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도둑
노어 차니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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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마 산타 줄리아나 성당에 경보음이 울린다. 세 번씩이나 울리지만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다음 날 아침 제단 위에 걸려 있던 그림이 사라졌다. 그 그림이 바로 카라바조의 <성 수태고지>다. 장면이 바뀐다. 말레비치 협회의 제네비에브 들라클로쉬가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절대주의 구성 : 흰색 위의 흰색>이란 작품이 위작이라고 말한다. 퇴근하면서 지하 수장고로 내려간다. 걸려 있는 작품들을 둘러보다 그 그림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뛰어난 두 작품이 사라졌다.  

 

 사라진 두 작품을 두고 가브리엘 코핀과 장 자크 비조 형사와 그의 친구 장 폴 레구르지가 등장한다. 코핀은 카라바조의 작품을, 비조 형사 팀은 말레비치의 작품을 찾기 위해 불려간 것이다. 그리고 한 명 더 20세기 이전 작품 전문가인 배로 교수가 등장한다. 그는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협박을 받고 끌려간다. 이제 여기에 경매로 낙찰 받은 국립근대미술관의 말레비치 작품이 사라진 것을 조사하는 위큰든 형사가 끼어들면 중심인물들이 모두 등장한 것이다. 물론 작가가 숨겨놓은 인물이 몇몇 더 있기는 하다.   

 

 제목처럼 미술품 도둑에 관한 소설이다. 우리가 영화에서 본 낭만적인 도둑은 거의 사라지고 이제 미술품 도둑이 하나의 중요한 산업이 된다. 이렇게 된 것에는 시장경제 원칙이 충실하게 지켜지고, 인간의 욕망이 그것을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단 한 작품만 존재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으니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판매가격과 실제 가치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작가는 실제가치란 없다고 말한다. 판매가격이 그것이 훌륭한 예술 작품인지 아닌지 하는 것과 관계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격은 존재하고, 점점 고가로 변하는 미술품은 좋은 먹이감이다.   

 

 

 두 미술품과 각각 이것과 연관 있는 사람들을 번갈아 등장시키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엔 말레비치가 있다. 카라바조의 작품을 좇는 코핀 박사의 행적이 큰 성과를 거두기보다 경매장 풍경에서 시작한 말레비치의 작품이 사건을 만들고 변화를 부린다. 경매 낙찰을 받은 두 작품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알 수 없는 남자들의 존재는 은근히 무게감을 지닌다. 그리고 비조 형사 팀이 절도범이 남긴 ‘CH347'을 추적하는 과정은 퍼즐 풀기의 재미를 준다. 이 두 콤비가 보여주는 식도락과 대화는 가끔 웃음을 짓게 만든다.  

 

 두 작품의 도난과 경매장 풍경과 도난당한 미술품을 좇는 수사관들 사이사이에 미술사 강의와 점점 거대해지는 미술품 도난 시장을 보여준다. 위작과 도난과 경매라는 단어들 사이로 드러나는 미술계의 모습은 흥미진진하고 가슴속에 의심의 씨앗을 뿌린다. 미술품 강의에선 몇 번을 읽지만 아직도 난해한 도상학적 사실들과 의미와 구성들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온다. 그리고 전문가의 권위가 거대해질수록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도 만나게 된다. 과학이 위작 등을 밝혀내지만 위작 전문가들이 새로운 도전으로 이를 뛰어넘는 과정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도둑맞은 그림들을 둘러싸고 각각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작가는 이들의 관계를 꼭꼭 숨겨둔다. 뒤에 가서 이중 삼중의 속임수를 보여주는데 이 부분이 불만스럽다. 이 모든 사건을 뒤에서 조정한 사람이 있지만 그의 존재가 너무 갑작스럽다. 속임수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대단하다 생각하지만 비중 있을 것으로 생각한 사람의 활약이 너무 숨겨져 있다. 전체 구성에서 보면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이 있고, 각각의 인물들과 사건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야 하는데 이 부분이 약한 것 같다. 한 번 들면 단숨에 읽게 만드는 매력과 몰입과 재미가 있다. 고혹적 미스터리, 폭포수 같은 반전 세례란 광고 문구가 맞기는 하다. 나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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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선혈 Nobless Club 15
하지은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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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상적인 장면으로 문을 연다. 쿠세인들의 주사위에 숫자 눈 대신에 사람 눈이 박혀 있을 것이란 소문이 있다. 물론 낭설이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황제의 주사위다. 이 주사위는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절망이고, 다른 하나는 희망이다. 재미난 것은 절망을 던진 후 희망을 던지는 것인데 반전이란 단어가 나오면 황제가 오히려 절망에 적힌 처벌을 받게 된다. 한 여자가 묶여 있고, 한 남자가 떨면서 주사위를 굴린다. 그 결과는 절망 그 자체다. 그리고 한 소년이 달려와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아버지에게 애원한다. 당연히 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끝으로 가면서 하나의 고리로 이어진다.  

