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사계절 시리즈 첫 권이다. 제목에 사계절이 들어간 것처럼 이 시리즈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으로 모두 4권이다. 이 소설은 그 중 첫 권이자 겨울이다. 부제도 겨울이 들어간 한겨울의 제물이다. 그래서인지 도입부부터 추위를 강조한다. 북유럽의 추위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조차 움직이길 싫어할 정도의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여주인공이자 형사인 말린이라고 이 날씨가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아침의 고요함 속에 경찰서에서 일을 하고자 한다. 그런데 파트너인 세케에게서 살인사건에 대한 연락이 온다. 함께 현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150킬로 거구의 남자가 처참한 몰골을 한 채 걸려 있는 것을 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신원확인이 바로 되지 않는다. 장의사의 도움으로 얼굴을 복원하니 바로 연락이 온다. 벵트 안데르손, 46세다. 별명은 볼벵트. 축구장 밖에서 선수가 찬 공이 울타리 밖으로 나오길 기다렸기 때문에 붙은 별영이다. 정신적 장애도 있다. 이런 이웃이나 아는 사람들의 정보와 달리 그의 어린 시절 과거는 대단하다. 아버지를 도끼로 내려친 적이 있다. 비록 실패해서 귀만 날렸지만. 그의 살인사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쉽지 않다. 집은 그에 대한 평가와 달리 깨끗하다. 그의 평온한 일상을 깨트린 두 남자 아이가 있었지만. 여기서 형사들의 수사는 시작된다. 탐문과 조사와 대조 등을 통해 사실을 쫓아가지만 범인이 쉽게 나타날 리가 없다.
단순히 한 남자의 죽음 다룬 소설이 아니다. 이 죽음 뒤에 숨겨진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그의 아버지 구석집 칼레 이야기는 너무 대단해서 쉽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다. 그의 야수성에 매혹된 여자들 이야기는 자기 파괴적인 생활과 더불어 폭발한다. 야수성이 폭발할 때 여자들이 매혹되지만 그의 집에서 아내와 자식들은 그의 폭력에 시달린다. 벵트가 도끼를 든 것은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그가 살이 찐 것은 그의 엄마가 아들의 칭얼거림을 방지하기 위해 단 것들을 입속으로 넣어준 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칼레의 매력은 가끔 폭력을 동반하는데 그 피해자가 느낀 감정의 깊이는 대단하다. 이 소설은 바로 거기서 모든 문제가 생긴다.
여형사 말린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형사들의 수사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힘겹고 지루하고 끈질겨야 한다. 우리나라 형사 이야기에서 가끔 만나는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일은 그들에게 없다. 최상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휴식을 강조한다. 굉장히 효율적이다. 그리고 말린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10대 아이를 가진 후 이혼하고 홀로 아이를 키운다. 그의 남편이었던 얀네가 안정된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꾸는 꿈속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따뜻한 휴양지로 노년의 시간을 보내러 간 부모와의 관계는 또 다른 문제 중 하나다.
복지천국이라고 생각하는 그 나라의 문제점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하지만 그 문제들이 모두의 문제는 아니다. 일부다. 이 일부를 전부처럼 강조하면 복지는 깨진다. 작가가 과연 그런 의도를 가지고 이 부분을 쓴 것인지 살짝 의문이 생긴다. 앞에 말린이 홀로 아이를 키운 것이나 순서상 뒤지만 시간상 앞인 라켈의 육아에 대한 서술을 보면 약간 혼란스럽다. 사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나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스웨덴에서도 살인사건과 같은 일이 생기는 것 아닐까. 복지가 잘 갖춰지면 사회가 좀더 안정될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지는 약간 의문이 생긴다. 너무 북유럽 스릴러를 많이 읽은 것일까?
북유럽 미스터리를 읽으면 주인공들의 심리적 갈등이 많이 다루어진다.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형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만의 편견일까? 아니면 내가 주로 읽은 책들이 그런 것일까? 이 갈들을 바탕으로 범인상을 추리하고 쫓는다. 당연히 힘든 일이다. 증거와 증인을 찾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심증이 있으면 물증이 없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족의 비극은 뒤로 가면서 더 강해진다. 비열한 모정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강한 흡입력이나 긴장감을 높여주는 스릴은 조금 부족하다. 그러나 탄탄한 구성과 차분한 전개, 수사의 한계에 대한 묘사 등은 뛰어나다. 시리즈 다른 책들이 나오면 이 작품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몇 가지 이야기가 좀더 깊숙하게 다루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