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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사계절 : 한겨울의 제물 살인의 사계절 시리즈 Four Seasons Murder 1
몬스 칼렌토프트 지음, 강명순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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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인의 사계절 시리즈 첫 권이다. 제목에 사계절이 들어간 것처럼 이 시리즈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으로 모두 4권이다. 이 소설은 그 중 첫 권이자 겨울이다. 부제도 겨울이 들어간 한겨울의 제물이다. 그래서인지 도입부부터 추위를 강조한다. 북유럽의 추위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조차 움직이길 싫어할 정도의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여주인공이자 형사인 말린이라고 이 날씨가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아침의 고요함 속에 경찰서에서 일을 하고자 한다. 그런데 파트너인 세케에게서 살인사건에 대한 연락이 온다. 함께 현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150킬로 거구의 남자가 처참한 몰골을 한 채 걸려 있는 것을 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신원확인이 바로 되지 않는다. 장의사의 도움으로 얼굴을 복원하니 바로 연락이 온다. 벵트 안데르손, 46세다. 별명은 볼벵트. 축구장 밖에서 선수가 찬 공이 울타리 밖으로 나오길 기다렸기 때문에 붙은 별영이다. 정신적 장애도 있다. 이런 이웃이나 아는 사람들의 정보와 달리 그의 어린 시절 과거는 대단하다. 아버지를 도끼로 내려친 적이 있다. 비록 실패해서 귀만 날렸지만. 그의 살인사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쉽지 않다. 집은 그에 대한 평가와 달리 깨끗하다. 그의 평온한 일상을 깨트린 두 남자 아이가 있었지만. 여기서 형사들의 수사는 시작된다. 탐문과 조사와 대조 등을 통해 사실을 쫓아가지만 범인이 쉽게 나타날 리가 없다.

 

단순히 한 남자의 죽음 다룬 소설이 아니다. 이 죽음 뒤에 숨겨진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그의 아버지 구석집 칼레 이야기는 너무 대단해서 쉽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다. 그의 야수성에 매혹된 여자들 이야기는 자기 파괴적인 생활과 더불어 폭발한다. 야수성이 폭발할 때 여자들이 매혹되지만 그의 집에서 아내와 자식들은 그의 폭력에 시달린다. 벵트가 도끼를 든 것은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그가 살이 찐 것은 그의 엄마가 아들의 칭얼거림을 방지하기 위해 단 것들을 입속으로 넣어준 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칼레의 매력은 가끔 폭력을 동반하는데 그 피해자가 느낀 감정의 깊이는 대단하다. 이 소설은 바로 거기서 모든 문제가 생긴다.

 

여형사 말린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형사들의 수사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힘겹고 지루하고 끈질겨야 한다. 우리나라 형사 이야기에서 가끔 만나는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일은 그들에게 없다. 최상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휴식을 강조한다. 굉장히 효율적이다. 그리고 말린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10대 아이를 가진 후 이혼하고 홀로 아이를 키운다. 그의 남편이었던 얀네가 안정된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꾸는 꿈속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따뜻한 휴양지로 노년의 시간을 보내러 간 부모와의 관계는 또 다른 문제 중 하나다.

 

복지천국이라고 생각하는 그 나라의 문제점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하지만 그 문제들이 모두의 문제는 아니다. 일부다. 이 일부를 전부처럼 강조하면 복지는 깨진다. 작가가 과연 그런 의도를 가지고 이 부분을 쓴 것인지 살짝 의문이 생긴다. 앞에 말린이 홀로 아이를 키운 것이나 순서상 뒤지만 시간상 앞인 라켈의 육아에 대한 서술을 보면 약간 혼란스럽다. 사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나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스웨덴에서도 살인사건과 같은 일이 생기는 것 아닐까. 복지가 잘 갖춰지면 사회가 좀더 안정될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지는 약간 의문이 생긴다. 너무 북유럽 스릴러를 많이 읽은 것일까?

