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 - 보편주의적 복지국가를 향한 새로운 좌파 선언의 전략
사민+복지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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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사건과 논쟁과 경험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당시나 지금이나 부정적으로 보았던 현상을 새로운 시선에서 다시 보는 계기도 되었다. 이제 좌파도 새로운 시각과 현실의 폭넓은 인식으로 변해야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금의 경제, 사회 현실을 보면 대한민국이 가고 있는 막다른 길이 눈에 선하기에 이런 논쟁은 좀더 활성화되고, 올바른 합의로 이어져야할 것 같다.

 

사실 지난 대선과 총선은 한국 정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보수 우익(?)은 강하게 단결하였고, 좌파를 자칭하는 세력은 사분오열로 쪼개졌다. 그 결과는 한나라당의 대승이다. 지금 아무리 민심을 욕하고 탓해도 그 당시 결정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왜 그런 현상이 벌어졌는지 돌아보고 반성할 필요는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내세운 수많은 정책들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가 있던지 그들을 지지했던 나마저 그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 중 일부를 이 책 속에서 만나며 한국 좌파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더 절실히 느꼈다.

 

책을 엮은 이들은 사민+복지기획위원회라는 조직이다. 이들은 새로운 좌파를 모색하고 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이 책이다. 다양한 저자가 등장하여 다양한 논의를 제공하는데 최종 종착점은 복지국가로 보인다. 하지만 세부내용으로 들어가면 저자들마다 조금씩 혹은 기본 방향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에서 대안을 찾고 있다. 기존의 진보세력이 유리한 상황에서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여전히 혁명주의적 사고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순간 가슴속이 철렁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구 결과들에서 현실과 유리된 그들의 정책이나 주장들이 왜 생겨났는지, 왜 그렇게 극우민족주의자들과 유사한 모습을 보였는지, 민주노동당이 왜 갈라지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여기서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정의를 보자. 그들은 ‘모든 이념은 상대적으로만 진리’라는 명제를 받아들이며, 사회는 이념을 달리하는 다양한 이해집단과 정치 세력들로 구성되며 이들은 각자 나름의 존재가치와 진리성을 가지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이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하나의 절대선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인민의 복지에 초점을 많이 맞춘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도그마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386세대가 급진적 신자유주의 개혁에 크게 저항하지 않을 것을 민중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양식과 세계관에 비추어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이종태 씨가 말하는 대목에서 오랜 세월 동안의 의문이 풀리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사회적 양식이나 세계관이 변질된 것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과격한 학생운동으로 감옥을 다녀온 선배가 대기업에 취직을 한 후 기업의 이익을 위해 최일선에 나서 민중을 짓밟는 현실을 보아온 나에겐 쉽게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이야기가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중 하나가 한겨레신문에 실린 한 여성의 수기에 대한 글이다. 취업실패와 취업사기에 절망하고 6개월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그녀가 정규직으로 취직하지 못하고 난 후 자본주의 사이클 안에 속해 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 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그녀 같은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유지에 봉사한다고 지적하는데 순간 가슴이 뜨끔하였다. 비정규직에도 분명히 행복이 존재하지만 늘 고용의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 현실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 단기간은 만족하는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하는 현실에선 그 노력이 취업보다 더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리고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가장 관심이 갔던 주장은 지역계급론이다. 지역에는 계급이 없다고 말하면서 지역을 분석한 그 글은 많은 논쟁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반드시 주목해야한다. 지역에 존재하는 세 집단인 자영업자, 전업주부, 어르신 등의 엄청난 규모에 눈길을 주고, 전략 차원에서 이들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민주주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자 현실에 뿌리를 둔 정치 인식이다. 심정적으로 이론적으로 진보정당을 옳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의 벽에 발길을 돌린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에 와 닿는다.

 

가끔 나의 착각인지 작가의 착각인지 모를 문장도 보이지만 이 책은 나에게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정치와 현실의 차이를 더 좁힐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또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주장하는 복지국가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법은 즉흥적이고 단선적이었던 나의 시야를 좀더 넓혀주었다.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한국 사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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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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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주저 없이 살인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놀란다. 인간이기에 욕망에 빠져 어쩔 수 없이 헤매기도 하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다. 그 한계를 넘어가게 되면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이 소설 속 살인자나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도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살인자와 살해당한 자의 차이라면 그 한계를 누가 먼저 넘는가 하는 시간의 문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문제는 한 장의 유언장 때문이다.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만들어놓은 유언장은 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피를 부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긴다이치 코스케가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의 예상대로 살인이 이어진 것도 바로 유언장과 함께 거부였던 이누가미 사헤 옹의 과거 때문이다. 그의 과거를 다룬 첫 부분에서 많은 단서를 제공하는데 그 예상은 끝으로 가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 유언장이 의도한 바도 명확해진다. 하지만 연쇄살인을 불러오고, 그 살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는다.

