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독
박완서 지음, 민병일 사진 / 열림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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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故 박완서 선생의 1996년 티베트와 네팔 기행기 <모독 - 세계문화예술기행 1>의 개정판이다. 사실 소설로 주로 만났지 에세이로 만난 것은 처음이다. 몇 권이나 나온 에세이에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한때 에세이는 나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더 그랬다. 이 책에 관심이 간 것은 역시 티베트 때문이다. 늘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지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그곳. 무협소설에서 밀교의 본산으로 수없이 등장한 그곳. 영화 속에서 너무나도 멋지게 등장하여 알 수 없는 동경을 불러오는 곳이 바로 티베트다. 그곳을 그녀는 동료 소설가 이경자, 김영현, 시인 민병일 등과 함께 다녀왔다.

 

세계문화예술기행이란 기획에 의해 패키지로 티베트와 네팔을 다녀왔다. 가이드를 따라 환갑도 지난 노인이 해발 5천 미터를 넘는 곳을 힘겹게 돌아다녔다. 고생이 심했다. 산소가 줄어든 곳에서 고산병 증세도 경험했다. 이런 힘든 일정을 무사히 마쳤는데 이 때문에 여행 중 충분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을 메워준 것이 바로 민병일 시인의 사진이다. 사진은 힘든 일정 속에서도 가슴 한 곳에 새겨진 감상을 글로 풀어내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어떤 곳에서는 사진만으로 충분히 그곳의 매력을 전달해주었다. 그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도 같이.

 

티베트 여행기가 처음은 아니다. 다른 책을 이미 한두 권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여행이 자유여행도 아니다 보니 기행기의 깊이가 솔직히 깊지는 않다. 하지만 이 때문에 여행자의 솔직한 감상이 드러난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조장(鳥葬)을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인식을 바로 잡아주었는데 이 책에는 그런 깊이가 사실 부족하다. 그곳을 지나가면서 잠시 마주친 사람들과의 인연을 조심스럽게 풀어낼 뿐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모습도 같이 발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순간의 동정심 때문에 엄청나게 밀려오는 엄마와 아이들이 내민 구걸의 손길은 늘 동남아 여행기에서 만나는 풍경이다. 한 가지 낯선 것은 연필 대신 볼펜을 요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몸도 힘들지만 마음도 편하지 않은 순간이 많았다. 장려한 사원과 수많은 불상을 보는 것이 눈에 최고의 사치이자 충격이지만 마음의 평화나 기쁨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이 호화와 사치를 극한 불상과 이 땅의 극빈층이 저절로 대조가 되어 불상에서 느끼고 싶은 자비를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수목한계선 너머에서 자라는 들꽃들이다. 오체투지로 사원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며 절실한 염원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한 잔의 버터차를 같이 마신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지금도 가끔 다큐멘터리에 나와서 그 동안 큰 변화가 없음을 보여준다.

 

티베트를 말하면서 달라이라마를 빼놓을 수 없다. 티베트의 독립을 우리의 일제 식민지와 같이 연결해서 생각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점점 늘어나는 한족의 모습과 그들이 보여준 몇 가지 행동은 충분히 반감을 가지게 만든다. 이것은 다시 네팔의 티베트인들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네팔 기행기는 이번 일정 속에 포함되어 있지만 이전에 출간한 글을 이번 책에 덧붙였을 뿐이다. 거의 이십 년 전 글이지만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 사이 더 발전하고 더 비싸지고 더 영악해진 곳으로 변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현실의 우리보다는 더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의 네팔 여행은 좋은 기억들로 가득하다. 상대방 문화를 있는 그대로 신기해하며 인정해주고 같이 즐겨 좋고, 싼 가격 때문에 한국에서 꿈도 꾸지 못할 낭비를 와장창해서 좋고, 트레킹으로 현실에 묶여 질식할 것 같았던 나의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여기에 아름답고 멋진 사진은 잠시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이것은 티베트 여행기 속 사진도 마찬가지다. 책을 다 읽은 후 잠자리에 들기 전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도 바로 이 사진들이다. 그녀와 동료들의 힘겨웠던 일정이 잠시 동안 나에게 편안한 휴식과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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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생각
이이화 지음 / 교유서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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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이이화 선생의 책을 읽었다. 개인적 취향에 더 맞는 역사가가 이덕일이라면 이이화는 개인적인 몇 가지 때문에 혹은 전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때문에 왠지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물론 이덕일의 책이라고 무조건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하나의 논쟁이나 인물을 집중적으로 풀어낸 역사를 좋아한다. 물론 이덕일의 역사 서술 중 몇 가지는 호불호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 역사 서적도 미스터리 소설처럼 재미있게 쓸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역사가이기에 그 이름을 가슴 한 곳에 새겨두었다.

