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옛날 맛집 - 정성을 먹고, 추억을 먹고, 이야기를 먹는
황교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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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전에 맛집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십 수 년 전인데 그 당시는 지금처럼 매체에 노출이 된 집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잡지나 신문 등에 맛있다고 소문나거나 통신 등으로 입소문이 난 집이었다. 그 당시도 맛있게 먹은 집은 많지 않았다. 맛있어 몇 년을 다닌 집은 그 후 친구들과 함께 가 맛을 본 후 맛이 변했음을 알고 이제는 발걸음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이 책 한 구석에 그 집에 대한 평이 나오는데 정말 공감한다. 그래도 아직 맛있는 집에 대한 욕망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매체에 노출된 집보다 먼저 먹은 주변 사람들의 말을 더 신뢰하면서 찾아가지만 좀처럼 입맛에 맞는 집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시간과 거리 때문에 가지 못하는 식당들이 불쑥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한다. 그 식당들이 모두 일요일에는 쉬니 토요일 점심시간이 아니면 시간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몇  개월 만에 찾아가니 아주머니가 오랜만에 왔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후로도 꽤 시간이 흘렀다.

 

언제부터인가 주말이면 내가 가는 식당이 정해져 있다. 다른 곳도 도전해봄직한데 좀처럼 이 식당들을 벗어나지 못한다. 몇 년 동안 자주 가면서 소위 말하는 인이 박힌 것인지 아니면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들에 대한 실망이 쌓여서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새롭게 발굴한 식당은 줄기차게 도전한다.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면 맛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날 음식이 너무 짜거나 밋밋하여 별로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중에 내가 자주 나가는 도심에 맛있다고 저자가 말하는 식당이 나오면 책에 조그마한 표시를 한다. 혹시 다음에 친구를 만나면 데리고 가서 맛을 보기 위해서다. 저자의 말마따나 만약 맛집에 대한 소개가 없었다면 아마도 상당히 아쉬워하며 인터넷 검색에 많은 공을 들였을 것 같다.

 

이야기는 모두 네 꼭지로 나누어져 있다. 추억, 정성, 머리, 이야기다. 이 중 셋은 음식관련 만화나 책에서 자주 접하는 것이지만 머리는 조금 낯설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것이 단순히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미각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공을 들인 끝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노력이 쌓여 데이터를 만들고, 그 데이터가 맛의 기억과 추억과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과정을 보면 언제나 자연과 사람이 있다. 그들의 긴밀한 관계와 공생이 가슴속으로 머릿속으로 다가오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만든다.

 

사실 나는 맛에 둔감한 편이다. 친구나 선후배들과 식당에 들어가 먹다보면 그들이 맛이 없다고 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그들이 맛있다고 한 식당의 음식에선 가끔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미각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잘 모르겠다. 얼마 전 상경한 아버지를 모시고 북어국집에 갔는데 다행히 맛있다고 하셔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예전에 한 식당에서 식당 아줌마에게 맛없다고 바로 말씀하신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 자주 갔던 냉면집 기억도 난다. 처음 그 집에 갔을 때 너무 심심한 맛이라 시장 냉면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그런데 자주 그 집에 가다보니 소문난 다른 곳 냉면은 조미료 맛이 너무 강했다. 다시 강한 양념이 담긴 냉면을 먹다보니 다시 그 집 냉면이 심심한 맛으로 느껴졌다. 한 번은 어머니를 모시고 갔는데 맛없다는 말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참 난감하기도 했다. 저자가 말한 화학조미료에 길들여진 입이 거의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음식에서 맛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이 책은 맛집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물론 맛집도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저자의 추억과 이야기 속에서 잠시 머물 뿐이다. 그의 추억과 이야기를 하나씩 감상하다 보면 나의 경험과 부딪히는 곳도 있고,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는 순간도 있다. 그리고 아직 내가 가보지 않은 많은 맛있는 식당들이 있음을 보고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아! 수많은 이야기 중에 주목해야 할 것 하나. 뭐 책 속에서 주목할 것이 한둘이겠냐 만은 일단 하나만 말하자. 그것은 식당에 별 달기에 대한 그의 글이다.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 식당에서 그런 행위는 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와 그들의 장인정신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절로 공감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별 달기가 정착할 수 있는 식당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단 그 식당들은 서민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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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루이스 레안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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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6년 전의 사랑을 만나러 그녀는 사하라로 간다. 그 나라 말을 하나도 하지 못하는 그녀가 그곳에서 겪는 일은 평온한 바르셀로나의 일상이 아니다. 언어는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르고, 낯선 풍경은 그녀를 공포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런 험난한 일을 예상하지 못한 여정이지만 왜 그녀는 그때의 사랑을 찾아 떠났을까?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열정과 사랑이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현실의 비루함이 좋았던 그 시절을 되돌아보게 만든 것일까? 이 소설은 10대의 소년 소녀가 한 순간의 오해와 격정으로 헤어진 후 만나기까지의 긴 시간을 다룬 사랑 이야기다.

