앵테르에서 여름을 맞아 기획한 시리즈 중 하나다.

앞의 이름만 달리한 책 제목을 봤지만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이 책도 사실 저자 실뱅 테송이 아니었다면, 호메로스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저자의 그래픽노블 두 편을 재밌게 읽었다.

<눈표범>과 <시베리아의 숲에서>였다.

이 기억은 갑자기 이 저자의 다른 책 검색으로 이어졌고, 호메로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래 전 다른 작가의 호메로스에 대한 책도 읽지 않았던가.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는 언제나 제대로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줄거리는 잘 알고 있다.

소설 같은 <오디세이아>는 재밌게 읽은 기억도 있다.

하지만 그때 읽은 것은 단순한 이야기였지, 서사시 원작의 번역이 아니었다.

집을 뒤지면 소설처럼 된 것이나 시로 번역된 책이 있을 것이다.

찾아도 그 책을 잠깐 훑어보고 책장 한 곳에 계속 꽂아두고 있을 것이다.

나의 바람과 취향이 달라 생기는 간극은 늘 이런 식이었다.

원작을 읽으면 가장 좋지만 쉽지 않아 늘 이런 식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라디오에 방송한 것을 그대로 실었다는 정보가 앞에 나온다.

저자가 학창 시절 이 시들을 공부했다고 말하면서 현재는 교과 과정에 빠졌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 방대한 시 전체를 다 읽었다는 말인가?

학창 시절 내가 이런 시를 제대로 읽은 적이 있던가? 아니 없었다.

시가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그것이 담고 있는 함의와 비유 등이었다.

그래서 그냥 멋진 표현에만 혹했던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장대한 두 편의 서사시에서 현대의 모습을 발견한다.

뛰어난 작품의 경우 그 속에서 우린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전쟁과 인간의 탐욕과 자연의 분노’가 특히 그렇다.


호메로스의 존재에 대한 다양한 학설을 간단히 말한다.

두 시에 대한 여러가지 이론도 역시 짧게 다룬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 독자들에게, 시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다 보면 신들에게 너무나도 쉽게 당하는 인간들이 나온다.

이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신들은 인간들을 조종하고 자신의 바람대로 이끈다.

어릴 때 이런 모습을 보고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했던가.

가끔 신의 예상을 벗어난 일들이 생긴다.

하지만 이것을 신의 개입으로 다른 전개로 이어진다.

이런 부분들이 이전까지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거나 몰랐던 부분이다.


호메로스에게 추락이란 낙원에서 떨어지는 인간의 추락이 아니라 이상적으로 정돈된 낙원의 전복이다.”

이 문장을 곱씹으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계속 생각한다.

낙원과 이상적으로 정돈된 낙원의 차이는 무엇일까?

신의 조종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삶.

책 곳곳에 원문을 들려주고, 해석하는 시도는 잠시 숨을 고르게 한다.

누구는 이 두 편의 시에서 고대 문명의 유적을 발견했다.

트로이의 목마는 인터넷 시대에 바이러스 때문에 또 한 번 알려지기도 했다.

이런 사실과 함께 신의 현신과 닮은 모양으로 그려낸 sf소설들도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천천히 음미하듯 조금씩 읽으면 기대 이상의 재미가 있다.

작가의 다른 책에도 다시 관심을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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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1
R. F. 쿠앙 지음, 이재경 옮김 / 문학사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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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었던 <옐로페이스>의 작가다.

이 책 이전에 <양귀비 전쟁>이 먼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읽지 않았다.

한 작품을 재밌게 읽은 기억은 다른 소설에도 관심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이전 소설의 기억들 중 일부가 이번 책을 읽으면서 살아났다.

단순히 제목과 SF소설이란 설정만 놓고 보면 고대를 다룰 것 같다.

하지만 작가는 19세기 초 영국을 무대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바벨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던 그 바벨이 아니다.

옥스퍼드 대학에 있던 왕립번역원이다.