 

북유럽 미스터리를 읽으면 주인공들의 심리적 갈등이 많이 다루어진다.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형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만의 편견일까? 아니면 내가 주로 읽은 책들이 그런 것일까? 이 갈들을 바탕으로 범인상을 추리하고 쫓는다. 당연히 힘든 일이다. 증거와 증인을 찾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심증이 있으면 물증이 없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족의 비극은 뒤로 가면서 더 강해진다. 비열한 모정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강한 흡입력이나 긴장감을 높여주는 스릴은 조금 부족하다. 그러나 탄탄한 구성과 차분한 전개, 수사의 한계에 대한 묘사 등은 뛰어나다. 시리즈 다른 책들이 나오면 이 작품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몇 가지 이야기가 좀더 깊숙하게 다루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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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매미 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7
하무로 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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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회수로 말하니 언제 상을 받은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서력으로 치면 2012년이다. 바로 작년에 수상한 따끈따끈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현대물이 아닌 일본 시대물이다. 얕은 나의 일본 역사 지식으로 읽다보니 충분히 소화시키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시대상마저도 모를 정도는 아니다. 비록 그 정도가 예상한 것보다 더하고, 슈고쿠의 삶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정도도 아니지만. 그 시대를 제대로 모르고 다른 문화 속에서 산 나에게 당연한 것이다.

 

에도시대 6대 번주 가네미치에게 10년 가보 편찬 후 할복을 명령받은 슈코쿠의 일기 제목이 바로 <저녁매미 일기>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하루살이의 뜻을 담아 이름 지었다. 이 일기는 그 가보 편찬과 관련된 기록이기도 하다. 자신의 감상이 아닌 가보 편찬에 필요한 사항만 기록한 것이다. 저자는 슈코쿠를 감시할 목적으로 파견된 쇼자부로를 통해 슈고쿠의 추상같고 엄밀한 일상과 기록을 보여주고, 그 일상을 통해 그에게 감복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었다. 그 과정은 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사료와 검증을 통해 이루어진다. 가보 편찬도 그렇다.

 

번의 권력자 조카를 상해한 죄로 할복 대신 감시라는 임무를 맡은 쇼자부로를 통해 기본 이야기가 진행된다. 당연히 백성을 위해 큰 활약을 하고 강한 충성심을 가진 슈코쿠에게 그가 부조리를 느낀다. 7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이제 겨우 3년의 시간이 남은 그가 만약 도망간다면 죽여야만 하는 역까지 맡았다. 깊은 통찰력을 지닌 슈코쿠에게 그의 이 임무가 그대로 파악된 것은 너무 당연하다. 쇼자부로가 혹시 하는 마음을 가졌다가 오히려 그의 구명운동을 펼칠 정도로 변하는 일련의 과정은 진실이 드러나는 역사의 순간들이기도 하다. 그 역사를 적어나가는 인물이 슈코쿠라는 점이 아이러니지만.

 

슈코쿠의 가보 편찬과 할복 명령이 내려진 것은 번주의 측실과 밀통하고 시동을 죽인 죄 때문이다. 그 시대 사무라이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바로 할복해야 할 죄다. 그런데 10년 유예가 내려졌다. 가보 편찬이란 대업이 있다고 해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명령이 아니다. 소설은 바로 이 의문을 기본적으로 깔아놓고 그 시대 무사와 마을 주민 사이의 갈등과 권력 투쟁 등을 그 사이에 녹여내었다. 그리고 슈코쿠의 죄에 어떤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지 알려주면서 에도 시대 일본 문화를 보여준다. 그 문화는 지금 시점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시대의 한계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그들의 활약에 안타까워하고 통쾌해하고 아쉬워한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슈코쿠의 일상은 담담하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그의 일상을 견디지 못한다. 그의 일기 제목이 하루살이의 뜻을 담고 있는 것도 바로 하루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얼마나 더 살았나 보다 어떻게 살았는가에 더 비중을 둔 것이다.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강조되는 것은 계급이다. 시대 속에서 이 벽을 넘기는 힘들다. 하지만 가끔 그 한계치를 넘어가면 반란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 시대에서 반란은 모든 것을 뒤엎는 것이 아니다. 자그만 변화다. 이 변화도 권력자에게서 나온다. 당연히 한계는 분명하다. 권력자의 의지에 따를 수밖에 없다. 제도가 강한 사회에서 그 제도를 깨트리지 못하는 한 어쩔 수 없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그 한계 속에서 산다.