 

왜 이덕일을 앞에서 꺼냈느냐 하면 이이화가 한 인물, 허균을 풀어내는 방식을 보면서 이덕일이라면 훨씬 자극적이고 흥미롭게 썼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이 전두환의 신군부가 득세하던 1980년임을 감안해야 한다. 당시 글쓰기와 지금은 다를 것이고, 시대의 분위기도 완전히 다르다. 비록 허균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글들이 추가되면서 더 풍성해졌다고 해도 구성에서 큰 변화가 없고, 사료 우선에 진중한 글을 쓰는 저자의 이력을 생각하면 쉽게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글 속에서 이전 연구자들의 글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허균의 모습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모습이 낯설지 않고 익숙하다. 그것은 바로 요즘 허균에 대한 생각이 처음 나왔을 때보다 많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모두 다섯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장은 허균이 살던 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풍경을 보여주고, 2장은 천재 이단아였던 허균의 생애를 요약한다. 다음 장들은 각각 허균이 생각하는 정치, 학문, 문학에 대해 그의 글들을 분석하고 재해석한다. 이때 만나게 되는 그의 행동과 사상은 끊임없이 민중을 생각하는 모습이다. 저자는 허균이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 사이의 괴리와 모순에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아, 적어도 그는 선구적인 사상가임에 틀림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허균을 영웅으로 그려내기보다 ‘역사 속에서 부침한 양식 있는 한 인물’로 서술하면서 오늘날의 우리가 돌아보고 비춰보기를 원한다.

 

현재 시점에서 본다면 허균은 분명히 시대적 한계가 있다. 근대 민주주의가 바탕이 되는 상향식 민주주의를 아직 그는 몰랐다. 그것은 다른 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백성을 위한다는 점에서 그의 민본주의는 뜻이 깊다. 어리고 잘 모를 때 이 한계를 용납하지 못한 적이 있다. 역사가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고, 발전해가는 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홍길동전>을 두고 수많은 해석이 나오고 한계성을 지적하는 글이 나오는 것도 단순히 해석상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과 자료에 집착하다보니 그런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 한 인물이 얼마나 새롭게 해석되는지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책의 대상인 허균도 바로 그런 인물이다. 동시에 광해군도.

 

