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독
박완서 지음, 민병일 사진 / 열림원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故 박완서 선생의 1996년 티베트와 네팔 기행기 <모독 - 세계문화예술기행 1>의 개정판이다. 사실 소설로 주로 만났지 에세이로 만난 것은 처음이다. 몇 권이나 나온 에세이에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한때 에세이는 나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더 그랬다. 이 책에 관심이 간 것은 역시 티베트 때문이다. 늘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지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그곳. 무협소설에서 밀교의 본산으로 수없이 등장한 그곳. 영화 속에서 너무나도 멋지게 등장하여 알 수 없는 동경을 불러오는 곳이 바로 티베트다. 그곳을 그녀는 동료 소설가 이경자, 김영현, 시인 민병일 등과 함께 다녀왔다.

 

세계문화예술기행이란 기획에 의해 패키지로 티베트와 네팔을 다녀왔다. 가이드를 따라 환갑도 지난 노인이 해발 5천 미터를 넘는 곳을 힘겹게 돌아다녔다. 고생이 심했다. 산소가 줄어든 곳에서 고산병 증세도 경험했다. 이런 힘든 일정을 무사히 마쳤는데 이 때문에 여행 중 충분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을 메워준 것이 바로 민병일 시인의 사진이다. 사진은 힘든 일정 속에서도 가슴 한 곳에 새겨진 감상을 글로 풀어내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어떤 곳에서는 사진만으로 충분히 그곳의 매력을 전달해주었다. 그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도 같이.

 

티베트 여행기가 처음은 아니다. 다른 책을 이미 한두 권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여행이 자유여행도 아니다 보니 기행기의 깊이가 솔직히 깊지는 않다. 하지만 이 때문에 여행자의 솔직한 감상이 드러난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조장(鳥葬)을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인식을 바로 잡아주었는데 이 책에는 그런 깊이가 사실 부족하다. 그곳을 지나가면서 잠시 마주친 사람들과의 인연을 조심스럽게 풀어낼 뿐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모습도 같이 발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순간의 동정심 때문에 엄청나게 밀려오는 엄마와 아이들이 내민 구걸의 손길은 늘 동남아 여행기에서 만나는 풍경이다. 한 가지 낯선 것은 연필 대신 볼펜을 요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몸도 힘들지만 마음도 편하지 않은 순간이 많았다. 장려한 사원과 수많은 불상을 보는 것이 눈에 최고의 사치이자 충격이지만 마음의 평화나 기쁨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이 호화와 사치를 극한 불상과 이 땅의 극빈층이 저절로 대조가 되어 불상에서 느끼고 싶은 자비를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수목한계선 너머에서 자라는 들꽃들이다. 오체투지로 사원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며 절실한 염원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한 잔의 버터차를 같이 마신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지금도 가끔 다큐멘터리에 나와서 그 동안 큰 변화가 없음을 보여준다.

 

티베트를 말하면서 달라이라마를 빼놓을 수 없다. 티베트의 독립을 우리의 일제 식민지와 같이 연결해서 생각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점점 늘어나는 한족의 모습과 그들이 보여준 몇 가지 행동은 충분히 반감을 가지게 만든다. 이것은 다시 네팔의 티베트인들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네팔 기행기는 이번 일정 속에 포함되어 있지만 이전에 출간한 글을 이번 책에 덧붙였을 뿐이다. 거의 이십 년 전 글이지만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 사이 더 발전하고 더 비싸지고 더 영악해진 곳으로 변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현실의 우리보다는 더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의 네팔 여행은 좋은 기억들로 가득하다. 상대방 문화를 있는 그대로 신기해하며 인정해주고 같이 즐겨 좋고, 싼 가격 때문에 한국에서 꿈도 꾸지 못할 낭비를 와장창해서 좋고, 트레킹으로 현실에 묶여 질식할 것 같았던 나의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여기에 아름답고 멋진 사진은 잠시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이것은 티베트 여행기 속 사진도 마찬가지다. 책을 다 읽은 후 잠자리에 들기 전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도 바로 이 사진들이다. 그녀와 동료들의 힘겨웠던 일정이 잠시 동안 나에게 편안한 휴식과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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