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기욤 뮈소 지음, 김남주 옮김 / 밝은세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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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감 있다. 간결하고 분명한 문장은 쉴 새 없이 활자를 따라가게 만든다. 장면이나 상황이 허술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도 대단한 속도와 몰입을 가져오는 것을 보면 탁월한 재능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몇 권을 읽다보니 조금은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변함없이 읽게 만드는 매력이 곳곳에 놓여있다. 사랑, 운명, 과거, 현재 그리고 펼쳐질 미래를 이렇게 멋지고 빠르게 그려낼 작가가 과연 흔할까?, 묻고 싶다.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제목 그대로다. 15년 전 성공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던 연인과 친구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에단은 떠난다. 5년 전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셀린과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헤어진다. 그리고 우연히 찾아온 유명 토크쇼 여진행자의 아이를 치료하면서 정신과의 총아로 떠오른다. 출간과 세미나와 연설과 방송출연으로 그 명성은 더욱 굳건해진다. 자신이 15년 전에 바랐던 성공이 자신의 앞에 놓인 것이다. 그런데 그 성공은 결코 행복을 가져주지 않는다. 자신 속에 점점 커져가는 공허함과 그리움과 허무함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그에게 변화의 순간이 온다.

 

도망치기, 맞서 싸우기, 이해하기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도망치기는 자신의 현실과 진실한 마음에서 도망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맞서 싸우기는 다시 하루를 살면서 전날 겪었던 실수를 막고, 사랑을 찾으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마지막 이해하기는 왜 자신이 살해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에단을 둘러싼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준다. 이 세 과정은 모두 마지막에 가서 에단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데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이미 되풀이되는 하루에 대한 많은 소설이나 영화를 보았지만 이 소설처럼 급박하고 속도감 있지는 않다. 이것은 작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을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죽은 에단이 다시 똑같은 하루를 맞이한다. 그 죽음은 카르마와 운명에 대한 도전이자 사실이다. 화려한 명성 뒤에 숨겨진 공허함과 잊혀지지 않는 사랑과 과거로부터 현실로 나타난 아이의 존재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이자 삶에 대한 새로운 기회이다. 비록 그 결과가 하루에 멈춘다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멈출 수 없다. 잊고 있던 삶의 의욕과 새로운 사실들은 자신이 열심히 말했던 주장들의 실천이다. 자신의 재능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효과를 발휘하지만 결코 자신에겐 적용되지 않는 부조리한 현실은 삶의 목표와 의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음을 경험하면서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다. 비현실적인 진행과 빠른 진행으로 속도감을 드러내지만 그 바탕은 에단의 사랑 이야기기다. 기욤 뮈소의 소설은 사랑을 다루는 방식이 낭만적이거나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감정이나 심리 묘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장면을 나누고, 빠르게 전환하면서 독자가 감상에 빠지는 것을 막고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음 장면에서 더 크게 다가온다. 하나씩 하나씩 감정의 조각들을 깔아놓고 한꺼번에 그 감정들을 표출하는 것이다. 계산된 연출과 장면이지만 마지막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 속 한 구절 “혹시 진정한 사랑은 열정이 가라앉은 후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379쪽)로 에단의 사랑 이야기를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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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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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하라 료의 소설을 읽는다. 몇 년 전 힘들게 헌책방에서 구한 <내가 죽인 소녀> 이후 처음이다. 뭐 워낙 과작의 작가이고, 한국에 번역된 책이 이번 책 포함하여 딱 두 권이니 모두 읽기는 했다. 그 당시 기억이 희미하지만 다시 그 책을 끄집어내어 대충 훑어보니 반가운 인물들이 몇몇 보인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분위기도 다시금 되살아난다.

 

하라 료의 첫 작품이다. <내가 죽인 소녀>는 나오키 상 수상 때문에 먼저 번역된 모양이다. 절판으로 구하기 힘들지만 다시 재간된다니 다시 읽고 싶다. 이번에 읽으면서 사와자키에게 점점 빠져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건조한 문장과 황량한 분위기도 조금씩 나를 젖어들게 한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그 분위기가 이 소설 속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물론 희미한 기억 속 한 귀퉁이에 남아있는 한 자락의 감상일수도 있다. 하지만 필립 말로를 다시 만나고 싶게 하고, 먼저 읽었던 사와자키를 다시 만나게 만드는 매력이 강하게 다가온다.

