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교와 만나다
유응오 지음 / 아름다운인연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예전처럼 영화를 보지 않는다. 20대 한때는 영화 잡지에 나온 명작이니 걸작이니 하는 단어가 들어간 영화는 시내 비디오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찾아보았다. 이젠 그냥 쉽게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볼 수 있다. 그 시절에 비하면 너무나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당시의 열정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내 가슴속엔 영화가 늘 들어있다. 이젠 예전처럼 명성에 짓눌려 보지 않는다. 시간이 나면 한 편의 영화로 가슴 한 쪽에 조용히 잠자고 있던 옛 감성을 일깨우고 즐길 뿐이다. 한 가지 문제라면 너무 쉽게 영화를 구할 수 있다 보니 극장으로의 발길이 점점 뜸해진다는 점이다.

 

영화가 불교와 만났다. 제목만 보면 불교에 대한 영화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불교의 철학으로 영화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있을 뿐이다. 수천 년의 세월이 담겨 있는 종교이다 보니 책 속에 나오는 영화들을 해석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이것은 불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자신들의 종교관으로 영화를 해석하면 어느 한 장면이나 흐름이 일치하는 대목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도는 의미 없는 것일까? 아니다. 분명히 있다. 영화의 형식과 구성이 감독의 의도대로 만들어졌는지는 둘째로 치고라도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겐 다양한 해석의 길을 열어주고, 자신들의 시각으로 영화를 즐기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52편의 영화가 실려 있다. 이 중 본 것을 절반 조금 더 된다. 영화는 다시 열두 이야기로 구분된다. 각각의 범주는 불교의 철학 하나를 주제로 해석되어진다. 인과설, 시간, 연기, 허상, 선문답, 화두, 자비, 화엄사상 등등의 시각으로 영화를 분석한다. 이 과정들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고, 이렇게도 해석이 가능하구나 하면서 놀라기도 한다. 저자의 지식이 부럽다.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지식이 쌓여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과 결과물이 저자 자신만의 독창적인 분석은 아니다. 하지만 그 해석과 분석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취합하고 분류하고 설명한 것은 오롯이 그의 공이다, 물론 가끔은 너무 과도하게 불가의 논리를 끌어와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시도조차 신선하게 느껴진다. 자주 볼 수 있는 평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연재한 글들을 먼저 읽은 사람들에겐 낯선 글이겠지만 그들과 관련이 없는 나에겐 새로운 즐거움이다.

 

아직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니 말할 내용이 없다. 하지만 본 영화라면 기억을 되살려 저자의 해석과 살며시 비교해본다. 그러면 그냥 무심코 지나간 장면이나 대사가 이 글 속에선 살아 움직인다.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그 시절의 추억에 잠시 잠기기도 한다. 이 책 속에서 그 옛날 시네마천국의 마지막 장면에서 토토가 보는 영상처럼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영사기가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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