 

영화로 세 번, 드라마로 다섯 번이나 만들어진 소설이다. 역자의 말처럼 이 정도로 만들어졌다면 일본 사람들에겐 소설보다 영상으로 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영상은 감독의 시선을 통해서 한 번 걸러지기 때문에 원작의 재미를 완전히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세이시의 다른 작품인 ‘악마가 오라고 피리를 분다’를 드라마로 옮긴 것을 보고 단숨에 살인자를 파악하게 되면서 긴장감이 떨어졌다. 그 이유는 단서를 너무 분명하게 영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원작을 읽고 난 후 영상을 접하려고 한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졌는데 이렇게 많이 영상으로 옮겨진 것은 바로 이 소설이 지닌 공포와 재미 때문이다.

 

추리소설이 전해주는 공포는 살인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누군가가 죽어있다면 조금은 심심할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무섭게 연출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과거 이야기와 결합하면 조금 더 복잡해진다. 바로 이 소설이 그런 구조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물론 이것은 작가의 특징이다. 소설은 이누가미 사헤 옹의 과거와 막대한 재산, 그리고 딸들에 의해 내쳐진 아들의 존재를 축으로 한 가문 속에서 벌어지는 욕망의 충돌과 살인으로 빚어내는 비극을 다룬다.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구조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그 완숙한 진행은 언제나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 매력의 중심엔 죽을 사람이 죽고 난 후 문제를 해결하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있다.

 

우리에게 소년탐정 김전일로 유명한 긴다이치 하지메의 할아버지인 긴다이치 코스케는 매력적인 탐정이다. 매끈한 외모도 아니고, 사건을 단숨에 꿰뚫어보는 직관도 없지만 연속적인 죽음 속에서 사건의 본질을 찾아가는 그 모습은 굉장히 인간적이다. 또 그의 머리를 벅벅 문지르는 버릇은 약간 허술한 느낌을 주는데 그의 날카로운 추리와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만화에서 그의 손자를 자처하는 하지메도 역시 약간 허술한 느낌은 주는데 할아버지처럼 죽을 사람이 죽은 후 문제를 해결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오죽하면 김전일과 여행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란 농담도 있을까!

 

아직 긴다이치 시리즈를 몇 권 읽지 않았지만 비슷한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가면 뒤에 숨겨진 비밀을 파악하고, 다른 가능성도 추리해보지만 역시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바로 살인자의 마음과 살인자를 둘러싼 환경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대미는 바로 사헤 옹의 과거다. 긴 단편들을 마지막에 꿰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장면은 어쩌면 맥이 빠지지만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좋은 장면이기도 하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도 소년탐정 김전일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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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의 유산 - 한국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
팀 와이너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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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CIA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와 소설로 만들어진 멋진 조직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나라의 역사 속에 비추어진 추악한 뒷모습이다. 이 책은 바로 추악하고 실패로 가득한 CIA의 역사를 보여준다. 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수많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허위와 거짓으로 가득한지 알려주면서 후자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우렸는지 보여준다. 제목 그대로 화려한 영광은 없고, 잿더미만 가득한 허상의 기록이다.

 

CIA의 역할은 사실 영화나 소설 등으로 많이 부풀려져 있다. 보통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실패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가끔 외신이나 뉴스나 책에서 접하는 CIA의 모습은 단편적이고 순간적이다. 그들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추적할만한 단서를 남겨놓지도 않았고, 그 추적을 쉽게 용납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일반 대중이 그 실체에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리고 CIA의 비밀공작을 통해 본 세계사는 미국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결코 미국이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지 않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만약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면 바로 이 책을 읽고 난 후 그 환상이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읽은 후에도 거짓이라고 믿는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CIA의 모태가 된 OSS를 알고 난 후 그 설립과정을 보는 재미는 솔솔하다.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대목도 있지만 어떤 목적과 의도로 만들어졌는지는 잘 몰랐다. 그리고 그들이 펼친 작전들이 어떤 것이 있고, 얼마나 많은 예산을 쏟아 붓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만 제3세계 역사를 통해 그들이 펼친 비밀공작과 그 나라 국민이 어떤 고난과 피해를 입었는지 알 뿐이다. 일본 자민당 창설에 관여한 대목에선 사실 많이 놀랐다. 그 치밀하고 지속적이면서 반민주적이자 반인륜적인 그들의 비밀공작을 들여다보면 예상을 초월한다. 그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역대 대통령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강하게 주장하고, 밀어붙이고, 확실한 결과를 얻고자 했다는 점이다. 최근에 다른 매체를 통해 아이젠하워나 케네디 일가에 대한 환상이 조금씩 깨어지고 있었는데 이 책으로 인해 완전히 박살났다. 