저자는 각 장에서 허균의 생각을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풀어놓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의 글 전문을 번역해서 실었다. 앞에서 인용했던 글들이 저자의 해석으로 한 번 인식되고, 전문 속에서 다시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되면서 저자의 해석이 하나씩 각인된다. 이 두 번의 강조는 허균에 대해 알고자 하는 바를 적절하게 인식시켜준다. 그리고 조선에 처음 서학을 가져왔고, 자신이 불교도임을 알려주는 글을 읽을 때면 약간 낯설지만 오히려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책 속에 나온 허균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그의 모습을 산산조각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와 그 시대에 대해 더 많는 연구가 더 깊이 있게 진행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최근 광해군 열풍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가 정치에서 시대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하지만 문학에서 보여준 문장에 대한 글은 아주 현대적이었다. 화려한 수사보다 뜻을 쉽게 알 수 있게 일상 언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뜻이 우선이란 말이다. 요즘 글들을 보면 화려한 수사나 어려운 단어를 끌어다가 치장하는 문장들이 많은데 이 부분은 한 번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나 자신도 가능한 간결하고 분명하게 문장을 만들려고 하는데 아직 내공이 부족하여 길어지거나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가끔 그 의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허균은 정치적으로는 민본주의자요, 학문적으로는 대단히 포용적이며 문학적으로는 분명히 그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당대의 권위에 대한 도전자고, 새로운 시대를 읽는 눈이 누구보다 탁월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한계를 절실히 깨달았지만 새로운 도전의 기회도 생겼다. 앞으로 배우고 익혀야 할 수많은 것들이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구성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 내용은 충분히 그것을 지울 정도다. 앞으로 허균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점점 더 조선시대 학자들에 대한 공부할 거리가 늘어난다.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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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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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를 처음 본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재미있다는 말에 그냥 봤다. 처음은 낯설었지만 어느 순간 다음 이야기에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의문이 생겼다. 왜 갑자기 주인공이 바뀌었지? 하고. 이 시리즈의 설정을 잘 몰랐기에 생긴 오해다. 그후 이 시리즈가 다른 출판사에서 한 권씩 출간되었다. 몇 권 사놓았다. 애니가 재미있었기에. 하지만 늘 그렇듯이 영화나 애니 등으로 먼저 본 원작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기억이 조금 흐려졌을 때까지 읽지 않는다. 애니로 본 시리즈 다음이 궁금했지만 원작과의 차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그랬다. 그렇게 <십이국기>의 몇 권은 책 더미 속에 묻혔다. 절판된 것도 모른 채.

 

애니로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결코 채울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물론 애니가 보여줄 수 있는 장점도 많다. 애니의 장점 하나를 먼저 꼽는다면 책을 읽을 때 머릿속에서 쉽게 요마들의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데 바로 볼 수 있다. 자막으로 요마의 이름을 표기한 것이다. 이것이 이 시리즈의 마니아들에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러나 나처럼 소설을 읽으면서 읽는 속도에 비해 이미지가 금방 만들어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그 이미지가 애니메이터에 의해 고정되는 것은 아쉬운 일지만. 애니의 단점은 섬세한 심리 묘사나 설명이 생략되거나 불가능한 것이다. 애니를 본 지 오래되어 요코의 감정 변화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부분의 비교는 직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의 저질 기억 때문에.

 

애니로 먼저 봤기에 책을 읽으면서 원작의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다. 부정확한 기억은 하나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한 결과를 모호하게 만들고, 어느 장면에서는 애니의 한 장면이 뿌옇게 떠오르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 애니의 이미지가 제대로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원피스>처럼 원작을 따라 계속 시리즈가 애니로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전체가 아니라면 시리즈 중 한두 편이라도 더. 워낙 대작이다보니 애니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은하영웅전설>이 애니로 모두 나왔던 것을 생각하고, <원피스> 등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방대한 이야기의 도입부가 되는 이번 편은 이 시리즈를 이해하고, 세계관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평범한 여고생 요코는 갑자기 나타난 청년 게이키에 의해 다른 세계로 옮겨온다. 꿈속에서 며칠째 그녀를 괴롭혔던 존재들이 현실에 등장한 것이다. 정확한 설명도 없이 그는 그녀를 데리고 달아난다.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사랑의 도피처럼 보이는 모습이다. 이런 그녀를 데리고 달아나려고 했다면 안전하게 모셔야 할 텐데 적들의 공격에 그녀는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다. 그 곳은 교국이다. 이 나라는 허해를 건너온 이방인인 해객을 우대하는 곳이 아니다. 그녀의 낯선 옷과 모습은 바로 해객임을 말해준다. 그녀를 잡은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현청으로 옮기려고 한다. 이때 요마들이 이들을 공격한다. 게이키가 준 검으로 요마들의 공격을 물리친다. 달아난다. 이제 그녀의 힘겨운 행로가 시작한다.

