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무지개
최인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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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묵직한 우리 소설 한 권을 읽었다. 22세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들은 바로 현실의 문제들이다. 단지 그 문제를 조금 더 극단적으로 밀어붙였을 뿐이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많은 부분에서 이런 미래가 펼쳐질 것이란 예상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암울한 미래를 다룬 디스토피아 sf소설이기도 하다. 물론 sf적인 상상력은 기존 장르 소설의 그것을 결코 넘지 못한다. 지금보다 100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기술 발전이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SS 울트라마트 계산직원 지니, 지연의 일상을 단단하면서 견고한 문체로 보여준다. 기계적인 삶을 문장의 리듬에 맞춰 보여주는 도입부는 이 소설 최고의 대목이다. 반복되는 용어와 이어지는 작업들을 이렇게 멋지게 풀어낸 글을 오랜만에 만났다. 덕분에 이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조금은 더 분명하게 보였다.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의 불안정한 삶이 소모적인 일회성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 시작은 같은 회사의 상사인 브라운이다. 그가 보여준 카드의 위력은 그녀를 사로잡고, 하나의 반복적인 규칙이 된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난다. 제임스, 재선이다. 그도 역시 계약직 택배기사다.

 

서울클라우드익스프레스 하남 출장소 소장 백스터가 등장하여 재선이 일하는 곳의 풍경을 보여준다. 회사 작업카드를 불법 사용한 외국 노동자를 쫓아내는 장면에서 이 세계의 단면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들이다. 계약직 중에서는 일회성 계약직도 있다. 멜라니, 안영희가 바로 그렇다. 이 둘이 함께 낡은 트럭을 타고 러시아까지 물건을 배송해야 한다. 그들은 떠났고, 회사의 말단 관리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나쁜 기억이 있다, 그것은 멕시코에서 있었던 일이다. 회장 한창수의 짐꾼으로 갔다가 생긴 일이다.

 

유기홍 박사와 한창수 회장의 만남이 나온다. 이 둘은 한 회장의 간 이식 때문에 하나로 묶였다. 그런데 이 간 이식이 불법으로 멕시코 소년 아담의 간을 옮긴 것이다. 몇 년 동안 문제없이 잘 살았는데 갑자기 이상이 생겼다. 건강검진에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술집에 멕시코에 함께 간 사람들이 모인다. 이 일을 주선한 인물은 강태기 사장이다. 백스터와 더스틴은 단순한 짐꾼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아이리스다. 그녀의 실종은 이 소설의 구성을 미스터리 물로 만드는 큰 역할을 한다. 갑자기 나타난 그녀의 남자 친구의 존재가 이들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온다.

 

멜라니, 안영희, 마릴린, 프랭크, 나오미는 모두 같은 인물이다. 안영희로 태어나서 마릴린, 나오미, 프랭크, 멜라니 등의 삶을 살아왔다. 이 이름들은 한때 그녀의 삶을 대변한다. 배고프고 굶던 시절 도움인 줄 알고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사람들이다. 제리도, 에스더도. 제리는 열한 살 그녀를 매춘으로 몰았고, 에스더는 근본주의 기독교 선교단체의 군인으로 자라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에스더가 아이리스다. 그녀는 나오미와 한때 연인처럼 보낸 적이 있다. 에스더는 다른 이유로 단체에서 쫓겨났고, 먼 훗날 다른 이름은 둘은 다시 만난다. 이 둘은 강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 아이리스가 죽었을 때 프랭크는 그것을 느낀다.

 