 

몬세, 그녀는 부유한 집 딸이다. 어느 날 친구와 길을 가다 차를 몰던 산티아고를 만난다. 첫 눈에 그에게 호감을 가진다. 서툰 거짓말로 그녀를 유혹하려는 산티아고지만 그녀는 이미 거짓말을 꾀고 있다. 이들의 사랑은 그렇게 길지 않다. 10대, 그 불타는 시절의 사랑은 쉽게 타오르고,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는 열정에 사로잡히고, 자그마한 오해나 실수로 무너진다. 그들의 사랑도 조그마한 사건과 충동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 사랑은 쉽게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몬세가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박차고 그 더운 사하라로 간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작년엔 딸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고, 남편은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고, 자신은 왠지 모르게 비워져 있는 것 같다. 그때 사고로 죽은 아프리카 여자의 유품에서 발견한 한 장의 사진은 가장 격렬하고 순수했던 사랑의 시절로 그녀를 데려간다.

 

산티아고, 그는 몬세의 거절로 홧김에 입대한다. 스페인 마지막 식민지인 서아프리카에서 근무한다. 처음 몇 개월은 몬세를 잊지 못한다. 바르셀로나를 떠나왔지만 마음속엔 여전히 그녀가 있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낯설고, 인종 차별적인 부대 모습은 쉽게 적응하기 힘들다. 그의 조그마한 호의로 사하라인들과 친밀감이 형성된다. 우연히 그들의 마을을 찾아갔다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사하라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그 모습은 운명이라고 불어야 할까, 아니면 인생이라고 불러야 할까.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한 그의 삶도 결코 평탄하지 않다.

 

소설은 이 두 남녀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26년 전의 산티아고를 찾아온 몬세의 경우는 현실과 과거가 교차하면서 나아간다면 산티아고의 현실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과거는 과거의 뒤섞임만 있다. 처음엔 사실 이 부분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냥 과거의 혼재 속에서 산티아고만 좇아갔을 뿐이다. 하지만 마지막 그들의 만남을 보면서 왜 그렇게 구성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현재에서 과거를 찾아가는 몬세와 과거 속에만 존재하는 산티아고. 작가는 이 둘의 이야기를 아름다우면서도 뜨거운 사하라 사막의 풍경을 배경으로 멋지게 풀어내고 있다. 또 빠르게 읽히는 문장과 쉴 새 없이 교차하는 장면들은 쉽게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왠지 모르게 사하라의 황금빛 풍경과 모래바람을 연상시키면서 두 연인의 엇갈린 사랑으로 긴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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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침대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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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세 권과 단편집 한 권이 지금까지 나온 그의 모든 책이다. 이 책은 네 번째 출간된 소설집이다. 그의 이름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아마도 <아내가 결혼했다>부터였을 것이다. 이 책으로 그는 제2회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그 당시 아내의 두 번 결혼으로 인한 이야기가 남녀 사이에 논쟁이 되곤 했다. 얼마 전에는 영화로 나와 다시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본 주변사람들은 손예진의 매력을 예기하지 영화의 내용은 그냥 그랬다고 한다. 원작이 주는 재미가 영화 속에서 살아나지 못한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이 영화로 박현욱을 만났다면 나는 <새는>이란 교육방송 드라마로 만났다. 그 당시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고,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책으로 처음 만난 것은 <동정 없는 세상>이다. 앞에서 말한 작품들은 모두 단숨에 아주 즐겁게 읽었고, 그의 가벼움을 탓하는 평론의 일부를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 성석제의 소설 이후 남자 작가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기에 그에 대한 기대는 작지 않다. 이런 연장선에서 단편집이 나온 것은 분명히 반갑고 즐거운 일이다. 단 한 번도 그의 단편을 읽어보지 않은 나에겐 특히 그렇다.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의 가벼운 듯하면서 경쾌한 문장은 이번에도 변함없이 즐겁고 빠르게 읽힌다. 동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만의 문체가 주는 즐거움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나에게 매력적인 작가다. 그런데 표제작이자 첫 작품인 <그 여자의 침대>는 예전에 읽은 느낌과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침대의 크기와 삶을 한 여자의 내면을 통해 보여주는데 이전에 보아온 밝고 가벼운 느낌이 아니다. 짧은 문장은 약간 건조해보이고, 현실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마음은 짧은 문장으로 더욱 스산하게 느껴진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소설에선 예전에 읽은 그의 느낌이 묻어난다. <벽>은 회상으로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동시대의 살아온 나의 경험과 비슷한 점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생명의 전화>에선 외로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한 남자의 발버둥이 현실에 쉽게 안착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연체>는 도서 반납을 요청하는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한 현실의 삶에 대한 비루함이 문득 가슴으로 파고든다. <링 마이 벨>에선 이사라는 집안의 큰 행사를 두고 벌어지는 가족내부의 분쟁과 금전 능력이 부족한 남자의 한탄이 현실의 3~40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편인 <그 사이>는 다이어트 하는 과정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데 아이의 상실과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 부부 사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잘 보여준다. 이 앞에 말한 소설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혼과 과거사다. 어쩌면 작가는 현재의 삶에서 만족하지 못하기에 과거를 이야기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의 결과를 이혼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이무기>와 <해피버스데이>는 전체 작품에서 가장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이무기>는 한국기원 프로입단을 앞둔 강이란 연습생 이야기다. 한 판의 대 결전을 앞둔 그의 내면과 바둑의 진행을 병행하면서 한 사람의 열정과 욕망을 드러낸다. 얼마 전 한국기원의 연습생 제도를 비판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기에 더 가슴으로 다가온다. <해피버스데이>는 어쩌면 작가의 초기작과 가장 닮아있다. 국민학생 남자를 통해 향수를 자극하고, 그 시절 순수했던 나로 돌아가게 만든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여자를 괴롭히고, 자신의 마음과 다르게 말을 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전작들을 떠올렸다.

