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의 복음
톰 에겔란 지음, 손화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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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권의 기독교 팩션이 나왔다. 그 무엇보다 표지가 인상적이다. 처음엔 동일한 제목의 다른 소설과 착각했다. 하지만 책 소개를 읽으면서 다른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작가 소개를 보니 <요한 기사단의 황금상자>란 팩션이 우리나라에 출간된 적이 있다.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인데 관심이 생긴다. 북유럽 지적 독자들 사이에 루시퍼 신드롬을 일으킨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루시퍼에 대해 단순한 지식밖에 가지고 있지 않는 나에게 많은 정보를 주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2009년 현재 시간 흐름을 따라가는 비외른 벨토와 1970년 지오반니 노빌레 교수다. 근 40년의 시간 차이가 있는데 이 둘을 이어주는 것이 있다. 바로 루시퍼 복음이다. 이 두 사람 모두 다른 사람의 부탁으로 이 복음서를 얻게 되는데 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위험한 상황에 말려들어간다. 벨토는 이 복음서를 전해준 사람과 같이 연구하기로 한 사람이 살해되고, 노빌레 교수는 딸이 납치당한다. 살인과 납치라는 두 소재를 바탕으로 루시퍼 복음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한다.

처음은 기독교 팩션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흘러간다. 우연히 자료를 얻고, 이 자료를 빼앗으려는 단체가 등장하고,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달아나면서 그 자료를 조사하는 그 방식 말이다. 이것은 벨토의 시간 속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그 사이사이에 드러나는 루시퍼와 사탄과 지옥에 대한 지식과 해석은 학문적 영역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이 가진 사탄에 대한 잘못된 개념이 중세교회에서 만든 것이라고 할 때 놀라게 된다. 다른 팩션에서 워낙 강한 내용을 보여줘 조금 무덤덤한 부분도 있지만 작가는 이런 식으로 기존 기독교의 믿음을 하나씩 바로 잡는다. 교회가 권위를 세우고 권력을 잡기 위해 어떤 식으로 현재 속에서 과거를 바꿨는지 보여준다. 

사실 이 소설에서 기대한 것은 두 가지다. 루시퍼의 복음을 둘러싼 신학적 역사적 해석과 이 문서를 둘러싼 스릴러다. 첫 번째 기대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 종교학과 고고학, 천문학과 지리학, 세계 각 문화의 종말론을 적절하게 섞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시대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다른 해석의 길을 열어놓았다. 하지만 마지막 결론 부분을 읽으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이전에 <오메가 스크롤>이나 그레이엄 헨콕의 책에서 본 내용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또 이것이 스릴러로 읽기를 원하는 독자에게 <다빈치 코드>가 마지막에 준 허무감을 떠올려주지 않을까 의문이다.

스릴러라는 부분만 떼어놓고 본다면 이 소설은 낙제다. 일단 긴장감이 거의 없다. 제례 살인이 끔찍한 장면을 연출하고, 주인공으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만들지만 쫓기는 자의 긴장감이 살아있지 못하다. 특히 루시퍼의 복음을 두고 벌어지는 두 조직의 대결이 너무 한 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운 것이나 한쪽의 손을 너무 쉽게 든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벨토의 모험이나 활약이 이야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지 못하고 너무 무력하다. 즉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 다닌다는 의미다. 또 하나 작가가 반전을 노리고 깔아놓은 정체도 중간에 너무 쉽게 드러난다. 다른 인물이기를 살짝 기대했는데 반전은 없었다.

좀더 새롭고 강한 충격을 기대한 나에게 이 소설은 조금 미흡하다. 아마 다른 책에서 이와 비슷한 결론을 먼저 본 것도 있고 개인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다빈치 코드>처럼 빠른 전개와 강한 모험을 원했는데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분의 이까지는 정말 흥미로웠다. 적들의 강력한 공격과 반전을 기대했는데 벨토가 가담한 조직의 힘이 너무 거대하다. 오락적인 힘이 조금 떨어지지만 기독교 팩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매력있다. 가독성 있는 문장과 이야기는 책을 빠르게 몰입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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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이야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육식 이야기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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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SF 걸작선들을 읽으면서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거대해질 수 있는지 보았다. 그 거대함과 기발함과 환상들은 그후 읽은 작품들을 평범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를 읽으면서 기발하고 독창적이라고 칭찬할 때 이미 더 큰 것을 본 나에게 그냥 평범하게 다가왔다. 재미는 있지만 엄청난 작가로 평가받는 것에 반감이 생긴 것이다. 이번 작품도 혹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작가는 거대함이나 독창적임을 강조하기보다 기묘함으로 다가왔다. 서문부터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환상, 기담으로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준다. 사실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 난해하고 지루한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모두 열네 편이 실려 있다. 서문도 하나의 이야기로 본다면 열다섯 편이다. 각 단편이 길지 않는데 그 짧은 이야기 속에 담긴 놀랍고 기묘한 이야기는 사람을 책 속으로 쉽게 끌어당긴다. <밀감>이 첫 예상과 다르게 이어지면서 기괴함을 넘어 섬뜩함을 전해주고, <아르헨티나 주교>에서도 역시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이어진다. 어느 날 거리와 상관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의 심리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금은 모두 죽어버린 몇 작가에 대하여>에선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설명들이 정말로 그런 책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낸다.