 

 쿠세는 사막의 나라다. 이 곳 황제는 엄청난 권력을 소유하고 있고, 주변국을 속국으로 삼고 있다. 그러던 중 이 나라 황제의 동생인 레아킨이 가출을 한다. 그가 떠난 것은 감명 깊게 읽은 한 권의 소설 때문이다. 비오티란 작가가 쓴 것인데 감정이 메말라버리고 눈에 색을 빼앗긴 그를 감동시킨 것이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사막을 건너 도착한 곳이 바로 쿠세의 식민지인 라노프의 수도 옐린이다. 이곳에서 그는 죽은 탑이란 곳의 심판관으로 재직한다. 이 탑은 쿠세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악랄하고 잔혹한 곳이다. 그가 처음 와서 사람들을 너무 쉽게 처형하는 것을 보면 잔인하다는 생각보다 감정이 메말라도 너무 메말랐다는 느낌이다.  

 

 그가 왕궁을 떠난 것은 모든 것이 회색으로 보이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 중심에 비오티란 작가가 있다. 작가에 대한 환상이 가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환상은 물론 깨어진다. 그가 품고 있던 이상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후 이들의 만남에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순정만화의 한 장면들 같다. 외형적 실망은 그녀가 지닌 문장의 힘으로 가려지고, 막말과 무례한 행동은 다른 매력으로 덮어진다. 그리고 그들 사이엔 넓은 강이 존재한다. 쿠세 황제의 동생인 레아킨과 라노프 독립운동의 희망인 라흐의 애인이었던 것과 신분의 차이 때문이다. 여기서 작가는 레아킨의 가슴 속에 감정을 집어넣는다. 비아티란 존재가 그의 돌 같은 감정에 균열을 불러온 것이다.  

 

 비아티로 향한 감정이 더욱 강렬해지면서 레아킨은 많은 것을 포기한다. 하지만 그의 행동 속엔 특권층이 가졌던 오만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그와 비아티의 관계가 하나의 축으로 중심을 잡았다면 쿠세와 라노크의 정세와 죽은 탑과 귀스트로 이어지는 상황은 그 둘 사이의 틈을 더욱 벌리는 동시에 레아킨의 열정을 더욱 강하게 부채질한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힘을 잃어간다. 애증이 뒤섞이고, 출생에서 비롯한 오만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너무 빤한 반군의 활동은 뒤에 나오는 경계를 넘어선 존재와 더불어 비약처럼 느껴지고, 너무나도 쉽게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고귀한 가치와 대의는 하수구로 빠져버린다. 그것이 비록 욕망이란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너무 쉽게 변하는 모습에선 바로 고개를 끄덕이기가 쉽지 않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작가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비아티와 주변 작가 친구들의 대화 속에 현재의 삶을 살짝 드러내고, 자신의 바람을 섞어 놓았다. 그리고 레아킨의 순정에선 고민도 주저함도 없다. 국가의 적을 살려달라는 요청에 너무 쉽게 결정을 내리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군사를 죽여버린다. 이 부분에선 작가의 잔인함에 놀란다. 그의 메마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정체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뒤에 시체에 남겨진 흔적으로 자신을 찾아온 장군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런 무자비하고 주저 없는 행동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단단한 껍질이 조금씩 깨어지지만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는 순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첫 장면에 나온 상황을 풀어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임을 알게 된다.  

 

 

 쿠세와 라노프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과 사람들의 삶은 피상적으로 다가온다. 역사를 중간에 집어넣어 상황을 만들었다면 이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 선행되어야 한다. 단지 독립을 위해, 사랑을 위해란 감정의 흐름은 뒤에 나오는 출생의 비밀처럼 생뚱맞게 느껴진다. 중반까지 흥미롭고 재미있다가 뒤로 가면서 점점 매력을 잃게 된 이유가 바로 이런 비약과 충실하지 않은 설명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다행히 잘 읽히는 재미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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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북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유영희 옮김 / 끌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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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펼치는 순간 사람이 죽는다. 이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더 라스트 북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파피루스 서점에서 한 노인이 죽은 채로 발견되면서부터다. 외상 흔적도 없고, 누군가와 접촉한 적도 없다. 법의관은 심장마비로 판단하고 시체를 내어간다. 사건은 이렇게 쉽게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검시 결과를 보니 심장마비가 아니다. 갑자기 죽은 원인을 알 수 없다. 원인 불명의 사인이지만 단 한 건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날 또 다른 시체가 서점에서 발견된다. 이제 사건은 심각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한 서점에서 세 사람이 연속적으로 죽는다. 그곳이 파피루스 서점이고, 서점의 주인 중 한 명인 베라와 형사 루키치의 만남이 이루어진 곳이다. 처음엔 단순 관계자였던 두 사람이 시체가 한 구씩 늘어나면서 가까워지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형사와 시체가 반복적으로 발견된 서점 주인과의 사랑이라니 무서울 수도 있는 환경에 봄 향기를 불어넣어준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두 사람을 정보를 주고받고, 루키치 형사는 베라와 사랑을 나눈 후면 꼭 이상한 악몽을 꾼 후 잠에서 깨어난다. 왜 그럴까? 한두 번은 우연일 수 있지만 더 반복되면 의문이 생긴다.  