 

당연한 수순으로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진한 울림을 주는 것은 겐이치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대단히 소시민적이지만 쾌활하고 긍정적이면서 적극적인 삶은 다른 등장인물에게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인해 비교적 잔잔하게 흘러가던 이야기 크게 도약한다. 이 도약이 개인적으로 만족스런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그 시대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드러나는 또 다른 삶은 시대와 상관없는 삶의 모습이다. 비극이 바로 거기에서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강한 시대물 속에서 진한 여운과 울림을 전해주고 몰입할 수 있는 것도 바로 현재 우리의 삶을 그 시대 속에 제대로 담아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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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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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7484. 이 두 숫자는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먼저 630은 사람 몸무게다. 7484는 약 630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가진 남자가 침대에 누워있었던 날짜다. 일자로 계산하니 쉽게 다가오지 않는데 연수로 계산하니 20년이 넘는다. 20년 이상 침대에 누워있었다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몸이 정상인데 말이다. 그리고 약 630킬로의 몸무게는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현재 몸무게다. 하지만 이렇게 살이 찌게 되기까지 시간을 생각하면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웰빙을 강조하는 요즘 세태에 비교하면 정말 엄청나다. 그러니 당연히 주변사람과 매스컴의 시선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은 바로 침대에 20년 이상 누워있는 형을 둔 동생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작은 7483일째다. 몸이 비대해지면 당연히 몸에 문제가 생긴다. 온갖 병이 오는 것은 당연하고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해진다. 형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집 벽을 무너트려야할 정도다. 이런 현실을 먼저 알려준 후 동생인 화자가 자신과 형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속에는 동생이 가진 열등감과 존경과 사랑과 허무함이 가득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 속에 화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야기는 결국 행복에 대한 것이다. 그 행복을 나의 머리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만.

 

형은 여자에게 인기가 좋다. 그에 비해 나는 비루한 체격에 인기가 없다. 용기도 없다. 그런 그지만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 루다. 그녀는 형을 좋아한다. 형의 연인이다. 형은 어릴 때부터 특이했다. 가장 처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인지 독특한 행동을 많이 한다. 윤리과 도덕의 잣대로 본다면 말도 되지 않는 행동들이다. 형의 행동 때문에 나와 부모가 고생한다. 평범을 거부한 형의 행동은 평온하고 안락한 가족에게 균열을 가져온다. 이 균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의 일상은 맴돌 수밖에 없다. 그리고 침대에 누운 형의 몸무게는 점점 불어난다. 형의 몸무게가 나왔을 때 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은 그가 가장 무거운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아니다.

 