각 등장인물이 엮이고 섞이면서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든다. 지연과 재선은 통제된 세상을 벗어나서 살고자 했지만 중일전쟁으로 자신들만의 터전에 쫓겨났고, 지연은 달아나 에너지돔이란 곳에서 산다. 재선은 그녀를 늘 찾고 있고, 지금은 멜라니와 함께 배송을 한다. 하루살이 같은 삶을 유지하는 노동자의 일상을 그가 보여준다. 한창수 회장과 함께 간 그의 부하 직원들이 멕시코에서 겪은 경험들은 솔직히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 중요한 사건에 연결된 부분을 제외하면 불필요하게 분량이 많다. 이렇게 각자의 삶이 뒤섞인다. 시간도 뒤섞인다. 이 장치가 아이리스의 실종과 그녀의 애인이 누굴까 하는 의문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이 거대한 디스토피아 미래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설정이자 장치일 뿐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읽기는 조금 무겁다. 보통의 sf소설을 생각하고 읽으면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마주한다. 노작가가 바라본 한국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이 설정이 하나의 가정이라고 해도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과 미래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이 암울한 미래 속에서도 사랑은 존재한다. 이 사랑이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결과도 다양하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죽이고, 누군가는 엄청난 일로 발전한다. 발전과 변화의 가능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어쩌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재선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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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의 탄생 - 2014 제5회 김만중문학상 금상 수상작
조완선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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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과 박지원. 사실 이 둘을 엮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허균은 <홍길동전> 때문에 알았고, 최근에 읽은 몇 권의 책에서 단순히 <홍길동전>의 저자가 아닌 개혁가 허균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 새로운 모습은 낯설지만 흥미로웠다. 박지원은 <열하일기>로 그 명성을 떨쳤지만 <허생전>이나 <양반전> 덕분에 실제보다 조금 낮게 본 것도 있다. <열하일기>가 새롭게 해석되고 번역되면서 덩달아 연암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조선 중기 이후 최고의 문장가이자 사상가인 두 사람을 엮어 소설을 쓴 것은 아주 재미있는 시도다. 비록 그 시도가 아쉬움을 더 강하게 남겨놓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소설은 고지식할 정도로 허균과 박지원이 번갈아서 등장한다. 일대일 방식이다. 필요에 따라 이 규칙을 깰 수도 있을 텐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이 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보다 좀더 유연하게 풀어내면서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연암에서 시작하여 교산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연암으로 끝을 맺는데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약간 처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긴장감을 조성해야 할 부분이 많은데 교차 편집의 너무 빤한 방식으로 풀어내다보니 이 둘의 조합이 억지스럽게 이어지는 듯한 기분도 살짝 든다. 그리고 이 둘의 시간과 공간을 비슷하게 풀어낸 것은 좋은데 사건과 인물들 사이의 밀도감이 떨어진다.

 

연암이 <허생전>을 쓰기 전 금서인 허균의 서책에 대한 정보를 책쾌 조열에서 들으면서 시작한다.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던 그때 허균의 서책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책쾌 마종삼이 조열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온다. 그는 조열이 연암에게 교산의 책을 전할 것이란 소식을 이미 들었다. 이 당시는 금서를 소지한 것만으로 사형에 처해지던 시기다. 하지만 허균의 금서 <교산기행>은 연암의 마음을 뒤흔든 상태다. 홍길동의 흔적을 뒤쫓는 과정을 담은 <교산기행>의 행방과 조열 살인을 둘러싼 비밀을 이 두 사람은 조사하고 파헤치면서 따라간다.

 

허균은 홍길동이 문경에서 참수되었다는 문서를 이식에게 받은 후 꿈자리가 뒤숭숭해진다. 그가 꿈꾸던 호민의 원형을 홍길동과 그 무리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서의 내용에 의문이 생긴다. 큰 도적인 홍길동이 사로잡혔다면 상부에 보고하고 시체를 전시해야 하는데 그 흔적이 없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길을 떠난다. 첫 여행지는 바로 홍길동의 생가가 있던 장성이다. 이곳에서 그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희한한 소문과 모습도 본다. 아직도 홍길동의 영향과 전설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난 봉추거사는 앞으로 이어질 허균의 모험과 조사에 큰 역할을 한다.

 

허균이 <홍길동전>을 쓰기 전 홍길동의 역사를 발로 뒤좇아 갔다면 연암은 이 허균의 흔적을 <교산기행>의 필사본 몇 장을 통해 따라간다. 이 둘의 행적은 시대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하다. 장성에서도 문경에서도 사건의 중심 언저리에 둘은 머문다. 시간적으로 현재인 연암은 살인사건이 이어지고, 과거 속 허균은 홍길동 전설을 둘러싼 기묘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둘의 모습이 너무 비슷하게 그려지면서 개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는다. 허균이 위험에 빠졌을 때 보여주는 모습은 우연과 인연 그 이상이 아니다. 연암도 역시 살인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긴장감을 조성하고 호기심을 자극할 소재들이 살짝 겉도는 느낌이다.

