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탑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모리미 도미히코를 처음 만난 작품은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다.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읽었다. 이 작품도 나를 매혹시켰다. 그러면서 제15회 일본판타지노벨대상 수상작인 <태양의 탑>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높아진 기대 때문인지, 너무 익숙해져버린 탓인지, 아니면 요즘 산만한 나의 집중력 때문인지 예상보다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물론 이 첫 작품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만나게 될 많은 소재와 장소와 소품들이 등장한다. 그럴 때면 은근히 반갑다.   

 

 이 소설도 그의 다른 소설처럼 한 여자를 사모하는 한 남자의 거대한 독백으로 시작한다. 얼마나 좋아하면 그녀의 일주일 일과표를 작성하여 그녀가 나타날 시간을 알 정도겠는가. 그녀 ‘미즈오 씨 연구’는 대작이다. 작성된 리포트는 사백 자 원고지 이백사십 매에 달하는 대 논문이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는 자신이 결코 스토커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내가 보기엔 중증 스토커가 분명한데 말이다.   

 

 

 그가 살아가는 공간은 다다미 넉 장 반의 조그마한 방이다. 이 얼마나 반갑고 익숙한 공간이자 단어인가! 이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동료들도 하나같이 특이하다. 그들의 정신적 리더인 사카마, 거구인 초대형 오타쿠 다카야마, 불행과 질투의 화신 이도, 그리고 주인공이다. 이 넷은 냄새나는 수컷들의 강한 향기와 오라를 품어낸다. 모두 혼자고, 짝이 있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공격한다. 하지만 은연중 그들은 사랑하는 그녀를 바라고 있다. 이들이 풀어내는 망상은 솔로들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이 책의 시작도 바로 이런 솔로들의 황당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였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소설의 매력은 의고체에서 나오는 고풍스러운 문체와 이를 능청스럽게 구사하는 작가의 필력이다. 황당한 이야기를 현실과 판타지로 뒤섞어 풀어내는 능력은 역시 변함없이 발군이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다른 작품에 비해 화자 주변의 인물들 개성이 조금 약하다.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기인들이 너무 강한 것도 이 책이 조금 밋밋하게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이미 미즈오 씨와 사귄 과거가 있다는 사실은 왠지 모르게 그의 환상을 조금 약하게 만든다. 또 미즈오 씨의 행동이 다른 작품에 비해 특별한 시선을 끌지 못하는 것도 아쉽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에서 귀여운 후배 아가씨가 얼마나 멋진 모험과 기행을 보여주었는지 기억하는 나에겐 특히 더 그렇다.   

 

 구성 면에서도 기발했던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에 미치지 못한다. 황당무계한 인물들과 독특한 이야기 구조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반가운 장면도 많다. 특히 황당무계하고 유쾌하면서 묘한 매력을 발휘하는 오즈의 원형 일부를 이 소설 속에서 잠시 발견한 것은 큰 수확이다. 크리스마스이브를 싫어하는 솔로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그들의 환상은 웃음을 자아내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즐거운 에피소드 몇 개는 그 변태성 때문에 놀랍고 재미있다. 기회가 되면 나도 실험하고 싶을 정도다.  

 

 아쉽고 부족하게 느껴진 것은 이 소설 탓만은 아니다. 먼저 번역된 작품들이 너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최근 좋지 않은 집중력 때문이다. 아직 그의 개성이 꽃을 피우지 못한 초기작이란 점도 있다. 그러나 처음으로 그의 작품을 읽는다면 전혀 다른 느낌과 즐거움을 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나처럼 먼저 다른 책들을 읽었다면 어쩔 수 없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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