 

가을도 저물어가는 어느 날, 오전 10시쯤 한 남자가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로 찾아온다. 한 남자를 찾는다. 르포라이터 사에키다. 그를 찾아달라고 말하면서 가이후란 남자는 20만 엔을 남겨 놓고 사라진다. 그리고 한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온다. 도신 그룹의 전 경영자였던 사라시나 슈조의 의뢰로 그를 찾은 것이다. 역시 용건은 사에키다. 그는 사라시나의 딸인 나오코와 이혼하기 위해 오기로 한 날에 사라진다. 실종된 그를 찾아달라는 요청이다. 나오코가 정식으로 그에게 조사를 의뢰하고 함께 사에키의 집으로 간다. 그곳엔 한 구의 시체가 있다. 경찰수첩을 가지고 있다. 이제 단순한 실종사건이 살인사건과 연결된다.

 

사와자키를 지켜보면 필립 말로가 연상된다. 작가가 강하게 영향을 받은 탓도 있다. 건조한 문체와 낡은 블루버드를 몰고 다니면서 힘겹게 사건과 부딪히는 그와 도쿄지만 전혀 그런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 황량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 그 영향력을 넘어 가슴으로 다가온다. 물론 그는 말로가 아니다. 그는 경찰과 관계가 좋지 않지만 정보를 사실대로 드러내고 그들과 더불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모습을 보면 시대 때문인지 아니면 나라 때문인지 약간 의아하다. 하지만 현실적이다. 일개 탐정이 조사할 수 있는 한계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발휘되는 능력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사건은 하나에서 시작하지만 곧 두 개로 나누어진다. 사에키의 실종과 도쿄 도지사 저격사건이다. 실종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저격사건이 드러난다. 그리고 도쿄 도지사 선거와 관련된 또 다른 사건과 엮여있다. 이 속엔 인간의 욕망과 야망과 사랑이 뒤섞여 있다. 오해와 거짓말은 진실을 넘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과거로부터 날아오는 소식은 회상에 잠기게 한다. 사와자키를 따라가다 보면 단서들이 주어지고, 그 단서는 다른 사람들의 오해 속에서 왜곡되어 전달된다. 작가의 교묘한 술책이지만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마지막에 그가 사건 내막을 해설하는 두 장면이 강한 인상을 주는 것도 바로 이런 장치들 때문이다. 조금 고전적인 해설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복기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 소설의 매력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결코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문장과 분위기라고 할까? 아니면 치밀하게 계산된 문장과 구성이라고 할까? 그것도 아니면 황량한 분위기와 왠지 모를 외로움을 몰고 다니는 사와자키와 그의 활약 때문일까? 수많은 의문이 생기고, 그에 대한 답을 해본다. 왠지 모르게 쉽게 몰입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지만 뒤로 가면서 점점 빨려 들어간다. 옛 책을 뒤적이며 이번 소설에 등장한 인물들과 블루버드를 다시 만나 반가운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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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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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의 강한 인상이 담긴 표지가 시선을 끈다. 강한 눈 화장에 흘러내는 한 줄기 눈물이 제목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가의 문장은 언제나 단숨에 읽히기에 이번에도 역시 변함없이 빠르게 읽혔다. 책을 선택할 때 책 소개를 읽고 호감이 가면 선택하지만 읽을 때면 그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나의 짧은 기억력 탓이다. 책의 진행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한 시작은 초중반이 지나면서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잔혹한 복수극에 빠졌다.

 

아름다운 흉기라,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단순히 제목만 본다면 무기에 매혹된 것이 아닌가 오해할 수도 있다. 검이나 총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보았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흉기는 사람이다. 그것도 190cm 장신의 여성이다. 그녀는 육상 7종 경기 선수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군살 없이 완벽한 근육을 가진 선수로 태어나고 있던 그녀는 정말 소설 속에서 아름답고 괴물 같은 흉기다. 그녀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가 죽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매혹될 정도로 말이다.

 

한 외딴 곳에 네 명의 남녀가 몰래 침입한다. 이 과정을 센도 고레노리가 카메라 수신기로 지켜본다. 이 네 명의 불법 침입자는 과거 센도의 도움으로 스포츠 한 분야에서 일인자가 된 선수들이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고생하던 동료 한 명이 자살하면서 불안감에 휩싸여 자료를 파기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자료는 보이지 않고, 그들은 센도에게 발견된다. 권총으로 위협하면서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지만 역공에 그는 살해당한다. 우발적 살인이다. 찾던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자 불을 질러 증거를 없애려고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을 지켜보던 이가 있다. 소설 속 타란툴라로 불리던 그녀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간 후 치밀한 복수를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런 시간의 낭비를 허용하지 않는다. 훈련소에 갇혀 있던 타란툴라가 밖에서 잠긴 문을 열고 들어온 경찰을 목 졸라 죽인 후 네 명의 범인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녀는 보통의 사람과 다르다. 자동차로 이동하지 않고 다른 집에 있던 자전거로 움직인다. 여기서부터 그녀의 보통 인간을 넘어선 능력이 발휘된다. 이후 그녀의 활약(?)을 보면 한 명의 완벽한 전사로 키워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생길 정도다.

