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 -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김선우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비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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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편이 담긴 시집이다. 사실을 고백하면 이 시집에 실린 50편 중 내가 읽어본 것은 10편도 되지 않는다. 한때는 하루에 3편의 시를 읽자고 마음먹은 적도 있지만 점점 메말라가는 감성과 일상의 반복이 이를 멀리하게 만들었다. 소설의 긴 호흡을 좋아하기에 함축적이고 감정의 깊이를 헤아려야 하는 시는 점점 멀어졌다. 쉽게 말해 이해를 못하니 읽기 싫었다. 그래도 가끔 시집을 읽고 메말라가는 감성에 영양분을 공급하곤 한다. 덕분에 가끔은 마음속으로 어설픈 시를 짓기도 한다.    

 

 사랑시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랑시만 읽다 보면 감정이 북받치거나 감상에 젖어들어 힘이 빠진다. 기쁜 감정만 노래한다면 그래도 나을 텐데 시인들이 어디 그런가! 그런 때문인지 이 시집도 단숨에 읽지 못하고 며칠이 걸렸다. 몇 편의 시를 읽다 다른 책을 읽고, 다시 시집을 조금 읽고 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덕분에 새롭게 책을 펼치는 순간 새로운 감정으로 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조선일보에 연재된 시와 시 해설을 책으로 묶었다. 사랑시를 선택한 것이 일반 독자가 아닌 시인들이란 점은 조금 아쉽다. 일반 독자들이 선택했다면 좀 더 대중적인 시들이 실렸을 것이고, 나 자신도 읽은 시들이 조금 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들의 선택이라 그런지 50명의 시인 작품이 골고루 실려 있다. 낯익은 작품은 낯익은 대로 반갑고, 낯선 시는 낯선 대로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몇몇 시인들에게 편중되었던 취향이 이 시선집으로 조금은 개선되었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김선우, 장석남 두 시인의 해설은 그들의 재미난 에피소드와 더불어 그 시와 시인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흥미를 유발한다. 이 점은 참 마음에 드는 구성이다.   

 

 사랑, 참 힘들고 어렵고 즐겁고 행복한 단어다. 그래서 그 많은 시인들이 사랑을 시로 풀어낸 모양이다. 그들이 시에서 만나는 사랑은 애절하고, 그립고, 즐겁고, 아련하고, 가슴 아프고, 서럽고, 두근두근 거리고, 향기롭고, 참혹하고, 울음이 나고, 행복하다. 비록 나 자신이 그들이 표현한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감정은 조용히 가슴으로 파고든다. 가슴으로 파고들지 못한다면 그냥 넘어가자. 아직 나의 사랑이 그곳에까지 닿지 않은 것이니.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날마다 가도 또 갑니다. 어둠뿐인 외줄기 지
하통로로 손전등을 비추며 나는 당신에게로 갑니다. 밀감보다 더 작

은 불빛 하나 갖고서 당신을 향해 갑니다. 가서는 오지 않아도 좋을  

일방통행의 외길, 당신을 향해서만 가고 있는 지하철을 타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은 역으로 작은 불빛 비추며 나는 갑니다.

가랑잎이라도 떨어져서 마음마저 더욱 여린 날, 사랑하는 일보다 사

랑하지 않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그래서 바람이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김종해 <바람 부는 날>(전문)  

 

 요즘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운 날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하는 일이 더욱 괴롭다고 말하지만 사랑하기에 행복하고 그리움과 기대를 가지고 당신에게로 가는 시인의 마음이 왠지 모르게 가슴에 와 닿아 전문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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