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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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주저 없이 살인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놀란다. 인간이기에 욕망에 빠져 어쩔 수 없이 헤매기도 하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다. 그 한계를 넘어가게 되면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이 소설 속 살인자나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도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살인자와 살해당한 자의 차이라면 그 한계를 누가 먼저 넘는가 하는 시간의 문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문제는 한 장의 유언장 때문이다.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만들어놓은 유언장은 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피를 부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긴다이치 코스케가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의 예상대로 살인이 이어진 것도 바로 유언장과 함께 거부였던 이누가미 사헤 옹의 과거 때문이다. 그의 과거를 다룬 첫 부분에서 많은 단서를 제공하는데 그 예상은 끝으로 가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 유언장이 의도한 바도 명확해진다. 하지만 연쇄살인을 불러오고, 그 살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는다.

 

영화로 세 번, 드라마로 다섯 번이나 만들어진 소설이다. 역자의 말처럼 이 정도로 만들어졌다면 일본 사람들에겐 소설보다 영상으로 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영상은 감독의 시선을 통해서 한 번 걸러지기 때문에 원작의 재미를 완전히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세이시의 다른 작품인 ‘악마가 오라고 피리를 분다’를 드라마로 옮긴 것을 보고 단숨에 살인자를 파악하게 되면서 긴장감이 떨어졌다. 그 이유는 단서를 너무 분명하게 영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원작을 읽고 난 후 영상을 접하려고 한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졌는데 이렇게 많이 영상으로 옮겨진 것은 바로 이 소설이 지닌 공포와 재미 때문이다.

 

추리소설이 전해주는 공포는 살인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누군가가 죽어있다면 조금은 심심할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무섭게 연출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과거 이야기와 결합하면 조금 더 복잡해진다. 바로 이 소설이 그런 구조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물론 이것은 작가의 특징이다. 소설은 이누가미 사헤 옹의 과거와 막대한 재산, 그리고 딸들에 의해 내쳐진 아들의 존재를 축으로 한 가문 속에서 벌어지는 욕망의 충돌과 살인으로 빚어내는 비극을 다룬다.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구조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그 완숙한 진행은 언제나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 매력의 중심엔 죽을 사람이 죽고 난 후 문제를 해결하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있다.

 

우리에게 소년탐정 김전일로 유명한 긴다이치 하지메의 할아버지인 긴다이치 코스케는 매력적인 탐정이다. 매끈한 외모도 아니고, 사건을 단숨에 꿰뚫어보는 직관도 없지만 연속적인 죽음 속에서 사건의 본질을 찾아가는 그 모습은 굉장히 인간적이다. 또 그의 머리를 벅벅 문지르는 버릇은 약간 허술한 느낌을 주는데 그의 날카로운 추리와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만화에서 그의 손자를 자처하는 하지메도 역시 약간 허술한 느낌은 주는데 할아버지처럼 죽을 사람이 죽은 후 문제를 해결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오죽하면 김전일과 여행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란 농담도 있을까!

 

아직 긴다이치 시리즈를 몇 권 읽지 않았지만 비슷한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가면 뒤에 숨겨진 비밀을 파악하고, 다른 가능성도 추리해보지만 역시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바로 살인자의 마음과 살인자를 둘러싼 환경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대미는 바로 사헤 옹의 과거다. 긴 단편들을 마지막에 꿰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장면은 어쩌면 맥이 빠지지만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좋은 장면이기도 하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도 소년탐정 김전일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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