 

구성은 타란툴라의 추격과 네 범인의 일상과 그녀를 쫓는 경찰들의 비추면서 진행된다. 타란툴라는 외국인이다. 일본어를 알아듣지만 잘 읽지는 못한다.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 헤매기도 한다. 훈련실에서 출력한 자료와 지도로 그들을 찾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녀가 가는 길에 가끔 방해자가 나타나는데 이때 그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살인한다. 이것을 보면서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범인 한 명씩 살인하는 그녀의 능력과 모습은 섬뜩하다. 과연 그녀는 복수에 성공할까?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꿈을 달성하기 위해 약물에 의존했던 네 명의 선수들. 그들은 부작용 때문에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나름대로 성공적인 현재를 살고 있다. 하지만 언제 자신들의 과거가 드러날지 불안하다. 이 불안감이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 후 복수를 위해 달려오는 그녀는 존재는 공포로 다가온다. 한 명씩 죽어갈 때마다 자신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삶의 소중함이 더욱 간절해진다. 그리고 그들의 과거를 통해 스포츠 세계의 숨겨진 어두운 그림자가 조금 드러난다. 멈출 수 없는 최고에의 욕망과 지난 후 돌아본 영광의 덧없음이 강하게 대비된다.

 

사실 경찰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해설하는 역할을 한다. 늘 그들은 사건이 벌어진 후 도착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경찰이 사건이 발생하는 현장에 늘 존재하는 것은 사건을 알기 전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사건을 뒤쫓아 범인을 잡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이렇게 세 부류의 시간과 공간을 통해 빠르게 이야기는 진행된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난 소설이다. 간결하고 빠르면서 군더더기 없는 진행이다. 사건의 진행 속에 복선을 깔고, 반전을 숨겨놓고, 비극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들이 가슴속에 강한 울림을 주지는 못한다. 마지막 드러난 사실이 표지의 눈물을 이해하게 만들지만 그 잔혹하고 끈질긴 복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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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비행기 - 팝아트 소설가 죠 메노 단편집
죠 메노 지음, 김현섭 옮김 / 늘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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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는 작가다. 작가에 대한 소개가 매력적이어서 선택했다. 절반은 성공이고, 절반은 그냥 그랬다. 성공은 새로운 작가와 일상으로부터 품어져 나오는 문제에 대한 서술과 대처하는 그들의 모습이다. 그냥 그랬던 것은 나의 기대가 조금은 판타지나 SF 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경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왜 비슷한 장르별로 구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목차를 유심하게 보지 않은 탓이다. 소설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장마다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자세한 것은 좀더 세부적으로 분석해야 할 것 같다.

스무 편의 단편소설을 모두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모든 단편이 강하게 다가온 것도 아니고, 나의 집중력이 계속 유지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개의 단편은 정말 마음에 든다. <세상의 종말 전에 들리는 소리>, <유령 프랜시스>, <유령비행기>, <미니어처 코끼리는 인기 있다>, <유나바머와 우리 형>, <오션랜드>가 마음에 든 단편이다. 적고 보니 생각보다 숫자가 좀 많다. 마음에 든 다른 단편이 있지만 이 정도에서 그냥 지나가자.

<세상의 종말 전에 들리는 소리>를 읽으면서 론의 말 일부가 이전에 후배에게 들었던 것이라 조금은 회상적이었다. 하지만 실 재미는 가족으로부터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한 한 남편의 일상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왜 가족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유령 프랜시스>는 개성적인 여자 아이와 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가 재미있고, 가슴이 아리다. 자신의 아이가 장애가 있지만 보통 학교에 보내는데 그것이 꼭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은 아니다. 이런 솔직한 속내가 아이의 부적응과 함께 강한 여운을 준다.