 

왜 그런 환상이 깨어졌을까? 그것은 설립 당시부터 잘못된 출발과 최고 권력자들의 욕심 때문이다. 분명히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진 조직이지만 국가 조직 내부의 권력 다툼이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전문가 집단이 아닌 아마추어 수준의 정보를 다루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세계 각국에서 비밀공작을 펼치지만 그 나라 문화도 언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가 첩보활동을 하고,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무수한 인원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 대부분이 미국인이 아닌 공작지의 국민이란 점에서 그들에게 미국인이 아닌 사람은 단순한 소모품 그 이상이 아닌 것 같다. 가끔 한국에 대한 글이 나오면 깜짝 놀라곤 한다.

 

잘못된 출발보다 더 잘못된 것은 권력자들과의 관계다. 자신들이 얻은 정보가 대통령의 생각과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퇴짜를 맞는다는 사실에 그들의 운명은 정해지게 된다. 윗사람 입맛에 맞는 정보만 보고가 되어지고, 조직의 존립을 위해 실패를 성공으로 포장하는 능력을 더 키워온 것이다. 정보를 분석하고 올바른 해답을 내놓을 능력을 키우기보다 비밀공작으로 한 나라의 운명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는데 맛을 들인 것도 문제다. 물론 이 비밀공작이 대부분 올바른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참혹한 결과는 역사에 분명히 기록되어있다.

 

영화 속에선 언제나 미국 스파이가 소련 스파이를 압도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소련을 제대로 이겨보지 못했다. 철의 장막을 제대로 뚫지도 못하고, 이전의 실패에 사로잡혀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온 사람을 고문하고 취조하면서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한다. 계속된 첩보활동의 실패가 조직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수많은 실패는 너무나도 많다. 한국전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9.11까지 이어지는 실패의 역사는 현재 CIA가 미국에서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의문이 있다. 그것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실패와 실수를 겪고도 조직이 지금까지 존재했는지 하는 의문이다. 물론 이것에 대한 답은 마지막 문장에 있다. “우리가 지금 치르고 있는 전쟁이 어쩌면 냉전만큼이나 오래 지속될 수 있고, 또 우리는 우리의 정보력에 따라서 이 전쟁에서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이다. 하지만 다른 조직들이 충분히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것이 정답은 아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사설 정보업체의 등장과 정보의 아웃소싱이다. 국가에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체가 생기고, 사람을 CIA에서 스카우트하는 현실을 보면서 과연 CIA는 필요한 존재인지, 과연 기업체들은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할 것인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하게 되는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 그것(CIA)은 어떤 정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특이한 유형의 조직이다. 아마도 이런 조직을 운영하려면 이상한 유형의 천재가 필요할 것이다.”(782쪽) 이상한 유형의 천재가 아니면 운영할 수 없는 조직, 비밀공작의 특성상 거짓을 좇는 조직, 독립적이고 올바른 정보보다 윗사람들의 권력에 봉사하는 조직이 바로 CIA다. 수많은 인물이 CIA의 국장이 되었고, 많은 대통령이 은밀하게 비밀공작을 허락하였지만 제대로 된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매체를 통해서 그 이름을 알린 정확한 성과 없는 조직이 바로 그들의 현주소다. CNN보다 소식이 늦다는 사실에선 예산을 잡아먹는 공룡에 대한 실체를 더욱 분명히 알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소련 측 역사도 굉장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CIA의 긴 역사와 수많은 비밀공작을 다루기엔 1000쪽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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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 談畵
조용헌 지음, 이보름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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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양학이란 이름이 조금은 낯설다. 강호와 동양학을 따로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둘을 붙여 놓고 보니 낯선 단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책 서두에 이 명칭에 대해 설명한다. 동양학을 둘로 나누어 하나는 강호동양학이요, 다른 하나는 강단동양학이라고 말한다. 강단동양학은 대학의 강단에서 통용되고 인정받는 동양학을 가리킨다고 하니 그 밖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동양학이 바로 강호동양학이다. 강호에서 치열한 삶을 경험하게 되니 강호파가 강한 생존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리고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강호파의 일이다.

 

강호동양학의 삼대 과목은 사주, 풍수, 한의학이다. 천,지,인 삼재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용어들에서 무협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오랜만에 느끼는 분위기다. 저자는 이 삼대 과목을 축으로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낸다. 그 속엔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도 있지만 다시 읽어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나 자신이 이런 통계적 수치를 신봉하지 않지만 이야기가 묘하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직 완전히 과학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서 수없이 들은 이야기와 분위기이기에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흥밋거리로 읽는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하나의 학문으로 오랜 시간 자리를 잡은 이론이다 보니 그냥 지나갈 수 없다. 그가 사주는 확률이지 100퍼센트가 아님을 명심하라고 하지만 한 번 빠지게 되면 쉽게 빠져나오기가 힘든 것이 바로 이런 운명론이다. 수천 년의 세월동안 쌓인 데이터가 만들어낸 학문이지만 그 데이터를 누가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바로 여기서 도사나 기인이 등장하게 된다. 이 책에 소개된 두 이인 제산 박재현과 야산 이달의 이야기는 신기하고 놀랍고 재미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고수의 높은 뜻은 가슴에 새겨놓아도 좋을 듯하다.

