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심 - 상 - 파리의 조선 궁녀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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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을 형상화하는 작업은 방대하고 힘겨운 일이다. 현재의 인물이 아닌 과거의 인물인 경우 더욱 쉽지 않다. 그것도 풍부한 역사적 사료가 없는 인물이라면 작가의 상상력이 가장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리심에 대한 자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만 그녀의 삶을 형상화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넘쳐나는 사진이 있던 시대를 산 여인이 아니기에 그 수많은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워야 했을 것이다.

 

가의 상상력과 함께 어떻게 삶을 풀어낼 것인가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구성은 약간 평범하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삶도 나아가도 사건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쉽게 빠르게 읽히는 장점은 있지만 문제는 확실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장면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장대한 소설이지만 그녀의 삶과 시대를 강하게 연결시켜주는 부분이 약한 것이다. 사랑이 있고 역사적 사실이 있지만 그녀 속에서 품어져 나오는 감정과 열정이 왠지 강하게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리심이라는 궁녀의 삶이 과연 행복했는가? 불행했는가? 를 파악하기 힘들다. 성장기에 그녀가 만난 상황은 분명히 힘들고 불행했다. 하지만 빅토르 콜랭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세계를 돌아보는 그녀를 보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가 떠오른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늘 우리가 만나는 인종이나 민족 차별주의자들에 대한 글에서 그녀가 겪었을 아픔과 상처는 작가가 길게 혹은 강하게 표현하지 않은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겨주지는 못했다. 아니면 내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사에서 격동의 시기 중 하나인 조선 말기는 참으로 묘사하기 쉽지 않은 시간과 공간이다. 작가는 여기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집단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묘사하기보다 리진이라는 개인에게 집착하고 너무 많은 리심의 삶을 보여주려고 하면서 긴장감이나 현장감을 놓치고 있다. 아니면 단순한 리심의 이야기가 아닌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생각이나 관심 분야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할 텐데 그런 입체성 형성이 미흡하다. 장편이기에 더 깊이 있는 인물과 시대를 엮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문장과 그녀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보는 내내 재미있고 무리가 없었지만 역시 소설만이 보여주는 가슴 저린 사랑이나 복잡한 인간관계가 조금 약하다. 김탁환이 보여준 리심과 아직 읽지 않은 신경숙이 보여주는 리진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지금은 모르겠다. 줄거리를 보면 비슷한 흐름이지만 많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작가의 상상력이 한 사람에 대한 다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누구의 명칭이 더 바른지 모르고, 리심이든 리진이든 상관없이 역사와 한 여성의 삶을 그려낸 것은 동일한 것이다. 신경숙의 특징이 리진에서 잘 묻어나온다면 김탁환의 리심에서 느끼지 못한 다른 개인사와 삶의 여러 굴곡을 만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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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남 J 미스터리 클럽 2
슈노 마사유키 지음, 김수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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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모두 보고난 후 다시 책을 앞으로 돌려 다시 찾아보게 되는 책이 있다. 최근에 나온 일본 추리소설 중 생각나는 것은 ‘살육에 이르는 병’과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두 편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아마 이 작품들이 같은 서술트릭을 다루고, 일본추리라는 공통점 때문이 아닌가 한다. 헌데 이 가위남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표현했을지, 책의 장점이자 미묘한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냈을지 호기심이 치솟는다.

 

책의 구성과 전개는 보면서 상당히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가위남의 시선과 가위남을 쫓는 형사들의 행동을 다른 표기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가위남이 1.2.3 등으로 표기된다면 형사들은 제1장, 제2장 등으로 표시되는 것이다. 처음엔 오타인가 했지만 그렇게 구분된 것을 보다보니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가위남의 시선과 형사들의 시선이 구분되니 독자로선 혼란을 가질 필요가 없다. 친절한 편집이라 좋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결말에 이르면 역시 취향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서술트릭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다시 한 번 더 책을 이리저리 뒤지면서 내가 놓친 단서를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고, 두 번째는 공정한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난 후 단서를 끼워 맞추어야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뒤통수를 강하게 때리는 대단함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게으른 나의 독서방법을 생각하면 이리저리 찾기보다 단숨에 해결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머릿속에 계속 남아 결말을 내가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약간의 여운을 남기지만 그 끝이 깔끔하다기보다 인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대목에선 ‘살육에 이르는 병’이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더욱 깔끔하고 더 충격적이다.

 

소설을 펼쳐들고 읽다보면 단숨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연쇄살인범을 다루지만 잔혹한 살인 현장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살인을 둘러싼 다른 두 부류의 추적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살인하기위해 갔다가 자신보다 먼저 피해자를 살인한 범인의 현장을 발견한 가위남이고, 하나는 역시 사건을 쫓는 형사들이다. 형사보다 재미있는 쪽은 역시 가위남 쪽이다.

