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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를 타고 5주간 ㅣ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2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쥘 베른 하면 떠오르는 몇 작품이 있다. 대표작인 <해저 2만리>와 <80일간의 세계일주>와 <15소년 표류기> 등이다. 어릴 때 쥘 베른의 소설을 몇 권 읽었다. 그 중 요약본도 있다. 제대로 번역된 책이 몇 권이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쥘 베른의 작품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새롭게 번역되어 나오는 책들이 내세우는 흔한 완역본이란 것도 다시 몇 권 읽었다. 낡았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 펼치면 그 예상은 금방 무너진다. 물론 시대나 과학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재미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 소설은 바로 ‘경이의 여행’을 출범시킨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어릴 때 본 영화 중 한 편이 <80일간의 세계일주>였다. 명화극장 같은 곳에서 봤는데 원작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나중에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손이 나가지 않았다. 반면에 <해저 2만리>나 <지구 속 여행> 같은 작품은 어릴 때 요약본을 읽고, 최근에 다시 완역본을 읽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아마도 영화를 먼저 본 것이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고, 당연히 본 적도 없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탓이다. 그렇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기구를 탄 세 명의 영국인들의 모험에 빠져든다.
제목대로 기구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 동쪽 잔지바르 섬을 출발해서 아프리카 중앙을 가로질러 서쪽의 세네갈 강에 도착하는 여행이다. 이 여행을 두고 호사가들이 처음에는 말도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구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전까지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모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새뮤얼 퍼거슨 박사는 철저한 준비와 계산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쥘 베른의 이전 소설(먼저 읽은 책들)처럼 그 성공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모험을 펼칠지는 알 수 없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소설이 주는 재미다.
아프리카를 횡단할 기구에는 세 명의 영국인들이 탄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새뮤얼 퍼거슨 박사다. 그리고 절친이자 뛰어난 사냥꾼 딕 케네디와 박사의 하인 조가 바로 탑승객이자 동반자들이다. 처음에 딕은 퍼거슨 박사의 계획을 듣고 말리려고 왔다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행한 인물이다. 훌륭한 하인 조는 주인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갈 인물이다. 이렇게 이 세 명은 박사가 정밀하게 계산하고 설계한 기구를 타고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아프리카 횡단 여행에 참여한다. 그 시작은 아름다운 풍경과 빠른 기류 덕분에 멋진 여행이다. 하지만 변수는 어디에서나 생긴다.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표지에 나오는 코끼리와 기구의 모습은 사실 소설 속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5주라는 시간 동안 일어나는 많은 풍경과 이야기를 담아야 하기에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면서 수많은 아프리카 나라와 부족들이 등장하고, 그 지역을 탐험한 모험가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나일 강의 발원지를 찾아가고, 거대한 산을 넘고, 사막을 위태롭게 지나간다. 새들의 공격을 받고, 도중에 위험에 빠진 선교사를 구하기도 한다. 지도를 옆에 두고 하나씩 지리를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을 날면서 땅과 호수와 산을 내려다보고, 그들을 보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주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이 소설의 기본에 깔린 시각은 오리엔탈리즘이다. 아프리카를 미개한 나라로 보고, 식인풍습이 일반적인 것으로 소개한다. 일정 부분 동의하는 바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19세기 유럽인들이 가진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종과 문명과 문화에 대한 차별의식이 너무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다. 시대의 한계라는 말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어떻게 보면 그 시대의 의식을 잘 드러내주는 대목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만. 세 명의 영국인들이 서로 잘 하는 바를 잘 조화해서 이 위험한 여행을 성공하는 과정은 재미로 가득하다. 이 첫 장편에서 그 뒤에 나올 많은 소설들의 토대를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