 

이 책의 장점은 사주와 풍수 등을 학문적으로 정리하면서 현실과 이야기를 잘 섞어서 재미나게 풀어내었다는 점이다. 한,중,일 동양 삼국이 어떤 차이점이 있고, 어떻게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 알려주면서 현재의 명리학 주소를 알게 한다. 그리고 전설 같은 실화를 말하면서 신비로움을 고취시키고, 몇몇 사례를 통해 사주와 풍수의 영향력을 강조한다. 이런 이야기는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기울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단점도 눈에 들어온다. 십간에 명왕성을 넣은 점이나 정여립 사건을 역사적 시점이 아닌 역술가의 시점으로 보면서 왜곡된 시각을 가지게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흥밋거리로 정여립 사건과도 같은 역사들을 말했다고 하여도 사주와 풍수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서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은근히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역사의 전면으로 나오게 노력한다. 이 부분은 역사를 보는 나의 관점과 너무 달라 순간 조금 흥분하기도 했다.

 

책은 조용헌의 멋진 이야기와 글 솜씨로 재미있게 읽게 만들고, 조금은 독특한 느낌을 주는 이보름의 그림으로 잠시나마 여유로운 생각에 잠긴다. 한때 살짝 관심을 둔 학문이기에 읽는 내내 즐거웠다. 비록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여기저기서 얻어 들은 이야기들과 함께 저자가 풀어내는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고, 놀라운 기인들의 행적에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궁금한 것 하나가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시점에 리(離)의 괘를 표시했는데 어떤 숨겨진 의미가 있을까? 離가 한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불의 의미를 나타내는 괘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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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불교와 만나다
유응오 지음 / 아름다운인연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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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영화를 보지 않는다. 20대 한때는 영화 잡지에 나온 명작이니 걸작이니 하는 단어가 들어간 영화는 시내 비디오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찾아보았다. 이젠 그냥 쉽게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볼 수 있다. 그 시절에 비하면 너무나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당시의 열정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내 가슴속엔 영화가 늘 들어있다. 이젠 예전처럼 명성에 짓눌려 보지 않는다. 시간이 나면 한 편의 영화로 가슴 한 쪽에 조용히 잠자고 있던 옛 감성을 일깨우고 즐길 뿐이다. 한 가지 문제라면 너무 쉽게 영화를 구할 수 있다 보니 극장으로의 발길이 점점 뜸해진다는 점이다.

 

영화가 불교와 만났다. 제목만 보면 불교에 대한 영화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불교의 철학으로 영화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있을 뿐이다. 수천 년의 세월이 담겨 있는 종교이다 보니 책 속에 나오는 영화들을 해석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이것은 불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자신들의 종교관으로 영화를 해석하면 어느 한 장면이나 흐름이 일치하는 대목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도는 의미 없는 것일까? 아니다. 분명히 있다. 영화의 형식과 구성이 감독의 의도대로 만들어졌는지는 둘째로 치고라도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겐 다양한 해석의 길을 열어주고, 자신들의 시각으로 영화를 즐기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52편의 영화가 실려 있다. 이 중 본 것을 절반 조금 더 된다. 영화는 다시 열두 이야기로 구분된다. 각각의 범주는 불교의 철학 하나를 주제로 해석되어진다. 인과설, 시간, 연기, 허상, 선문답, 화두, 자비, 화엄사상 등등의 시각으로 영화를 분석한다. 이 과정들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고, 이렇게도 해석이 가능하구나 하면서 놀라기도 한다. 저자의 지식이 부럽다.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지식이 쌓여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과 결과물이 저자 자신만의 독창적인 분석은 아니다. 하지만 그 해석과 분석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취합하고 분류하고 설명한 것은 오롯이 그의 공이다, 물론 가끔은 너무 과도하게 불가의 논리를 끌어와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시도조차 신선하게 느껴진다. 자주 볼 수 있는 평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연재한 글들을 먼저 읽은 사람들에겐 낯선 글이겠지만 그들과 관련이 없는 나에겐 새로운 즐거움이다.

 

아직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니 말할 내용이 없다. 하지만 본 영화라면 기억을 되살려 저자의 해석과 살며시 비교해본다. 그러면 그냥 무심코 지나간 장면이나 대사가 이 글 속에선 살아 움직인다.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그 시절의 추억에 잠시 잠기기도 한다. 이 책 속에서 그 옛날 시네마천국의 마지막 장면에서 토토가 보는 영상처럼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영사기가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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