 

작가는 허균의 호민론을 중심에 놓고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그들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이 사건들이나 두 주인공이 이상하게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급박함도 긴장감도 고조되지 않다보니 몰입하기보다 밖에서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 시대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가상의 책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다면 둘 중 한 명 정도는 강한 카리스마를 품어내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홍길동의 율도국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도 처음이다. 등장인물의 개성도, 잘 짠 구성의 정밀함도, 엄청난 미스터리도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역사의 두 인물을 교차하여 이야기를 잘 풀어내었다는 정도만 다가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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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순간 페루 - 그곳에서 만난 잉카의 숨결 지금 이 순간 시리즈 3
한동엽 지음 / 상상출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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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송한 <꽃보다 청춘> 때문에 페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냥 남미의 한 나라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던 그곳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 영향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방송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이나 새로운 장소 등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나의 의도와 맞아떨어졌지만 전체적인 부분에서는 그렇게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기존에 다른 방송이나 팟캐스트 등으로 얻은 정보보다 더 나아가는 부분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꽃보다 청춘>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신선함도 조금 떨어졌다.

 

방송의 영향이 아직도 조금 남아 있는 나에게 이 책에 보여준 몇몇 장소와 행동은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겹쳐질 수밖에 없다. 그가 알려준 몇 가지 팁은 실제 방송에서 확인한 것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책이 보여줄 수 없는 부분을 방송이 더 정확하고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편집과 영상의 차이가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장점은 분명히 있다. 방송이 보여줄 수 없는 더 낮은 곳의 삶이나 실제 여행자들의 감상이다. 방송에서 호들갑을 떨든 것을 저자는 전혀 보여주지 않거나 오히려 덤덤하기만 하다. 그리고 실제 하층민들이 사는 곳의 이면을 찍고 말해 줄 때 이곳이 여행지가 아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방송을 볼 때 놓쳤거나 무심하게 본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자가 보고 느낀 점들이 강하게 와 닿는 부분들이 많다. 관광지가 아닌, 유적지가 아닌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방송이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화려함과 재미만을 쫓는다면 이 책은 그 뒷모습도 함께 보여준다. 하지만 길지 않게 지나가는 일정은 수박겉핥기일 뿐이다. 여행자의 아쉬움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행운이라고 말할 때, 잠시 스쳐지나가는 여행자들의 호의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줄 때 이 여행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잉카 제국의 흔적만 남았고, 거대한 나스까의 지상화는 의문을 남겼다. 스페인의 학살과 파괴는 고대의 유산을 유적지로만 남겨 놓았다. 그 위에 세운 스페인의 성당 등은 자주 일어나는 지진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마음속에 심어놓은 종교는 강하게 뿌리를 내렸다. 수많은 관광자원을 발견하고 개발한 것이 외국인이고, 마추 삐추까지 가는 기차의 운영권을 영국이 쥐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점점 마추 삐추가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띠띠까까 호수의 풍경이 신기하고 새로워야 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미 다른 방송 등에서 본 것 때문에 어떤 감흥도 받지 못했다. 단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힘겨움만 눈에 들어온다.

 

많지 않은 분량이고 간략하게 적은 글들이라 정보가 그렇게 풍부하지 않다. 한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어떤 고생을 하는지는 오히려 방송이 더 낫다. 고산병으로 고생한 윤상을 보면 그 위험이 조금 더 와 닿는다. 이 책의 아쉬움 중 하나가 어떻게 가는지 하는 것들이 생략된 것이다. 가는 도중에 겪은 힘겨움이나 재미가 생략되어 있다. 늘 최상의 환경에서 이동하는 것이 아니면 이것도 아주 좋은 간접 경험인데 말이다. 반면에 방송에서 재미를 위해 강조했던 몇 가지를 솔직하게 자신의 느낌을 적은 것은 혹시 간다면 선택을 고민하게 만든다. 그 가격이 비싸면 비쌀수록 더욱. 개인적 감상으로 <꽃보다 청춘>을 보지 않은 사람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일 것 같다. 먼저 방송을 봤다면 잠시 그 기억과 비교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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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맛 - 음식으로 탐사하는 중국 혁명의 풍경들
가쓰미 요이치 지음, 임정은 옮김 / 교양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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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음식은 극히 한정적이다. 최근 중국 현지 요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면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익숙한 것들은 홍콩이나 화교들이 외국에서 만들어 판 음식들이다. 중국 특유의 과장법이 덧붙여진 요리들은 일단 시선을 확 잡아당긴다. 실제 맛은 알 수 없지만 시각적으로는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대만이나 중국이나 홍콩 등을 짧게 여행하면서 그곳 음식을 맛보면 그때의 환상이 깨진다. 향신료 등이 너무 달라 새로운 맛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중국 음식을 중국 역사와 연결시킨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이다.