<유령 비행기>는 사랑 이야기다. 한 남자의 감정 변화가 극적으로 이어지는데 회상과 현실의 충돌 속에 피어나는 사랑이 재미있다. <미니어처 코끼리는 인기 있다>는 한 조그마한 코끼리의 놀라운 활약이 흥미롭다. 죽음이 있는 곳에서 더 움직이지 못하거나 그 크기가 실제 미니어처 크기라는 점도, 살아있다는 것도 기발하다, 단숨에 읽히면서 나도 한 마리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유나바머와 우리 형>은 실존 인물과 자신의 형을 대비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세기의 폭탄마인 유나바머의 일상을 간단하게 요약하며 형의 삶을 통해 자신을 그려낸다. 처음엔 그 형이나 화자가 유나바머가 아닌가 착각했다. 물론 이것은 나의 무지 때문이다. 늘 이기지 못하는 존재였던 형이 무너지고, 자신의 감정이 혼란스러워지는 과정에 눈길이 간다. <오션랜드>는 슬프다. 열네 살에 운 이후 눈물을 흘리지 않앗던 한 남자의 눈물이 슬픔을 준다. 화려한 활약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의 사업에 들어온다. 하지만 자신의 눈에는 수많은 문제점이 보이고 너무 엉망이다. 경영자가 된 동생은 형의 간섭이 싫다. 너무 쉽게 드러나는 구태와 지저분함과 비효율성과 문제가 그를 괴롭힌다. 실제 그를 괴롭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그를 인정하지 않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어린 기속 속 시간에서 단절된 눈물이 흘러내릴 때 왠지 모르게 숙연해진다.

다른 단편들도 흥미롭고 재미잇다. 어떤 소설은 집중력이 흩어져 그 재미를 누리지 못했지만 두적이며 잠시 회상에 빠진다. 단편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남녀의 모습과 삶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다만 문체에 대해 그 재미를 충분히 누리지 못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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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기행 1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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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수 년 전에 나온 여행서가 지금 읽어도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왜 일까? 더구나 그가 찍은 사진들은 요즘 나오는 여행서에 비하면 어둡고 무겁고 초점도 잡혀있지 않다. 제대로 보기 위해 인상을 쓰면서 집중을 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거리의 풍경도 화려함과 거리가 먼 뒷골목과 지나간 기억 속에나 존재할 풍경이다. 그가 묘사한 거리와 사람들은 이제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진에 빨려 들어가고, 그가 만들어낸 문장들에 집중하게 된다. 왜 일까?

 

아마 이 책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 다른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가 관찰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삶에 반하거나 그의 운문 같은 문장에 끌리거나 삶의 공간과 사람들을 찍은 사진에 빠지거나 했을 것이다.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이 다 좋았을 수도 있다. 나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매력으로 이 책에 열광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수많은 이유가 가슴에 품고 여행을 떠나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순히 정보만을 원했다면 이 책은 너무나도 불친절하다. 추억을 화려하게 덧칠할 유적지도 없고, 맛있는 음식을 맛볼 식당에 대한 안내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여행 에세이를 읽다보면 정보보다는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더 끌린다. 화려하고 낯선 풍경도 사람을 끌어당기지만 실제 현장에서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속에서 만난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활기나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내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찾기 때문이다. 나를 우리로 바꾸면 그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변하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것도 바로 이런 것들이다. 정보는 빈약하지만 기억과 추억이 살아있고, 낯선 이국의 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작가의 모습이 있기에 더욱 가슴속으로 다가온다.

 

처음 이스탄불을 묘사한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예전에 읽은 소설이나 다른 책들에서 만난 그곳의 인상이었다. 하지만 계속 읽으면서 만나게 된 사진들은 지하철 속에서 보기 민망한 나체의 사진들이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수수료를 받는 여자의 삶은 이국적으로 다가오고 재미있지만 그 순간만 기억될 뿐이다. 그의 행적을 따라 가면서 그의 생각들이 나오면 일부는 수긍을 하고, 일부는 과연 그럴까 의문을 제기한다. 이제는 세계화나 개방의 물결 속에 너무나도 변한 그 나라들을 생각하면서 과거의 추억과 기억을 회상한다. 티베트의 한 사원에서 이게 사람이 먹을 음식인가 하다가 그 맛을 깨닫는 장면에선 풍요 속에서 낭비와 사치로 살아가는 나 자신을 반성한다. 광물과 식물의 세계로 나눈 두 문화의 접경지대나 인상을 말하는 대목에선 다시금 그 사람들의 표정을 찾아본다. 하지만 나는 그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길 위에서 자신을 드러낸 사람에게만 보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서울의 과거 모습은 아득한 고대처럼 느껴진다. 아련한 추억이 살아나고, 이제는 고층 아파트로 한강을 둘러싼 흉물스러운 풍경에서 작가가 느낀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책을 뒤적인다. 전철 속에서 보기 민망했던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비슷한 듯하면서 다른 나라들의 풍경에 잠시 눈길을 던진다. 많은 사진과 두껍지 않은 분량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더디게 읽힌다. 사진에 눈길이 오래 머물기도 하고, 문장의 아름다움과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잠시 멈추기도 한다. 한 편의 장편시를 읽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뒷골목 후미진 곳에서 만나는 창녀들의 삶에선 희미한 정액의 냄새보다 삶의 치열함과 고단함과 생존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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