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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브 디거 ㅣ 밀리언셀러 클럽 66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평점 :
작가가 점점 더 마음에 든다. 국내에 출판된 그의 작품을 이것으로 모두 읽었지만 구성과 필력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 사형제도나 자살이나 조직의 문제를 진지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내는 그의 소설들은 언제나 만족스럽다. 이번 소설을 읽다 계속해서 생각한 것은 이 소설은 영화로 제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누가 야가미 역을 할 것인가? 하고 계속 생각했다. 한국적 상황에 맞게 만들 수도 있지만 역시 일본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한다. 작가의 이력에 영화 관련한 것이 있다는 것을 보았지만 정말 한 편의 액션과 스릴러가 잘 결합된 영화 같다.
소설을 읽다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아니 딱! 하고 와 닿는 느낌을 주는 소설 자체가 많지 않았다. 몇몇 작품들은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대부분은 좋다는 감정이나 소설 자체로 생각이 좁혀 들어간다. 하지만 ‘그레이브 디거’는 제한된 시간이라는 것과 연쇄살인이라는 두 요소를 별도로 진행하면서 하나로 묶어내는 뛰어난 구성과 멋진 등장인물들을 만들어내었다. 특히 험악한 얼굴의 야가미의 매력은 시종일관 시선을 잡아 끌어당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가 열심히 달아나는 이유가 뭔가? 경찰에 잡혀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것도 두렵지만 가장 염려하는 것은 자신의 골수를 이식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전과5범의 지능범죄자가 큰 맘 먹고 선행을 펼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세 방향에서 쫓아오는 경찰과 살인자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 배에서 떨어져 헤엄치고, 돈이 없어 버려진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이마저 여의치 않아 발로 달아나는 그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왜 새로운 인생을 위해 착한 일을 하겠다는데 방해를 하는 무리가 이렇게 많은지!
소설의 가장 큰 축이 야가미의 도망이라면 다른 한 축은 연쇄살인 사건을 둘러싼 경찰들의 반응과 행동이다. 연쇄살인이라는 것을 알고 신속하게 대처하는 그들의 모습이나 피해자의 사체로부터 그레이브 디거라는 영국 역사 속 민담을 끄집어내기까지 발 빠르게 움직인다. 중요 참고인 야가미를 찾기 위해 그들이 펼친 수사망과 야가미의 청소년기와 관련된 형사 후루데라 등의 행동은 하나의 목표로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그 밤에 펼쳐진 연쇄 살인과 과거의 살인사건의 관계가 드러나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새로운 사실과 더불어 추악한 경찰 조직 내부 비리가 폭로된다. 이것이 단순한 액션과 스릴러가 결합한 것에서 더 나아간 소설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피의자를 법원에 기소할 수 있는 조직은 검찰이다. 검찰이 조금만 부패해도 그 사회는 엄청나게 썩어나갈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검찰의 부패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경찰 조직 내부에서 보안부라는 조직이 지닌 엄청난 힘과 비리를 알고도 덮는 검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보안부를 쥐고 있는 정치권력에 대한 것도. 과거 일본에서 엄청난 정치 스캔들이 있었는데 중요 참고인들 4명이나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여기서 작가는 보안부와 정치 권력자들의 보이지 않는 음모가 있다고 암시한다. 갑자기 연쇄살인사건과 한 도망자 이야기를 하면서 정치와 보안부를 말하는지 의아할 것이다. 책 읽은 분들은 모두 알겠지만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 정치와 보안부의 결탁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저분하고 분노를 자아내는 일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작가는 재미와 분노를 자아내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듯하다. 야가미의 도망이 재미를 주었다면 경찰들의 비리가 분노를 느끼게 한다. 단순히 외국문제라고 치부하면 간단할 수 있지만 권력형 비리나 재벌 비리를 생각하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거리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범죄엔 높은 형량이 내려지지만 돈이나 권력이 있는 자들은 집행유예나 낮은 형을 받는 것을 너무 자주 보지 않았나! 그렇지 않으면 특사로 풀려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너무 자주 보는 것들이다.
복잡한 경찰 조직이나 비리를 빼고라도 이 소설은 매력적인 인물과 급박한 전개와 잘 짜여진 구성으로 충분히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흔히 말한다. 쉴 새 없이 읽었다고. 400페이지를 한 자리에 앉아 커피와 물을 마셔가며 끝장을 보았다. 차마 중간에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4시간이 조금 되지 않는 멋진 영화를 책으로 본 느낌이다.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몇 시간이 지났지만 나의 머릿속에선 누가 야가미로 가장 어울리는 배우일까?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한국이라면 유해진? 일본이라면 누가 좋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