물론 이 바벨은 8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탑 구조물이다.


중국 광동의 한 거리를 영국인이 걷는다.

콜레라에 걸려 죽기 직전의 중국 아이를 은막대와 주문으로 살려낸다.

이 영국인은 리처드 러벌 교수이자 바벨의 교수다.

러벌 교수는 아이의 엄마는 두고, 아이만 데리고 나온다.

아이의 영어 실력을 검사하고, 아이의 체력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그리고 체력이 회복 소년을 데리고 런던으로 온다.

이때 소년에게 자신의 이름을 지으라고 하는데 로빈 스위프트로 정한다.

런던에서 로빈이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라틴어 등을 공부시킨다.

한 번 소설에 빠져 수업시간에 늦었을 때 러벌은 아이를 마구 때린다.


이 판타지 소설은 기존의 스팀펑크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

은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실버워크가 삶과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실버워크는 은막대에 특정한 글자를 새기고 말하면서 효과가 발생한다.

로빈을 살린 은막대도 의료용이었다.

이런 마법 같은 효과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단어들을 찾는다.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넘어 동양의 언어까지 연구한다.

러벌 교수는 중국 만다린어 전공이고, 로빈을 데리고 온 이유도 이 언어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로빈은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

만약 대학에 가지 못하면 영국에서 추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다.


은산업혁명은 영국을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대영제국의 모습은 그대로 두고, 발전 동력을 다른 것으로 했다.

새로운 단어를 발굴하고, 이 단어를 은막대에 새기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바벨은 이런 작업을 하는 최고의 장소이자 연구원이다.

로빈을 비롯한 네 명의 남녀 청춘들이 바벨의 학생으로 입학한다.

인도인 라미, 아이티 출신의 빅투아르, 영국 해군 제독의 딸 레티 등이 동급생이다.

라미와는 같은 동양인으로 겪은 경험 등으로 첫날부터 친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레티와 빅투아르도 최고의 친구가 된다.

이들의 열정과 청춘, 학문적 관심 등은 묵직하게 흘러간다.


작가는 한 단어의 어원을 파고들고, 연관어를 설명한다.

이 작업은 실버워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연구다.

실버워크는 건설, 교통, 상하수도, 가로등, 증기선 등 모든 분야에서 사용한다.

은막대에 무형(無形)을 새기고, 우싱을 외치면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어느 날 로빈이 자신의 도플갱어라고 생각한 외복형을 만나는 순간이 이때다.

너무나도 닮은 얼굴의 이복형은 그리핀 러벌이고, 옥스퍼드 출신이다.

하지만 그는 죽은 것으로 치부되었고, 그를 통해 로빈은 현실을 깨닫는다.

그리핀이 소속된 비밀조직의 이름은 헤르메스 협회이다.

그리핀은 로빈에게 자신의 조직을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바벨에서 공부하는 로빈을 비롯한 네 명의 학생은 부족함이 없다.

학비는 공짜, 적지 않은 생활비가 지원된다.

4학년이 되어 실버워크를 배우면 1등석을 타고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번역사가 되어 외교 현장에서 일하거나 바벨에서 연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 수업은 결코 쉽지 않고, 성적이 떨어지면 바벨 밖으로 밀려난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노력하는 이들을 보면 대학을 다룬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바벨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피를 뽑아 병에 담아두어야 만한다.

이 보안 조치 때문에 그리핀은 로빈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도움이 로빈의 불안과 미래에 두려움을 불러온다.


사실과 상상을 뒤섞어 만들어낸 세계.

그 속에 담긴 실체적인 사실들은 제국주의의 본질을 건드린다.

외교 문서나 무역거래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숨기기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외국 단어를 발굴해 실버워크에 적용해 제국의 위치를 굳건하게 한다.

바벨의 역할은 단순히 번역이나 실버워크 개발이 아닌 식민주의 확대를 위한 것이다.