 

 시체가 계속 발견되지만 명확한 사인이 없다. 여기서 현대의 고전인 <장미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 소설에서 책을 둘러싸고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한 오마주다. 하지만 시체에는 어떠한 독극물의 흔적이 없다. 혹시 지금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다른 독물이 있는 것일까? 의심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되면서 국가안보국이 개입하게 되고 사건은 더욱 커지고 미궁으로 빠져들게 된다.  

 

 시체가 발견되는 장소가 서점이다 보니 서점과 고객을 둘러싼 재미난 일과 사람들이 나온다. 자기 집에서 책을 가져와 책장에 꽂아두는 사람이나 자신이 산 책을 들고 와 한 장소에서 읽는 사람이나 책꽃이의 책들을 마구 뒤섞어 놓는 사람 등이 나온다. 베라는 이들을 환자라고 부르고, 그녀의 동업자는 기인이라 부른다. 어떻게 불리던 상당히 특이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중 한 명이자 아인슈타인으로 불렸던 박사 더 라스트 북에 대한 단서를 흘린다. 이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일까? 아니다. 작가는 더욱 미궁으로 사건을 밀어 넣고 독자를 혼란 속으로 빠트린다.  

 

 서점, 책, 형사라는 소재를 엮어 재미난 소설 한 편을 만들었다. 책 좋아하고 스릴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요소들이다. 거기다 사인도 제대로 모르고, 더 라스트 북이란 이상한 죽음의 책만 돌아다니고 있다. 뒤로 가면 이 책을 숭배하는 비밀 교단이 나와 혼란스럽게 만들고, 이제 갓 시작한 두 연인이 가는 찻집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다가온다. 현실과 상상과 꿈이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장면들은 연쇄 죽음으로 더욱 깊숙이 감상 속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역시 마지막 반전에선 어느 정도는 예감했을 수 있지만 아쉬운 느낌이 있다. 이 부분은 역시 정밀한 기계적인 구성이나 기존 소설이나 설명 등에서 영향을 받은 바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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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듯 시크하게 Nobless Club 17
한상운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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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상운은 무협작가다. 그가 군대 가기 전 쓴 무협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제대 후 쓴 소설로 다시 한 번 더 시선을 받았다. 그의 글은 기존 무협의 형식과 틀을 벗어났다. 영웅은 사라지고, 비열하고 배반이 난무한다. 어떻게 보면 홍콩 느와르를 무협 속으로 옮겨온 것 같다는 평도 있다. 이번 작품도 형사와 마약이 나오는 현대물이지만 기존 작품과 비슷한 연장선에 놓여있다. 형사를 무협의 수사관으로, 현대의 사건을 과거의 음모나 사건으로 바꾸면 별 차이가 없다. 그를 전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태석은 대한민국 형사다. 잘 생겼다. 싸움도 꽤 한다. 그런 그가 한 마약사범과의 싸움에서 깨진다. 옴팡지게 맞고 자존심이 상한다. 처음에 마약을 거래하는 피라미를 잡았다고 좋아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큰 거래가 딸려왔다. 그 단서를 찾아간 장소에서 변성수란 놈에게 깨진 것이다. 대한민국 형사가 이를 포기할 리 없다. 다음 단서를 좇아 그를 다시 만난다. 그런데 또 깨진다. 삼단봉이란 무기를 들었는데도 말이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렇게 변성수란 마약사범을 잡기 위해 형사 정태석은 달린다. 근데 이놈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의 흔적을 좇다 같이 있던 그의 동료가 죽은 것을 발견한다. 처음엔 변성수의 살인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다음 살인사건이 또 발견된다. 부검 결과를 보면 고문을 당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제 또 다른 사람들이 개입한 것 같다. 창조적이지도 풍부한 상상력도 가지고 있지 않은 형사들에게 이 사건을 물어다 준 피라미가 단서를 제공한 것이다. 작가는 이 과정을 치밀하면서도 잘 짜인 구성보다 유쾌하고 재미있게 이끌어나간다.   