<착각의 나라(야푸족은 어떻게 말하는가)>는 논리와 수학의 정밀함을 추구하는 우리 삶을 비틀어 비판하고, 자연에 대한 인류의 재앙을 역설적으로 다룬 <기름 바다>는 인간의 욕망을 터무니없는 희망에 비유하고 다시 그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뒤섞인 사랑>은 정해진 일정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한 남자의 양심이 환상과 결부되어 빚어내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유럽과 기타 지역의 음악 비평 몇 편>은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곧바로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음악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어쩌면 가장 읽기 편하면서 익숙한 이야기가 <살인청부업자의 추억>이다. 제목 그대로 살인청부업자의 추억을 하나씩 다룬다. 그의 직업관과 양심과 욕망이 간결한 이야기 속에서 청부대상들의 욕망과 뒤섞이면서 풀려나오는데 재미있다. <수첩>은 남의 것이 커 보이는 한 남자가 유명한 작가의 수첩에서 아이디어를 훔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데 마지막 반전이 웃음과 씁쓸함을 준다. <기상천외한 피에르 굴드>는 한 편의 콩트를 읽는 것 같다. 그 간략함 속에 담긴 유머와 해학은 순간순간 웃게 만든다. 

알에 그림을 그린다는 특이한 인물보다 그가 마지막에 그린 알의 비밀과 의문이 더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이 <희귀조>다. 과연 그 알의 정체는 무얼까? 혹시 박혁거세처럼 그 속에 위인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멋대로 상상해본다. <영원한 술판>은 술꾼들이 외치는 즈벡에 대한 비밀을 파헤친 소설이다. 만약 이런 술이 실제 존재한다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무서운 무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과 나도 과연 마시게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마지막 표제작 <육식 이야기>는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지만 마니아의 광기와 한 통의 편지가 알려주는 사실들이 뒤섞여 낯익은 결말로 인도한다. 

가끔 유럽 환상소설을 읽을 때 지루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은 아니다. 피에르 굴드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의 정체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 의문이 생긴다. 기묘함 속에 블랙유머와 깊은 사색이 담겨 있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야기에 맞춰 변하는 문장은 지루함을 들어내고, 많지 않는 분량은 쉽게 집중하게 만든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있다고 하는데 그 책은 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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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연금술
캐럴 맥클리어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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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작가를 주인공으로 한 팩션들이 많이 나온다. 당장 생각나는 인물만 해도 단테, 프로이트, 오스카 와일드, 마키아벨리 등이 있다. 이런 유명인은 금방 알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넬리 블라이는 조금 낯설다. 그런데 이 여자의 행적을 보니 대단하다. 19세기 후반임을 생각하면 현대 여성 이상의 대활약을 보여준다. 물론 시대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활약만으로 충분히 멋지고 매력 있다. 그녀의 대담함과 모험심과 시대 여성이 지닌 한계는 그래서 이야기 속에 더 빠져들게 한다.

넬리가 조금 덜 유명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다른 유명 인물들이 있다. 이제는 우유 상표로 더 유명한 루이 파스퇴르, 모든 환상 모험 소설가들이 존경한다는 쥘 베른, 파란만장한 삶과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 등이 그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19세기 만국박람회가 열렸던 파리를 배경으로 엮었다. 물론 이들을 하나로 모이게 하는 인물은 넬리 블라이다. 그녀의 직업은 신문 <월드>의 기자이고, 신문사의 주인은 지금은 상으로 더 유명한 퓰리처다. 그리고 그녀가 어떻게 신문기자가 되었고, 먼 파리까지 와서 살인자를 좇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작가나 과학자 외에 또 한 명의 실존인물을 등장시킨다. 그의 별명은 잭 더 리퍼다. 그는 19세기 런던 매춘부 연쇄살인자다. 그에 대한 영화도 이미 나와 있고, 수많은 상상력과 추리의 결과 외과의사 출신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자를 작가는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왜 그녀가 그를 좇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이 그 정체를 몰랐던 살인마 잭 더 리퍼를 넬리는 대양을 건너서 쫓는다. 그 시대 사람들이 여자를 단순히 남자의 부속물 존재로 생각하던 시기에 말이다.