형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왜 형을 그런 상태로 그대로 둘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긴다. 그가 살찔 만큼 음식을 만들어주는 엄마가 더 이상해 보인다. 그런 형과 같은 방에 사는 화자도. 여기에 남아공에서 엘러베이트 사고를 경험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고는 그의 평생을 지배한다. 아들과 제대로 대화한 것이 많지 않은 아버지의 진짜 이야기다. 화자의 수많은 이야기보다 오히려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원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 화자에게 형의 행동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마지막에 이에 대한 형의 답이 나오지만 개인적으로 공감하지 못한다. 너무 자기만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간결한 내용과 장의 구분은 가독성을 높였다. 잘 읽힌다. 재미있다. 잠깐 시간에 대한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읽는데 지장없다.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있다. 그것은 생방송 중 형이 사회자 레이 달링에게 가발인지 아닌지 묻는 장면이다. 동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진짜다. 가발 여부를 두고 형제가 내기를 했었다. 엄청난 시간이 흐른 후 첫 언론 인터뷰 첫 말이 가발 여부였으니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리고 레이 달링이 보여준 행동은 웃지 않을 수 없다. 전체적으로 형의 상황 때문에 무거웠던 이야기가 단숨에 날아간다. 삶은 가장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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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크리처스 - 그린브라이어의 연인,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3-1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3
캐미 가르시아.마거릿 스톨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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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판타지물이다. 십대 소년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배경은 미국 남부 작은 마을 개틀린이다. 이 작은 마을은 굉장히 폐쇄적이면서 보수적이다. 가끔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런 마을을 다룬 것을 보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 남북 전쟁을 둘러싼 해석이나 그 당시 전쟁을 재현하는 것이나 대부분의 마을 주민이 총기협회회원인 것만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다. 화자이자 남자 주인공인 이선이 마을 사람들을 멍청이와 못 떠난 사람 두 부류로 나눈 것은 어쩌면 가장 정확한 분석일지도 모른다.

 

이선의 꿈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는 꿈 속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노래가 들린다. 하지만 항상 끝을 알 수 없는 사건으로 둘은 떨어지게 된다. 이 도입부를 보면서 앞으로 벌어질 몇 가지 사건을 예상할 수 있다. 이 예상은 한 소녀가 전학 오면서 맞아떨어진다. 그녀는 리나다. 그녀는 마을에 유령같은 존재인 레이븐우드의 조카다. 아름답지만 그녀의 출신과 행동이 그 학교 주류들과 맞지 않는다. 당연히 왕따가 된다. 누구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던 그녀에게 이선이 다가온 것은 그녀가 연주한 음악 때문이다. 그 음악은 이선이 꿈속에서 들었던 바로 그것이다.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꿈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꿈에서 시작한 운명적인 만남은 필연적으로 사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둘을 사랑을 예감하는 또 하나의 비전이 보이면서 이 사랑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보여준다. 폐쇄적인 조그만 시골 마을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어 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마녀로 알고 있던 존재를 주술사라고 부르면서 본격적인 판타지가 펼쳐진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은 당연히 리나다. 그녀의 등장은 이선이 폐쇄적이라고 불렀던 마을 깊숙이 숨겨져 있던 비밀을 하나씩 드러나게 만든다. 일상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은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소설은 로맨스를 바탕으로 판타지 속 존재들을 등장시켜 갈등을 고조시킨다. 이선과 리나의 정신적 감응이나 메이컨 삼촌이 보여준 초능력은 판타지 속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리나의 열여섯 생일날 벌어질 선택에 대한 이야기는 신비감을 불러온다. 이것은 이 이야기 속에서 둘의 사랑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소재이기도 하다. 일반 사람과 구별되는 주술사 등이 실재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일반인과 주술사 사이에 미래가 펼쳐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장애는 또 다른 갈등을 불러오고 재미난 이야기를 만드는 소재가 된다. 또 리나를 둘러싸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왕따는 이 둘에게 시련이자 강한 유대감을 만들게 한다. 사랑이 더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단순히 판타지만 있는 소설이 아니다. 보수적인 남부 사회를 그려내면서 시대와 단절된 사회가 어떤 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앵무새 죽이기>가 앞부분에 등장한 것은 이 마을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아주 좋은 설정이다. 이후 학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과 갈등은 미국 사회의 이면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듯한 남북의 문제는 단지 설정인지 아니면 실제 존재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몇 가지 장면은 영화 속에서 본 것과 너무 비슷하다. 약간 전형적인 듯한 모습이라 조금은 아쉽다.