 

가위남의 시선을 쫓다보면 서술트릭에 의해 완전히 왜곡되어지는 나의 시선과 마주하게 된다. 이 트릭을 마주하는 순간 앞으로 돌아가 놓친 것을 찾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또 당했다고 생각한다. 아니 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진짜 범인이 나타나는 순간 다시 한 번 더 당한다. 나의 주의력이나 추리력이 부족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절로 생긴다. 하지만 힘들게 앞으로 돌아가 다시 차근차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게 작가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설명하는데 왠지 이 부분이 고개를 끄덕여지는 것이 아니라 끼워 맞추어 풀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상황을 풀어내고 구성하는 마지막에서 힘이 달리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약간은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갑자기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혹시 이 소설 속편이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다. 마무리 때문인지 아니면 가위남이라는 특이한 범인 때문인지 정확히 구분하기 힘들지만 후속작이 나와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 개인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의문들을 차근차근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가위남이 생기게 된 원인과 대충 덮어지는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지금 입속에서 ‘범인은 XX다'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샘 솟아오른다. 단서가 너무 많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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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4 2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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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바라는 기도 밀리언셀러 클럽 48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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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헤인의 책을 읽다보면 가슴이 저리는 경험을 자주하게 된다. 죄책감에 휩싸인 인물들의 내면을 그려내거나, 정신 분열이 만들어낸 환상에 빠져들거나, 현실의 부조리에 희생당하는 아이를 보면 여운이 오래간다. 깔끔하고 뒤끝이 없는 글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작가가 있는 반면에 이런 여운을 반전과 섞어 풀어내는 작가가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읽고 난 후 한동안 그 여파에 잠겨든다.

 

이번 소설은 이전의 소설과 조금 다르다.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지만 오락적 요소가 더 많이 있다. 그 오락적 요소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인물이 부바가 아닌가 생각한다.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그의 등장을 눈여겨보았지만 이번엔 그의 활약이 결정적이다. 단순히 던지는 말 한마디에 단서가 풀어지고 놀라운 운동능력 등은 적을 제압하는데 적격이다. 그 무시무시한 얼굴을 생각하다보면 이상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 재미도 솔솔하다.

 

사건의 시작은 6개월 전 만난 한 여성의 자살에서부터이다. 사실 그렇게 켄지가 파고들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놓여있는 상황들이 그를 수사 쪽으로 몰아간다. 밝고 순수한 한 여성의 과거로 들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장면은 역시 악취가 풍기지만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사실은 더욱 심하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계산된 공격에 그녀는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루헤인의 특기가 살아나는 장면들로 가득한 이 부분이 이전보다 약하게 느껴지지만 단순한 재미는 더 있다.

 

범인의 정체를 추리하고, 잘못 판단하고, 우연히 깨닫게 되면서 본격적인 싸움이 벌어진다. 그 과정에 나오는 압력과 반격 등은 군살 없는 진행으로 즐거움을 준다. 악당과 우리의 주인공 켄지의 심리 대결은 물리적인 폭력으로 치닫기 위한 준비가 모두 된 것이다. 숨겨진 과거와 삐뚤어진 심성과 잘못된 만남 등이 만들어낸 비극이 극에 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남겨지는 여운.

 

얼마 전 이 시리즈의 초기작이 계약되었다는 글을 보았다. 시리즈의 경우 1권부터 보는 재미가 있다. 그 사람들의 성장과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건과 인물들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역시 몇 마디 말로 간결하게 묘사되는 과거에 대한 궁금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또 다음 편이 언제 나올지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결합한 켄지와 제나로의 활약이 미국 사회의 폐부를 어떤 모습을 드러낼지 사뭇 궁금하다. 그리고 부바의 새로운 활약과 연인관계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도 새로운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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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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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동갑네기 세 남녀의 한밤중 10억 훔치기 프로젝트. 그것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재미는 이 10억이라는 돈을 훔치기 위해 세 남녀가 모이고, 상황이 꼬이고, 빠른 속도로 변화는 상황들에 있다. 조금만 방심을 하면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는 속도감이 있다.

 

소설은 세 남녀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먼저 요코야마 겐지. 파티 기획자로 남녀의 욕망으로 돈을 번다. 가끔 야쿠자 등을 끼워 공갈 협박으로 부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어느 날 미타그룹의 아들인 듯한 남자를 음모로 낚으려고 하는데 알고 보니 미타그룹과 관계없는 단순한 회사원이다. 이 회사원이 두 번째 남자인 미타 소이치로. 미타라는 이름과 미타물산에서 근무한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그를 재벌2세로 착각한다. ‘미타물산의 미타입니다’는 마법의 열쇠 같은 역할을 한다. 겐지가 미타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국풍회의 후루야에게 협박 등을 의뢰하지만 미타의 사실 앞에 그들은 위협만 당하고 아파트 임대를 위해 명의자로 보증인으로 이용된다.

 

이 아파트에서 만나게 되는 세 번째 화자인 구로가와 치에. 겐지와 미타가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도박을 알고 그 돈을 훔치기 위해 들어갔다 부딪힌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의 사기를 역이용해 10억엔을 훔치려고 한다. 이에 가담하게 되는 두 사람과 더불어 좌충우돌하며 그들은 엄청난 활극을 펼치게 된다. 이 10억 프로젝트가 펼쳐지면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는 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충분히 느끼게 한다. 생각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은 다음을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과연 그들은 성공할까? 궁금하시면 직접 확인하시길.....

