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매미 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7
하무로 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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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회수로 말하니 언제 상을 받은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서력으로 치면 2012년이다. 바로 작년에 수상한 따끈따끈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현대물이 아닌 일본 시대물이다. 얕은 나의 일본 역사 지식으로 읽다보니 충분히 소화시키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시대상마저도 모를 정도는 아니다. 비록 그 정도가 예상한 것보다 더하고, 슈고쿠의 삶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정도도 아니지만. 그 시대를 제대로 모르고 다른 문화 속에서 산 나에게 당연한 것이다.

 

에도시대 6대 번주 가네미치에게 10년 가보 편찬 후 할복을 명령받은 슈코쿠의 일기 제목이 바로 <저녁매미 일기>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하루살이의 뜻을 담아 이름 지었다. 이 일기는 그 가보 편찬과 관련된 기록이기도 하다. 자신의 감상이 아닌 가보 편찬에 필요한 사항만 기록한 것이다. 저자는 슈코쿠를 감시할 목적으로 파견된 쇼자부로를 통해 슈고쿠의 추상같고 엄밀한 일상과 기록을 보여주고, 그 일상을 통해 그에게 감복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었다. 그 과정은 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사료와 검증을 통해 이루어진다. 가보 편찬도 그렇다.

 

번의 권력자 조카를 상해한 죄로 할복 대신 감시라는 임무를 맡은 쇼자부로를 통해 기본 이야기가 진행된다. 당연히 백성을 위해 큰 활약을 하고 강한 충성심을 가진 슈코쿠에게 그가 부조리를 느낀다. 7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이제 겨우 3년의 시간이 남은 그가 만약 도망간다면 죽여야만 하는 역까지 맡았다. 깊은 통찰력을 지닌 슈코쿠에게 그의 이 임무가 그대로 파악된 것은 너무 당연하다. 쇼자부로가 혹시 하는 마음을 가졌다가 오히려 그의 구명운동을 펼칠 정도로 변하는 일련의 과정은 진실이 드러나는 역사의 순간들이기도 하다. 그 역사를 적어나가는 인물이 슈코쿠라는 점이 아이러니지만.

 

슈코쿠의 가보 편찬과 할복 명령이 내려진 것은 번주의 측실과 밀통하고 시동을 죽인 죄 때문이다. 그 시대 사무라이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바로 할복해야 할 죄다. 그런데 10년 유예가 내려졌다. 가보 편찬이란 대업이 있다고 해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명령이 아니다. 소설은 바로 이 의문을 기본적으로 깔아놓고 그 시대 무사와 마을 주민 사이의 갈등과 권력 투쟁 등을 그 사이에 녹여내었다. 그리고 슈코쿠의 죄에 어떤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지 알려주면서 에도 시대 일본 문화를 보여준다. 그 문화는 지금 시점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시대의 한계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그들의 활약에 안타까워하고 통쾌해하고 아쉬워한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슈코쿠의 일상은 담담하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그의 일상을 견디지 못한다. 그의 일기 제목이 하루살이의 뜻을 담고 있는 것도 바로 하루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얼마나 더 살았나 보다 어떻게 살았는가에 더 비중을 둔 것이다.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강조되는 것은 계급이다. 시대 속에서 이 벽을 넘기는 힘들다. 하지만 가끔 그 한계치를 넘어가면 반란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 시대에서 반란은 모든 것을 뒤엎는 것이 아니다. 자그만 변화다. 이 변화도 권력자에게서 나온다. 당연히 한계는 분명하다. 권력자의 의지에 따를 수밖에 없다. 제도가 강한 사회에서 그 제도를 깨트리지 못하는 한 어쩔 수 없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그 한계 속에서 산다.

 

당연한 수순으로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진한 울림을 주는 것은 겐이치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대단히 소시민적이지만 쾌활하고 긍정적이면서 적극적인 삶은 다른 등장인물에게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인해 비교적 잔잔하게 흘러가던 이야기 크게 도약한다. 이 도약이 개인적으로 만족스런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그 시대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드러나는 또 다른 삶은 시대와 상관없는 삶의 모습이다. 비극이 바로 거기에서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강한 시대물 속에서 진한 여운과 울림을 전해주고 몰입할 수 있는 것도 바로 현재 우리의 삶을 그 시대 속에 제대로 담아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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