 

판타지 소설에서 등장할 수 있는 존재들이 보여주는 활약이 사실 조금 약하다. 아마 시리즈 첫 권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주술사 등이 보여줄 능력과 대결이 중심에 놓여있지 않고 리나의 운명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서인지 책 중반은 조금 흡입력이 떨어진다. 상대적으로 앞부분과 마지막이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을 나란히 놓고 풀어내는 판타지는 이제 시작이다. 마지막 장면의 노래는 그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4부작 중 첫 권인 이 소설만 가지고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예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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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멍의 쾌활한 장자 읽기
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 들녘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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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멍의 책이 집에 있지만 한 번도 읽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장자에 대한 해석을 단 책이 나왔다. 왕멍이란 이름과 장자란 책이 겹쳐지면서 관심을 끌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멋진 문장을 발견하게 한 책이 장자에 대한 책이었으니 그냥 지나가기 힘들었다. 이 선택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조금은 잊고 있던 장자에 대한 열의를 깨닫게 해주고 집에 있는 다른 장자 책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장자하면 무협에서 자주 인용되는 글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형이상학적인 문장과 해석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글들이다. 하지만 왕멍은 이 장자를 모두 다루고 있지 않다. <외편>을 다루는데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보다 새롭게 다가온 글들이 더 많다. 개인적으로 무협에서 본 글을 새롭게 해석한 것을 살짝 기대했다. 물론 전혀 없지는 않지만 기대한 것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지닌 매력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읽은 장자 해석에 붙는 단어들을 보면 즐거움이나 쾌활함이다. 솔직해 말해 아직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몇 부분에서 강한 인상을 받고 자유로움을 느꼈지만 그것만으로 장자의 매력을 제대로 맛봤다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것은 왕멍이 풀어낸 해석과 나의 머리가 충돌하고 장자에 대한 환상이 일정 부분 자리를 차지한 것도 있다. 철학으로써의 장자가 아닌 종교로서의 장자를 머릿속에 담아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문장을 가슴에 담아두는데 결정적인 차이가 된다.

 

모두 15부를 다룬다. 원문의 일부분을 번역한 후 이에 대한 해석을 달고 그 다음 원문을 번역 분석하는 방식이다. 각 부가 끝나는 마지막에 왕 아무개의 말이란 간단한 주석을 단다. 이 전형적인 번역 해석 방식이 예상한 것보다 어렵게 다가왔다. 그것은 문장 자체가 너무 형이상학적이고 함축적이면서 시적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부분이 해석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진 부분일 것이다. 여기서 많은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해석을 자신의 것으로 녹여내었고 과거가 아닌 현재 속에서 다시 풀어내었다. 이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살짝 고민하게 만들었다.

 

장자의 글은 탁월한 분석과 문제 제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결책이 없는 글은 분명히 한계를 가진다. 그래서인지 유학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것이다. 유가가 강조한 불평등사회는 당시 지배계급에게 딱 맞는 학문이었던 것이다. 현재도 유교를 중시하는 풍조가 강해지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강신주가 장자의 글을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움이라고 한 것도 이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왕멍의 해석 중 중국이 문자에 천착하고 글쓰기에 너무 공들이면서 과학을 천시했다고 지적한 것에 많은 부분 공감한다. 학문적으로 높고 깊은 곳을 다루고 있지만 현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개선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장자의 글 속에서 현대 철학이나 사조의 기원을 본 듯한 묘사를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해석에 기댄 확대 해석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현재 기준에서 과거 문장을 해석할 때 이런 종류의 글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해석이 가능하게 된 데는 해석자가 가진 학문의 깊이나 넓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자의 글은 읽을 때마다 번역자에 따라 그 느낌이 바뀐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느낌은 자유로움이다. 조화다. 비워짐이다. 아직 나의 학문이 짧고 인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장자에 대한 해석을 읽을 때면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한 줄기 재미를 느끼게 된다. 분명 아직은 장자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지만 앞으로 장자는 내 삶 속 한 곳에 조용히 자리잡고 불쑥불쑥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재미와 즐거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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