이야기는 매혹적이면서도 답답한 부분이 있다. 매혹적인 것은 역시 실존했던 인물들이 등장해서 그 시대와 역사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 것이다. 그들이 시대를 뛰어넘는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넬리를 통해 그들의 실제 같은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 그 시대에 이미 돌연변이 같은 인물인 넬리 블라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변할 시대의 미래 모습을 살짝 드러낸다. 그녀의 저작물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녀를 평가해야할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소설 속 기록만 보아도 충분히 뛰어나고 용감한 기자다. 시대물의 여주인공으로 멋진 여성이 등장했다.

답답한 부분은 이런 그녀에 대한 주변 남자들의 평가와 그 시대가 지닌 여성의 한계다. 탁월한 그녀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진 선입견과 편견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여자 주인공이 남자보다 더한 액션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은데 그녀는 연약한 여성 그 자체다. 이런 점은 어떤 면에서 고증에 충실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쥘 베른이나 오스카 와일드 등도 홈즈 같이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지 않아 아쉬움을 준다. 다르게 본다면 굉장히 현실적인 인물 묘사다. 파리의 풍경은 가끔 만나게 되는 화려한 영상으로 포장한 모습에서 과장된 포장을 벗겨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도마뱀처럼 자신의 꼬리를 짜르고 달아난 연쇄살인범을 쫓는 것이 기본 줄거리다. 그 과정에 만나게 되는 인물들과 상황들은 역사의 충실한 고증이다. 하지만 무정부주의자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특히 중간에 살인마와 무정부주의자를 연결한 부분에선 그녀의 역사 인식을 알 수 있다. 솔직히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나 자신이 그 시대 역사를 제대로 몰라 이런 평가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앞으로 공부해야 할 부분이 또 하나 나왔다. 그리고 과학과 역사, 미스터리의 가장 매혹적인 만남이란 광고 문구에 고개를 끄덕인다. 살짝 ‘가장 매혹적인’이란 수식어에 갸웃거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새로운 모험과 도전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음 이야기엔 또 어떤 유명인이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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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호텔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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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12인용 식탁에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있는 것은 고양이들과 그녀가 차린 음식뿐이다. 이곳은 중세유럽의 성을 연상시키는 집이다. 방은 모두 열두 개, 그곳에 사는 사람은 없고 고양이만 가득하다. 이렇게 고요다에 대한 환경을 보여준다. 이런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를 찾아오는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강인한, 잡지사 <인스토리>의 기자다. 그의 목적은 1억 원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정작 한 번도 인터뷰를 한 적이 없는 고요다를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이제 이 두 남녀가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지고 말이다.

고요다, 1억 원 문학상을 받은 신비로운 작가다. 그녀의 첫 작품 <뒤꿈치>는 70만부가 팔릴 정도로 베스트셀러다. 하지만 그녀에겐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 그녀의 부모가 자살했다는 것과 그녀가 그들의 자식이란 것 등이다. 이런 과거는 숨기고자 하는 마음과 밖으로 토해내고 싶은 욕망 사이에 놓여 있다. 이런 틈새를 파고들어 그녀의 과거를 독자에게 알려주는 인물이 바로 강인한 기자다. 그가 인터뷰를 위해 펼치는 사기극과 능청스러움은 실로 대단하다. 고요다의 허점을 파고들어 그녀를 흔들어놓고 그 누구도 머물기를 원치 않던 그녀의 집에 머문다. 그리고 이 두 남녀는 인터뷰를 둘러싼 심리대결을 펼친다.

인터뷰를 하고 싶어 하는 기자와 이를 막고자 하는 작가의 대결은 강호 무림고수의 대결과 같다. 한 수 펼치면 상대방은 거기에 응수하고, 상대방의 허점을 치고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허점을 노출한다. 물론 이 허점은 상대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한 술수다. 처음에 팽팽했던 대결은 사회 경험이 부족한 고요다가 산전수전 다 겪은 기자의 노림수에 당하면서 기울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기자의 능력 탓만은 아니다. 그녀 속에 쌓인 고통과 외로움이 조그마한 자극 속에서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기본 줄거리는 한 은둔 베스트셀러 작가를 인터뷰하는 과정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의 연쇄실종 사건 미스터리를 바탕에 놓아두면서 환상소설의 표현을 빌려 이야기를 풀어낸다. 남성들의 실종과 그녀는 어떤 관계가 있을지, 단순히 그녀가 은둔생활을 하는 것은 가족의 과거가 드러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수많은 의문과 미스터리를 깔아놓았다. 이 의문과 미스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씩 밝혀진다. 하지만 실제 재미는 이 미스터리가 아니라 고요다와 강인한의 밀고 당기는 관계에 있다. 좀더 빨리 좇아내고자 하는 고요다와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의 집에 머물면서 인터뷰를 하려는 강인한 기자의 관계 말이다.