 

많지 않은 분량에 빠르고 경쾌하게 읽히는 단편집이다. 작가가 왜 이렇게 많은 이혼 남녀를 소설 속에 등장시켰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현재가 결코 어제보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시대로의 귀환은 반가움과 아련한 추억을 생각나게 한다. 무거움보다 현실을 쿨하게 그려내어 약간은 가벼운 느낌도 들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썰썰함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의 내면은 어쩌면 그 여자의 침대에 놓은 한 켤레의 빨간 구두처럼 낯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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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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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괴팍하고 특이한 탐정이 나오는 소설은 즐겁다. 그는 시라토리 게이스케다. 비록 초반부터 활약을 펼치지는 않지만 읽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과 즐거움을 준다. 읽고 난 후 아가사 여사의 미스 마플이 생각난 것은 왜 일까? 물론 두 사람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이 엉뚱한 탐정은 국가 공무원에, 의사 자격증까지 있고, 독특한 학설을 내세우며 주변사람들을 정신없게 만든다. 비교적 얌전한 미스 마플과 비교한 것은 성격이 아닌 등장하는 순간과 직관에 의한 놀라운 추리력 때문이다. 아닌가?

 

바티스타 수술이 어떤 것인지는 전문적이니 넘어가자. 이 수술이 성공률이 상당히 낮다고 하는데 무대가 되는 이 수술 팀의 성공률은 사고가 나기 전 경이적인 100%다. 하지만 몇 번의 연속된 실수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일로 수술 자체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병원장과 수술 팀의 팀장 기류의 요청에 의해 제삼의 인물이 조사원으로 투입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조사원 역을 맡은 인물 다구치가 피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경과로 돌아선 의사라는 점이다. 외과수술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학창시절 수준을 결코 넘지 못한다.

 

그의 본업은 부정수호외래라는 특이한 치료를 맡고 있다. 하는 일이 병원치료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학창시절 쉬기 위해 숨었던 곳에 진료실을 차리고, 정년퇴직할 간호사를 재임용 제도로 고용한 후 함께 진료를 한다. 이 간호사의 힘은 소설 곳곳에 드러나는데 은근히 매력적이다. 남들의 불평을 듣는 것이 일이다보니 바티스타 수술 팀원들을 조사하는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그곳에서 멈춘다. 모든 것을 종합하여 정확한 답을 이끌어내기엔 그가 걸어온 길이나 업무들이 너무나 다르다. 그런 와중에 벌어진 바티스타 수술 중 환자가 죽게 되고, 새롭게 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가 바로 탐정 역할을 맡은 시라토리다.