 

이번 이야기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요코가 한 명의 왕으로 성장하기 위한 초석을 닦는 것이다. 낯선 세계로 와서 그녀는 자신을 팔려고 하는 사람의 의도를 선의라고 믿기도 하고, 자신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한 노인의 눈물나는 이야기에 끌리지만 가진 돈을 털릴 뿐이다. 여기에 해객을 잡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굶주림은 그녀의 또 다른 적이다. 여기에 낮 동안 계속되는 요마들의 공격은 그녀를 한계까지 몰아간다. 검의 빛을 통해 자신이 떠난 후 집이나 학교의 모습을 보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강하게 만들뿐이다. 그리고 가장 큰 적인 정체를 알 수 없는 원숭이가 계속해서 그녀를 충돌질한다. 자살하라고, 죽이라고, 믿지 말라고. 심리적인 갈등은 점점 커지고,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불만이 하나 있다. 그것은 십이국기의 세계에 한국은 없다는 것이다. 가끔 일본 판타지를 읽을 때면 중국만 나오지 한국은 존재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한국이 워낙 작은 나라라 의미가 없는 것인지. 그리고 이 낯선 세계의 풍경을 일본과 중국의 혼합으로 그려낸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것은 이 재밌는 책에 대해 가지는 조그만 불만이다. 가끔 조선의 술법으로 귀신이나 악마를 부리는 것이 나오는 것보다는 낫다. 부정확한 기억이지만 <시귀>에서 보여준 치밀하고 압축된 세계와 밀도 있는 문장이 이번에는 좀 약한 것 같다. 방대한 세계관과 다양한 주인공들을 내세워야 하는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간결한 문장으로 속도감 있게 풀어내려고 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 요코와 열두 나라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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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간평가단을 하면서 이해하지 못한 책도 있고, 먼저 읽은 책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나의 이해 범주 안에 들어오거나 새롭게 작가를 인식하게 만드는 책이 많아 좋았다. 

1. 열두 권의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았던 책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코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이다.

 도입부의 세부적인 묘사가 조금 지루했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때부터 빠져들었다. 그리고 학창시절 멋모르고 읽었던 <나나>나 <목로주점>의 이미지를 깨트리고 나를 완전히 새롭게 에밀 졸라의 세계로 인도했다. 이전에 읽었다는 이유로 다시는 돌아보지 않으려고 생각한 두 책에 큰 관심을 불러왔다. 개인적으로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2. 소년이 온다 : 한강

 서평단 도서로 선택되기 전에 읽었다. 80년 광주가 이제는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직도 진행중임을 다시 깨달았다. 이 분야 소설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검색하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검색이 잘못 되었거나 정말 출간되지 않었거나 둘 중 하나다. 한강의 문장이나 분위기와도 아주 잘 어울렸고, 아직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음을 알려줬다. 이 책도 일독을 권한다.

 

 

3. 자유로운 삶 : 하진

  몇 년 전부터 하진의 소설에 대한 극찬을 읽어왔다. 몇 권 사놓았지만 한 번도 손이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자전적인 소설로 그는 나를 사로잡았다. 외국어로 시를 쓰고자 하는 그의 마음과 현실적 문제들이 충돌할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4. 기 드 모파상

예전에 모파상의 단편들을 읽었었다. 하지만 그 분량이 이 책보다 얇았다. 사실 이 책이 선택되었을 때 읽은 적이 있고, 너무 두꺼워 흔쾌히 읽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파상의 소설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나의 저질 기억력도 한몫했다.

 

 

5. 마지막으로 선택할 책은 성석제의 <투명인간>과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 사이에서 갈등했다. 쉽게 읽은 책은 성석제인데 필립 로스의 이름과 이야기는 낯설지만 여운이 있는 전개로 나를 갈등하게 만들었다. 두 책은 사실 한 인물을 통해 시대의 모순을 보여주는 설정으로 쓴 소설들이다. 현재 나의 한계로 생각하면 성석제지만 조금더 생각하고 고민하면 필립 로스다. 그래서 이번에는 두 권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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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4-10-2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평가단이 별로 드리는 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게,
신간평가단이 아니었으면 안읽었을 책들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책 선정에 더 고민을 하게 되고 그렇습니다. 네 ; ㅎㅎ