 

혁명의 맛이란 제목보다 중국 요리의 미궁이란 표현이 더 맞다. 문화 혁명을 거치면서 중국 음식이 많이 퇴보했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음식들이 역사와 실제 상관없는 것들도 상당하다. 대표적인 것들이 향신료와 광동 요리로 대표되는 음식이다. 사천 요리에 대해서도 매워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다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고추와 연결시킨 장에서 이 맛이 실제 알려진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도 음식의 많은 부분이 조선 말기나 일제 시대에 개발되고 발전한 것이다. 전통에 기댄 마케팅에 의해 윤색된 것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아쉽다. 문헌에 이름만 나오고 요리법이 적힌 것이 사라진 요리의 경우는 더욱 더.

 

저자는 요리와 중국 현대사를 엮어내었다. 중심에 있는 것은 요리고, 역사 속에서 요리와 음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고찰하고 있다. 그 유명한 만한전석도 있지만 북방의 후이족이나 몽골족들이 가져온 요리나 향신료들이 북경 등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말할 때 나의 기존 인식이 무너졌다. 몇 가지는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알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특히 후이족의 영향은 정말 대단하다. 이 요리가 시중에서 산동요리와 섞여 서민과 귀족의 요리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이것들이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많이 사라졌다. 저자가 실제 경험한 문화혁명 당시 음식 맛은 개성도 맛도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전통의 식당들조차 문을 닫았고, 재료는 구하기 힘들어진 시대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마오쩌둥은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평생 고향의 음식을 주로 먹었다고 한다. 한때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먹었던 적이 있는데 이것을 상상하면서 서슬 푸른 문화혁명 당시 중국을 생각하면 어떠했을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혁명 후 농민을 우대하고, 음식 맛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그를 생각하면 실제 음식의 암흑기였을 것이다. 마오쩌둥의 죽음 이후 다시 식당이 문을 열고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해서 맛난 요리를 만들었지만 혼란과 과도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토마토케첩이 들어간 전통요리란 것도 나올 정도였다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광대한 중국은 각 지역마다 요리의 특징이 다르다고 배웠다. 세계적인 요리라고 배웠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명성이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80년대만 해도 중국요리라는 것들은 화교나 대만이나 홍콩 등을 제외하면 제대로 맛을 볼 수 없었는데 이 음식들은 기존의 전통 요리와 다르다고 한다. 전설과 과장과 거짓이 뒤섞여 만들어낸 음식들은 그곳만의 특징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요리법을 혼합한 것도 상당하다. 홍콩 요리를 프랑스 요리와 엮어 설명한 부분은 이것을 잘 드러내준다. 그리고 중국 현지는 혁명과 반혁명의 요리로 나누어진 적도 있다 보니 단절된 역사가 분명히 존재한다. 아니면 저자처럼 혁명 당시나 이후 멋진 요리를 맛봤다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문화혁명이 중국 요리의 암흑기라면 청 말기는 부흥기다. 그 유명한 만한전석도 이때 만들어졌고, 고급요리가 많이 개발된 것도 이때다. 북경에서 만주족과 한족이 뒤섞이기 전보다 후에 더 많은 음식이 대중에게 흘러나왔는데 이때 큰 역할을 한 것이 환관이다. 자금성에 재료를 납품하던 것이 환관들의 연줄로 이루어졌고, 밖의 대규모 레스토랑의 고문이 모두 환관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국 요리의 역사는 어떤 측면에서 환관 요리의 역사라고도 말한다. 한때 한국에서 궁중요리라고 하면서 유행했던 것을 생각하면 좀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정확한 미각과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요리가 있다. 바로 그 부분에서 저자는 표현이나 경험이 탁월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중국 요리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고, 다시 되살아난다. 환상이 사라지는 것은 역사와 과장된 표현들에 대한 것이고, 다시 되살아나는 것은 되살아난 경제와 더불어 과거의 맛들이 재현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상하이에 가면 늘 먹는 음식이 한정적인데 한 번 정도 맛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통 상하이 요리가 어떤 것인지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전제 조건이 있지만.