 

 이 마약사건을 뒤좇는 과정에 두 여자가 등장한다. 변성수와 선을 본 오선미와 태석과 하룻밤 사랑을 나눈 후 그를 쫓는 자칭 알바 현경이다. 태석은 그의 뛰어난 외모에 혹한 많은 여자들과 하룻밤 사랑으로 젊음을 즐겼다. 그런 그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콩달콩한 연애가 어떤 것인지 알 리 없다. 그는 이 두 여자를 통해 연애와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간다. 오선미는 변성수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만나고, 이전 같은 하룻밤 사랑으로 젊음을 불태웠던 현경은 은근히 여우같이 그를 압박한다. 이 둘은 팍팍한 형사들의 세계에 나른한 여자의 향기를 풍긴다.  

 

형사 영화나 드라마에 항상 등장하는 파트너 병철은 음식의 양념 같은 존재다.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고, 이제 범인에게 맞으면서 직업에 회의를 느낀다. 젊은 여자에게 거짓말하고, 돈에 대한 관심이 하늘을 찌른다. 코믹한 인물인데 무심한 듯 시크한 태석의 곁에서 웃음을 준다. 그의 행동과 대사는 엉뚱하고 어수룩하면서도 따뜻하다. 영화로 만든다면 가장 공을 들여야 할 주연급 조연이다. 또 그의 딸 소영이 태석에게 보내는 선물과 눈길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현대물로 바뀌면서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곤 했던 과거의 작품들과 어느 정도 결별을 한 것 같다.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이 작품만 그런 것인지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유머는 변함없다. 개성이 강한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사건과 상황은 역시 발군이다. 이 멋진 인물들을 이번 한 권에서만 활용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들이 시리즈로 나와서 멋지게 범죄자들을 잡아들이고, 계속 웃음을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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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를 보는 눈
다카시나 슈지 지음, 신미원 옮김 / 눌와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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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르네상스에서 사실주의까지 다룬 ‘명화를 보는 눈(1969)’과 인상파에서 순수추상까지를 보여주는 ‘속 명화를 보는 눈(1971)’의 합본이다. 전작이 400년의 시기를 다룬다면 후작은 그 후 100년도 되지 않는 시간을 다룬다. 그만큼 인상파부터 시작된 변화가 급격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이 5백년 정도의 시기를 정해놓고 서양미술을 보는 즐거움을 누린다는 점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재미가 아닌가 한다. 나처럼 특정한 몇 명을 제외하고 화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익숙한 화가와 대표작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기에 큰 무리는 없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한 작가와 그의 대표작을 저자가 선택하여 작가의 시대와 특색 등을 설명한다. 물론 작가에 대한 배경도 빠트리지 않는다. 대부분 눈에 익은 작품들이라 보는데 반갑기도 하고, 이전에 그냥 보고 지나간 부분에 대한 해설에선 아! 하고 순간 감탄을 토해내기도 한다. 단순하기에 쉽게 읽을 수 있지만 또 한 편으론 그 흐름을 읽는 이가 나름대로 정리해야하는 단점도 있다. 아마 내가 얼마 전에 몇 권의 미술관련 서적을 읽지 않았다면 더욱 어려웠거나 그냥 지나간 대목일 수 있지만 약간 안다고 이런 불만을 말하는 모양이다.  

 

 학창시절 시험을 위해 미술 사조를 외우고 화가와 그의 대표작을 머릿속에 입력하였다. 덕분에 이름들은 입에 달아 붙었는데 그 작품이나 의미 등은 뒤죽박죽이거나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저기 다른 곳에서 작가와 작품을 만나기도 하지만 몇몇 정말 유명한 작품이거나 자주 보는 것이 아닌 것은 혼돈 속에서 쉽게 그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학교 교육이나 다른 탓을 하기 전에 나에게 먼저 잘못이 있지만 전공도 아니고 취미가 있던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다행히 대충이라도 알고 있다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그림을 보는 눈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 라는 감상을 표현하는 정도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상징이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일반사람들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르네상스시기에 그린 그림들이 담고 있는 상징과 의미나 추상파 등의 그림이 보여주는 기하학적 모습은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진다고 해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상의 이해를 가지고 본다는 장점은 분명히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책이 가진 장점이 힘을 발휘한다. 많은 화가를 다루다보니 깊이 있는 이야기나 중요한 것들이 많이 생략되기도 하지만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되짚어 본다는 장점도 살아있다. 또 하나의 작품에 집중함으로써 그 화가의 특징을 잘 알게 된다. 비록 화풍의 변화나 다른 특징을 그냥 지나가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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