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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의 복음
톰 에겔란 지음, 손화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또 한 권의 기독교 팩션이 나왔다. 그 무엇보다 표지가 인상적이다. 처음엔 동일한 제목의 다른 소설과 착각했다. 하지만 책 소개를 읽으면서 다른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작가 소개를 보니 <요한 기사단의 황금상자>란 팩션이 우리나라에 출간된 적이 있다.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인데 관심이 생긴다. 북유럽 지적 독자들 사이에 루시퍼 신드롬을 일으킨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루시퍼에 대해 단순한 지식밖에 가지고 있지 않는 나에게 많은 정보를 주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2009년 현재 시간 흐름을 따라가는 비외른 벨토와 1970년 지오반니 노빌레 교수다. 근 40년의 시간 차이가 있는데 이 둘을 이어주는 것이 있다. 바로 루시퍼 복음이다. 이 두 사람 모두 다른 사람의 부탁으로 이 복음서를 얻게 되는데 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위험한 상황에 말려들어간다. 벨토는 이 복음서를 전해준 사람과 같이 연구하기로 한 사람이 살해되고, 노빌레 교수는 딸이 납치당한다. 살인과 납치라는 두 소재를 바탕으로 루시퍼 복음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한다.
처음은 기독교 팩션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흘러간다. 우연히 자료를 얻고, 이 자료를 빼앗으려는 단체가 등장하고,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달아나면서 그 자료를 조사하는 그 방식 말이다. 이것은 벨토의 시간 속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그 사이사이에 드러나는 루시퍼와 사탄과 지옥에 대한 지식과 해석은 학문적 영역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이 가진 사탄에 대한 잘못된 개념이 중세교회에서 만든 것이라고 할 때 놀라게 된다. 다른 팩션에서 워낙 강한 내용을 보여줘 조금 무덤덤한 부분도 있지만 작가는 이런 식으로 기존 기독교의 믿음을 하나씩 바로 잡는다. 교회가 권위를 세우고 권력을 잡기 위해 어떤 식으로 현재 속에서 과거를 바꿨는지 보여준다.
사실 이 소설에서 기대한 것은 두 가지다. 루시퍼의 복음을 둘러싼 신학적 역사적 해석과 이 문서를 둘러싼 스릴러다. 첫 번째 기대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 종교학과 고고학, 천문학과 지리학, 세계 각 문화의 종말론을 적절하게 섞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시대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다른 해석의 길을 열어놓았다. 하지만 마지막 결론 부분을 읽으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이전에 <오메가 스크롤>이나 그레이엄 헨콕의 책에서 본 내용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또 이것이 스릴러로 읽기를 원하는 독자에게 <다빈치 코드>가 마지막에 준 허무감을 떠올려주지 않을까 의문이다.
스릴러라는 부분만 떼어놓고 본다면 이 소설은 낙제다. 일단 긴장감이 거의 없다. 제례 살인이 끔찍한 장면을 연출하고, 주인공으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만들지만 쫓기는 자의 긴장감이 살아있지 못하다. 특히 루시퍼의 복음을 두고 벌어지는 두 조직의 대결이 너무 한 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운 것이나 한쪽의 손을 너무 쉽게 든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벨토의 모험이나 활약이 이야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지 못하고 너무 무력하다. 즉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 다닌다는 의미다. 또 하나 작가가 반전을 노리고 깔아놓은 정체도 중간에 너무 쉽게 드러난다. 다른 인물이기를 살짝 기대했는데 반전은 없었다.
좀더 새롭고 강한 충격을 기대한 나에게 이 소설은 조금 미흡하다. 아마 다른 책에서 이와 비슷한 결론을 먼저 본 것도 있고 개인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다빈치 코드>처럼 빠른 전개와 강한 모험을 원했는데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분의 이까지는 정말 흥미로웠다. 적들의 강력한 공격과 반전을 기대했는데 벨토가 가담한 조직의 힘이 너무 거대하다. 오락적인 힘이 조금 떨어지지만 기독교 팩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매력있다. 가독성 있는 문장과 이야기는 책을 빠르게 몰입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