 

나타나자마자 다구치를 몰아붙이고 칭찬하면서 정신없이 만든다. 이때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인물을 말하는데 은근히 다음에 출연하는 것을 기대하게 된다. 지금까지 사건의 상황과 수술 팀 내부의 알력 등을 보여주며 긴장감이 없었다면 시라토리의 등장은 하나의 분위기 전환을 이룬다. 약간 밋밋했던 상황이나 인물들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병원이라는 조직을 둘러싼 내부 갈등과 의료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작품 여기저기 풀어놓으면서 사건과의 연관성을 만들어낸다. 권력의 암투야 이미 ‘하얀 거탑’이라는 드라마 등으로 보았으니 새로울 것이 없지만 역시 살인이라는 것과 엮이게 되면 색다른 느낌을 준다. 병원 운영의 문제에서 개인의 문제까지 다양한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범인에 대한 윤곽을 잡아간다. 하지만 의학적 지식이 없는 독자들이 범인을 추론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떻게? 라는 방법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작가는 독자들에게 정보를 많이 숨겨놓고 있다. 사건이 터지면 새로운 정보를 끄집어내어 독자들을 놀라게 하는데 분명히 공정한 시합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나에게 재미있는 것은 병원과 제도를 둘러싼 비리와 문제점을 다루었다는 것과 멋지고 은근히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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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다른만화 시리즈 1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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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미 제국주의 역사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온다. 학창 시절 결코 나에겐 미국이 제국주의가 아니었다. 그 당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남산의 한 구석으로 끌려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자 영원한 자유민주주의 표상이었다. 어린 시절 즐겨본 서부 영화는 언제나 인디언은 악당이고, 기병대는 악당으로부터 시민들을 구해주는 영웅들이었다. 이런 만들어진 환상은 성인이 된 후에도 한참 동안 변함이 없었다. 몇몇 주장이나 책들이 강하게 미국을 비판하였지만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나의 의식과 지식이 너무 굳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십 수 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하워드 진의 역작이라는 <미국 민중사>를 만화로 각색한 것이다. <미국 민중사>에 대해 이름을 들은 것도 개인적으로 몇 년 되지 않는다. 이 책이 1980년에 발간 된 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그 당시 한국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더 힘든 시기였다. 현재 이 책은 600쪽이 넘는 두 권으로 번역되어 나와 있다. 언젠가는 꼭 읽고 말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책이다. 그런 와중에 만화로 나왔다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것도 한 권이다. 각색이란 과정을 통하면서 많은 내용이 누락되었겠지만 그 핵심은 결코 변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20세기와 그 후의 이야기 일부는 그의 자서전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원작의 내용을 모르니 만화로 나누어진 12장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시작을 국내의 제국으로 삼고, 운디드니 학살을 이야기하는데 얼마 전 읽은 운디드니 학살 관련 책 기억이 떠오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디언 학살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북미 대륙 백인의 지배가 확고해졌기 때문이며, 이후 세계로 뻗어나가는 미국의 제국주의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알려주는 단서가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부유한 자본가들을 위해 여론을 조작하고, 군대를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고, 약속을 깨고, 민중들의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책은 국내에서 인디언과 악덕 자본가와 대립한 민중들을 먼저 다룬 후 미국의 문호 개방 정책으로 말해지는 제국주의에 시선을 돌린다. 그 처음이 쿠바인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쿠바에서 스페인을 쿠바 혁명군과 함께 몰아낸 후 스페인 민간정부가 공공업무를 계속 담당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놀랍도록 해방 후 한국의 모습과 닮아있다. 친일파를 그대로 둠으로써 한국 현대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알고 있기에 이 글을 읽는 순간 미국의 정책이 일시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제국주의의 본질이 결코 변함없이 겉모습만 바꾸고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많은 글 중 나에게 가슴으로 와 닿은 문장이 있다. “돈에서 생겨나 법으로 유지되는 독단적인 힘에 대한 분노”라는 대목이다. 현재 우리의 법들이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만들어졌고, 만들어지는지 알려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간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결들을 보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런데 하워드 진이 이런 감정을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서 느꼈다니 순간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많은 이야기 중에서 미국 체제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 방어 방법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통찰이다. 첫 번째 방어는 진실을 부인한다. 만약 진실이 드러나면 두 번째 방어는 조사를 하되 깊이 있게 하지 않는 것이다. 언론이 그 조사를 보도하겠지만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지만 결코 속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보인다.

 

만화로 보니 딱딱함이 많이 사라졌다. 원작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가볍게 작가의 주장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이 만화는 오만한 제국 미국의 역사에서 제국주의 모습을 중심으로 그렸다. 사실을 다루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외면하고자 한다면 결코 마음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자유 민주주의의 미국만 본 사람들에겐 분명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제국의 이면에 숨겨진 더러운 역사와 정책은 이 만화에 극히 일부분만 실려 있다. 원작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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