 

요리는 그 시대와 함께 호흡한다. 자주 보는 요리 프로그램에서 셰프들이 멋진 요리를 하는 것도 그 재료나 이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문화혁명과 공산당의 맛을 표현한 장에서 느낀 저자의 안타까움과 절망은 당연한 것이다. 만한전석 등이 만주족과 한족을 뒤섞는 통치의 맛이라면 혁명의 맛은 평등의 맛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평등의 맛은 맛이 없다. 마오의 죽음 이후 부활하는 맛도 있지만 사라지는 맛도 있다고 하는데 문외한이 나는 잘 모르겠다. 이것을 홍콩 요리와 화교와 연결해서 풀어내었고, 고추의 매운 맛을 한국인들을 위해 덧붙여 낸 장에서는 앞에서도 잠시 말했던 사천 요리의 환상을 깨부순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펼쳤지만 그 내용이나 무게가 무거워 생각보다 어렵게 읽었다. 아직 제대로 소화시키지는 못했는데 중국 요리를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보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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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를 타고 5주간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2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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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 하면 떠오르는 몇 작품이 있다. 대표작인 <해저 2만리>와 <80일간의 세계일주>와 <15소년 표류기> 등이다. 어릴 때 쥘 베른의 소설을 몇 권 읽었다. 그 중 요약본도 있다. 제대로 번역된 책이 몇 권이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쥘 베른의 작품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새롭게 번역되어 나오는 책들이 내세우는 흔한 완역본이란 것도 다시 몇 권 읽었다. 낡았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 펼치면 그 예상은 금방 무너진다. 물론 시대나 과학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재미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 소설은 바로 ‘경이의 여행’을 출범시킨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어릴 때 본 영화 중 한 편이 <80일간의 세계일주>였다. 명화극장 같은 곳에서 봤는데 원작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나중에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손이 나가지 않았다. 반면에 <해저 2만리>나 <지구 속 여행> 같은 작품은 어릴 때 요약본을 읽고, 최근에 다시 완역본을 읽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아마도 영화를 먼저 본 것이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고, 당연히 본 적도 없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탓이다. 그렇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기구를 탄 세 명의 영국인들의 모험에 빠져든다.

 

제목대로 기구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 동쪽 잔지바르 섬을 출발해서 아프리카 중앙을 가로질러 서쪽의 세네갈 강에 도착하는 여행이다. 이 여행을 두고 호사가들이 처음에는 말도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구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전까지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모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새뮤얼 퍼거슨 박사는 철저한 준비와 계산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쥘 베른의 이전 소설(먼저 읽은 책들)처럼 그 성공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모험을 펼칠지는 알 수 없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소설이 주는 재미다.

 

아프리카를 횡단할 기구에는 세 명의 영국인들이 탄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새뮤얼 퍼거슨 박사다. 그리고 절친이자 뛰어난 사냥꾼 딕 케네디와 박사의 하인 조가 바로 탑승객이자 동반자들이다. 처음에 딕은 퍼거슨 박사의 계획을 듣고 말리려고 왔다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행한 인물이다. 훌륭한 하인 조는 주인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갈 인물이다. 이렇게 이 세 명은 박사가 정밀하게 계산하고 설계한 기구를 타고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아프리카 횡단 여행에 참여한다. 그 시작은 아름다운 풍경과 빠른 기류 덕분에 멋진 여행이다. 하지만 변수는 어디에서나 생긴다.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표지에 나오는 코끼리와 기구의 모습은 사실 소설 속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5주라는 시간 동안 일어나는 많은 풍경과 이야기를 담아야 하기에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면서 수많은 아프리카 나라와 부족들이 등장하고, 그 지역을 탐험한 모험가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나일 강의 발원지를 찾아가고, 거대한 산을 넘고, 사막을 위태롭게 지나간다. 새들의 공격을 받고, 도중에 위험에 빠진 선교사를 구하기도 한다. 지도를 옆에 두고 하나씩 지리를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을 날면서 땅과 호수와 산을 내려다보고, 그들을 보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주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이 소설의 기본에 깔린 시각은 오리엔탈리즘이다. 아프리카를 미개한 나라로 보고, 식인풍습이 일반적인 것으로 소개한다. 일정 부분 동의하는 바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19세기 유럽인들이 가진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종과 문명과 문화에 대한 차별의식이 너무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다. 시대의 한계라는 말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어떻게 보면 그 시대의 의식을 잘 드러내주는 대목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만. 세 명의 영국인들이 서로 잘 하는 바를 잘 조화해서 이 위험한 여행을 성공하는 과정은 재미로 가득하다. 이 첫 장편에서 그 뒤에 나올 많은 소설들의 토대를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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