처음 낯선 작가의 첫 장편이라 조금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단숨에 읽었다. 미스터리와 판타지가 섞인 구성에 두 남녀의 밀고 당기기가 예상외의 재미를 주었다. 과거를 하나씩 드러내는 과정은 그녀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려주고, 모든 사실을 말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강인한의 반응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식과 인식을 벗어난 것을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는 습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의 강인한이 쓴 인터뷰 기사는 재미난 반전이자 그녀를 이해하는 그의 정도와 한계를 보여준다. 또 이 인터뷰는 고요다가 세상 밖으로 나가게 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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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다 -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
하종강 외 지음,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기획 / 철수와영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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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전태일 열사 40주기다.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에서 2시 사이에 그는 죽었다. 그의 죽음이 주는 의미는 이 책 마지막 장에 간략하게 나와 있다. 그 간략한 내용 속에 한 노동자의 분신자살이 한 나라의 노동운동에 끼친 영향이 어떠했는지 알려준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를 만나고, 분신자살한 노동자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인물이다. 열사이자 투사이고, 한 엄마의 아들이자 사랑을 하는 젊은이였고,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자 한 노동자였다.

예전에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눈시울 붉혔는데 지금은 전태일이란 이름에 무덤덤해졌다. 청계천에 있는 동상을 보아도 그런 때가 있었지 하고 생각만 할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것은 현재의 삶속에 그의 삶을 되돌아볼 여유가 충분히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 사회과학 출판사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가 연대해 만든 공동 기획·출판 도서 <너는 나다>가 그런 여유를 나에게 주었다.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출판사마다 다른 접근법으로 전태일을 말한다. 첫 번째 레디앙은 ‘전태일 열전’이란 이름 아래 우리 시대의 전태일을 이야기한다. 현재 살아있는 동명이인 전태일을 만나 인터뷰한 것을 학창시절, 가족, 사랑, 노동 등으로 분류하여 실었다. 인천, 평택, 전주, 부산, 거제에 살고 있는 이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영업자이자 고용주도 있지만 대부분은 알바로 생계를 유지한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전태일도 있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삭막하다. 일과 술을 제외하면 다른 활동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알바로 생활하는 다른 전태일이 너 활기차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이것은 다시 고용주인 다른 전태일의 말에서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문제점을 환기시킨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가장 많이 전태일을 떠올려주었다.

후마니타스의 만화 ‘나태일&전태일’은 의미심장한 말로 시작한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열사님은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게 말이냐? 어느 부모에게 자식이 열사겠냐. 그냥 아들이지.” 만화 속 배경은 게임개발부서다. 주인공은 나태일. 잠시 쉬러 간 곳에서 외계인을 만난다. 지구 정복하러 왔다는데 그에게 진다. 이 낯선 외계인이 회사에서 일한다. 그가 외계인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에게서 다름은 보지 않고 하나의 노동자로만 본다. 외계인은 이주노동자로도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다른 노동자로도 환치가 가능하다. 여기에 편의점 알바녀를 등장시켜 사회의 또 다른 비정규직을 비춰준다. 결국에 보여주는 것은 게임 개발하는 나태일이나 전태일이나 모두 열사나 투사가 아닌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임을 말한다. 열사란 단어에 짓눌려 있던 전태일 아름다운 청년으로 다시 살아난다.

삶이보이는 창의 ‘열혈청춘’은 청춘일기와 청춘수다로 구성되어 있다. 청춘일기는 청년 노동조합 ‘청년 유니온’의 조합원들 이야기다. 이들은 우리가 집밖에서 혹은 집안에서 늘상 마주하는 청년들이다. 최저임금보다 못한 수입으로 자신들을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왠지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너무나도 밝은 웃음에 놀라고 나도 같이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청춘수다’는 스물다섯 살인 세 명의 남녀를 통해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충격적인 것은 “경희대가 너무 높다고, 경희대 다니는 애가 자기 같은 애를 만나겠느냐는 거”(148쪽)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대학서열이 연애서열, 입사서열로 바뀐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들의 욕망을 좀더 깊이 보여주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철수와 영희는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란 제목에 부제로 하종강의 노동백과를 붙였다. 다섯 이야기로 나누어지는데 제목과 부제처럼 노동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이다. 단순히 노동에 대한 것에 한정되지 않고, 시대의 변화와 역사도 함께 담고 있어 많을 것을 배울 수 있는 알찬 구성이다. 특히 6.25 당시 만들어진 근로기준법보다 지금 법이 못하다고 한 부분에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때 근로기준법이 일본 노동 기준법을 번역하면서 노동대신 근로를 넣은 것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6.25를 거치면서 노동운동자들이 거의 죽었다는 사실과 새로운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바로 전태일이란 부분에서 왜 전태일 열사가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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