 

상황도 설정도 재미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세 명의 남녀의 성격과 특징들이다. 겐지가 청년 실업가로 포장한 양아치에 화려한 인생을 꿈꾸며 살아간다면 미타는 큰돈을 벌어 키리바시 공화국에서 편하게 놀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는 과집중증이라는 특이한 병력의 엄청난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그의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 덕분에 암기력 하나는 천하무적이다. 치에는 모델로 활약한 미모에 어린 시절 기억 등에 의해 아버지를 미워하고 그의 돈을 훔치려는 계획을 세운 인물이다. 명품 좋아하고 돈에 대한 절제 등은 없는 편안한 일생을 살아가는 여자다. 이 25살 동갑네기들이 한 판 멋진 승부를 위해 모여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움직인다.

 

진행이나 설정을 보다보면 이전에 그의 소설에서 많이 본 구성이다. 다른 소설과는 달리 이번엔 왠지 모르게 굉장히 영상적인 구성과 전개가 아닌가 생각한다. 세 남녀가 모이는 과정과 그들이 함께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을 보다보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독특한 경력을 가진 세 남녀와 야쿠자와 욕심 많은 사기꾼에 약간 멍청한 치에의 남동생까지 모두가 영화 속 인물 같은 느낌을 준다. 꼬이고 풀리고 다시 꼬이는 상황을 보다보면 영국 영화 ‘락스탁앤투스모킹배럴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요지경 같은 진행과 인물들이 웃음과 결말에 대한 궁금함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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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분 후의 삶
권기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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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인적으로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전엔 거의 읽지 않았다. 요즘 가끔 다른 사람들의 평에 의해 한두 권 정도 읽는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도 책 뒷면에 나오는 두 작가의 추천사 때문이다. 어떤 책이기에 두 번이나 읽고, 감동적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책을 받은 후 읽기 시작하면서 그들에게 동의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모두 열두 명의 경험이 담겨있다. 하나하나가 놀랍고 신기하고 대단하다. 그들이 경험한 것들을 보면 우리가 보통 뉴스로 접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보통 안됐다! 고 말하거나 어쩌다! 라는 감탄사로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일들이다. 우리에게 비추어지는 그들의 모습이 숫자와 상황과 비극과 영웅적인 행동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들의 삶과 그 극한 경험의 순간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읽는 순간에도 느끼고 읽고 난 후에도 그들의 공통점을 찾는 나를 발견한다. 그 극한의 상황에서 그들이 생존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몇 가지 이야기를 떠올리면 그들이 포기를 몰랐다는 것이다. 희망이라는 것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것을 위해 최후의 한 순간까지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살려고 노력한 것이다. 강한 의지와 노력이 그들의 삶을 소생시킨 것이다. 기적이라는 거창한 이름 대신 그들이 선택한 것은 최선과 정직과 집중과 노력이 있은 것이다.

 

삶 속에서 우린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포기한다. 못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현실에서 이런 소중한 경험의 글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프로복서 김택민씨나 태권도 사범이었던 간은태 선생이나 등반가 고 이현조씨의 이야기는 특히 가슴에 와 닿은 문장과 경험들이었다. 열심히 준비한 사람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현실에 최선을 다해 임하는 김택민씨, 자신의 수련생도 아닌 소년의 연을 내리다가 감전된 후 한 팔을 잃었지만 천수여래처럼 수많은 다른 팔을 얻은 듯한 간은태 선생,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오르지 못한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보여준 경험과 하산 과정과 악수에서 큰 감동을 준 고 이현조씨 등의 이야기는 작가 권기태의 손을 통해 감동적이고 신비롭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물론 앞에서 말한 세 사람 외에도 나에게 큰 감동을 주신 분들이 많다. 거북이 등에 매달려 살아나신 임강룡 선생이나 집착을 버리고 땅이 아닌 하늘을 본 순간 살길을 찾은 여류조종사 김경오 선생님이나 맨홀 밑 암흑 속에서 며칠을 견디며 살아나신 조성철 선생님이나 얼마전 평창에서 폭우와 산사태로 사선을 넘어신 김진문 선생님 등의 다른 분들 경험은 작가가 아름답게 화려하게 수식을 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자체로 많은 점을 시사하고 우리가 삶에서 가져야할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삶과 죽음의 순간에 대한 기록보다 그 결렬하고 무시무시하고 위험천만한 순간보다 나에게 더 와 닿은 것은 그 사고 후 그들이 느낀 감정과 삶의 변화다. 그리고 그들이 생활 속에서 구현하고 있을 그 당시의 깨달음이 나에겐 더 큰 감동을 준다. 작가의 너무 화려한 문장과 표현이 약간 사실성을 떨어트리기는 하지만 줄치고 다른 곳에 옮겨놓은 싶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이 책을 읽고 그 어떠한 순간에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바람을 찾아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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