백인 영국인이 아닌 다른 피부색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받는 교육과 장학금 등에 빠져 식민지 개척의 최전선에 선다.

진짜 역사와 교차하면서 풀어내는 가공의 역사는 어디서 변곡점을 만들까?

저자의 일러두기가 먼저 나온 것은 독자들의 괜한 트집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옐로우 페이스> 속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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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뭇잎에서 숨결을 본다 - 나무의사 우종영이 전하는 초록빛 공감의 단어
우종영 지음, 조혜란 그림 / 흐름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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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사 우종영의 에세이다.

그의 에세이는 처음 읽었다.

책 제목과 나무의사란 것에 혹해 산 책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는 책들이 너무 많아 이런 일이 종종 생긴다.

책 욕심이 이전보다 줄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더 줄여야 할 것 같다.

읽고 싶은 작가의 경우 이런 방식이 아니면 시도조차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시간도 체력도 부족한 요즘을 생각하면 현재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렇게나마 읽으면서 읽고 싶은 작가의 책을 읽었다.


최근 몸이 다시 게을러지고 있다.

걷는 시간이 많을 때는 공원에서 잠깐 동안 나무와 꽃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대충 본다고 해도 계절의 변화와 함께 나무와 꽃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마저 하지 않게 되면서 그 변화와 나무와 꽃의 향기를 느끼지 못한다.

아쉬운 현실이지만 다시 걷고자 마음이 있으니 가을에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읽으면서 머릿속에 내가 가고, 보고, 느낀 것들과 가보고 싶은 곳들이 떠올랐다.

가끔 올라갔던 산과 오름과 공원들, 오르면서 무심하게 본 나무와 풀들.

누가 좋다고 해서 가 새로운 정보와 나무의 놀라운 모습을 본 순간들.

한 번은 꼭 올라가고 싶은 한라산 정상.


재밌는 점 중 하나는 목차의 각 장이 생태감수성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순서는 생, 태, 감, 수, 성이 아니라 감, 성, 생, 태, 수 순이다.

이것은 느낌의 높낮이, 본바탕을 이루는, 어쩌다 태어난, 모여서 만든, 받아서 베푸는 등의 부제를 가졌다.

각 장은 다시 하나의 단어를 가지고 그것에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각 단어들의 의미를 하나씩 풀어내기에는 내 능력이 부족하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되는 부분들이 나온다.

물론 적지 않은 부분들이 나오지만 모두 적을 수는 없다.

감’의 장에서는 “부엔 비비르 : 참살이”가 특히 그랬다.

자연과의 조화, 공동체 중심의 생활 추구, 다양성 존중 등이 특징이다.

한 나라의 헌법에도 명시되었다고 하니 공부해 볼 필요가 있다.


성’의 장에서는 진화를 진보와 구분해서 설명해준다.

진화를 진보라고 착각하거나 진화가 완벽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상상을 거부한다.

이런 잘못의 원인으로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생태계를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계속해서 주장하는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이다.

인간 중심 관점에서 자연을 보면서 ‘수’의 장에서 “보존과 보전”의 문제가 나온다.

보전은 인간이 자연을 이용 가능한 자원으로 파악하고, 보존은 생태주의적 관점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이 둘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고 했을 때 뜨끔했다.

실제 문제는 이 주장들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다.

이 부분에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의 장에서 호미의 다양한 이름에 놀랐다.

막호미, 파호미, 마늘호미, 감자호미, 조개호미 등은 작물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모양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이것은 저자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생태계를 더 풍성하게 하려는 시도와 연결되어 있다.

반려식물이란 단어를 보고 내가 가진 편협한 사고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태’의 장에서는 순화에서 말의 고삐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고삐를 놓으라는 몽골인의 말은 우리 삶에도 적용된다.

단순히 생태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고, 과학, 철학, 문학 등을 아우르고 있다.

점점 자연과 멀어지는 내 삶을 다시 작은 공원으로 발길을 돌려야겠다.

배울 것도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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