좋은 활동 감사드려요. 좋은 계절 보내세요! :)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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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천명관의 소설을 읽었다. 우연히 <고래>를 사놓았지만 묵혀두었고, 이 책을 빌려 읽은 사람이 재미있다고 했지만 왠지 손이 가질 않았다. 다른 책도 역시 사놓았지만 책장 한 곳에 그냥 조용히 모셔만 두고 있다. 책장에서 <고래>를 볼 때면 언제 시간내서 읽어야지 생각하지만 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다. 바로 옆에 쌓아둔 책들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소설의 경우 제목을 읽고 소설이란 생각조차 못했다. 천명관이란 작가가 쓴 소설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한 번 더 유심히 쳐다보았겠지만 제목이 노동소설의 분위기가 풍겨 그냥 지나갔다. 하지만 읽어야 할 것은 어떻게든 오는 모양이다.

 

모두 여덟 편이 실린 단편집이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문학잡지에 실린 글들을 모았다. 요즘 단편집에서 발표지면이 표시되는 경우가 흔하지 않는데 이 책은 그 정보가 실려있다. 반가웠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이런 정보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책을 읽다보면 어디에, 언제 실린 글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책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발표 순서도 어떤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가장 최근작인 <핑크>가 2014년 6월호 문학사상에 발표되었는데 이 작품의 마지막 한 문장이 그의 이력에서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시도를 위한 시발점인지 궁금하다. 어쩌면 나의 단순한 착각과 무지와 기대일 수 있지만.

 

이 단편집에서 단편소설을 한 편씩 읽을 때 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단어가 있다. ‘파국’이다. 특히 표제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와 <전원교향곡>을 읽을 때 더 그랬다. 마지막에 그들이 선택한 삶이 이성대신 감정의 분출로 이어지면서 내일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노가다로 하루 일당을 벌어먹고, 때린 아내로부터 이혼 당하고, 아이들과 대화조차 없는 일상이 이어지는 와중에 술 한 잔의 만용이 만들어낸 40만원의 빚 독촉은 냉동칠면조를 흉기처럼 휘두르게 만든다. 훔친 벤츠트럭을 타고 달리는 그의 모습은 제목 그대로다. 반면에 귀촌의 환상을 마구 파괴하는 <전원교향곡>의 마지막 장면은 파산과 함께 자신이 가진 유일한 자산이자 희망마저 빼앗아간 것에 대한 우발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 눈에 들어온다. 외형은 복수지만 실제는 자기파괴다.

 

비루한 가장의 죽음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봄, 사자의 서>가 약간 밋밋했다면 <동백꽃>은 조그만 섬마을에서 벌어지는 치정싸움이 웃기면서도 애잔하다. <왕들의 무덤>은 중년 여작가의 거짓과 허위와 허세 뒤에 감쳐진 메마른 감성이 과거의 사건 속에 조용히 흘러나왔고, 불면에 시달리는 한 편집자의 중의적인 마무리가 인상적인 <파충류의 밤>은 나 자신이 가진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산산조각낸다. <우이동의 봄>은 90년대 초반 힘겹게 산 한 청년의 에피소드들이 작가의 앞날처럼 꽃비가 내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핑크>에서는 대리기사의 불편한 진실이 마지막 한 문장으로 엮여지면서 섬뜩하게 만든다.

 

많지 않은 분량에 엄숙하지 않은 발랄한 문장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각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간결하면서도 잘 짠 구성으로 하나씩 풀어내면서 몰입하게 만든다. 시나리오 작가의 이력이 힘을 발휘한 것일까?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에 머물고 살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전면에 등장시켜 삶의 다른 한 면을 돌아보게 한다. 일상생활에서 그냥 스쳐지나갔거나 혹은 스쳐지나간 나의 모습들이다. 파국으로 달려가든 삶의 의지를 새롭게 다지든 속내를 감추든 그들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이다. 나 또한 그렇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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